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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아버지와 아들 : 3. 노조지원투쟁
게시물ID : readers_201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카스_네팔
추천 : 1
조회수 : 28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6/10 22: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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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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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모든 내용은 허구임을 미리 밝힙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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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아들]

                                                   아카스_네팔


3. 노조지원투쟁
 

천지는 총학생회 사무실 의자에 앉아 간부들의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사수대장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사수대는 비밀조직이었다. 학원담당 경찰들의 가장 만만한 표적이 바로 그들이었으므로 당연히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사수대라는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았고, 그저 무슨 과학생회 간부또는 대충 이름 붙인 무슨 부장 정도로 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집회에 나가면 자신의 맡은 일을 톡톡히 하곤했고 그들의 존재는 필수적이었다. 아무리 입소문으로 집회일정을 전달해도 막상 모일라치면 미처 대열이 갖춰지기도 전에 진압경찰들에 의해 해산되기가 일쑤였고, 심한 경우엔 몽땅 들려서 경찰서 유치장으로 옮겨지곤 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만큼 엄혹한 시대였으므로.
물론 총학생회 간부들과 사적으로는 형 동생 하지만, 공식적으로 천지는 일주일에 두어번씩 투쟁국장과 만나 일정을 협의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회의는 벌써 한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무슨 놈의 회의를 저렇게 오래해? 사람 불러놓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의실에서 들리는 소리는 자꾸만 문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때 회의실 안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투쟁국장입니다. 오늘 아침 한국자동차 노조에서 들어 온 소식입니다. 아시다시피 지난 5월, 정리해고와 해외매각에 반대하며 파업중이던 한국자동차에 공권력이 투입되었습니다. 폭력적인 진압과정에서 많은 노동자가 연행되었고, 노조는 지금도 힘겹게 투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회사내에서 탄압 강도도 너무 드세고, 5월 진압으로 인한 타격이 너무 커서 아주 힘든상황이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자동차 노조가 다음주에 가질 집회에 학생들의 연대투쟁을 부탁한다고 지원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다음주 집회에선지난 5월 폭력진압 책임자 처벌과 구속노동자 석방, 정리해고 철회가 주된 이슈가 될 것 같습니다..."
 
'한국자동차!!'

허름한 쇼파에 앉아 신문을 보던 천지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한국자동차라...'
 
천지에게 한국자동차는 남다른 의미였다.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내몰린 수많은 노동자들이 투쟁을 하고 있는 곳, 그리고 아버지가 있는 곳.
 
천지는 아버지가 미웠다.
얼마전 투쟁국장에게서 충격적인 말을 들은 이후로 아버지에 대한 불신은 더더욱 심해졌다.
 
...한국자동차가 지금 장난이 아니래. 폭력진압으로 언론에서 자꾸 떠드니까 이젠 내부적으로 조으는 모양이야. 회사측에서는 각 부서마다 반장들을 싸그리 매수해서 노조동태를 파악하고 있다는 거야.노조에서 요주 인물로 파악한 회사측 끄나풀도 벌써 수십명이 넘어. 개새끼들...
 
천지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이었기에 천지는 투쟁국장을 미워할수는 없었지만, 그때는 정말 견디기 어려운 부끄러움에 치를 떨었었다.
 
...특히 말이야. 생산라인은 더 심한가봐. 왜 너도 알잖아? 한국 자동차 노조분들 주축이 생산파트에 있다는거. 거기 반장들이 정말 개새끼라는 거야...
 
담배연기를 푹푹 내쉬면서 천지는 쇼파에 던져져 있는 포스터를 무심하게 바라 보았다.
 
[정리해고 분쇄와 한국자동차 해외매각 저지를 위한 총궐기!]
 
그리고 아버지.
천지의 아버지는 한국차 생산부 이름뿐인 반장.
천지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한국자동차 생산부 반장은 노조를 탄압하는 회사측의 앞잡이에 불과했지만, 천지에게는 그러한 투쟁대상으로서의 무게보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더욱 가깝게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어이!"
 
