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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찌 결혼을 했냐면 ㅡ
게시물ID : freeboard_20275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테비아쩔어
추천 : 17
조회수 : 1056회
댓글수 : 39개
등록시간 : 2024/06/28 15: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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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출장다녀오니 오늘 원고도 안써지고 ㅎ

어제 잠시 남긴 댓글이 생각나서 적어봅니다.

 

결혼에 관한 제 생각입니다. 매우 꼰대같을 수 있으니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165cm. 굵은 허벅지. 저는 신체적으로 일단 마이너입니다. 

다리가 짧은 남자면 뭐다? 

자격지심, 열등감. 

네, 저도 끓어 넘쳤습니다. 

게다가 전 살면서 90kg도 넘긴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75kg쯤 됩니다. 덕분에 최근에 당뇨를 얻었죠...

 

여튼 이런 저도 코로나 때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관련 글로 베오베에 간 적도 있었죠. 

대구 사는 몸인데, 하필 그때 딱 신천지 터지면서.. 그 큰 결혼식장에 저 포함 딱 2팀만 결혼식 강행했었죠 ㅋㅋㅋㅋ

당시 위로의 추천 덕에 현재 잘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아내는 지금 둘째를 임신 중이고, 가을에 딸애와 만날 예정입니다. 움훼훼훼훼

 

여튼 이런 저도 어찌 장가를 갔느냐?

가려고 엄청 노력했더니 가게 되었습니다. 

 

일단 저는 어문학계열, 정확히는 국문과를 나온 몸입니다. 덕분에 학과 학년 정원 40명 중에 35명 정도. 그러니까 약 9할이 여자들이었죠.

그런 학과에서 학생회장도 해봤습니다. 잘나서가 아니라, 할 만한 위인이 당시에 없어서 땜빵 택이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꽃밭에서 살았습니다. 저만 얼룩진 검은 점이었죠 ㅋㅋㅋㅋ 숨쉬는 쓰뤠기 ㅋㅋㅋㅋㅋ

덕분에 여자 보는 눈만 높아졌었고, 학과에서는 전설적으로 유일하게 ㅡ 회장까지 해도 연애를 못한 유일한 찐따 ㅂㅅ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제대로 된 연애는 그렇게 20대 내도록 몬한다가 29살이나 되어서.. 저보다 나이 9살 어린 꼬꼬마 덕에 하게 되었죠.

당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로 우린 헤어졌습니다.

 

당연히 전 흙수저인 덕에 바로 취직하고 잘 해냈어야 했지만... 택도 아닌 이유로 취업보단 창업이나 이런 쪽을 기웃거렸고

잘 되지 않았습니다. 

빚만 있는 채로 버티다... 어린 아이 발목만 잡고 있는 것 같아서 괴로워서 헤어졌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가 있어서 제가 당시에 생을 끊지 않을 수 있었는데 말이죠...

 

여튼

또 그 이후로 제대로 된 연애는 계속 못합니다.

어떻게든 빚을 까기 위해 이리저리 구르다가 전 직장에 취업을 하게 되었죠.

대구에서 일반 개인 사업자 밑에서 취업을 한다?

뭐.. 결과적으로 종후반에는 그리 나쁜 대접이 아닌.. 대구 치고는 정말 괜찮은 대접까지 받는 직원이 되었지만,

그래도 일반 회사원들과는 천지차이죠. 

저는 끽해봤자 개인사업자 밑에서 일할 뿐. 요즘 말로 좋소니까요. 

당연히 표면적인 스펙으로는 아가씨들에게 명함도 내밀기 힘들었죠.

 

그럼, 일이라도 적던가ㅎ 일은 개많았습니다.

오너와 저, 그리고 포장 직원까지 셋이 전부인데, 관리자라는 명목으로 제가 거진 다 했습니다.

오너는 제가 일이 좀 능숙해지니 일에 관여를 잘 안하려했고요.

급여는 책임감과 중압감만큼 늘어나는 것 같긴 했지만.. 워낙 없는 형편부터 출발을 했던지라 

돈이 붙는 속도는 매우 느렸습니다. 

