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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 반역 팬픽] 반역 이후의 이야기 - 에필로그, 후기
게시물ID : animation_2042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마Maマ
추천 : 10
조회수 : 2332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4/03/01 15:15:58
제1장 http://todayhumor.com/?animation_174644
제2장 http://todayhumor.com/?animation_177506
제3장 http://todayhumor.com/?animation_179897
제4장 http://todayhumor.com/?animation_183160
제5장 http://todayhumor.com/?animation_185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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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모음 http://www.todayhumor.co.kr/board/list.php?kind=member&mn=226843&member_kind=to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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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어느새 싸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추위를 잘 타는 사람은 벌써 외투를 꺼내 입거나, 얇은 목도리를 매기도 한다. 미타키하라 중학교로 가는 길에 있던 나무들에서도 이제 푸른 잎을 찾아보기 어렵다. 관리인이 주기적으로 낙엽을 보기 좋을 만큼만 남겨두고 쓸어내지 않았다면, 끊임없이 흐르는 학교 옆 개울마저도 울퉁불퉁한 갈색에 점령당했을 것이다.

 입시가 네다섯 달 앞으로 다가온 3학년을 제외한 학생들이 조금씩 학교 밖으로 나온다. 낮도 많이 짧아져서, 특별히 하교가 늦었던 것도 아닌데 벌써 하늘에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다. 학생들의 모습으로 눈을 돌려 보면, 적게는 두세 명, 많게는 열 명이 넘게 무리를 이루고 있다. 혼자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는 학생도 심심찮게 보인다. 아마, 하나로 묶을 수 없는 다양한 이유가 있어 나타나는 차이일 것이다.   

 “웬일로 혼자 가네?”

 그런 모습들 가운데서, 홀로 걸어가는 어떤 학생을 향해 누군가가 말을 건다. ‘웬일로’라는 단어를 통해 추측해 보건대, 그 학생이 혼자 다니는 일은 흔치 않았던 모양이다.

 “……사야카?”

 호무라는 목소리만으로 누가 자기에게 말을 걸었는지 감을 잡았지만, 확실히 해 두자는 취지에서 고개를 뒤로 돌려 얼굴을 확인해 본다.

 “응. 마도카 어머니가 일찍 퇴근하셔서, 가족끼리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나 봐.”

 몸을 돌려 마주보면서, 호무라는 사야카의 질문에 은은한 미소를 덧붙여 대답해 준다. 호무라의 그런 반응을 사야카가 별로 어색해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두어 달 사이 둘의 관계도 상당히 개선된 모양이다. 아니, 당연한 결과이기는 하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사이가 좋아지지 않았다면, 둘 중 누군가에게 심각한 인격적 결함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을 해 봐야 할 것이다.
 
 “엥? 고작 그런 이유야? 너라면 그래도 마도카 집 앞까지 배웅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야카는 괜스레 쿄코에게 하는 것처럼, 가벼운 장난을 걸어 본다. 호무라가 쿄코처럼 자신의 장난을 잘 받아 주는 건 아니지만, 호무라에게 거는 장난은 그것 나름의 특유한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난 스토커가 아니야.”

 예상대로, 호무라는 사야카의 장난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사야카는 심술궂은 표정을 짓고, 과장된 손짓을 동원해서, 호무라를 한 차례 더 찔러 본다.

 “네가 그렇게 말해봤자 소용없어. 반 애들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아케미는 카나메 스토커다!’라고.”
 “정말…이야?”

 사야카가 의도했던 대로, 호무라의 얼굴에서 당황을 쉽게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안경을 쓰고 머리를 땋은 모습이 겹쳐 보인다. 사야카는 여기서 한 번 더 밀어붙여 볼까 생각했으나,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실패하고 만다.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그렇게 따지면, 나랑 쿄코는 결혼한 줄로 알 걸?”

 호무라는 그제야 또 장난에 당했다는 걸 깨달은 듯하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 사야카를 따라 조용하게 웃어 보인다.

 “어쨌든, 같이 가자. 너도 알지? 쿄코 배탈 나서 조퇴한 거. 이야, 그러고 보니 둘이서만 얘기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아니, 거의 처음인가?”

 둘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대화의 주도권은 물론 사야카에게 있지만, 호무라도 이제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겨서인지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말을 많이 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 나이 또래 학생들이 할 만한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는다. 여러 주제를 오고가며 이야기를 나누다, 성적 얘기가 나오게 된다. 특히 호무라가 문제인데, 아무 생각 없이 실력대로(?) 본 지난 시험의 성적을 다음 시험에서까지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 사야카 역시 호무라만큼은 아니지만, 지난 시험에서 성적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상승한 사례에 해당하기 때문에 나름 고민을 하고 있는 부분이다. 신세한탄과 망상을 한 차례 늘어놓고 나자, 둘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흐른다. 어찌 보면 ‘사소한’ 이런 문제로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 

 “미키 사야카.”

