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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아버지와 아들 : 6. 결전(완결)
게시물ID : readers_201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카스_네팔
추천 : 1
조회수 : 28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6/11 14: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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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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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모든 내용은 허구임을 미리 밝힙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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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아들]

                                                   아카스_네팔

6. 결전 (완결)
 
 
2017. 6. 7. 한국자동차 정문앞.
 

# episode 1. 1:30 P.M. 김씨의 반전
 

김씨가 잠에서 깬 것은 점심때도 훌쩍 지나 구석진 담벼락 옆에도 햇빛이 따습게 비출 때였다.
정문에서 들리던 목소리는 이제 이군의 것이 아니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낯설긴해도 오히려 이군보다 더 우렁찬 목소리가 잠시후 집회에 참석할 것을 독려하고 있었으니.
김씨는 잠들기 전에 무언가 스스로 다짐한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눈을 뜨자마자 그의 몸은 용수철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일어날 때의 속력그대로 서슴없이 정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episode 2. 2:20 P.M. 작전변경
 

"작전변경! 작전변경한다! 학생들이 결합해서 폭투가 예상된다. 강경하게 대처하고 화염병 투척, 쇠파이프를 사용한 시위대는 전원 검거방침으로 진압하라. 다시한번 전달한다..."
 
갑자기 분대장들에게 무전으로 지시가 떨어졌다.
 
"에이..씨발...막판까지 안 도와주네.."
 
어쩐지 분위기가 심상찮더니만 역시 학생들이었다.
부담없이 나왔는데 이건 뒤통수 맞은 격이다. 학생들이 섞였다하면작전의 차원이 달라진다. 대부분의 경우에 학생들은 노조집회에서 사수대로 나오기 때문이다.
노조대표가 사진체증 전담반의 플래쉬세례를 받으며 연설을 했고 -그 사진은 나중에 범죄사실 입증의 필수 증거물이 된다- 이제 쿵쾅거리는 엠프소리에 실려 낯익은 노래가 귓전을 울린다.
 
"동트는 새벽 밝아오면...붉은 태양...솟아온다..."
 
저놈의 레퍼토리는 바뀌지도 않아.
좀 있으면 쇠파이프를 아스팔트에 질질 끌며 나오겠지. 이리 저리 화염병이 담긴 라면박스가 도로위에 자리잡을 테고.
갑자기 두눈에 불똥이 확하고 튀었다.
제대말년에, 그것도 말년휴가를 하루 앞두고 최루탄 연기속에서 불춤 - 화염병이 날아오면 이리저리 움직여 피하는게 마치 춤 추는 것 같다해서 우스개로 부르는 말이다 - 을 춰야하는 신세라니. 

"임자만났다. 새끼들!"
 
그때였다!
 
"어엇! 저기 저새끼 잡아!"
 
소리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몇미터 떨어진 도로 코너쪽 식당에서 학생처럼 보이는 이가 정문을 향해 달음박질 치고 있었다.
 
"저새끼 사수대야! 체포해!"
"그래..너 잘만났다....이 개새끼!"
 
저절로 이가 뽀드득 갈렸다.
 

# episode 3. 2:20 P.M. 결심
 

한국자동차 정문앞은 삼거리였다.
정문을 기준으로 양옆으로 대로가 있었고 맞은편을 중간치의 도로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천지 일행은 정문 맞은편 도로 코너에 붙은식당에 자리잡고 있었다. 정문까지 20여미터.
 
무엇보다 당황한 것은 천지였다.
 
'이정도일 줄이야...'
 
그랬다.
일부러 늦게 온 것은 아니지만 어찌 어찌해서 거진 2시가 다 되어 공장 맞은편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는데 벌써 병력이 빽빽히 배치되고 있었던 것이다. 후배들을 추스려 식당으로 숨어들긴 했지만 도무지 분위기가 헐거워질 판이 아니다.
 
'정보가 샜나?...'
 
그렇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노조측에서는 각별히 보안을 유지해 달라고 했지만 우리 말고도 지원연락을 받고 오는 학교가 더 있을테고 그렇다면 저들이 이미 눈치를 챘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학생들이 결합한다'
 
이 정보는 저들에게 '차원이 다른 대응태세'를 요구할 것이다. 그것은 몇 배로 까다로운 검문검색을 의미했고, 다연발최루탄 발사
기 차량이 몇 대 더 필요함을 의미했고, 왕고참까지 방독면을 쓰고체포조로 뜀박질을 할 수도 있음을 의미했다.
천지는 형에게서 주워들은 말들을 결코 흘려 듣지 않았다.
분위기는 점점 빡빡해졌다.
만일 이대로 식당문 밖으로 나가 정문쪽으로 향한다면 찍소리도 못하고 검문을 당해 닭장차에 실릴 것이 뻔했다.
 