그리고 급여에 비례하여 야근 일자도 많았고, 주말에 회사에 나가는 경우도 많았고요.

 

뭐, 10년 안된 세월에 첫 급여가 1백만원이었고, 퇴직할 때 거의 4천? 4천5백 정도였으니 

그간 세월은 이제 기억조차 잘 나지 않습니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요.

잘된 건 덕분에 지금처럼 혼자 세상에서 바로 서려고 노력하는 자영업자 되어도 그닥 그렇게까지 쫄리지는 않네요.

(이건 결코 돈을 잘 벌게 되었다가 아닙니다. 매출이 없어도 딱히 바로 망하지는 않을 정도는 유지한다는 거죠. 실제로 매우 저조한 살림입니다.)

 

그만큼 가진 게 없었습니다. 결혼 직전에 밑천은 당시 투룸 전세금 4천5백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여차저차 인계 받은 모닝 한대. 그 모닝은 지금도 제 와이프가 타고 있습니다.

제 차는 이번 달에 현금 + 할부로 지른 싼타페MX5 프레스티지 트림 나와서 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제 통장에는 현금이 없습니다. 사업비 꼴랑 몇 백이 전부입니다.

그래도 아내는 저를 믿어줍니다.

 

하.. 이런 멋진 아내를 어찌 만났는가?

쉽지 않았습니다.

 

개인사업자 밑에서 빚 갚으며 겨우겨우 사는 인생 뭐가 있었겠습니까?

이리저리 만나보려 해도 당장 입고나갈 옷도 없었습니다.

체중이 확 불어났던 지라 옷을 새로 사입어야 하는데 그럴 돈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냥 회사만 다녔습니다.

회사 돈으로 술만 마셨습니다.

더 쪘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일이 손에 익고, 급여가 눈꼽만치 오르고 ㅡ

이제 겨우 생각이란 걸 하게 되죠.

이렇게 살아도 정말 괜찮은가? 내 미래는 계속 지금과 같은 색일까?

 

그때 ㅡ 같은 학과 출신의 후배 한 명이 제게 모임을 권합니다.

바로 독서모임입니다.

국문과 출신답죠 ㅎㅎㅎ

모임 나가서 보니.. 사람들 영향을 긍정적으로 받고 매우 좋더군요.

그렇게 모임에 1년? 2년 나갔나? 

사람들 모여 있는 걸 보니 뭔가 여길 기반으로 일을 벌려도 괜찮겠다 싶더군요. 나쁜 일 말고. 좋은 일.

 

그래서 출판사 사업자를 내고 책을 냈습니다. 판매 수익금은 전부 기부활동에 쓰고요. 

그렇게 모임 사람들 비롯해서 당시 제 블로그 유입자들 대상으로 강매를 했습니다ㅎ

아니, 그런데, 이 활동이 대체 뭐라고...

이걸 당시 기부처였던 세이브더칠드런이 취재를 해서 가고, 다음에는 영남일보에서 취재를 다녀가고, 그 다음에는 중앙일보에 취재를 다녀가고,

덕분에 또 욕심을 냈습니다.

까짓 이렇게 된 거 그럼 평생 꿈이었던 작가가 되어볼까? 

내가 직접 내가 공모전에 냈던 원고로 책을 내서, 내가 마케팅을 하자. 

했더니 이게 또 여기저기 전파를 탑니다. 강연도 하게 됩니다.

(당시 제가 당장 기억하는 것만.. KBS대구1 TV, 인천 케이블 딜라이브 TV에서 직접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했었고, - 이건 무려 가수 요조가 멘트해주는 프로그램이었음

 제 도서는 청주KBS 및 여러 지방 라디오들에 소개됩니다. 저같은 촌놈이 뭐라고.. 이게 되네??? 하던 시간이었죠.)

 

네, 운좋게도 저는 독립출판 1세대였던 겁니다.

주변에서 하나, 둘씩, 제게 작가님이라고 해주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당연 프로 작가님들과는 비교가 어렵지만, 그래도 평생 꿈이었던 걸 반쯤 이루게 되었죠. 

