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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서반포와 남강남
게시물ID : freeboard_20315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노일만
추천 : 1
조회수 : 93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09/07 13: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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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노일만 단편선: 서반포와 남강남


어느 따뜻한 봄날, 젊은 커플이 배에서 내렸다. 배는 여수에서 온 것이었다. 여수에서 두 시간 반 배를 타고 도착한 커플은 생전 처음 와보는 작은 섬의 아기자기함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택시도 없고 버스도 없는 작은 섬. 그리고 어선 즐비한 항구길 따라 이어진 작은 슈퍼와 식당들. 그리고 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다.

커플은 거진횟집이라는 곳에 들러 밥을 먹었다. 그러면서 주인장에게 이곳은 처음인데 어디부터 둘러보면 좋겠냐고 물었다. 주인장은 이쪽 거진리 쪽에서는 등대를 구경해볼만 하고, 다리 건너 뉴욕리에 가면 낚시 체험하는 게 있다고 알려주었다.

“뉴욕리요?”

커플 중 한 사람이 물었다.

“동네 이름이 뉴욕리예요?”

커플 중 다른 사람이 이어 물었다.

“어 맞어.”

주인장이 별 일 아니라는 듯 답하자 커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왜 이름이 뉴욕리에요?”

그러자 주인장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네들 서반포와 남강남 이야기 몰러?”


*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 어딘가에서 재개발사업이 착수됐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사업자 쪽에서 새로운 단지명에 ‘서반포’라는 말을 넣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동작구 흑석동이 서초구 반포동하고 대체 무슨 상관이냐며 비난과 불만을 쏟아냈다. 그러자 사업자 쪽에서는 반포의 서쪽이니까 서반포 아니냐, 영동도 영등포의 동쪽이라 그렇게 이름 붙었는데 대체 뭐가 문제냐면서 대거리했다.


경기도 남부에 위치한 안원시의 3선 시장 안원필은 이 뉴스를 보고 무릎을 쳤다. 옳거니! 안원시는 마침 새로 조성한 뉴타운의 이름을 짓느라 고심중이었다. 안원필은 그 동네가 따지고 보면 강남의 남쪽에 위치했다는 사실에 착안해, 남강남 뉴타운이라고 지었다. 사람들은 이곳 경기도 안원시가 서울시 강남구와 무슨 상관이냐며 비판했지만, 남강남 뉴타운으로 입주가 예정된 주민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안원필 잘한다! 강남은 강의 남쪽이고, 우리는 강남의 남쪽, 남강남이 맞지! 분위기를 보니 곧 다가올 지방선거에서도 안원필은 문제 없이 당선될 거 같았다. 주민들이 좋아해하자 안원필도 흡족했다. 그는 기세를 몰아 새로운 공약을 내세웠다. 앞으로 안원시내 모든 지명을 남강남으로 바꿔가겠단 공약이었다.


경상북도 미곡군의 군수 김칠훤이 이 뉴스를 보고 무릎을 쳤다. 옳거니! 따지고 보면 우리 동네도 서울과 아주 먼 건 아니지 않나? 명절에 귀향객도 많고 말야. 미국하고 중국 사람들은 명절에 비행기를 타고 고향간다고 하던데, 차 끌고 내려올 정도면 이웃동네 아니냔 말야. 김칠훤은 사람들을 불러 놓고 이 얘기를 했다. 다들 기가 막힌 발상이라며 박수를 쳤다. 그들은 회의를 통해 미곡군이 서울에서 집 값 높기로 유명하다는 용산구 한남동과 이웃동네라는 의미로, 새 지명을 한남네이버타운으로 하기로 했다. 


전남 여수에서 배 타고 두 시간 반을 가야 하는 남도의 섬, 거진도의 주민대표 한진훈이 이 뉴스를 보고 무릎을 쳤다. 옳거니! 동네 이름은 이렇게 짓는 것이구나! 그는 마침 동네 이름을 바꾸고 싶던 차였다. 왜냐하면 거진도에는 거진리와 거지리, 두 개의 행정구역이 있는데, 아무래도 거지리쪽이 어감이 좀 그랬기 때문이었다.


한진훈은 이번 기회에 거지리의 이름을 바꾸기로 하고, 어떤 이름이 좋을까 곱씹어 봤다. 대세는 잘 나가는 다른 동네의 이름을 빌리는 것 같았다. 서반포도 있고 남강남도 있고, 한남네이버도 있다 이 말이지… 그런데 한진훈은 서울의 지명을 가져오는 게 특별히 매력이 없어 보였다. 왜냐하면 젊은 시절 그는 원양어선을 좀 탔던 것이고, 그 덕분에 세계의 넓은 바다를 마음껏 누비고 다녔던 것인데, 그런 그가 보기에 서울과 거진도 정도면 초근접거리에 놓여 있어 사실상 한몸과 다름 없고, 거진도와 이웃 도시라고 부르려면 대강 뉴욕쯤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거지리의 이름을 뉴욕리로 바꾸기로 한 뒤 주민들의 의견을 물으러 다녔는데, 거지리의 주민들은 대부분 서울로 이주해버린 뒤라 사람이 별로 없어, 의견을 묻는데는 딱히 오래 걸리지가 않았다는 것이었다.

 

 

nik-shuliahin-kegWoCHJzGY-unsplash.jpg

 

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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