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사장·PC방 망한 사람들 '일냈다'
“2008년 시무식을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우리에겐 소중한 꿈이 있습니다. 다 같이 다시 한 번 노력합시다. 저도 열심히 투병하겠습니다. ”
2일 오전 8시30분, 경기도 시흥시 시화공단 동해기전산업㈜ 사무실. 항암치료로 빠진 머리칼을 가리기 위해 귀밑까지 털모자를 덮어쓴 이윤재(57) 사장이 30여명 직원 앞에서 신년사를 읽어 내려갔다.
2일 경기도 시흥시 동해기전산업㈜ 이윤재 사장(모자 쓴 사람)이 지하철 스크린도어 제어장치 개발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직원들과 함께 새해 힘찬 도약을 다짐하고 있다. 이 사장을 중심으로 왼쪽부터 이희양 이사, 조병각 과장, 최규영 부장, 홍인선 과장, 류영규 대리. /주완중 기자
[email protected] 허리춤엔 배에 구멍을 뚫어 담도(간과 쓸개를 잇는 관)에 꽂은 관과 주머니를 달고 있었다. “저도 열심히 투병하겠다”는 대목에서 이 사장이 눈물을 쏟자, 직원들도 함께 눈가를 훔쳤다. 이 사장은 “지난해 말 못할 어려움 속에서도 큰일을 해낸 감격의 눈물이고,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는 희망의 눈물”이라고 했다.
경기도 시화공단에 있는 동해기전은 지난해 지하철역에서 승객들이 선로로 떨어지지 않도록 설치하는 스크린도어의 핵심 부품인 제어장치를 독자 기술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전동차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감지, 전동차 문과 동시에 스크린도어가 열리고 닫히도록 하는 장치이다. 2005년 초 이 사장이 담도암 수술을 받은 직후 착수해 3년간 매달린 끝에 이룬 성과였다.
◆실패자들이 모여 이룬 성공
동해기전 개발팀은 한마디로 ‘실패자 팀’이었다. 개발을 총지휘한 이 사장은 담도암 투병환자. 연구개발 실무 책임을 맡으면서 제어장치 회로를 직접 설계한 이희양(51) 기술이사는 외환위기 직후 대기업에서 명예퇴직을 당했고, 재취업한 중소기업에서도 해직된 사람이었다. 통신기술을 맡은 조병각(38) 과장은 다녔던 회사가 부도나면서 실업자로 있다가, 이어 차린 제과점까지 말아먹고 동해기전에 입사했다. 대학 전기과를 졸업한 전기기술자 류영규(37) 대리는 운영하던 PC방이 망한 뒤 합류했다.
이윤재 사장은 암 수술을 받은 직후인 2005년 초, 이런 실패 경력자들로 개발팀을 꾸렸다. 동해기전은 그 전까지 연구·개발이라고는 몰랐다. 대기업에 철제 자재를 가공해 납품하던 직원 30명의 평범한 중소기업일 뿐이었다. 그는 “내가 위기에 처하니, 직원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회사를 하루빨리 만들어 놔야겠다는 생각이 더 절실했다”고 말했다.
암 투병을 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제어장치 개발에 몰두하는 이 사장을 보면서 개발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스스로 ‘공포의 외인구단’이라고 부르며 일주일에 3~4일은 회사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 1억원을 들여 만든 금형(쇠붙이 주조틀)은 설계를 잘못해 두 번이나 그냥 버렸고, 전기회로 설계는 실패를 거듭하면서 수십 번을 고쳤다. 조병각 과장은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고, 번듯한 성공 한번 해본 적 없는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연말의 성공, 새해의 도전
동해기전의 ‘외인구단’은 그렇게 2년을 보낸 끝에 2006년 12월 독자적으로 제어장치 개발에 성공했다. 그러나 만만찮은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철도기술연구원으로부터 품질인증을 받는 것이었다. 단 한 번의 오작동도 없이 스크린도어가 50만 번 열리고 닫히는 테스트를 통과해야 했다. 철도기술연구원은 3개월 동안 테스트한 끝에 2007년 9월 ‘합격’ 판정을 내렸다. 그리고 3개월 뒤인 12월 20일 동해기전의 스크린도어 전 시스템에 대한 품질인증서가 발급됐다.
연말 최고의 선물을 받은 동해기전은 지난 12월 29일 종무식을 가졌다. 그러나 단상 앞에서 종무식을 주도한 사람은 사장 대신 공장장인 조원홍(55) 이사였다. 이윤재 사장은 제어장치 합격 판정을 받던 지난해 9월 정기검사에서 암이 재발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종무식이 열렸던 시각, 이 사장은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 안암동 고려대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대신 종무식장 단상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통해 종무식을 생중계로 들었다. 이 사장은 “외인구단과 함께 이룬 성공의 기쁨을 어떤 식으로든 꼭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송년사를 읽었던 조원홍 이사는 “국내 처음으로 스크린도어 전 모델의 제어기술을 우리가 개발했습니다”는 부분에서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전 직원들이 박수로 종무식을 마칠 때쯤, 직원 임경옥(여·43)씨가 단상으로 뛰쳐나와 휴대전화에 대고 외쳤다. “사장님, 내년에는 꼭 건강하세요. 꼭 건강하셔야 돼요.” 이윤재 사장도 휴대전화 너머에서 박수를 치면서 “그래, 고마워. 자네들도 건강해”라고 화답했다. 종무식에 참석하지 못했다가 2일 시무식엔 참석한 이 사장은 “성공을 즐기는 것보다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며 “올해는 본격적으로 시장 개척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2일 오전 안산 시화공단내의 동해기전산업(주) 직원들이 암투병중인 이윤재 사장과 화이팅을 외치며 새해 각오를 다졌다. /주완중 기자
저희 아버지입니다.. 이렇게 돼실때까지 일한 아버지가 원망스럽지만..
한편으론 자랑스럽습니다.. 아버지가 안아프셨다면.. 더좋았을텐데..
다들 아프지마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