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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 누가 가면을 씌웠을까?
게시물ID : freeboard_20215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존케이
추천 : 2
조회수 : 63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02/26 02: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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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대도시의 바쁜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바삐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시의 상공에 빛을 내뿜는 거대한 무언가가 등장해 수많은 행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난생처음, 아마 지금껏 그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겪는 통에 사람들은 놀람을 느낄 새도 없는 듯했다. 

어리둥절한 사람들을 잠시 내려다보던 거대한 무언가는 이내 놀랍게도,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천사 대표예요!]

 

자신을 천사 대표라고 소개한 누군가는 잠시 뜸을 들이며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도록 기다렸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자, 원했던 반응인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선 말을 이었다.

 

[갑자기 등장해서 놀라셨죠! 죄송해요. 사실 저희 천사들은 여러분들을 늘 지켜봐 오고 있었어요. 그런데, 최근 여러분 세계의 인터넷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가만히 두기는 어렵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죠.]

 

여전히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갈 길을 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이 신기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 저희 천사들은 빠른 해결책을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그 결론은 바로 여러분들이 논의 중인 '인터넷 실명제'의 도입입니다!]

 

'인터넷 실명제'? 인터넷 실명제는 누구나 아는, 현재 한국의 주된 논쟁거리 중 하나였다. 모든 계정이 철저한 본인 인증을 하고, 댓글과 게시물에서 아이디를 반드시 표시하는 것. 익명성이라는 인터넷의 대표적인 장점이자 단점을 이유로 쉽게 행해지지 못하던 제도였다.

 

[저희가 추진할 제도는 단순히 아이디를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자신의 이름을 표시하고 원한다면 주변인들은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간단한 신원의 조회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리 크지 않던 웅성거리는 소음이 한층 커졌다. 많진 않았지만, 이따금 고함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 그게 괜찮으면 이미 도입됐지, 왜 논의 중이겠어?"

"표현의 자유 몰라? 이제 어디 가서 자기 생각 말이나 할 수 있겠냐!"

"난 찬성! 요즘 거짓 게시물들이랑 악플 좀 봐. 이건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좀 어떻게 해야지!"

 

[여러분들 모두가 동의하실 수 없을 걸 알아요. 하지만 저희 입장에서도 지금은 꼭 필요해요. 그렇다면 다들 이 점 유념하시고, 오늘 하루도 힘내시길 바라요! 안녕!]

 

퇴장은 등장만큼이나 빨랐다. 그리고 역시, 인터넷의 도움으로 이 거짓말 같은 현상의 확산 또한 빨랐다.

 

[도심 하늘에 신원 미상의 인물 등장! 인터넷 실명제 언급?]

[A 도시 한복판에서 무슨 일이?]

 

주요 언론사를 비롯한 여러 플랫폼에서 게시물들이 올라오자, 사람들은 즉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새로 올라온 모든 글과 댓글에 닉네임이나 각자만의 아이디, 모두에게 똑같이 부여된 표시명 등이 뜨는 대신 실제 이름이 보이게 된 것이다. 심지어 클릭만 하면 간략한 프로필도 확인할 수 있었다. 천사 대표의 말대로였다.

 

단, 천사 대표의 공표 이후에 올라온 것들만이었다. 이전에 게시된 것들은 원래대로였다. 원래대로라는 말에는 수정이나 삭제가 불가능하게 됐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차피 모두가 최근 벌어진 일말의 천사 사건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게 대수인가. 

 

현실은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던 인터넷 실명제가 강제로 시행됐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논의된 방법보다 더 강력하게!

 

그러나, 수많은 반대를 샀던 강제적인 도입 이후 상상하지도 못했을 만큼 사이버 세상이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예뻐요! 신이 빚은 얼굴.] -이민재(정보보기)-

[좋은 일 하시네요. 응원합니다.] -김지우(정보보기)-

[연예계 리포트/웃음 가득한 B 배우의 일상] -박지훈(정보보기)-

 

물론 악성적인 활동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이들은 실명제로 간편화된 신고 절차를 통해 금방 추적되었다. 일명 '2차 인터넷 혁명'이었다. 혁명은 성공인 듯 보였다.

 

실명제의 문제점들을 인간들이 심각하게 우려하던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리고 누가 어긴 적이 있었냐는 듯, 모두가 사이버 에티켓을 준수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되돌릴 방법을 모색하던 것을 멈추고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건전하고 건강한 온라인 세상을 이루게 해 준 천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글, 영상, 사진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인터넷 범죄율이 나날이 하향 곡선을 그려가던 참이었다.

 

천사가 나타났던 그 도시 상공에, 이번에는 검은 아우라를 대동한 누군가가 나타났다. 환한 대낮에서도 빛을 강하게 방출하던 천사와 달리, 퇴근 시간대의 어두운 하늘마저 집어삼킬 것 같은 짙은 어둠을 이끄는 그는 말했다.

 

[야, 인간들! 니들 천사들의 직접적인 개입을 받았다지? 아, 치졸한 천사들! 그 빌어먹을 인터넷 덕분에 우리가 좀 힘을 얻나 했는데. 그런데, 천사들이 오랜만에 하는 일이라 실수를 했더라고. 과거 기록을 남겨? 우린 그 실수를 아주 잘 써먹을 방법을 생각해 냈지. 수고해라, 인간. 이건 다 천사들이 초래한 일이야!]

 

천사 대표와 달리 매우 불친절한 설명만을 남기고 간 누군가에 대한 소식은 또다시 인터넷을 통해 퍼졌다. 2차 인터넷 혁명 때와 달리, 바로 변화가 감지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곧 알 수 있었다.

 

정보보기를 조회했을 때, 사람들이 실명제 도입 전에 남겼던 익명 게시물과 댓글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민재의 이전 활동(1,002건/372건): 20XX.XX.XX - 연예인이라고 돈 받아처먹는 게 저렇게 빻아도 되냐?;

김지우의 이전 활동(103건/20건): 20XX.XX.XX - 그만큼 벌면서 겨우 저 정도 기부한다니 ㅋㅋㅋㅋㅋㅋ 그냥 방송 그만 나오는 게 좋을 듯.

박지훈의 이전 활동(189건/22건): 20XX.XX.XX - B 배우 일상 촬영물 판매합니다. 직접 촬영, 희귀 사진

 

사람들의 가면이 벗겨졌다. 못된 이들을 비웃는 듯하던, 자신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하던 표정의 가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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