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부임한 고등학교는 참 약하디 약한 팀이었습니다. 봄 전국대회에 나가 운좋게 부전승으로 올라갔지만 그게 끝이었습니다. 그렇게 선수들과 감독은 하나의 승리도 얻어내지 못하고 봄 전국대회를 마쳤습니다. 이대로는 야구하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감독은 어느 고등학교 야구부가 해체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와서 함께 야구를 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머리와 몸이 모두 뜨거운 고등학교 사내아이들을 한 곳에 모으려고 했던것이 실수였을까요. 다른 학교에서 야구를 하다가 만난 아이들은 참 많이 싸웠습니다. 밤낮으로 으르렁거리던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머리가 찢어지고, 다치는 일도 부지기수 였습니다. 감독은 아이들을 융화시키기 위해 아이들을 불러다가 직접 요리를 해서 먹이기도 하고 힘든 훈련을 함께 이겨내며 동료애를 키우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겨우 아이들은 어울려갔습니다.
예전에는, 물론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야구선수가 대학에 가려면 전국 대회 4강안에는 들어야 특기생으로 대학에 갈 수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대학에 가고싶었고, 감독도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고 싶었습니다. 봄 전국대회처럼 허무하게 끝낼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열심히 연습했고, 감독도 집이 코 앞인데도 아이들과 숙소에서 지내며 열을 다해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제 겨우 갓 1년이 된 아이들의 야구는 참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싸웠습니다. 그림같이, 영화같이, 소설같이. 기어이 8강까지 올라갔습니다. 이제 한경기만 더 이기면 4강에 진출합니다. 마운드에 선 어린 에이스는 9회 원아웃 까지 안타 하나 얻어맞지 않고 점수는 더욱이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타자들은 부족하지만 열심히 치고 최선을 다해 달려 1점을 뽑아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낸 스코어 1 - 0. 아, 그러나 이게 왠일입니까. 9회 원아웃까지 점수를 내주기는 커녕 안타도 하나 맞지 않던 투수가 역전 3점 홈런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졌습니다. 아이들이 그라운드에서 흘린 눈물은 또 얼마나 뜨거웠는지. 어린 투수의 공을 받아주던, 그만큼이나 어린 포수는 주저앉은채 서럽게 울었습니다. 우리 어떻게 해. 대학 가야하는데 어떻게 해. 그리고 그런 선수들을 바라보던 감독도 울었습니다.
감독은 선수들을 대학에 보내주고 싶었습니다. 대회는 하나 더 남아있었습니다. 감독은 그 대회에서 4강에 진출해 꼭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야겠다고 다짐했고 아이들이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다고 할 정도로 혹독하게 훈련시켰습니다. 힘겨워 하는 아이는 곁에 달라붙어서 더욱 자세히 가르쳤습니다.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노력과, 땀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에. 대회가 바짝 다가오고 있던 어느날. 감독은 여느날처럼 어린 선수 곁에 붙어 가르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배트를 휘두르는 아이를 봅니다. 스윙이 석연치 않아 다시 고쳐주어 봅니다. 그리고 다시, 다시. 너무 정신없이 몰입하여 가르친 탓이었을까요. 감독은 그만 아이가 휘두른 배트에 입을 맞았습니다. 순간 입에다가 손을 가져다 대보지만 이미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습니다. 입술이 터져서 피가 철철 흐르는 그 와중에, 혀의 감촉도 이상합니다. 아, 그만 앞니마저 3개나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감독도 놀랐지만 더욱 놀란건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고 감독은 차마 소리도 지를 수가 없었습니다. 다 터진 입술에 앞니까지 사라져 발음이 잘 안되는 데도 애써 또박또박 발음하려 해 봅니다.
"땅에 떨어진 이나 찾아봐라."
아이들은 부러진 이 3조각을 모두 찾아왔습니다. 손바닥 위에 놓인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감독은 다시 이를 던져버립니다. 그리고 놀란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이가 3개 다 썩었구만. 벌레가 먹어서 쓸게 하나도 없네."
감독의 농담에 그제야 아이들의 얼굴에 핏기가 돌아왔습니다. 감독은 선수들에게 훈련에 집중하라고 당부하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입술을 24바늘 꿰매고 앞니 3개는 의치를 해 넣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안해서 할 말을 찾지 못하는 선수에게 감독은 그저 "네 스윙 궤도 안에 들어가 있던 내 잘못이다. 라고 말합니다. 감독에게 있어 이 일은 꿈을 위해 달려가던 시간에 일어난 작은 해프닝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감독은 마침내 해냈습니다. 그 남은 한 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하고, 끝내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야구부를 만든 후로 처음 맞는 감격적인 전국대회 우승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작은 꿈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아이들 앞에는 더 큰 꿈을 꾸는 일이 남았습니다.