 고요함을 깨고, 아케미 호무라가 사야카의 성과 이름을 한꺼번에 부른다.

 “응? 웬일이야. 갑자기 풀 네임으로 부르고. 오래간만인데?”

 기분 좋은 위화감에 사야카가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호무라를 쳐다보며 대답한다. 호무라 역시 걸음을 잠시 멈추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냥,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

 말을 들은 사야카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발걸음을 옮기며, 과장된 과장을 과장되게 섞어 대답해 준다.

 “이야! 호무라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고맙단 얘기 아니야? 나 감동해야 되는 거 맞지? 마도카한테 자랑해도 돼? 아니, 쿄코한테도 자랑해야겠는데!”

 아직 근처에 머무르고 있는 철새들이 울음소리가, 이중창에 맑은 반주를 더한다. 

 ……

 나뭇가지들이 앙상하다. 말 그대로 피가 끓고 있는 것인지 아직도 목도리, 장갑은커녕 두꺼운 외투조차 착용하지 않는 학생들이 간혹 보이기는 하지만, 대다수는 모든 겨울 의상을 총동원하여 중무장을 하고 다니고 있다. 물론, 학교 내부까지 추위가 스며든 것은 아니다. 철저한 설계 하에 건축된 외벽과 효율적인 난방시스템 덕분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고입시험 준비 때문에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 있던 토모에 마미가, 건물 밖으로 나가기 전에 털장갑을 끼고, 털목도리를 꺼내 두르고 있으려니, 익숙하고 밝은 목소리가 이름을 부른다.

 “마미 언니!”

 마미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목도리를 두를 때 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 때문에, 누군가가 자기를 부른다는 사실만 깨달았던 것 같다. 
 
 “아, 카나메. 웬일이야? 이런 시간까지 남아 있고. 호무라는?”

 마도카의 얼굴을 확인한 마미가 반갑게 입을 연다. 마미의 질문에 마도카는 짧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게, 보건위원들끼리 할 일이 있어서, 사야카랑 쿄코하고 먼저 가라고 했어요. 전 좀 늦게 끝난 김에 마미 언니 기다렸고요!”

 대답을 들은 마미는 고맙다는 뜻으로 낮게 웃는다. 그러면서 괜스레 훈계 아닌 훈계를 끼워 넣는다.

 “후후, 고맙네. 그래도, 미리 텔레파시로 연락이라도 주지 그랬니. 여기서 기다리다 엇갈렸으면 어쩌려고 했어? 내가 다른 약속이 있을 수도 있었잖아.”
 “그래도 몰래 기다리고 있는 게 더 재밌잖아요!”

 말을 이어 가면서, 마도카도 손에 들고 있던 목도리를 천천히 맨다. 준비가 끝나자, 둘은 학교의 이중 유리문을 지나 뒤늦게 하교하는 3학년들 사이에 섞여 들어간다.

 “언니, 입시는 어떻게 돼 가세요?”

 마도카가 질문을 던진다. 다소 사무적이라는 인상도 주는 질문이지만, 생각해 보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아마 이 질문엔,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마땅치 않았던 마미를 배려하는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너희들이 도와 줘서, 정말 수월해. 마법소녀 일을 바빴다면 정말 힘들었을 텐데.”
 “다행이네요! 마미 언니는 역시 대단한 것 같아요. 공부하느라 바쁘실 텐데도 가끔씩 순찰도 돌아 주시고…….”

 마미는 정면을 보고 있는 상태에서 환하게 한 번 웃은 다음, 농담 기운을 살짝 섞어 조금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렇게 살고 있으려니, 내가 카나메나 아케미, 미키한테 계속 반말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어. 막 무릎 꿇고 기도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다소 뜬금없는 발언에, 마도카와 마미는 한 차례 크게 웃는다. 웃음이 잦아든 후, 마도카가 말을 잇는다. 말투 자체는 농담조에 가깝지만, 그 내용만큼은 순수한 진심이다.

 “무슨 말씀이세요! 마미 언니는 언제나 훌륭한 마법소녀 선배잖아요! 그리고… 친구이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해 주니 정말 고맙네.”

