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말했듯 사마예는 왕도뿐만이 아니라 낭야 왕씨 자체를 견제하고자 했다. 이 중 왕돈 역시 견제대상으로 간주되어 은근한 압박을 받게 된다.
왕돈입장에서는 어이없고 기가 막혔을 것이다. 그동안 동진 내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난들을 모두 자기가 친히 진압했었는데 공신의 반열에 올려주기는 커녕, 돌아오는 것은 냉담한 견제뿐이었으니 어찌 화딱지가 나지 않고 배기겠는가.
결국 322년, 거병하여 유외(劉巍 : 사마예의 심복으로 주로 왕돈을 견제하는 임무를 도맡았다 )란 사람의 죄상을 열거하며 이를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수도 건업으로 북상을 시작한다. 물론 대놓고 황제를 죽이겠다라고 했다간 그 즉시 대역죄인으로 몰릴테니 있으니 꺼내든 명분이었다.
사마예의 찌질한 견제가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결과를 낳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믿었던 이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을까(사실 자기가 초래한 결과), 이를 접해들은 사마예는 어찌나 충격을 먹었던지 한동안 말도 못하다가 뒷골잡고 쓰러져 쇼크사하고 만다. 참으로 허무한 최후가 아닐 수 없다. 뭐 이렇다할 업적도 없이 왕씨네 힘만 키워주고 돌아가신 셈이다.
황제가 붕어하시니 마땅히 태자가 그 뒤를 이어야 할터. 사마예의 장남, 사마소(司馬紹)가 그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르니 그가 곧 동진의 제 2대 황제, 명제(明帝)다.
사마소에게 있어서 당면과제는 왕돈의 진압이었다. 제위 초부터 시련을 맞이하게 된 사마소는 친정을 마음먹먹는데, 놀랍게도 그 진압사령관으로 왕돈의 사촌동생이자 승상 왕도를 임명한다.
왕돈의 거병때부터 조정대신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아오던 왕도였다. 역적은 삼족을 멸해야 한다는 정신에 의거하여 그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어도 뭐라 할 말이 없던 처지였다. 왕도의 입지는 급격하게 축소되었고 실로 난처한 상황에 처해있었던 것인데 사마소는 바로 그 역적집안 사람에게 토벌을 명한 것이다.
그러자 다시한번 상소가 빗발치게 된다. 그게 가당키나 한 처사이냐는 비난이 속출했다. 그러나 사마소는 이를 모두 물리치고 왕도에게 직접 검까지 하사하며 왕도의 지휘하에서 명령을 따르기로 한다. 왕도역시 자신의 종형에 대한 일을 깊게 사죄하며 "형제간의 정은 사사로운 것이고, 군신 간의 대사는 지엄한 일이다." 라는 말을 남기고 토벌대장군의 지휘봉을 받아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