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그래 점점 나아지는거야.
게시물ID : freeboard_20188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e식당노동자
추천 : 5
조회수 : 604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23/12/19 08:01:00
작년 이맘 때 쯤 나는 09년식 스타렉스를
몰았다. 29만 언저리 쯤 운행한 중고였는데,
여름에 살 땐 잘 몰랐지만 겨울이 되니 시동이
잘 안걸렸다. 결국 어느날, 일을 나가야 하는데
차 시동이 끝까지 걸리지 않아 보험사를 불렀는데
전에 있던 차의 문제들로 이미 출동횟수를 모두
써 버린 뒤였다. 카센터 직원은 배터리를 충전해
줬지만 따로 출장비가 발생했다.

나는 지갑에서 떨리는 손으로 오만원짜리 두 장을
꺼냈다. 그건 며칠 치 식비였다.
어떻게든 시동은 걸렸으니 일을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안가 경고등이 뜨고, 결국 차를 카센터로
돌려야 했다.


"응 그래. 난데... 그렇게 됐어. 미안한데 삼십만원만
빌려줘. 제네레이터가 나갔는데 한두푼이 드는게
아니네... 미안해. 응. 고마워. 꼭 갚을게."

수리비를 어떻게든 구해서 너는 차를 고쳤다. 뒤 이어
나는 일을 나가기로 한 곳에 사정을 설명했지만
냉정한 목소리로 "그럼 계약금은 못 돌려줍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전화를 끊었고 난 일을 날릴
수 밖에 없었다. 화내는게 당연하지.


수중에 남은 돈이 없었다.
이만 얼마쯤 남은 돈은 기름값으로 모두 썼다.

겨울에는 일이 잘 없다.

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와 집에 있는 돈을 모두
찾아내 만 얼마쯤을 만들어내고 그걸로 술을
사 먹었다.

"내가 일부러 그랬냐고. 어? 내가 일부러 그랬냐고!"

삼각김밥 세 개를 안주삼아 소주 세 병을 먹고
나는 누워 울었다. 그리고 잠들었다.

그 다음날부터 며칠동안 물류센터 알바를 뛰어
돈을 갚고 생활비를 마련했다.

밀린 집세는 언강생심이다.

- 다음 달 까지 밀린 집세를 좀 해결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도 더는 못 기다립니다.

집주인의 요구는 당연했다. 나는 사정사정하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난
뒤에야 시간을 좀 더 벌 수 있었다.


기억은 그렇게 다시 끄집어 내 졌다가,
가슴한 켠 서랍장에 넣어진다.


나는 지금 23년식 스타리아를 몬다.
어젠 쉬는날이라 차 시동을 걸 일이 없었다.
날이 추운데 그래도 한 번은 걸어야 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귀찮아서 나가지 않았다.

오늘 아침 차 시동을 걸었다.
추운날씨더러 '어쩌라고?' 하는 듯 차 시동은
아무 일 없이 걸렸다.

조금 맥이 빠졌지만 좋은 일이다.


편의점에서 따뜻한 음료를 샀다.
며칠 뒤에 친구들을 만나는 김에 새 옷과
신발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내일 출근시간 전 미용실을 예약해뒀다.
최근에 온라인게임 와우에 빠져있기 때문에
지난 일요일날 3개월치 계정비를 선결제했다.

그냥 쓰고싶은 것 대충 하고싶은 것 하며 산다.
어제 사먹은 돼지갈비는 맛있었다. 그냥 그런저런
또 그럭저럭 좋은 날이다. 어제도 오늘도.

나아지고 있다.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지만
한걸음 또 하루 지날 때 마다 상처를 흩뿌리고
간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옅지만 미소가 돌아온다.

노래가사처럼 인생이 나에게 술한잔 사주지
않은들 어때. 그러든 그러지 않든, 위로를 바랬던
시간을 어떻게든 쥐어짜서 버티다 보니 그런건
아무래도 좋은 날들이 점점 오고 있는걸.

내년 이 맘 때 쯤엔 고개를 끄덕이며 웃을 수 있길 바란다.
더불어 그렇게 시퍼런 날들을 보낸 나에게 말한다.

"괜찮아. 곧 좋아질거야. 술마시고 마음껏 울어.
너무 오래는 안되겠지만 적어도 하루쯤은 그래도 돼."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