 

이제 연애만 하면, 결혼만 하면 좋겠다 ㅡ 정말 터무니없는 꿈을 꾸게 됩니다.

 

그래도 생긴 게 마이너하니까 어려웠습니다.

결정사도 가입해봤습니다.

당연히 잘 안됩니다ㅎ

 

당시 회사 사장님은 제가 측은하다고 동네 미용실 할매에게 찾아가서는 

저를 장가 보내주면 미용실 간판 갈아주겠다는 약속까지 합니다.

그렇게도 소개받아봤지만,

잘 안되었습니다ㅎ

 

그러면서 이후 몇 년간은 마음이 편하질 못했습니다.

당시 저를 둘러싼 분위기 자체가 힘겨웠거든요.

점점 나이 있는 노총각이 되다 보니.. 여성분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에둘러서 저를 피하는 게...

와... 환장하겠더군요. 

이게 여친 있는 사람, 유부남이면 또 다른데.. 저는 에둘러집니다.

이건 겪어본 사람만 압니다ㅎ

차라리 제가 그들을 위해 피해주는 게 예의같고... 집에 와서 혼술하고 쳐자는 게 인류를 위한 것 같고 ㅎㅎㅎ

 

그렇게 연애는커녕 

점점 더 사회생활 자체가 어려워졌고, 그때쯤부터 슬슬 페미니즘 거시기 분위기도 형성됩니다.

아내 직전에 소개 받은 여성 분은 실제로 선 자리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기도 했었죠.

정말 힘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분과도 잘 안되었습니다. 

페미니즘이고 뭐고, 그런 거 다 어찌되어도 내가 노력해보자 했지만.. 

그분은 어렵게 제게 마음을 열까, 말까 했어도 그분 주변에서는 제 스펙을 별로라 여겼던 것 같습니다. 당연하죠.

그렇게 지지부진하던 그때, 

마침 지금의 아내를 소개받게 되었죠. 

아내는... 천운이었습니다.

 

마음이 어려워도 제가 계속 모임은 나가고, 글쓰기와 관련해서도 이런저런 활동은 이어가게 되니까

주변에 점점 저를 긍정적으로 봐주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물론, 남자로 긍정적인 게 아니라 ㅎㅎㅎㅎ

인간으로 뭐 쳐줄 수는 있겠네 같은 그런 거죠 ㅋㅋㅋㅋ

여튼 그런 시간들 속에서 진짜 다 지쳤을 때...

제가 직접 따로 만든 글쓰기 모임에서 회원 한 분이 지금의 아내를 소개해주었던 겁니다.


우린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긍정적이었습니다.

아내는 솔직히 여태 제가 만나고, 보아왔던 여성들에 비하면 인물은 다소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제 앞에서 말하는 것도 서툴러서 그저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귀여웠습니다.

아내는 제 목소리를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첫날 저는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무리할 정도로 수다를 떨었습니다.

 

바로 헤어지기는 뭣하고 음료는 식사 후에 바로 나와서 마셨고 ㅡ 

잠시 산책이나 하자고 김광석 거리로 갔습니다. 아내 집근처이기도 해서요.

그런데 그때 아내가 그러더군요.

 

"오래 있을 거 아니니까 주차비 아깝게 주차장 들어가지 말고, 그냥 잠시 여기에 세우죠. 단속할 시간도 아니고. 통행 방해되는 곳도 아니고."

 

감동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늘 만남에서 뭔가를 제가 노력하고, 보여주고, 맞춰주고, 소비만 하다가 

그런 제 지갑을 첫 만남부터 배려해주는 상대를 만났다는 생각에 울컥 감정이 흔들리더군요.

 

그래서 곧바로 아내에게 올인했습니다.

 

아내는 제가 지금까지 만난 어떤 여인들보다 솔직하고, 터무니 없는 감정 줄다리기나 교묘한 짓을 하질 않고, 

주변과 비교하지도 않습니다. 

