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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아버지와 아들 : 5. 큰 아들
게시물ID : readers_201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카스_네팔
추천 : 0
조회수 : 34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6/11 14: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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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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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모든 내용은 허구임을 미리 밝힙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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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아들]

                                                   아카스_네팔


5. 큰 아들

"소대장님. 일주일 뒤면 말년휴간데 좀 봐 주세요."
"중대장 지시야. 짤없이 다 나가래. 막사에 한 명이라도 남아 있으면 몽땅 영창보낸다네."
"아이..정말 재수 없네. 제대 말년에 확실히 꼬이는구만."
"막판에 봉사 한 번 한다고 생각하고 갔다와. 학생들도 아니고 저번에 한 번 당해서 세게 들이대진 않을꺼야."
 
소대장도 중대장 깝치는 게 영 탐탁치 않은 표정이었다. 소대장은 뭐 가끔씩 점호 끝나고 구석진 내무반에서 소주도 같이하는 허물없는 사이다. 물론, 신임 중대장이 오고 난 뒤엔 그짓도 못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신임 중대장으로 말할것 같으면 일을 만들어서 하는 스타일이다.
왜, 부지런한 고참밑에 있으면 손에 물 마를 일 없고, 삽자루 놓을일 없다지 않은가? 이 위인은 오는 날부터 연병장에 전 부대원을 집합시키더니, 내무검열을 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재수없이 관물대에 야릇한 잡지 몇권 짱박아둔 말년병장 몇 명이 군장 싸매고 연병장을 도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소위 상경이상 중고참들에게 며칠동안 밤잠을 못 이루게 한 사건은 뭐니 뭐니 해도 일, 이경들을 대상으로 한 '소원수리'였다. 그만큼 사전 단속을 해도 요즘 쫄다구들은 워낙에 제멋대로인 통에 꼭 '소원수리'같은 거 한 번 하면 배째라식으로 불어 버리는 놈들이 몇 있다. 아니나 다를까 '절대 비밀 보장'이라는 꼬임에 넘어가 이번에도 두어놈이 '나 맞았소!'해 버린 모양이었다. 2내무반박상경과 8내무반 김수경이 이를 박박갈며 삼일짜리 영창을 갔다왔다.
 
데모진압부대.
소위 말하는 전투경찰의 실질적 주임무다.
'간첩의 침투저지, 섬멸 기타의 대간첩작전 수행 및 치안업무보조'라는 신성한 임무가 있지만 다 헛소리다. 나는 자대배치를 받고 얼마 안지나 바로 데모진압에 투입되었다.
데모하는 인간들, 사실 처음부터 싫어하진 않았다. 대학 다닐때 무슨 '반대'라든가, '투쟁'이라는 말이 씌여진 플랑카드를 걸어 놓고도서관앞에서 집회를 하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나는 왠지 그런 분위기가 어색했지만 가끔씩 그들이 나눠준 종이를 받아 읽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쁘장한 여학생이 팔을 쫙쫙 내뻗으며 섬뜩한 구호를 거침없이 내뱉는 모습이라든가, 전세를 낸 것도 아니면서 군가풍의노래를 틀어놓고 도서관 밑에서 왕왕거리는 것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었지 그런 행위 자체를부정하지는 않았었다. 삶의 주관이 서로 다른 데 무엇을 잘했다 잘못했다 하랴?
말하자면 나의 입장은 '뭐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저러겠지' 정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 일이 나의 일상으로 닥치다 보니 이건 도저히 태평스럽게 넘겨버릴 일이 아니었다.
 
자대배치 되고나서 두번째 출동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처음이야 워낙 긴장해서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게 넘어갔지만, 두번째 출동부터는 조금씩 상황판단을 하면서 예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공포와 야릇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었다.
늦가을이었다. 
그때도 우리는 공장 정문앞에서 밖으로 진출하려는 그들을 막고 있었다. 정문앞 도로를 모조리 차단하고 철통같은 방어선을 치고 있을때, 나는 시커먼 전투복과 낡은 방패와 헬멧을 쓰고 방독면까지 착용한 채 맨앞줄에 서 있었다.
정문안쪽에서 노조대표로 보이는 사람의 연설이 있었고, 그가 내려가자 드디어 아스팔트 바닥에 놓여있던 깃발들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시위대 대부분은 정문안쪽에서 더이상 나오지 않은 채 깃발만 신나게 흔들어 대고 있었고, 조금 지나자 그 깃발 사이로 아까는 보이지 않던 소위 '사수대'가 나오고 있었다.
 
'씨발...'
 
나는 그때 그렇게 중얼거렸던 것 같다.
공포가 냉기처럼 엄습해 왔다. 청테이프를 칭칭감은 쇠파이프 수십개가 아스팔트 바닥에 질질 끌리면서 내는 소리가 주는 공포,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마치 날카로운 소리가 파편이 되어 내가들고 있는 방패를 찌익 찌익하고 긁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들 뒤를 따르는 화염병 박스들.
아마 그때가 화염병이 다시 시위에 등장했을 즈음이었다. 이윽고, 사수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화염병에 불을 붙여 도로위에 곧추 세워 놓았고 이제 한바탕 싸움을 코앞에 두고 우리는 오른발을 구르고 있었다.
 
'악!'
'악!'
'악!'
 
우리는 거머리처럼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공포심을 떼내기 위해 기합을 넣고 있었고 고참들은 뒤에 붙어 곤봉으로 헬멧을 때리며 독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눈앞에서 예측 못한 광경이 벌어졌다. 어디선가 꽹과리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한떼의 사물놀이꾼들이 하얀색 옷을 입고 줄지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깽깽깨 깽깨개갱!
 