 역시 마미는 ‘훌륭한 마법소녀 선배’보다는, 학년이 다르더라도 ‘친구’로 남는 쪽을 선호하는 눈치다. 모두가 같은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에 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간의 물리적 거리는 멀어지기만 할 것이다. 어쩌면, 마법소녀로서의 활동 범위도 더 이상 겹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모두 머릿속에 넣은 다음에도, 몇 십 년이 지난 후에 토모에 마미의 집에 모여 다과회를 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다. 글쎄, 어쩌면, 몇 백 년, 몇 천 년 후에도 가능하지 않을까? 장소는 전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

 건물, 나무, 인기 있는 주차 공간 따위가 항상 그늘을 만들어 주는 곳에는, 일주일 전에 내린 눈이 아직도 멀쩡하다. 한두 시간 정도 햇볕이 내리쬘 때 표면이 살짝 녹았다 다시 얼어붙어서인지, 방금 내린 눈보다는 훨씬 딱딱하고 미끄럽지만, 멀리서 보면 그 차이를 알아채기 어렵다. 

 쿄코가 하교하는 길에 근처 가게에 들러, 사야카의 어머니가 부탁한 물건들을 몇 가지 사들고 나온다. 집을 향해 조금 걸어가고 있으려니, 아주 긴 흰색 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야, 나기사. 안 들어가고 여기서 뭐해? 그러다 또 마미한테 혼난다.”
 “아, 쿄코 언니! 사야카 언니는요?”

 나기사는 쿄코의 충고를 못 들은 것 같다. 쿄코는 굳이 한 번을 더 얘기해서 무안을 줄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는지 나기사의 물음에 대답부터 한다.

 “아, 못 들었어? 어제부터 독감 때문에 앓아누웠어.”
 “네? 마법으로도 못 고치는 거예요?”

 정말 놀라고 걱정되는 듯, 나기사는 눈을 크게 뜨고 큰 소리로 걱정을 한다. 쿄코는 어깨를 한번 으쓱 하며 한숨을 쉬고는 대답한다.  

 “몰라. 그런가 봐. 사야카 말로는, 자긴 외과 전문이라나? 그나저나 넌 왜 여기 있냐? 아 맞다. 깜박했네.”
 “나기사는 지금 마도카 언니네 집에 있어요!”
 “어, 기억났어.”
 
 며칠 전부터, 나기사는 마미네 집 대신 마도카네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고입시험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마미가 집에 일찍 들어오기 어려워지자, 다른 마법소녀들에게 나기사와 같이 있어달라는 부탁을 했던 것이다. 사실, 혼자 사는 중학생이 세 명(사야카의 집에 얹혀살기 전의 쿄코를 포함하면)이나 된다는 점과, 나기사도 마법소녀라는 점을 생각하면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었겠으나, 영 걱정이 가시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사야카네 집이 고려대상에서 제외되고 나면(쿄코가 들어가 있으니 말이다) 남는 선택지는 둘. 그 중 아무래도 어린 동생과 바쁜 어머니가 있는 마도카네 집에 맡기기에는 부담이 있었기에, 처음엔 호무라네 집이 당첨되었다. 호무라도 몇 달 간 나름대로 생활력(?)을 강화한 상태였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랬던 것이, 마도카와 호무라, 그리고 나기사가 함께 다니던 중 마침 장을 보러 나온 마도카 아버지께 발각이 되었고, 하필이면 마도카의 아버지가 여러 가지를 캐묻는 바람에 ‘혼자 사는 중학생 집에 초등학생이 얹혀사는’ 비상식적인 상황을 들키게 되었고, 그 결과 강제적으로 나기사가 마도카네 집으로 이주하게 됐던 것이다. 예상치 못한 전개이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나기사에게는 손해가 없었고, 사정을 들은 마도카 아버지가 호무라에게도 ‘예고 없이 방문해 저녁을 먹고 갈 권리’를 수여한 덕분에 엄청난 이익을 얻은바, 결국 모두에게 좋은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마도카네 집은 어때?”
 “좋아요! 밥도 맛있고………”

 쿄코의 질문에, 나기사는 음식부터 시작해서 온갖 찬양을 늘어놓는다. 마미가 듣는다면 섭섭해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하지만 과자는 잘 안 만들어 주세요. 치즈케이크도 먹어본 지 너무 오래 됐어요.”

 결국엔 모든 결론이 치즈로 귀결되는 나기사의 말을 듣고, 쿄코는 한바탕 호쾌하게 웃는다.

 “하하하, 뭐, 한 달만 버텨. 마미가 시험 끝나면 들들 볶아서 뜯어먹어 버려. 아마 자기가 미안해서 뭘 해달라고 하든 다…… 어?”
 
 쿄코는 이상한 기운을 감지해서, 말을 하다 말고 나기사를 돌아본다. 나기사가 울상을 지으며 우뚝 멈춰서 있다. 쿄코는 순간 ‘쟤가 왜 저러나’ 생각하지만, 머지않아 이유가 무엇인지 대충 감을 잡는다.