'정문 양옆 도로에는 이미 빽빽히 진을 치고 있고, 우리가 있는 맞은편 도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곳은 정확히 코너부분, 죽기 살기로 뛰면 뚫지 못할 것도 없지만.... 안돼...그건 너무 무모한 짓이야...'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답이 없었다. 그렇다고 집회가 끝날때까지 이곳에 죽치고 앉아 회식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이곳마저도 자유롭지 않다.
정문앞으로 진출하려는 시위대와 전경들이 맞붙게 되면 분명 쫓고 쫓기는 싸움이 시작될테고, 오늘은 화염병도 쓴다고 하니 저들도 검거모드로 최루탄을 신나게 쏠 것이다. 그렇다면 연기에 숨막힌
노동자들이 피할 곳은 어디인가?....바로 이곳이 아닌가?
정문쪽에서 구속된 동지들을 대신해서 노조대표가 연설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준비된 식순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음을 의미했다. 조금있으면 힘겨루기가 시작될 것이다.
 
"형. 학교에서 전화왔어요."
"어..어그래"
 
천지는 얼떨결에 휴대폰을 들었다. 투쟁국장이었다.
 
"상황은 어때? 잘 들어갔냐?"
"어렵게 됐어요. 쟤들 오늘 낌새가 장난이 아니에요. 삼거리 다 꽉찼구요, 공장 맞은편 식당에 애들하고 같이 있는데 식당문 앞까지 진을 치고 있어요..."
 
찰라의 시간이었지만 전화 저편으로 천지는 투국장의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거기도 위험할텐데...어쩔 수 없다. 더 꼬이기전에 애들 입단속 시키고 한명씩 빠져나와서 학교로 돌아와. 섣불리 디밀지 말고."
"예, 아무래도 그래야겠어요. 학교에서 봐요."
"그래, 조심해서 와. 아, 그리고 좋은 소식이 있다! 너 다음 학기 등록금 고민했지? 걱정 안해도 되겠어! 근로 장학금 자리가 났거든. 들어와서 얘기하자."
 
전화를 끊고도 한참동안 천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다들 조용히 앉은 자리에서 내말 들어라...."
 
같이 온 후배녀석들이 긴장했다. 벌써 정문쪽에서는 준비된 식순이모두 끝나고 연이은 투쟁가로 사기를 높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휴대폰이 또 울리기 시작했다.
 
'아이...또 뭐야?..'
 
천지는 짜증스럽게 다시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전화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는 참으로 의외의 인물이었다.
 
"천지냐?...나다. 애비다."
"예? 예..아버지...무슨 일이에요?"
"아..아니다. 별 일 아니고..그냥 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다. 애비가 말이다. 오늘 회사에서 좋은 일이 생겼다. 평소에 왠수처럼 지내던 노조사람들하고 오늘 저녁에 술한잔하기로 했지뭐냐. 허
허..아부지 오늘 좀 늦으니까 그렇게 알고... 이따 아부지 들어갈 때안주꺼리 좀 사가지고 갈테니 오랜만에 애비랑 소주나 한잔 하자. 애비가 오늘 기분이 참 좋다..."
"예? 아..예...예..."
 
그리 길지않은 통화였지만 전화를 끊고 난 천지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후배녀석들도 뭔가 심상찮은 낌새를 눈치챘는지 꿀먹은 벙어리처럼대장의 표정만 살피고 있었다. 

"지금 밖에 들리는 저 노래 제목이 뭐냐?..." 
"예? 저 노래요? 단결투쟁가잖아요?"
"....."
 
어버지 전화 목소리너머 희미하게 들리던 노랫소리.
'아버지...'
천지는 휴대폰을 부서져라 움켜 쥐고 있었다.
 
"자...내말 들어라. 상황이 좋지 않다. 지금부터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다. 우리는 그저 배가 고파 밥먹으러 여기 들린 손님이란 말이다. 한명씩 빠져나가 이따 학교에서 만난다. 기창이부터 나가라."
"형은요?"
"나는 나중에 계산하고 나갈테니까 걱정말고!"
 
기창이가 알았다는듯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빠져나갔다. 일이분 간격으로 그렇게 후배녀석들이 하나씩 하나씩 식당문을 열고 나갔다. 잠잠한 걸로 봐서 다행히 안걸리고 모두 잘 나간 모양이었다.
 
"너도 빨리 나가라."
"형 같이 나가죠? 검문도 안하는 것 같은데요?"
"됐어 임마! 그러다가 잡혀! 빨리나가. 나는 계산도 해야되고...학교에서 보자."
 
항상 곁에서 오른팔노릇을 해주는 상환이가 걱정스레 말을 걸었지만 천지는 고개를 돌렸다. 
 
"어? 이새끼봐라. 빨리가 새끼야! 콱 죽여버리기 전에!"
"알았어요...형. 이따 학교에서 봐요..."
 
결국 상환이도 비실 비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혼자남은 식당에서 천지는 지갑대신 뜻밖에도 담배를 꺼냈다.
아무 생각없이, 아무 표정없이 그 한개피를 다 피웠다. 하지만 전쟁같은 시위대 최전방에서 항상 치를 떨면서도 싸우던 긴장감 같은건 그에게서 찾아 볼 수 없었다.
후배들이 있어 억지로 참았던 눈물만이 눈가에 고일 뿐이었다.
 
아버지...
 
잠시후 계산을 마치고 문을 열고나와 
사월의 햇살을 가득 안고 섰을 때, 
천지는 갑자기 무엇엔가 취한 것처럼 
저기만치 일렁이는 깃발을 향해 
달음박질하는 자신을 그려보고 있었다.

저기 어딘가에 있을 아비의 깃발이 너무나 그리웠던 
어린 풀처럼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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