2.
한 투수가 있습니다. 속칭 옆구리 투수라고 부르는, 사이드암 투수이지만 직구 구속이 150km가 나오는 투수입니다. 사이드암이 150km의 직구를 뿌리기란 쉬운일이 아닙니다. 오버핸드로 던지는 투수들도 140후반대가 나오는 편이니까요. 그런 정도이니 이 얼마나 야구에 재능이 많은 선수입니까. 그러나 이 선수는 자신이 야구에 재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나머지 조금 나태한 편이었습니다. 훈련시간에 지각을 하는 일도 잦았고 심지어 훈련을 빼먹는 일까지 있었지요.
이 선수를 데리고 있는 감독은 얼마나 골머리를 썩었겠습니까. 자질은 출중해서 욕심이 날 정도인데 자꾸 훈련을 빼먹으니 팀 분위기도 말이 아닙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투수가 3일간 무단으로 팀을 이탈했다가 돌아오던 날, 감독은 결국 그 선수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너 뭐하는 놈이냐! 이럴거면 필요없으니 당장 나가라!"
투수는 깜짝 놀랐습니다. 150km짜리 무시무시한 직구를 던지는 사이드암 투수. 흔한 말로 포텐셜(잠재력)이 가득한 자신에게 이렇게 심하게 대하는 감독은 처음이었던 겁니다. 자기같은 유망주가 야구를 그만두면 그 얼마나 큰 손해인가요. 그런데도 감독은 단호했습니다. 감독에게 있어 재능이 아무리 출중하더라도 그만 믿고 훈련을 게흘리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런 감독의 태도에 투수는 처음으로 몸이 달아올랐습니다. 그리고, 감독의 방 앞에 찾아가 기꺼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세시간여가 흐른 뒤, 감독은 투수를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좋은 투수인지, 열심히 하면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임을 얘기해주며 따뜻하게 타일렀습니다. 감독의 진심이 담긴 말 덕분이었을까요. 투수는 그 뒤로 훈련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한 시대를 풍미하는 투수가 되었습니다.
3.
그리고 또 한 투수가 있습니다. 역시 공이 150km나 구속이 나오는 좋은 투수였습니다. 그러나 공의 위력은 좋은데 뜻대로 컨트롤이 되지 않습니다.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제대로 꽂는다는 것이, 몸쪽 바깥쪽 공을 던져 스트라이크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아는 투수였습니다. 그리하여 공이 그렇게 좋은데도 불구하고 그저 만년 유망주였습니다. 답답한 투수는 쓰린 속을 술로 달랬고, 그러다 술기운을 이기지 못해 시비가 붙는 일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투수는 새로운 감독을 만났습니다. 감독은 투수의 공 던지는 모습을 보더니 "좋은 공이다. 네 공은 한가운데 던지더라도 타자들이 쉽게 칠 수 없겠다. 맞아도 좋다는 생각으로 정면 승부를 해봐." 하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렇지요. 그동안 거쳐왔던 숱한 감독들이 하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투수의 공을 타자들이 치면 어김없이 투수를 마운드에서 내려보냈습니다. 그 일을 겪으면서 투수는 오히려 자신의 공에 자신이 없어졌고, 공을 던지고 벤치의 눈치를 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1군과 2군을 왔다갔다 하는 날의 연속이었지요.
