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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아버지와 아들 : 2. 김반장
게시물ID : readers_201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카스_네팔
추천 : 1
조회수 : 91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6/10 21: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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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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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모든 내용은 허구임을 미리 밝힙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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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아들]

                                                   아카스_네팔


2. 김반장


"김반장, 거기 좀 앉게."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생산관리과 박과장이 김씨를 호출했다.
 
"커피 한잔 하겠나?"
"아니, 됐습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김반장도 저 소리 들리지?"
 
박과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김반장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다 말았다.
오늘도 노조사무실앞에는 백여명 남짓의 노조원들이 점심집회를 열고 있었다.
 
[노조탄압 금지하고 정리해고 철회하라!]
 
지난 5월 경찰이 공장에 들어 왔던 이후로 벌써 두달째다.

"김반장 난처한 건 나도 알아.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게. 회사가 어려워서 휘청거리는 판인데, 정리해고 아니라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일단 살려놓고 봐야지 않겠나? 물론 심정은 알지만 저렇게들 막무가내니 말이야."
"박과장님."
 
김씨는 대답대신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더이상 부탁같은 거 하지 말아주십시오. 작업장 분위기도 예전같지 않고, 무엇보다 제가 노조사람이 아닌지라 보는 눈길이 여간 따가운게 아닙니다."
"아니, 김반장! 부탁이라니! 내가 자네한테 뭘 부탁하겠나? 그저..다음주 수요일 노조에서 무슨 집회를 한다는데 거기에 몇명이나 모일 것 같은지, 어느선까지 모이는지만 좀 알아달라는 거야. 그정도야 일하면서 넌지시 물어봐도 되잖은가?"
"그 넌지시라는게 안 통한단 말씀입니다. 도대체 조원들이 제말을 듣질 않아요."
 
김반장은 권하지도 않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하긴, 나이로 치면 박과장이 한참이나 아래였다.
소위 엘리트코스를 착실히 거치면서 낙하산으로 내려 온 새파란과장과, 산전수전 다 겪으며 기름밥 20년에 기껏 말뿐인 생산2라인 반장이라는 직책이 서로의 존칭을 꿔 놓았을 뿐이었다.
박과장도 조금은 의외라는 듯 김반장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지만 이내 특유의 미끄러운 미소를 되찾는데 성공했다. 김반장이말을 이었다.
 
"제 생각엔 너무 무리하게 밀어붙인 게 가장 큰 원인인듯 싶습니다. 이천명 가까운 현장사람들을 잘라 낸 것도 그렇고, 공장에 경찰을 투입시킨 것도 그렇고...아무래도 너무 무리수를 둔게 아닌가하고..."
"김반장!"
 
박과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신 노조 끄나풀이야?"
"예?"
"당신말이야. 가끔씩 오락가락해. 당신은 당신처지나 생각하라고! 당신처지 말이야! 집에 있는 식구들을 생각하란 말이야, 엉뚱한데 신경쓰지 말고!"
 
작업시작을 알리는 음악소리가 옥상스피커로 흘러나왔다.
 
"김반장도 나이가 있어서 이젠 위험해 알아? 어디 일을 잘해서 붙어 있는줄 알아? 사람이 왜 그렇게 눈치가 없어?"
 
박과장의 마지막 말이 비수가 되어 박혔다.
그 찰라의 순간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두 아들 녀석, 그리고 아내.
 
오후 작업내내 생산2라인은 무덤처럼 조용했다.
사람들은 대화를 잊어버린 듯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었다. 유독 생산2라인이 더 심했다.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김반장은 조급해졌다.
결국 그가 찾아 간 곳은 소형차 조립라인에서 앞 문짝을 부지런히 붙이고 있던 이군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직한지라 경력은 꽤 되지만 워낙에 앳된 얼굴이라서 김씨는 아들뻘인 그를 편하게 부르고 있었다.
 
"어이 이군! 이거 오늘 너무 조용한 거 아냐? 마치고 소주나 한
잔 할까?"
"예?... 아, 예. 오늘은 안돼요. 선약이 있어서요."
"그래? 왠일이야? 술을 다 마다하고?"
"요즘 좀 바쁘네요."
"아아, 맞다 맞어. 자네 노조에서 일하지? 그 노조일 말이야. 나야나이가 들어서 함께는 못하네만 자네들 고생하는 것 보면 마음이 아파. 지금부터라도 한다면 나같은 늙은이도 받아주려나?"
"글쎄요."
"아, 그리고 다음주 수요일에 있다는 집회말이야..."
"반장님!"
 
이군이 김씨의 말을 가로챈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그만좀 하시죠. 더이상 동료들 좀 팔지 마세요. 가만히 계시는게
도와주는 겁니다."
 
작업종료를 알리는 음악소리가 김씨를 살렸다.
무너진 대선배로서의 위신과 대놓고 얻어맞은 모멸감에 김씨의 등줄기는 축축히 젖었지만 그렇다고 달리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내가 구사대라도 된다는 말인가?
듣고보니 심하구만!"
"반장님. 정말 노조일을 도우시려거든 먼데서 찾지 마시고, 이
번에 해고당한 민석이형님 집에 쌀이나 좀 보내주시지요. 노조
동태나 살피지 마시구요."
 
이군은 오늘 작정을 한 듯 했다.
 
"아..아니 이사람이!"
"지금같은 상황에선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날마다 회사측 간부와 회의를 하는 사람과는 더더욱이요."
 
이군의 작정은 거기까지였다. 되알지게 쏘아붙인 이군은 이정도로끝내는 걸 감지덕지 하라는 듯,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감추지도 않고 김씨앞을 지나쳐 갔다.
때마침 공장내 스피커로 김씨를 찾는 여직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생산 2라인 김반장님. 생산관리과 사무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생산 2라인 김반장님. 생산관리과 사무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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