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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집 그 애
게시물ID : freeboard_20340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논개.
추천 : 8
조회수 : 61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10/22 00:19:18

좁디좁은 곳 다닥다닥 붙어있던 그 동네에

어둠이 깔리면 하나 둘 나와 하염없이 서성였다

 

윗집 아저씨는 술에 취해서

아랫동네 아주머니는 집 나간 그이를 찾으러

 

나는 아비에게 매를 맞다가

앞집의 그 아이는 낯선 사내가 어미와 함께 들어오면

 

그렇게 서로가 안쓰러운 서로를 마주하며

매일 되풀이되는 어둠이 잦아들 때까지

한참을 거닐었다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와 고함이 멎어들면

이젠 들어가야지 서둘러 일어나다가도

혹시나 몰라 속으로 숫자를 세다가 지쳐

얼어붙은 손발을 주무르다 들어갔고

 

앞집의 아이는 괴상하고 요상한 소리가 작아지곤

벌게진 얼굴의 낯선 사내가 나오다가는

자신을 훑으면 부리나케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저마다의 고요해진 집 안에서

그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억지로 눈을 감았을지

한 번도 말은 섞어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수십 번의 어둠이 지나가고

얼마간의 날들이 흐르고

 

더 이상 그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앞집으로는 사내들이 들락거렸고

그 해괴한 소리들 마저 그대로였지만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홀로 사라졌을 뿐이었다

 

홀로 집을 등 진 채로 더 이상 마주 보는 이 없이

그래도 하루하루 지나 어느새 교복을 입고

아비의 매질도 참을 만하게 되었던 그쯤

 

친구들과 어울려 오락실을 들렀다가

시내의 후미진 골목에서 그 아이를 보았다

 

샛노란 머리칼과 꼬나 문 담배가

과거의 모습과는 퍽 어울리지 않았지만

 

잔뜩 웅크린 어깨와 쪼그려 앉아있는 그 모습에

그 아이였음을 확신했다

 

마치 당장이라도 그의 어미가

어디서라도 낯선 사내의 손을 잡고 올 것만 같은

그런 생각이 들 만큼 그대로였으니까

 

말을 걸지 말지 망설이다가는 발걸음을 돌렸다

나의 망설임이 서린 발걸음 소리를 듣고도 그 아이 역시 고갤 돌리지 않았다

 

우린 서로가 서로를 소개하며 인사하기에는

그 소개 하나하나가 서로의 상처였을 테니까

 

아직도 한 번씩 가만히 골목길 어귀에 쪼그려 앉아 숫자를 헤아린다

언제쯤이면 마음이 고요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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