새로운 감독 아래에서,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게 된 날입니다. 힘껏 공을 던졌지만 공이 배트에 맞는 시원한 타격음과 함께 안타를 허용합니다. 힐끗 벤치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팔짱을 턱 끼고 있는 감독의 표정은 밝아보이지 않습니다. 두번째 공을 던집니다. 그러다가 또 안타를 맞았습니다. 위기를 자초한 셈입니다. 투수의 눈이 또 슬그머니 벤치로 돌아갑니다. 감독의 표정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이상한것은, 안타를 맞아 위기 상황을 만들었는데도 감독이 투수 교체 사인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아한 마음으로 다시 공을 던져봅니다. 그러나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음경기. 또다시 위기상황을 맞습니다. 야구라는건 그 전까지 리드를 잡고 있다가도 다음 이닝에 위기를 맞을 수 있는 스포츠이지요. 숱하게 찾아오는 위기상황, 눈 앞에 찾아온 지금의 위기상황에서 감독은 투수를 불렀습니다. 공을 던지라고 합니다. 마운드에 올라서서 공을 던집니다. 공을 던지고 나서 다시 벤치를 쳐다보지만 감독의 표정은 무표정하고 담담한 그 표정 그대로 입니다. 그리고 투수는 무엇인가를 느꼈습니다. 감독은 정말로, 자신이 말한대로 투수가 던진 공이 얻어맞아 안타가 되더라도 자신을 믿고 그대로 마운드에 세워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위기상황에 직면했는데도요. 자신을 믿어주는 누군가 있다는것. 투수의 마음이 단단해졌습니다. 투수는 점점 자신의 공에 대한 자신감을 찾았고, 공을 던지고 나서 벤치의 눈치를 살피던 일도 사라졌지요. 그리고 그 투수는, 감독을 만난 그 해에 다승, 구원, 승률 부분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일어섰습니다. 술이요? 이제 술을 마실 필요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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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아주 소소한 얘기들이긴 합니다만. 세이야기에 나오는 감독들을 보고 어떤것을 느끼셨나요
1번이야기는, 1977년 당시 충암고 감독일때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충암고는 야구부가 창설된지 갓 2년이 된 약체팀이었습니다. 우승은 꿈도 못꿀 전력.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해체 위기에 놓여있던 대구 대건고의 선수를 전원 충암고로 데려와 야구가 끝날뻔 한 아이들의 꿈을 다시 일으켜 세웠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와 반목을 일으키던 아이들을 하나로 묶어 끝내 전국대회 우승을 해냈습니다. 8강 문턱에서 주저앉아 울던 포수가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황금사자기 8강의 문턱에서 주저앉을때 그라운드의 흙을 쥐어잡으며 통곡했던 포수는 현 KIA 타이거즈 감독인 조범현 감독입니다. 우리 우짜노, 대학 우짜노- 하고 울던 어린 포수는 어느덧 OB 베어스의 훌륭한 포수생활을 거쳐 이끄는 팀을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키기까지 했네요. 그러고보면 2009 한국시리즈는 사제간의 대결인 셈이군요.
이 일화는 SK가 2007년,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차지한 다음날 라디오에서 '세계 음악기행'을 진행하던 성기완씨가 밝힌 이야기 입니다. 조범현감독이 직접 사실 확인을 해주시기도 했죠. 김성근 감독의 말소리를 잘 알아들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김성근 감독은 발음이 서툰 편입니다. 하지만 그건 김성근 감독이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이라서가 아닙니다. 김성근 감독은 선수생활 감독생활을 모두 한국에서 했고 한국에서 살아온 날들이 더 길며, 1960년대 영구귀국한 한국 사람입니다. 비하하듯 쪽발이라고 부르는 것은 말도 안되죠. 김성근 감독의 일본어는 한국어보다도 발음이 좋지 않습니다. 김성근 감독의 한국어는, 어렸을때 일본에서 자란 탓이 없지는 않지만 충암고 시절 선수의 배트에 맞아 다친 뒤로 더욱 좋지 않아진 것이지요.
2번 이야기의 주인공, 150km 공을 던지는 사이드암 투수. 야구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너무나 유명한 임창용 선수입니다. 지금 야쿠르트에서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고 있죠. 사이드암인데도 불구하고 150은 물론 160까지 구속이 나온다고 알려진 야구 실력이 뛰어난 선수입니다. 김성근 감독과는 해태 2군시절 인연을 맺었습니다. 혼내고 다그치는 일이라서 혹여 쉬워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억 하십니까?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당시 한일간 결승전에서 이치로 선수와 정면승부하여 임창용선수가 결국 결승타를 맞고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던 일을요. 그때 사인미스로 결론이 나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일부러 정면승부를 한 것 아니냐는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지요. 그러나 기자회견 장에서 고개 숙인 임창용 선수에게 김성근 감독은 "고개를 들어라" 라며 격려하였습니다. '그 한장면 때문에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대회 직전 시범경기에서 팔꿈치에 타구를 맞고도 대표팀에 달려왔고, 소속팀에서도 1이닝만 던지는 선수임에도 2이닝을 책임졌다. 야구인으로서 고마운 일 아니냐. 대표팀 마무리 다웠다.' 라고 말씀하시면서요.
다그치고 혼내는 일 뿐 아니라 김성근 감독은 제자를 믿고 기다릴 줄 아는 분입니다. 참고로 임창용선수는 올해, 창용불패라는 그의 수식어처럼 좋은 성적을 내 주고 있습니다.
제자를 믿는 김성근 감독의 마음은 3번 이야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3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3관왕이라는 부분에서 눈치 채셨을지도 모르겠는데, 2001년 3관왕을 차지한 LG 트윈스의 신윤호 투수입니다. 어떠신가요. 지금까지 읽어오신 이야기에서 느낀 김성근 감독이라는 사람 말입니다.
