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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 황갈색 낙엽의 추억(쓰다보니 스압)
게시물ID : humorstory_2547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지를당장
추천 : 0
조회수 : 32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10/03 00:01:22
가을에 떨어진 낙엽을 보고 문뜩 떠오르는게 있어 그냥 배설한번 해봅니다.




오늘... 여친느님을 오랜만에 집에 바래다주고
올라서던 지하철 계단 위 살포시 놓인 황갈색 낙엽이 내 눈에 띈다.

드마라나 영화에선.. 아니 보통의 정상적 정서의 소유자들은 낙엽을 보고 아련한 옛사랑의 추억? 
뭐 이런 류의 감정을 연상시키리라 생각되지만 나에겐 지금 살아있는 것 조차 감사하게 할 만큼
아찔한 기억을 떠올리게한다.

때는 바야하로 9년전 20살 풋풋한 연애를 시작했던 대학생 새내기 시절이다.
처음으로 연애라는 것을 시작햇던 때이기에 그녀에게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었고 
데이트 후 그녀를 집 앞까지 바래다 주는 것은 남친으로써의 당연한 의무였다.

하지만 당시 나의 집은 파주... 그녀의 집은 태릉입구...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보통 거리가 아니었던데다 당시엔 교통편도 좋지 않아
파주까지의 교통편은 10시면 차가 끊기던 그런 시절이었기에
그녀를 바래다 주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시간과의 전쟁이었다.

가을 바람이 매섭게 불던 그 날도 여지없이 그녀를 바래다 주었는데
그녀는 항상 시간에 쫓기듯 자신을 바래다 주고 집에 들어가는 나에게 미안해하며....

바래다 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혼자서 잘 들어갈 것이며
이후 자신에게 어떤 부정적인 심경의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그녀는 자신있게 얘기하면서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어떤 아저씨가 자신을 불쾌한 시선으로 훝어보앗다는 말과
많이 험악해진 요즘 밤거리에 대해 강조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도 매정히 그녀를 집에 혼자 보냈을 경우
내게 펼쳐질 지옥을 상상하는 것은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난 애써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당연한 듯 바래다 주겠노라 말했고.. 
동시에 내 머릿 속엔 지하철 노선도와 버스시간표가 그려지며 막차시간까지 내게 남아있는 시간과
가장 빠른 경로 그리고 시간 분배를 위한 계산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물론 이때에도 내 속을 알리없는 그녀의 수다에 틈틈이 맞장구를 쳐주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자칫 말수가 줄어들거나 대답하는 타이밍을 놓치게 되었을 때 펼쳐지게 될 지옥을 상상... 아니 그만하자.

여튼 계산결과, 그녀를 바래다 주고 막차시간 까지 도착 할 수 있는 마지막 지하철 시간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대략 5분 정도라는 것이 산출되었다.
그녀의 집에서 지하철까지는 도보로 대략 5분. 뛰면 3분 정도까지 줄일 수 있다!

여차저차 나는 그녀의 아파트에 도착하여 그녀를 엘레베이터에 태우며
애써 밝게 포장한 손인사와 미소로 그녀를 보내주었고 
그녀를 태운 아파트 엘레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순간 나는 전속력으로 지하철을 향해 질주했다.

다행히 그녀가 혼자 쓸쓸히 돌아가는 나에게 전화를 해주는 센스를 발휘하지 않아주었기에
나는 제시간에 지하철 입구 계단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고,
1초라도 빨리 도착하기위해 가파른 지하철 계단을 3계단씩 뛰어내려가고 있던 나에게
드디어 잊지 못할 그 날의 사건이 일어나고야 만다.

계단의 2/3쯤 내 오른쪽 발이 힘차게 디뎌야 할 그곳에 황갈색 길고 굵어 보이는 미확인 물체가
내 시야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 물체의 신원이 채 파악되지도 않고 잇던 그 찰나의 순간,
내 안 깊은 곳의 울림이 들려왔다. 

' 아 저건 똥이다.. ㅅㅂ! 똥이라고! 진짜다 진짜가 나타낫다! '

이 극단적인 ㅅㄲ.... 황갈색이면 다 똥으로 보이던 철없던 나여....

고민할 시간이 없다 더러운 것은 당연히 피해야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
그리고 밟으면 미끄러져 더 더럽고 위험천만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그 찰나의 순간 나는 기지를 발휘하여 그 놈을 피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나의 오른쪽 다리를 조금 더 길게 벌려 그 물체를 피하고 드디어 4번째 계단을 밟을 수 잇기는 개뿔... 
이미 4번째 계단을 밟고잇는 나의 정신과 서로 이견이 있던 나의 육체는
계단을 밟는게 아니라 구르는 거라고 소리없는 아우성.. 아니 소리는 잇었을 것 같다....
어쨌든 구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당시에 나는 합기도를 배워서 낙법으로 위기를 잘 모면..... 했다면 좋았겠지만...
그 순간엔 다 쓸모없다. 그저 죽지 않기위해 머리를 감싸는 기지를 발휘했다는게 자랑스러울 뿐이다.

영겁의 시간동안 끝이 없는 지옥문 계단을 구르고 구른 끝에 지하철 바닥에 도달할 수 있었고
아직도 4번째 계단을 밟고 있던 나의 정신이 뒤늦게 돌아와 느끼게 해주었던 
온몸 마디마디의 고통으로 나의 살아있음을 알게 하였다. 
그런데 너무 아프면 정신이 이상해지는 걸까? 고통이 잦아 들때 쯤 안마를 받은 듯한 상쾌함이 느껴졌다;;;
난 변태 아니다. 근데 그때는 그랬다.

어쨌든 아픔이 잦아들고 고통은 ㅄ 같이 계단에서 넘어졌다는 수치심과 바통터치를 했다...
누군 쪽팔려서 아픈 것도 잊는다는데 난 그 누군가보다 조금 더 수치심이 부족한가 보다.
다행히 주위에 사람은 없었다. 있었다면 놀라서 달려왔겠지....

수치심도 해결이 되었으니 다시 떠오르는 건 막차시간.
지갑은 비어있고 노숙을 하기엔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던 가을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전속력으로 달렸고 때마침 도착하는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9년 전 바람이 매섭던 어느 가을날 밤...
지하철 6호선 응암순환행 열차안에서 미친 놈처럼 5분에 한번씩 분노와 실소를 번갈아 하던
20대 초반의 남자를 보셨다면..... 예 맞습니다 절 보신 겁니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이 잊혀져 가던 이듬해 가을.....
다시 그 동네를 찾았던 나에게 새삼 그 날의 미확인 물체의 정체를 알게 해주었던 사실은...
그 날도 지하철 계단위 살포시 놓인 길고 굵게 말려있던 낙엽의 색깔은 황갈색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지하철 계단에 낙엽 떨어져 잇으면 흠칫한다는 그런 이야기....

그리고 지금 여자친구도 오유하는데 이 글은 못 봤으면 좋겠다는 그런 바람이 담긴 이야기.

똥 얘기했더니 배가 고프네요.
이제 전 야식 하러 갑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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