누군가 등을 확 치는 바람에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었던 담배를 떨어뜨릴 뻔했다.
 
"어..형. 끝났어?"
"많이 기다렸지? 밥이나 먹으러 가자!"
 
투쟁국장은 항상 얼굴이 밝았다.
수배생활만 2년째, 과 간부로 시작해서 과학생회장, 단과대 간부, 그리고 총학생회에 올라 올때까지 학생운동만 거의 칠팔년째인데도그의 얼굴엔 그늘진 구석이 없었다. 어쩌면 십년가까운 학생운동기간 동안 그는 철저히 자신을 단련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인지도 몰랐다.
 
'도대체 저 양반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학생회관 식당은 총학생회 건물 바로 1층에 있었다. 투쟁국장이 밥먹으러 가자고 하면 무조건 학생회관 식당이었다. 수배상태니 밖으로 나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고, 문과대나 도서관에도 식당은 있었지만 학교안에도 형사 끄나풀이 돌아다니는 판국인지라 후배들 몇명을 붙여서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그게 귀찮았던 것이다.
그 모든 어려움과 제약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삶으로 받아들이고있었다.
 
때마침 점심때가 지나서 식당은 한가했다.
새로 특식 메뉴에 추가된 냉면 그릇을 젓가락으로 탁탁 두들기며그가 한소리 했다.
 
"학생 복지 위원장이 말이야. 이번에 본관에 가서 따졌거든. 바로 효과 나타나네. 하하!"
"그 형 원래 성질이 좀 더럽잖아요. 안그래도 메뉴가 맨날 똑같아서 사람들 불만이 많던데 잘 됐네요."
"맞아. 날씨가 더우면 냉면 콩국수도 하고, 좀 추우면 뜨끈뜨끈한 설렁탕도 하고 좀 그래야지. 값도 싸고 맛도 뭐 그럭저럭 먹을 만하고...나는 바깥보다 여기가 더 좋아."
 
그는 복학생같지 않았다. 얼굴이 동안이라 오히려 남이 보면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 할 정도였다. 때문에 가끔씩 집회 현장에서 시퍼렇게 날선 칼처럼 몰아치는 모습이나, 중요한 일을 말할때 정색하는 그의 모습을 본 후배들은 입을 쩍 벌리곤 했다.
 
"천지야. 아까 회의에서 결정된 얘긴데..."
 
그런 그가 정색을 했다. 냉면그릇을 앞에 둔 채였다.
천지는 묵묵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다음주 화요일 한국자동차 집회말이야. 학교에서는 지금 시국관련여러 이슈때문에 너무 시끄러워서 힘을 쏟기가 힘들것 같아. 그래서 말이야. 니가 애들하고 대표로 다녀와야겠어."
"예?"
"왜? 어려운 일 있어?"
"아..아니요."
 
천지는 일부러 국물을 훌훌 마시면서 땀을 말렸다.

"애들 한 열댓명 정도 데리고 갔다와. 가서는 학교 사정 잘 얘기하고.. 절대 앞에 나서지 마라. 한국자동차 싸움은 여론이 우리쪽에 있어. 5월달 폭력진압 때문에 여론이 공권력 투입에 비판적이거든.하긴 그걸 신경쓸 정권이 아니지만. 여튼 그냥 힘만 보태주고 와. 경찰들도 세게 나오진 않을꺼야."
"예."
"어이. 너 요즘 무슨 고민있냐?"
 
평소같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투국장이 국물을 들이키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여자 사귀냐?"
"안생기더라구요."
"힘내 임마!"
 
괜히 그 소리가 부끄러워서 천지는 다시 빙긋이 웃어 주었다.
수배생활 2년째 접어든 복학생선배가 힘내라는 말을 하며 웃는데 우거지상을 계속 쓰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왠만하면 피하고 싶은 한국자동차 노조지원투쟁 일정은 그렇게 천지의 일상이 되어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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