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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일어났던 대형참사중 하나...
게시물ID : humorbest_203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너구리
추천 : 39
조회수 : 6434회
댓글수 : 5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4/01/02 21:01:51
원본글 작성시간 : 2004/01/02 18:01:18

서해교전은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쯤 서해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북측 경비정이 우리측 해군 고속정에 기습적인 포격을 가해 일어났다.


이로인해 27명이 탑승했던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정-이 침몰했고 윤영하 소령,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등 우리 해군 4명이 현장에서 숨졌다. 사건 당시 실종됐던 한상국 중사는


침몰한 선체에 함께 시커먼 서해 바다 깊숙히 가라앉아 41일만에 사체로 발견됐다. 박동혁 병장은 부상을


입고 투병하던중 9월 20일 끝내 숨지고 말았다.


이들 사망자 외에 당시 남북간 치열한 교전으로 인해 우리 장병 19명이 부상했으며, 북한의 도발은


그들의 삶에 지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놓고 말았다.


이날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월드컵이 성공적으로 종료되기 하루전날이었고, 서울 상암 경기장에서는


한국과 터키간의 시합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로인해 북한의 도발에 대한 분노는 컸다.


사건이 발생하기 3일 전부터 북측의 NLL 침범행위가 반복적으로 이뤄졌고, 우리 고속정의 퇴각 요구에


북측은 85㎜ 함포와 기관총으로 선제공격을 했다.











2002년 6월 29일 서해교전 당시 북한 경비정 PCF684호(215t)가 우리 해군의 공격으로 화염에 휩싸인 채

또다른 북한 경비정(사진 오른쪽)에 의해 황해도 등산곶 쪽으로 예인되고 있는 장면. 이 사진은 북한

경비정에서 8km쯤 떨어진 위치에 있던 해군고속정 참수리 365호의 추성훈 중위가 교전 종료후 4분여가 지난

오전 11시쯤 개인 카메라로 촬영한 것으로 국방부는 뒤늦게 촬영사실이 확인됐다며 7월 2일 공개했다.






해군 해난구조대가 2002년 8월 21일 오전 연평도 서쪽 14마일.북방 한계선 남쪽 5마일 해상에서


서해교전 때 침몰한 고속정 참수리 375호를 끌어올리고 있다.






2002년 7월 1일 오전 경기 분당 국군수도병원에서 열린 서해 교전 전사자 4명에 대한 합동영결식에서

해군 장병들이 영결식을 마친 전사자의 시신을 운구하고 있다.






2002년 6월 29일 연평 교전에서 전사한 장병의 유족들이 영안실에서 아들의 영정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2002년 7월 1일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열린 연평도교전 전사자 합동영결식에서 고 조천형 중사 미망인

강정순씨가 헌화하며 오열하고 있다.






2002년 6월 29일 한국과 터키의 3-4위전을 응원하기 위해 광화문에 나온 붉은 악마 응원단이

이날 오전 서해안 연평도부근에서 발생한 남북교전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하고 있다.





그곳은 울음바다였다. 지난 6월6일 현충일 오전 대전 국립현충원. 사병제2묘역. 2002년 6월29일 연평도 근해에서 있은

서해교전으로 숨진 윤영하 소령, 한상국 서후원 황도현 조천형 중사, 박동희 병장 등 6명은 그곳에 잠들어 있었다.

1주기를 맞은 유가족들은 돌아올 수 없는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그들은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이럴 수 있느냐"고 분노했다.

사진은 해군 2함대 근조단이 서후한 중사의 묘 앞에서 추도를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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