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미술대학 입시생(수험생)을 위한 글입니다. '사실적 조형'에서 '형태'에 대한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미대 수험생을 위한 생각 전달 : 형태
미술대학 시험의 대부분은 수험생의 ‘조형능력’을 기본적으로 평가한다.
‘조형’이라는 말을 사전에 찾아보면 ‘여러 가지 재료를 이용하여 구체적인 형태나 형상을 만듦’이라고 나온다.
결국 대상의 ‘형태’를 정확하게 재현하느냐가 미술대학 시험에서 가장 기본적인 평가 기준인 셈이다.
수험생의 개성, 아이디어, 미적 경험, 창의성을 강조하는 것이 요즘 미대입시 추세라고 말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실제 실기고사 평가에서 교수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본 조형능력’이 전제됨을 알 수 있다.
평가의 주안점이 ‘문제를 해석하는 참신함’을 본다고 해도 그 참신한 아이디어를 담아내는 ‘그릇’이 찌그러져 있으면
‘내용’이 먼저 보일까 ‘형식’이 먼저 보일까?
결국 ‘조형능력’을 기본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미술대학 시험의 본성이라면 ‘형태’에 대한 문제는
전공을 막론하고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많은 수험생들이 ‘형태’에 대한 고민을 한다.
그런데 그 고민의 푸는 길은 ‘많이 그려보는 것’ 이외엔 다른 방도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무작정 그려본다고 ‘형태력’이 좋아질까?
예를 들어 사람을 그릴 때 코가 매번 길어지는 학생, 손이 작아지는 학생이 있다.
그리고 네모난 상자를 그리면 매번 모서리의 기울기가 틀리는 학생이 있다.
이 학생들은 ‘많이 그려보는 것’ 이외에 다른 ‘문제 푸는 법’이 필요하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형태’에 대한 몇 가지 오해가 있는 경우가 있었다.
그 오해로 인해 형태를 연습하는 방법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작정 그리고만 있었던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어 형태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진실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이 글을 읽고 나면 형태를 연습하는 좋은 방법을 스스로 알 수 있을지도?
<글 읽기에 앞서>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형태’는 ‘어떤 대상의 윤곽과 특징’을 말하거나 그것을 그리는 ‘능력’, ‘문제’ 등을 함축한다.
예를 들어 ‘형태가 틀렸다’는 말은 ‘(내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형태가 틀렸다’는 말이다.
그리고 ‘형태가 좋아졌다’는 말은 ‘형태(를 그리는 능력)가 좋아졌다’는 말이다.
오해 : 형태는 ‘선’이다?
진실 : 형태는 ‘선’과 ‘명암’ 모두를 말한다.
형태 연습을 하는 사람 중에 ‘선’으로만 형태 연습을 하는 사람이 많다.
부드러운 명암은 없고 오로지 대상의 외곽만을 선으로 그리는 것이다.
물론 사물의 외곽을 닮게 그리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형태 연습을 모두 했다고 할 수 없다.
사물의 윤곽은 외곽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곽, 즉 내용의 테두리가 함께 있다.
사물은 ‘종이’를 그리더라도 결국 ‘입체(立體)’이기 때문이다. 입체를 표현하는 방법은 내부의 윤곽을 표시하는 것이다.
사과를 그릴 때 이것이 ‘동그랗다’는 느낌을 담아내려면 부드러운 사과의 덩어리 느낌, 즉 양감(量感)이 있어야 한다.
이 양감도 곧 사과의 형태다. 사과의 외곽을 실제 사과와 똑같이 그렸다고 해도 양감 표현이 각지다면 그 사과의 형태는 어색해 보인다.
따라서 우리가 형태 연습을 할 때는 선뿐만 아니라 명암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어떤 사물의 오롯한 형태를 연습했다고 할 수 있다.
오해 : 손 기술이 늘면 형태가 좋아질까?
진실 : 형태는 손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보는 법의 문제다.
형태에 문제를 느끼는 수험생들은 다른 사람보다 그림을 많이 그린다. 그리고 많이 그리면 ‘손 기술’이 는다.
하지만 손 기술이 늘면서 느끼는 만족감에 비해 실제로 형태에 대한 문제는 해결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사람 눈을 한 번에 깔끔하게 그린다든다, 직선을 똑바로, 길게, 오래 그릴 수 있다고 ‘형태력’이 늘지는 않는다.
형태가 좋아지려면 그림을 많이 그리는 것은 맞다.
그런데 손만 바쁘게 움직이고 정작 눈이 사물을 쫓아다니지 않는다면 그건 잘못된 형태 연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이 그리는 것’에 집착한 나머지 손만 바쁘게 움직이고 눈은 ‘사물’보다 ‘화지’에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형태가 좋아지기 위해 그림을 많이 그리는 이유는 사물의 일부를 보고
그 외형적 특징을 화지에 옮기는 작업이 습관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뤄지라고 하는 것이다.
사물을 안 보고 손만 바쁘면 ‘사물을 눈으로 보는 습관’은 결국 길러지지 못한다.
괜히 실기 선생님들이 ‘형태는 관찰이다’면서 ‘(대상을) 보는 습관’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오해 : 형태는 사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진실 : 어는 누구도 자기가 그린 형태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화실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 있다. 어떤 그림에서 특정 사물의 형태가 ‘맞다, 틀리다’를 놓고 두 사람의 입장이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 선생님은 ‘형태가 틀렸다’고 지적하는데 학생은 ‘틀렸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한다.
같은 사물을 두고 왜 보는 사람의 시각이 다른 걸까?
인간의 눈은 카메라처럼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물을 그릴 때 사람들은 흔히 ‘사물의 객관적인 형태’를 의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물의 ‘맞는 형태’가 곧 그 사물의 ‘객관적인 형태’는 아니다.
어떤 경우는 빔 프로젝터 기계를 이용해 사진 속 대상의 윤곽을 화지에 정확히 옮겨 놓아도
보는 이에 따라서 ‘형태가 틀렸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렇게 ‘객관적인 형태’에 대한 경계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렇다면 ‘맞는 형태’를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
그림 그리는 사람이 가져야 할 ‘맞는 형태’에 대한 인식은 ‘보기에 자연스러운 형태’다.
결국 ‘틀린 형태’라도 화지에 자연스럽게 위치한다면 누가 보더라도 그 형태는 ‘맞는 형태’가 된다.
물론 사물의 ‘객관적인 형태’에 가까울수록 그 형태의 자연스러움은 더해진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다만 형태의 ‘객관성’을 추구하되 ‘자연스러움’에 더욱 주목하는 것이 ‘맞는 형태’에 더 근접한 기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