우린 서로가 서로만 봅니다. 우리 가족만 봅니다. 가진 게 없으니 서로에게 집중하는 거죠.

우리 서로가 가장 값진 자산이니까.

 

그런 아내에게도 단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밀가루와 관련한 알러지가 있습니다. 

덕분에 장모님을 처음 뵙게 된 장소가 영대병원 응급실이었죠 움훼훼훼훼

이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겠습니다.

관련해서 심장이 쫄깃해졌던 경험이 꽤나 있어요.

 

 

여튼 제가 결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포기하지 않아서입니다.

전 결혼을 무척하고 싶었고, 하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했습니다.

이토록 마이너한 저도 했습니다.

 

노총각 분들에게 해드리고픈 말은 오직 하나입니다.

커뮤니티에서 흘러나오는 말 따위는 걍 무시하세요.

 

돈?

중요하죠.

없으면 불편하죠.

그럼, 걍, 없어도 불편을 같이 감수할 법한 사람 찾으면 되는 겁니다.

 

제가 이래저래 만남을 구해보고, 결정사도 가입해보고... 얻은 결론은 하나입니다.

스스로 기준을 두고 무게를 두는 부분이 있다면, 그래서 상대를 만난다면,

상대도 같은 기준과 잣대를 제게 둔다는 겁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고 주변에서 염병을 해도 중요한 건 사랑입니다.

사랑이 전제되어야 관계가 유지됩니다. 

기준이 서로 맞으니 하면 되겠다? 기준이 감정으로 작용하지도 않고, 살면서 그 기준이 유지되는 것도 아닙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도심지 아파트 30평대에서 출발하면 행복할 것 같아도

대출금 갚아가면서 나보다 자신을 더 챙기려는 사람과 살면 이혼서류가 아른거리게 마련입니다.

 

전 코로나에 장가를 갔고,

코로나에 직장을 관뒀습니다. 최근까지 거의 매출없이 살았습니다.

그래도 적자가 안났습니다.

아내가 벌어와서? 그래봤자 아내도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였습니다.

간호사였다면 몰라 ㅋㅋㅋㅋ 급여 빤합니다. 

돈 따위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굴하지 않는 마음으로 존버 때리면서 대가리 굴려가며 살았더니

주변이 저를 도왔습니다. 천운이 따라줬습니다.

 

그렇다고 이건 그냥 운이 좋았다 같은 게 아닙니다.

아내가 믿어주고

주변에서도 제 실력을 신뢰해서 일감을 하나씩 주기 시작했고

저도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글쓰고, 일하는 것 외에도 주식공부하고 

이게 다 여차저차 잘되어서 그나마 버틴 겁니다.

쥐뿔 없는데 일까지 때려치우고 주식창만 본다고 아내가 저를 갈궜으면 어찌되었을까요?

저도 다른 불운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되었겠죠.

 

저도 과거에 외적인 부분과 미천한 스펙 때문에 힘들었지만,

결국 살아보니 

기세가 절반입니다. 

굴하지 않아야 합니다. 

상대 외모나 재산 같은 거 쳐다도 보지 마시고 마음만 보세요.

마음이 예뻐서 내 여자다 싶으면 

걍 상대가 입에서 악 소리 나올 정도로 진심 다해서 잘해주면 된다고 봅니다.

 

 

긍정적으로 사시면서 결코 자신을 잃지 마시고,

주변의 잣대에 휩쓸리지 마세요.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만 신경 쓰면, 

상대를 만나도 그런 상대를 만나게 됩니다.

 

안봐도 압니다.

일단 여러분들이 저보다 젊고 잘생기고, 다리도 더 길고, 물건도 더 클 거잖아요!!!

빚도 없이 시작했을 거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아가씨들에게 어필해보시라구횻!!!!

 

 

p.s : 

더 디테일하게 재미나게 쓰고 싶은 맘이 컸지만.. 

아무래도 직접 겪은 일이라 상세 묘사는 안되겠네요. 노잼되어 죄송합니다;;;;

요즘 세상은 지난 일이라고 해도 저 혼자 좋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법이니까요.

출처 경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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