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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종특, 교육열에 대해
게시물ID : history_27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눈비비고
추천 : 7
조회수 : 996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1/10/08 01:02:47
이전에 썼던 글 퍼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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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육열이야 정말 유별납니다. 온갖 부작용도 많죠. 하지만... 한글의 장점도 있다 하나 문맹률 0% 수준을 만든 것은 바로 그 교육열 떄문일 겁니다.

고구려 때부터 그런 면이 컸다고 합니다. 지방마다 경당을 만들어서 평민을 교육시켰다고 하죠. 남녀노소는 물론 노비들도 공부를 했고 개조차도 책을 봤다고 하는 당연히 믿을 수 없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뭐 그 정도로 대단했다고 해야겠죠.

신라 때의 화랑도 이런 조기교육이라고 봐야겠죠. 맨날 싸우니까 무예 위주였겠지만, 그 이후 관직에 오르는 이들은 화랑 출신이 제법 있었습니다. 뭐 보통 무관이고 어차피 골품제에 맞췄겠지만요.

조선 때도 참 대단했습니다. 각 동네마다 서당이 있었고, 양반이 아니더라도 (노비들이야 어쩔 수 없었겠지만) 자기 이름자 정도는 쓸 줄 알았고 공자왈 맹자왈 정도는 할 줄 알았죠. 중국은 시간이 흐르면서 백화체라는, 구어체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이것도 모른 채 그 옛날 그 어려운 한자들을 계속 쓰고 있었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요) 어느 날 맹자였나 주자였나가 제자랑 나눈 대화가 있는데 이 백화체로 써 져서 "이 한자는 뭥미?" 했다고 하죠.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에피소드는 바로 일제강점기 때입니다. 출처는 경성자살클럽입니다.

나라가 망한 상황. 조선인들은 가만히 앉아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나라든 뭐든 일단 살아야 했죠. 더 잘 살아야 했죠.

우리 착한 일본제국님하께서는 조선의 미개를 고쳐주고 근대를 집어 넣어 주기 위해, 치안을 확보해 주기 위해 착하게 들어오셨습니다. 당~연히 교육도 서당이 아닌 근대적인 교육을 시켜줘야겠죠. 열심히 신식 학교를 지어 줬습니다. 조선인들이 따로 만든 학교는 가지 말고 자기들이 만든 학교로 가라구요. 

근데 말이죠...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입학생들이 들이닥친 겁니다. 3.1운동 때까지 걔네들도 딴에는 열심히 학교를 만들었는데, 3.1운동이 끝난 후인 20년대 무렵에는 경쟁률이 2:1에서 6:1까지 갔다고 합니다. 대학교가요? 아니요. 보통학교, 그러니까 초등학교가요.

조선인들은 계속 총독부 앞에서 시위를 했습니다. 돈 있다고, 교육 받게 해 달라고, 학교 가게 해 달라고요. 총독부에서는 돈 부족으로 안 된다고 했죠. 아마 조선은 물론 아시아 전체를 해방시키기 위해 군대에 돈을 쏟아붙느라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 상황에서 그들이 동원한 건, "초등학교 입학 시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또 희한한 방식이었죠.

애들은 아이우에오 같은 히라가나 외우고 가나다라마바사 한글 외우고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낸 것은 수학 문제, 논리 문제 같은 생각해야 될 문제였죠. 어디 지금 같은 시대겠습니까? 아이우에오만 죽어라 외우고 간 애들은 울면서 돌아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곧 어느 정도 해결됐죠. 

그러자 그들이 다음에 내건 것은... 지폐를 보여 주며 "이게 얼마짜리임?" 하는 거였습니다. 정말 간단하고 명쾌한 기준이었죠. 가난한 집 아이들이 돈을 보기나 했겠습니까? 어느 정도 사는 애들만 통과할 수 있었고 엄청난 비난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는 "변별력"이 있다는 이유로 그 후로도 쭉 쓰입니다.

초등학교가 그런데 중학교는 어떻겠습니까? 거기다 삼수인가 하면 응시 자격 자체가 박탈됩니다. 이것 때문에 자살, 자해 사건이 속출합니다. 어떤 사람은 떨어지고 자살했고, 어떤 사람은 몰래 혈서를 써서 "떨어지면 죽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무서운 사건이죠. 그리고... 1922년. 해주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대규모의 인원들이 운동장을 점거해서 시위를 한 거죠. 그 수는 400명. 그리고 그 시위자들은 놀랍게도... 코흘리개 아이들이었습니다. 자기들을 학교에 보내 달라고, 울면서 시위를 한 거죠.
... 
이 일들은 꽤나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떨어진 청소년들은 방황하고, 술 먹고, 도둑질하면서 잡혀가기도 했죠. 어떤 이들은 이 때 만주로 가서 새로운 꿈을 키우려 합니다. 이른바 만주 웨스트, 당시 조선인들에게 만주는, 미국인들이 개척하려 했던 서부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영화 놈놈놈이 그걸 다루고 있죠. 뭐 이런 상황에서 군인이 되겠다고 만주 군관 학교에 들어갔던 사람들도 있는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죠 -_-;

일제도 꽤나 놀랐을 겁니다. 자기 나라처럼 상놈은 상놈대로 살 거고 몇몇 양반만 우대해 주면 될 거라 여겼겠죠 (천민 집단인 부락민에 대한 차별이 아직도 있는 게 일본입니다) 하지만... 조선인들은 어떻게든 공부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한국인들의 교육열, 그건 역사 내내 이어져 온 한민족의 종특인 게 틀림 없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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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경성자살클럽 등에 나왔던 모습을 보면...

일제는 나름 좋게 보이려는 시도는 했습니다. 지들 말 한 건 지켜야 체면이 서죠. 그런데 그래봐야 일제였어요. -_-; 민족성 탄압이니 그런 거 이전에 지들의 한계와 속셈을 정말 잘 보여줬죠. 아동 살해 유기 사건 하나에 의심 가는 사람은 물론 거지들까지도 다 붙잡아서 가두고 고문하고... 지들이 만든 학교만 가라면서, 기본적인 의무이자 권리인 교육까지도 제대로 못 해 줬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국인들은 배우고, 또 배웠죠. 
경성자살클럽 정말 좋은 책입니다. 이 책 쓰신 분이 관련해서 여러 개 쓰셨는데, 다 좋더군요.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일제 치하에서 그들은 어떤 식으로 차별 받고, 좌절하고 살았는가가 나오는 책입니다. 정말 웃으면서 보기는 힘들더군요. 독립운동 얘기처럼 뭔가 화려하진 않지만요. 

뭐 그래도 그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건 이겁니다. 그 때도 사람은 살았다. 아니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는 거요.
역사에 IF는 없으니 상상 놀음까진 안 가더라도, 힘으로야 누를 수 있어도 한민족은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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