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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보는 통진당내 민혁당 출신 (이석기등...)
게시물ID : sisa_2016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시발영자년아
추천 : 16/3
조회수 : 65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2/05/05 12:12:48
요즘 세상에 빨갱이가 어딨어??

...라는 소리를 하는게 많은데 그거야 말로 빨갱이들의 연막작전... 시대는 흐르고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한가지..우리는 아직도 휴전중이며 북한의 정권은 세습되며 전혀 변하질 않았다는것.

소리없는 전쟁이라는 국가간 정보전에서 북한과 남한간의 간첩 투입뿐만 아니라 이해 관계가 조금이라도 얽혀 있는 모든 국가에서 간첩이라고 하기엔 뭐한 정보요원들이 침투중이라는사실을 인지하기 바람.

우리나라도 최 우방국인 미국에 간첩을 보내서 정보수집하는건 상식.

그런데 관연 적대국인 부카니스탄에서 남한에 간첩을 안보냈을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는 빨갱이


현재 한국 사회의 위기는 민혁당 출신 이른바 빨갱이중에서 진한놈들이 국회로 진출하려 하고 있으며 거의 성공단계이다. 이는 보수층이 소리없이 집결하게된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본다.






경기동부연합은 ‘빈 껍데기’입니다. 보수우파 측에서 껍데기를 몸통이라고 비판하니 저들도 웃는 겁니다. 몸통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려 했던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잔존 세력들입니다.”(허현준 남북청년행동 사무처장·과거 민혁당 관련 활동)

통진당의 당권을 차지한 세력은 ‘경기동부연합’이 아닌 민혁당 잔존 세력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민혁당은 북한에서 직접 지령을 받은 종북(從北) 지하당으로 1999년 실체가 드러나 수뇌부가 체포되면서 와해됐다. 하지만 체포되지 않은 사람들이 조직을 재건해 점조직 형태로 유지해 왔으며, 이 세력들이 과거 민주노동당을 거쳐 현재 통진당의 당권을 접수했다는 얘기다. 이번 총선에서 통진당 간판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거나 당내 주요 보직을 맡고 있는 인사들 가운데 민혁당 관련자가 다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과거 김일성 주체사상 신봉
 
민혁당 사건의 법원 판결에서 드러난 통진당 내 민혁당 관련자는 국회의원 당선자 2명, 야권 단일 후보자 1명 그리고 핵심 당직자 2명 등이다.

통진당 비례대표 2번 이석기 당선자는 민혁당 사건으로 2003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1999년 민혁당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수뇌부가 체포됐지만, 이 당선자는 약 3년간 도망다니다 체포됐다. 민혁당을 세운 서울대 법대 출신 김영환 씨가 북한 체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민혁당 해산과 함께 전향을 선택한 것과 대비된다. 이 당선자는 서울고법 판결 후 5개월 만인 그해 8월 노무현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가석방됐다.

법원 판결문에 나타난 이 당선자의 주요 혐의는 ‘반국가단체 구성’이다. 이 당선자는 민혁당 창당에 참여해 경기남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당선자는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하며 혁명을 통한 국가 변란을 목표로 삼아 북한의 활동에 동조했다. 또 한국외국어대 용인분교 후배들을 민혁당에 가입시켜 활동하도록 했다.
 
이정희 통진당 대표를 대신해 서울 관악을에 출마한 이상규 당선자도 1992년 민혁당 창당 당시 참여해 ‘수도남부지역사업부’를 이끌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총선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울산 북구에 출마한 김창현 후보는 1999년 울산 동구청장 재직 당시 드러난 반국가단체인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영남위원회는 민혁당 산하 조직이었다. 같은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던 박경순 씨는 현재 통진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진보정책연구원 부원장을 맡고 있다.

통진당 내 대표적 기획통으로 꼽히며 이번 선거에서 공동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이의엽 전략기획위원장 역시 민혁당 사건(반국가단체 구성 등 혐의)으로 2000년 검거돼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 경기동부연합 활용해 ‘신분 세탁’ 

민혁당 산하 전북위원회에서 하부 조직원 역할을 했던 허현준 사무처장은 “경기동부연합은 민혁당 사건 당시 드러나지 않았던 사람들이 신분을 세탁하기 위해 거쳐간 중간 단계”라고 주장했다. 

경기동부연합은 1991년 결성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의 하위 지역 조직. 전국연합은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등 27개 단체가 모여 만든 좌파 성향의 연합체였다. 2006년 한국진보연대가 출범하면서 활동을 멈췄고, 2008년 공식 해산했다. 경기동부연합도 이때 함께 사라졌다. 따라서 현재 통진당 당권을 차지한 계파가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주장은 맞지 않다는 것. 실체가 없었던 경기동부연합 대신 점조직으로 운영한 민혁당 잔존 세력이 핵심이라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 민노당 장악 후 통진당까지 

지하조직인 민혁당 관련자들이 통진당과 같은 공당의 핵심이 된 것은 2000년대 초반 활동 노선 변화에 따른 것으로 지적된다. 운동권 내 다른 계파(PD계·민중민주계열)가 세운 민주노동당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자 이들 역시 합법적 정당 조직을 통한 목표 달성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운동권 세력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이들이 2001∼2003년에 걸쳐 치밀하게 민노당을 접수했고, 이를 발판으로 통진당도 장악했다”고 설명했다.

민혁당 관련자들은 민노당 하부 조직부터 장악해 나갔다. 학생운동을 했던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수십 명의 조직원이 서울 용산 등 민노당 특정 지역위원회에 주민등록을 옮겨 대의원 수를 늘린 뒤, 위원장을 자기 세력으로 선출하는 방식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민혁당 세력이 민노당 내 주류로 떠올랐다.

2006년 민노당 핵심 당직자가 당원 명부를 북한에 넘긴 ‘일심회’ 간첩 사건이 발생하면서 민노당 내 이념 갈등이 깊어졌다. 2008년 당내 종북 세력 척결을 주장한 심상정, 노회찬 등이 당을 떠나면서 민노당은 소위 ‘종북파’가 주도하게 됐다.

한 대표는 “이미 ‘종북화’된 민노당은 올해 총선을 앞두고 야권통합을 명분으로 통진당 결성을 주도해 결국 당권도 가져갔다”고 주장했다. 

▼ 민혁당 사건은 ▼

1998년 12월 18일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북한 반(半)잠수정 한 척을 우리 해군이 격침했다. 이때 수거한 유류품을 국가정보원이 수사한 결과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의 실체가 드러나 수뇌부 대부분이 검거됐다.

이 잠수정에는 민혁당 관련 인사들과 만난 북한 간첩이 타고 있었으며 그가 기록한 문건들이 민혁당의 존재와 조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민혁당은 1992년 만들어졌으며 서울대 법대생 김영환 씨가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 김 씨는 이른바 ‘강철서신’을 통해 학생운동권에 김일성 주체사상을 퍼뜨린 인물로, 1991년 비밀리에 방북해 김일성을 직접 만났다. 하지만 방북 기간에 북한의 경직된 사회상을 목격했고 1990년대 중반 북한의 대규모 아사(餓死) 사태를 접한 뒤 생각이 바뀌었다. 김 씨는 1997년 결국 민혁당을 해체하고 전향을 선언했다. 그러나 김 씨의 전향에 반발한 세력들이 민혁당을 재건해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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