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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램프의 요정 : 상편
게시물ID : freeboard_20310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노일만
추천 : 2
조회수 : 87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4/08/30 17:59:07

[노일만 단편선] 램프의 요정 : 상편



박일표는 올리브영에서 나오다가 웬 램프를 하나 발견했다. 안에서부터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므로 일표는 그게 영험한 물건인 줄 대번에 알았다. 집으로 가져와 문질렀더니 펑! 하고 요정이 나타나며 말했다.


“크하하! 무엇이든 세 가지 소원을…!”

“일조!”

일표의 난데없는 일갈에 말을 채 마치지도 못한 요정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말이야?”

중학생 일표는 흔들림 없이 말했다.

“돈을 달라고. 1조 원.”

“아, 돈은 안 돼.”

요정이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왜 안돼?”

“초인플레이션… 아니다. 뭐 그런 게 있어. 아무튼 안 돼.”

‘젠장.’

일표는 속으로 혀를 찼다. 램프를 발견한 순간부터 계층이동, 인생역전, 노세노세젊어서노세를 직감했는데 고작 이딴 게 걸렸다니. 돈이 안된다면 대체 뭘 빌지.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요정이 말하길 소원은 지금 당장 말해야 하며, 5분 이상 지체할 경우 없던 일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일표는 재빨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일표의 머릿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보라의 얼굴이었다. 백청중학교 3학년 2반 진보라. 

‘돈으로 할 수 없다면 재능으로 보라의 마음을 사로 잡으리.’

일표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기타를 열라 잘 치게 만들어줘.”

그러자 요정이 물었다.

“‘열라’가 무슨 뜻인데?”

일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주 잘 치게 해 달라고. 티브이에 나오는 전문 뮤지션들 중에서도 탑 급으로.”

그러자 요정이 한 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옛날에 그런 소원을 빈 영국 아저씨가 있었어. 이름이 무슨…클랩튼이었든가. 아무튼 그 아저씨 정도 수준으로 만들어주면 되는 거지? 됐다. 지금 네 소원, 이루어졌어.”

“벌써?”

일표가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 이내 미소를 지었다. 비록 보라가 좋아하는 밴드는 실리카겔이긴 했지만, 에릭 클랩튼의 솜씨를 갖게 되었다면 실리카겔 정도는 문제도 아닐 것이었다. 

“자, 두 번째 소원을 말해라.”

요정의 말해 일표가 잠시 눈을 감았다. 삼초 쯤 지났을까. 일표가 다시 눈을 뜨며 중요한 선언을 하듯 말했다.

“나를 차은우 닮은 얼굴로…”

그 순간 일표는 분명히 봤다. 무표정인척 하고 있지만 미묘하게 바뀌는 요정의 얼굴을. 그건 분명 냉소였다. 비웃는 듯한 태도. ‘너도 그 따위 소원이나 비는 놈이냐’라는 경멸하는듯한 태도. 요정은 그런 태도를 드러내는가 싶다가 순식간에 무표정으로 돌아왔지만 일표는 분명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세계 수준의 기타리스트가 됐기 때문에 동체시력도 덩달아 좋아진 것인지도 몰랐다. 속주를 하려면 악보든 지판이든 빠르게 훑어야 하는 것일테니.

아무튼 일표는 그 순간 깨달았다. 

‘지금 이 소원은 뭔가 잘못됐다.’


“차은우 닮은 얼굴로 만들어줘? 간다?”

“잠깐!”

일표가 연극배우 같은 톤으로 외쳤다. 

“뭐야?”

“잠깐만 기다려줘.”

일표는 화난 짐승을 달래듯 두 손을 펼치고, 가라앉히는 시늉을 해보였다.

“3분 남았다.”

요정이 일표를 등지고 서며 말했다.


*


세계 수준의 기타리스트가 된 일표는 생각도 빨리할 수 있었다. 워낙 많은 음표를 단 시간에 연주해야 하는 직업이다보니 그런 게 가능한 건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는 1분간 생각한 다음 이렇게 물었다.


“질문이 있어.”

“뭐지?”

요정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일반적으로 어떤 소원을 빈 사람들이 잘 됐지?”

“대답하기 애매한데. 알려줄 의무도 없고.”

“그렇지만 너 내 과자 먹었잖아.”

일표의 대꾸에 요정은 눈을 게슴츠레 하게 떴다. 무슨 소리냐는 표정 같았다. 그러나 채 일 초가 지나기 전에 요정이 소리를 질렀다.

“으악!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러면서 요정은 자기 손에 묻은 치토스 가루를 쳐다봤다. 일표가 먹다 놔둔 치토스 봉지에 요정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댔던 것이다. 여느 인간이 그러듯 말이다.

“제길… 알았다. 어쨌든 뭔가를 받아 먹은 셈이니 한 가지 정도는 팁을 주지.”

요정의 말에 일표가 침을 꼴깍 삼켰다.

“잘 된 사람들이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는 사람마다 너무 달라서 말해주기 곤란해. 대신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게 뭔데?”

“좋은 소원을 빌기엔 네가 너무 어려.”

그와 같은 요정의 말을 듣고 일표는 다시 빠르게 생각을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은 확실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찬스를 쓰기엔 너무 어린 것 같았다. 그러면 어쩌지? 이제 난 뭘해야 되지? 저녁에 뭐 먹지? 여긴 어디지?

순간 일표의 머릿속에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때마침 요정이 시간 됐으니 두 번째 소원을 말하라고 재촉했다.


“내 두 번째 소원은 이거야. 세 번째 소원을 10년 뒤에 빌게 해줘.”


요정의 뺨이 씰룩거렸다. 제일 듣기 싫은 소원을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요정은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빚을 받았으면 군말 없이 사라지는 프로 수금인처럼 굴었다.

“두 번째 소원 이루어졌다. 10년 후에 보자.”

 

말을 마치자마자 펑!하고 요정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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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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