빠른 템포의 꽹과리 소리뒤로 쿵쾅거리는 북소리가 뒤를 이었다.

둥둥 두두둥둥둥!  

그들은 정문앞을 횡대로 가로막고 서 있던 사수대마저 뒤로 하고 계속 앞으로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서서히 꽹과리와 북소리가 우리를 덮쳐왔고, 급기야 그들은 내가 들고 있던 방패에 등을 기대더니 마치 흥에 취한 듯 어깨를 들썩거리는 게 아닌가?
 
'이 새끼들봐라...'
 
공권력에 조금의 두려움도 가지지 않는 그들에 대한 일말의 짜증스러움이었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사기는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점점 더 높아가는 꽹과리 소리와 더 커지는 북소리와 하늘을 찌를 듯한 그들의 함성. 그리고 그만큼 더 쿵쾅거리며 따라가는 심장 박동 소리.
그것은 정말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리얼한 공포였다. 싸우는 것도 아니고, 화염병이 날아오는 것도 아닌데, 그저 시끄러운 꽹과리와 북소리일 뿐인데도 나는 뼈속까지 파고드는 공포심에 치를 떨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무심코 바라 본 동료의 눈!
그것은 구석에 몰린 사냥감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코앞에서 온 천지를 싸매고 올라갈 것만 같던 사물놀이꾼들의 꽹과리며 북소리가 조금씩 조금씩 저들 쪽으로 멀어져 가고 그들뒤로 화염병을 들고 서서히 걸어오는 사수대의 모습이 보였다.
 
훈련받은 대로 좌로 우로 방패를 움직이며, 나도 모르게 리듬을 타며 몸을 움직이고는 있지만 끝도 없이 내 앞으로만 다가오는 저 화염병들을 도무지 이겨낼 것 같지 않았다.
 
"저새끼들 꾼들이야! 끝까지 시선떼지 말고 방패로 잘막아!"
 
뒤쪽 어디선가 고참의 외침이 들려왔다.
 
"정신차려 새끼야!"
헬멧으로 곤봉이 날아왔다.
"예!"
 
과연 사수대들은 불붙은 화염병을 들고서 겁도 없이 계속 다가오고있었고, 그것은 그들이 대충 급조된 사수대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저 놈들은 우리가 겁나지도 않나?"
 
나는 그때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학교 다닐때가끔씩 봤던 전경들과 소위 백골단이라고 부르는 사복체포조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지금의 저들은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기분차이인가?
대치상황에서 저렇게까지 태연하게 코앞까지 다가올 수 있다니. 하지만, 그런 생각도 찰라 그들의 손에서 순식간에 불붙은 병들이 날아왔다.
 
"오른쪽이야! 잘 막아!"
"왼쪽아래!"
 
최루탄이 하늘을 날긴 했지만 아무 것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방독면을 써서 좁아진 시야때문에 저들의 화염병에 이어 날아오는 돌맹이까지 막아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퍽!'
'억!'
 
헬멧이 뒤로 휘청하며 제껴졌다. 주먹만한 돌멩이었다.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정신차려 이새끼야! 병 날아온다! 야..야! 대열정비!"
"대열정비!" 

고참이 뒤에서 고래 고래 악을 썼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제껴진 헬멧을 가까스로 바로잡고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나는 내 뒤에서 외치는 고참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었다.
 
"야! 앞에! 앞에 조심해!"
"아악!"
 
그리고 나의 기억은 거기까지었다.
나중에 병원으로 문병 온 고참들의 말에 따르면, 나는 유난히도 신나가 많이 들어 있던 화염병을 재수없게 정통으로 맞아 불덩어리가되어 쓰러졌다고 한다. 뒤에서 고참들이 달려왔고, 전투방화복이라서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흘러내린 신나때문에 다리와 몸 군데 군데 화상을 피할 수는 없었다.
 
지금도 무릎과 발목주위엔 그때 입은 상처가 훈장처럼 선명하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변했다.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적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시위진압은 전쟁이다! 봐주면 내가 죽는다...'
 
고참이 되면서 나의 악명은 점점 더 높아갔다.

"밀리면 죽어! 옆줄 맞춰, 이새끼야!"
 
보통 이런 멘트와 함께 날아오는 고참들의 곤봉세례,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정신 안차리면 병신돼 새끼들아! 악으로 깡으로 안버티면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어! 정신 똑바로 차려!" 그리고 딱!

나는 쫄병시절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을 신입들에게 알려주며나에 대한 적개심을 변명하지만, 헬멧을 통해 증폭되어 두개골을 울리며 귀에 '딱'하고 들어오는 그 느낌은 정말 이를 갈 정도로 싫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독기가 생기는 것또한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더이상 나의 설교가 신참들에게 안 먹혀 들어간다는 것을
느낄 때, 그제서야 군인는 제대할 때가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 제길.. 막판에 한 번 갔다오지 뭐. 그런데 왜 하필이면 한
국자동차야...하긴 거기서 아버지 볼 일은 없겠지만...'
 
관할구역이라 쫄따구때 몇 번 나가 봤지만, 아버지가 있는 '한국자동차'는 왠지 꺼림칙해서 다른 때 같으면 펄펄 날다가도 괜히 긴장하게 된다.
그럴일이야 없지만 혹시 저 속에 아버지가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노조라든가 집회, 투쟁...이런 거랑은 워낙 거리가 먼 양반인지라 절대 마주칠 일은 없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우리집은 데모하고는 거리가 멀다.
동생녀석도 기특하게시리 매번 무슨 무슨 장학금을 타면서 다니는 모양이었다.
 
'그래....이틀뒤면 휴가다. 마지막으로 화끈하게 몸이나 풀고 오
지뭐...'

내일은 긴 하루가 될 것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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