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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지식'과 자국사
게시물ID : history_202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한량011
추천 : 4
조회수 : 59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3/31 22:32:30
본글은 청주교대 정규원 교수의 전국역사학대회 투고문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정규원, "'권력-지식'과 자국사', 전국역사학대회.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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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제기: 지식, 권력, 자국사
대다수의 사람에게 참된 지식이란 진리로서 광명 해방 자유 계몽등을 함의할 것이고 권력은 어둠 억압 지배 폭력 등으로 포현될 것이다. 따라서 이 둘은 상호 배제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 보통이다.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 권력이며 권력은 지식의 도움으로 자신을 안정시키고 지속시킨다는 생각은 생소하다. 진리에도 엄연히 역사가 존재하며, 참된 지식으로서의 진리는 그 자체로 일종의 권력이라는 생각은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 역사에서 절대적인 진리로 군림했던 조선왕조의 삼강오륜등의 사례를 볼때 진리는 절때 초역사적이지 못하며 그 자체로 권력으로서의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최근에 한국사회에서의 자국사교육은 커다란 정치 쟁점으로 논해진다. 2004년에는 고구려 연구재단이 2005년에는 동북아 평화를 위한 바른 역사 정립 기획단이 2006년에는 동북아역사재단이 발족하였다. 2013년에는 국회에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가 설립하였으며 이해 위원장이 남경필은 '왜곡이 심한 한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특히 상고사의 왜곡이 큰 문제' 라고 말했다. 교육 현장이나 학계 이전에 정치권에서 자국사교육은 좋은 먹이감으로 입방아에 오르는 것이다. 이는 자국사라는 지식체계가 현실적으로 가지는 권력의 속성을 상징한다. 자국사는 기성권력 관계에 포획되어 있고, 기성 권력 관계는 특정한 형태의 자국사를 필요로 한다. 

인간에게 지식 권력 자국사가 가지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각각과 인간간의 관계는 인간의 실존적인 삶에 있어서 본질적인 의미를 함의한다. 여기서는 진리의 역사성, 지식과 권력의 상관성이라는 관점에 기초하여, 자국사의 본질적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2. 지식과 권력의 상관성 혹은 '권력-지식'
인간의 인식은 본래 권력과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근대에 들어 니체에 의해서 표명되었다. 니체에 따르면 인식이란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기에 '발명'된 것이다. 즉, '진리 획득의 보편적 능력'으로 여겨지는 '인식'은 역사적으로 제조된 것에 불과하다. 
이런 니체의 관점을 계승한 이가 미셀 푸코이다. 그에게 있어 인식이란 "여러 본능들 간의 게임 대립 접합 혹은 투쟁과 타협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여러 본능간에 서로 접촉이 일어나며 갈등이 일어나는데 이 갈등이 타협으로 결론나는 것이 인식이다. 그러므로 인식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며 반 본능적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자연적이라기 보다 반자연적인 것이다. 

인식과 인식대상 사이에는 어떠한 친연관계도 없다는 것이 니체의 관점이다.인식과 인식되는 사물들 사이에는 어떠한 자연적인 연속의 관계도 없다. 있는 것은 단지 폭력적 관계, 권력과 침해의 관계 뿐이다. 즉 인간의 인식으로서의 행위는 본질적으로 인식대상과는 단절된 개인의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광명과 자유와 계몽으로서의 진리라는 관점을 그리고 대상과 인식주체간의 통일로서의 인식에 대한 관점을 자명하게 받아들여왔다. 그러나 니체와 푸코는 이에 반기를 들었고 기존 관념에 대해서 재고를 요구한다. 인식의 행위가 단절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렇게 얻어진 지식 또한 자유와 계몽으로서의 진리라는 관점에서 부적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푸코의 권력과 지식에 대한 관계 규정은 주목할만 하다. 푸코는 권력을 지배자로 부터 피지배자들을 향해 일방적으로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관련되는 모든 힘들을 관통하는 모든 이에게 실천되어야할 일종의 전력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런 권력과 지식의 관계에 대해서 '불완전한 인식과정(폭력적 관계, 권력, 침해의 관계)으로 탄생하는 지식이란 본질적으로 권력을 함의하며 동시에 권력은 지식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지식의 영역이 상관적으로 구축되지 않는한 권력 관계는 존속할 수 없으며 반대로 권력이 성립하지 않는한 지식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푸코는 이런 관점에서 '권력-지식' 복합체 개념을 고안해냈다. 인식의 주체, 객체, 양태 들이 모두 '권력-지식' 효과 라는 것이다. 이른바 '권력-지식'이 선행하고 그 결과로서 인식의 주체, 객제, 양태 들이 형성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정리하자면 "권력에 유용한 지식이든 불복종하는 지식이든 어떤 지식을 생산하는 것은 인식 주체의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과 지식간의 본질적인 접촉 활동의 결과이며 그렇게 형성된 지식들간의 투쟁과 구축의 결과물이다. 인간의 인식과정이나 그 영역은 이런 반자연적(본능적이지 않은)인 생산과정을 통해서 결정된다" 라는 것이다. 
(조금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 하자면..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의 지식이란 지식을 인식하는 주체인 인간이 객체인 사물을 보고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기존 권력과 기존 지식들의 결합을 통해서 그 인식의 방향이나 범위를 결정짓고 획득하게 된다는 겁니다. 역사로 예를 들면 이런게 되지요. 역사에서 권력에 해당하는 것은 정치권 같은 진짜 권력이 있겠지만 동시에 기존 학계가 가지고 있는 전통이나 방법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사건을 연구할때 '사료나 유물을 기반으로 사고한다.' 라는 역사의 방법론은 역사학계가 가지고 있는 행동 전략 즉. 권력입니다. 이 권력은 역사연구라는 지식을 통해 형성되었지만 반대로 역사연구란 지식은 역사적 방법론을 통해야만 탄생합니다. 역사적 방법론 이라는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역사적 지식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3. 상고사의 진리 게임
권력과 지식간의 상관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기자에 대한 조선의 역사 인식이다. 
최근에는 기자를 부정하고 있으며 고조선의 시조가 단군이며 그가 한국의 기원이라는 점을 '국사'에서 정설로 삼고 있다. 이를 우파에서는 더 민족적인방향으로 밀고나가고자 하며 이를 반대하는 측에서도 단군이 상고사의 중심임을 특별히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작 몇 백년전만 하더라도 단군은 상고사의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의 존재였다. 조선왕조에서는 단군조선 보다는 기자조선을 더 숭배하였고, 자신을 기자조선의 전통과 연결시키려고 하였다. 

