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모기가 걱정돼 밤새 잠든 아가를 쳐다보고 있곤 해요. 모기장 해놨는데 혹시나 한마리쯤 숨어 들어가 있지 않을까 고놈이 우리 아가를 물지 않을까 겸사겸사... 잠들었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혹여 모기가 애기 볼에 앉아있나 살펴보고 또 잠들고 그래요.
여튼 어제밤에도 그러고 울 애기를 쳐다보며 앉아있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그러고보니. 내가 사람을 하나 만들어냈네. 이게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실감나더라구요. 생각해보니 인간이 이룰수 있는 여러 업적중에서도 이 일이 엄청난거더라구요. 흔하게 한다해서 위대하지 않은게 아니에요. 지금 내 앞에서 새근새근 살아움직이는 이 인간을 내가 만든거에요. 우리 애기의 이마. 눈. 코.입. 저 들숨날숨...
유명인이 된다던지 부자가 된다던지 나라에 공을 세운다던지 이런것도 인간으로서 성취감이 크겠지만 내가 내 몸으로 사람을 창조해냈다는게...
흐힛. 뿌듯하네요.
그리고 온몸이 찢어지게 아프고 피곤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기꺼이. 더 열정적으로 아가를 키워나갈 의지가 있다는 사실도 자랑스러워요.
네. 솔직히 고백하자면 결혼하기전에는 결혼이란것. 사랑이란것에 회의적이었고 결혼해서 애낳고 키우면서 사는게 '평범한 필부로 살다 가는것'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어요. 나는 여자이지만 뭔가 커리어 쌓고 사람들에게 존경이라던가 부러움이라던가 여튼 뭐 그런 다른 부분에서 업적을 하나쯤 이루고 죽어야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근데 그런게 쉽나요. 내 바람보다 난 머리가 똑똑하지 않았고 기회가 오지 않았고 끈기도 재능도 탁월하지 않았고 이대로 결혼하고 애나 키우고 살게 되는구나 했어요. 진짜. 그리고 육아에 대해서도 자신없었죠. 푹 퍼지고 피곤에 쩔어 흐릿한 눈빛을 한채 자기 옷맵시보다 애기 옷만 예쁘게 입히는 그런 모습이 되기 싫었으니까요...
임신 출산..남일만 같고 그냥 당연한일인거 같았는데.. 막상 내일이되니 다르더라구요. 제경우는 항상 생리도불규칙하고 허약해서..내몸에서도 제대로 생명이 자랄까?? 싶었었는데.. 어느날 임테기에 희미한 두줄을봤는데 몇주뒤에 심장이 뛰고 또 몇주뒤에 사람형태가 되어있고 또 몇주뒤에 뼈들도 장기들도보이고 손가락이 다섯개인게 당연한게 아니라 놀랍게 느껴지고.. 그리고 애가 딱 나왔는데.. 세상에나.. 눈,코,입,발가락... 어쩜 이렇게 완벽한 아기가 내몸속에서 만들어진건지..경이롭고 신기하고.. 75A 컵도 헐렁하던 늘 컴플렉스였던 가슴도.. 모유나 제대로 나올까 싶더니만... 점점 아기가 자랄수록 부풀어오르고 아기가 엄마가슴 파고들고 배불리 먹고 자고 웃고.. 내몸이 이렇게 대단했나.. 아이를 낳고서야..내가 진짜 여자였구나.. 생각이 들더라구요. 임신을 하고 모유수유를 하는데 필요한 신체부위가 태어나서 수십년간 단 한번도 기능해본적이 없었으니..내가 임신을 하고서도 이런일이 내몸에서 진짜 일어난다는거야??내몸에서 애가 나온다고?? 긴가민가.. 근데 처음 해보는 일을 완벽하게 내몸이 제 기능을 해낸다는게 정말 대단하더라구요
저도 한번씩 그런 생각해요. 이 아이가 내 배에서 골격이랑 살이 생기고, 태어나서는 또 그 작던 아기가 어느새 키도 크고 발도 커지고.. 얼마나 신기한지 몰라요. 그냥 엄마, 아빠한테 응석부리고 자라온 평범한 딸인데 내가 이렇게 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이렇게 건강하게 크다니.. 생각할때마다 신기해요.
근데 신기한 한편 또 부담과 걱정이 들기도 해요. 내가 이 아이의, 앞으로의 커다란 인생에서 난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아이는 커가면서 무수한 선택들을 하게 될텐데 나로 인한 안좋은 영향은 없었으면.. 그래서 그런지 가끔은 혼내고 할때도 무언의 트라우마같은게 자리잡진 않을까 하는, 생각의 곁가지들이 늘어나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