김성근 감독이 어떤 이미지로 다른팀 팬들에게 비춰지고 있는지 잘 압니다. 그러나 SK 를 관심있게 지켜본 분들이시라면 알겠지만 그 어떤 구단의 감독보다도 김성근 감독은 팬들로부터 존경받고 사랑받는 감독입니다. 김성근 감독의 자서전 사인회때 몰려든 인파가 그를 보여주지요. 과연 SK 팬들은 2년 우승을 시켜준 감독이라고 해서 지지하고 있는 것이며, 김성근 감독은 알려진대로 승리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일까요?
물론 김성근 감독은 경기를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매 경기 이기려고 노력합니다. 그건, 경기장을 찾아와 응원하는 팬들에게,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보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기기 위해 야구를 하는것은 아닙니다. 야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이 고맙기 때문에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뿐입니다. 올 시즌 19연승을 하고 난 뒤 김성근 감독이 말했죠.
"팬이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도 포기하지 않는다."
예, 그렇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팬들이 있어 김성근 감독 또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시즌 일구어낸 19연승은 그렇게 이루어졌고, 주전포수 박경완과 에이스 김광현, 우완 에이스 송은범, 불펜의 핵이던 전병두까지 포차 다 떼어내고도 한국 시리즈 진출을 이루어냈습니다. 그것도 2연패 뒤 3연승이라는 멋진 리버스 스윕의 모습으로요.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데 팬들이 어떻게 김성근 감독에게 등을 지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팬들에게 보답하는것이 승리라고 생각하기때문에 이기기 위해 매 경기 최선을 다합니다. 6월 25일, 광주구장에서 기아와 경기할 당시 12회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9회말 등판한 투수는 SK 내야수 최정이었죠. 그를 두고 사람들은 져주는 경기라느니, KBO의 무승부 규정에 대한 항의라느니 참 말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SK는 투수 엔트리를 거의 다 소진한 상태였고 남은 투수는 김광현과 윤길현 뿐. 그나마 김광현은 다음 경기 선발투수였고, 윤길현은 허리등에 통증을 호소하는 상태였습니다. 던지게 할 수 없었습니다. 선수 보호차원에서라도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경기를 포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 SK는 야수 엔트리도 모두 소진한 상태. 어쩔 수 없이 윤길현을 1루로 보냅니다. 그리고 마운드에는 최정을 세웠습니다. 아픈 선수를 던지게 할 수 없었고 경기를 포기할 수도 없었던 당시 최상의 선택입니다. 최정은 야수들 중 가장 어렸고, 고교때 투수로도 활약했으므로 가장 가능성이 있었던 셈입니다. 안타깝게도 안치홍 선수에게 3루타를 허용하고, 패스트볼로 경기는 끝났지만 많은 이들의 비웃음을 샀던 그 경기조차 김성근 감독에게는 포기한 경기가 아니었습니다. 이쯤에서 다시 묻겠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승리하려는 것과 승리를 위해 물불 가리는 것이 과연 같은 일인가요? 여러분은 이 경기에서 포기하지 않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셨습니까,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으려는 선수들을 보셨습니까.
이기려고 노력하다 보니 다른 감독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야구를 모독하면서 까지 이기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야구를 사랑하며 늙어온 야구를 아주 많이 좋아하는 할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김성근 감독을 더럽게 야구하는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다음은 이재국 기자의 기사 '8전9기' 승부사 김성근을 말한다 중 발췌한 인터뷰 내용입니다
잡초? 그래. 난 잡초야. 잘려도 잘려도 살아나고, 밟혀도 밟혀도 뿌리가 뽑히지 않았으니까. 우승을 했지만 잡초가 어디 가겠어? 그러나 난 야구병신이야. 야구라는 병에 걸린 사람 말이야. 야구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으니까. 세상에 야구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난 뭘하며 살아갔을까? 야구는 평생 공부해도 몰라. 야구에 정답은 없고 끝도 없어. 야구공부 하면서 인생을 배우고 있을 뿐이지."
누구보다도 야구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야구계의 어른이 오해받는 상황이 안타까워 장문의 글을 써봤습니다. 이러한 글을 쓰더라도 여전히 오해할 사람은 오해하겠죠. 이미 삐뚤어진 시선을 돌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다만 누군가 한사람이라도 이 글을 보고 김성근 감독이 사람들이 말하는 것 처럼 그렇게 못난 사람은 아니구나 못된 사람은 아니구나 생각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