국가차원에서는 고려 숙종때 기자 사당을 평양에 건립하고 제사를 지냈으며 고려의 예부에서는 기자를 '우리나라의 교화예의의 시작'으로 보았다. 
반면 단군조선은 삼국유사의 기록을 처음으로 여러 사서에서 인용되었으며 그것이 고조선의 하나의 형태로 공식화 된것은 조선왕조 이후 부터 이다. 이성계는 단군과 기자에 대한 제사를 국가 의례의 대상으로 지정하기도 했지만 광해군 14년에 기자사당이 숭인전으로 격상된 일을 생각할 때 전체적으로 보아 고려나 조선이나 기자를 단군보다 더 중시여겼으며 기자조선은 고려 숙중이래로 800년 동안 자랑스렁 숭앙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현대 한국인의 역사 인식에서 기자는 잊혀졌다. 삼국유사 이래의 단군조선 - 기자조선 이라는 일관된 역사 서술을 단군조선 - 위만조선 으로 조정되었으며 남북한 모두가 기자에 대한 망각을 적극 권장 했다. 특히나 북한에서는 1959년경 기자릉인 숭인전을 파괴했다고 하며 1993년에는 단군의 유골을 발견했고 거대한 석고 단군릉을 조성했다. 국가 차원에서 기자에 대한 망각을 조장한 것이다. 

4. 결어: '국민의 역사'를 넘어서
이상과 같이 800년간 실제했던 정통으로 여겨졌던 기자는 한순간에 오류로 판정되어 버렸다. 이 오류 판정에는 분명 실증적인 역사 연구가 개입되어져 있다. 그런고로 단순히 기자에 대한 부정을 앞서 기자를 숭앙했던 고려 조선의 경우처럼 비 역사적인 권력 관계의 결과물로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반대로 800년간 진리로 존재했던 기자조선의 존재는 역사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어떤 권력 관계에 의한 '조성된 진리'에 불과 했다고 볼 수 있다. 

본질적으로 '자국사'란 상고시대의 어느 나라를 '기원'으로 삼으려 하고 어떤 인물을 '시조'로 숭앙하려 하는 법이다. 이는 '자국사'의 본능이다. 자국사는 '顯彰의 역사'가 되지 않을 수 없고 그를 위해서는'망각'이 필요하다. 결국 자국사 즉, '국민의 역사'란 속상상 '역사왜곡'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한 역사왜곡은 바로 국가 권력과 관련된다. 자국사의 지식은 국가 레벨의 '권력-지식'에 의해 생산되는 지식이다.(공기억) 결국 자국사라는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는한 국민의 자존감 이라는 가치 기준에서 자행되는 망강과 역사왜곡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 역사는 언제나 자신이 가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역사에 '오류 판정'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 보수 진영은 이른바 '강단 사학'과 '재야 사학'을 대립 시키고, 전자를 '식민사학'으로 비판하면서 극단적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재야 사학'에 손을 내밀고 있다. 2012년에는 감사원이 '식민사학 해체 국민운동본부'의 고발에 따라 동북아역사재단의 '부당한 예산집행'에 대한 감사에 착수 했다. '식민사학 해체 국민 운동본부'에 따르면 동북아역사재단이 '친중국 역사관'을 담은 책자를 발간해 배포했다는 것이다. 

국민의 역사는 네셔널리즘이 떠받들고 있다. 동북아 삼국의 자국사 강화는 그런 표현이며 이는 각자의 민족이 현창한 국민이라는 선전용 '자국사'의 속성을 가진다. 이런 국민의 역사라는 기본 틀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고하지 않는한 동북아의 역사분쟁은 무한히 반복될 뿐이다. 또 이 국민의 역사는 진리의 생산과 교체를 주기적으로 되풀이 하면서 '자기부정'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의 역사를 넘어서는 그에 대항하는 다른 역사를 구상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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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가장 말이 많은 '국사'문제에 대한 논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공기억으로 알고 있는 집조된 역사 인식을 푸코의 '권력-지식'관계로 설명한 점이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글의 말미에서 말하고 있는 '국민의 역사'에 대한 재고 필요성도 동감 했고요. 
최근에 학교에서는 동아시아사 라는 역사과목을 신설해서 운영중에 있습니다. 7차 교육과정의 세계사와 국사를 일부 절충한 모양새인데, 처음 나올때는 무척이나 우려의 말이 많았지만 그런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평을 받는 모양입니다. 
자국사 중심의 역사교육이 아닌 교류나사 문화권사 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개념의 역사 인식이 등장 하기를 언젠가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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