 “쿄코 언니… 너무해요……. 뜯어 먹으라니…….”
 “야, 야, 잠깐만, 그렇게 받아들이란 소리가 아니잖아.”
 “그건 나기사도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미와 나기사는, 크게 보면 준만큼 받은 것이라 ‘그 사건’을 ‘웃으며 추억할 만한 과거의 이야기’ (사실, 그러자니 약간 소름이 끼친다는 걸 부정하긴 어렵지만)로 취급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흉터가 남아 있는 모양이다. 쿄코는 크게 당황하여 어떻게든 나기사를 달래려 하지만, 영 효과가 없다. 마미가 나기사와 관계된 일에서 유독 어른스러워지는 현상의 반작용인지 몰라도, 나기사는 마미와 관계된 일이면 정말 미취학아동으로 돌아간 것처럼 어린 티를 낸다. 평소에 치즈 얘기만 뺀다면 꽤나 어른스러운 아이인데…….

 “아이고, 모르겠다. 일단 따라와! 나기사! 치즈, 치즈 먹을래? 사러 가자!”

 ………

 덤불의 깊숙한 곳과 같이 햇빛이나 빗방울이 단 한 순간도 미치지 않는 곳을 빼면, 눈이 내렸었다는 흔적조차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추위를 덜 타는 식물 몇몇이 벌써 눈을 틔워내기도 한다. 비가 잔잔하게 내리면서 이들의 새로운 성장을 격려한다.

 하지만, 미타키하라의 마법소녀들은 이런 광경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방학 중이라는 걸 감안하면 아주 이른 시간에 일어나고 나서는, 장거리 텔레파시를 주고받으며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고 있다.

 “겨울이 지난 지 얼마나 됐다고, 도대체 왜 비가 오는 거야?”
 “참, 너무하네.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 가는 마지막 소풍인데…….”

 가장 먼저 일어나 바깥 풍경을 확인한 사야카는, 다른 마법소녀들이 모두 깨어날 때까지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럴 때면 보통 중심을 잡고 통솔하는 역할을 하던 마미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야, 이럴 땐 신이 뭐라도 해 줘야 하는 거 아냐?”
 “쿄코!”

 쿄코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마도카를 찔러 본다. 그 말을 들은 사야카가 즉시 쿄코를 나무란다. 마도카는 특유의 웃음소리로 가볍게 웃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물론 텔레파시로 이야기하는 도중 몸짓이 남들에게 보일 리는 없다. 아마, 전화를 할 때 몸짓을 섞어 가며 말하는 것과 같은 심리일 것이다.

 “날씨를 바꾸는 능력은 없는 걸……. 사실, 능력을 다 두고 와서 쓸 방법도 없고.”

 마도카는 말끝에 ‘가능하다고 해도, 내 맘대로 썼다간 사야카가 분명 무섭게 혼낼 거야.’를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덧붙인다.

 “하, 악마는 뭐 할 수 있는 일 없어?”
 “쿄코! 너 진짜 혼난다?”

 사야카의 고성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쿄코는 이번엔 호무라를 건드린다. 얼마 전, 쿄코가 의도치 않게 나기사를 울렸던 것이 순수한 우연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곧이어 사야카와 쿄코가 물리적으로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텔레파시로 잠깐 들렸다 끊긴다. 다른 마법소녀들은 모두 그런 광경을 상상하며 가볍게 웃는다. 

 “…마도카가 못하는 건 나도 못 해.”

 웃음이 가라앉자, 호무라가 잠깐 목을 다듬고는 쿄코의 농담 섞인 제안을 거절한다. 

 “어쩔 수 없구나. 준비는 다 해 놨으니 일단 출발해 보자. 가는 동안 비가 그칠지도 모르고, 거기서 우비를 살 수도 있잖아. 요즘엔 비가 올 때도 웬만한 건 모두 운영한다고 해.”
 “나기사는 우비도 좋아요!”

 마법소녀들은 마미의 결정에 따라, 제각각 일단 우산을 들고 집에서 나와 적당한 곳에서 모인 다음, 놀이공원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동하는 동안 수다는 한 순간도 끊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장거리 텔레파시를 수다 떠는 용도로 사용하기엔 여러 가지로 부담이 있는데다가, 직접 말로 하는 것보다는 재미가 떨어지니 말이다.

 아쉽게도, 놀이공원에 도착한 이후에도 비가 완전히 그치지 않았다. 빗줄기가 조금 약해진 것이 전부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놀이공원 앞에서 직원들이 색색의 우비를 팔고 있다. 마법소녀들은 신나게 다가가,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가장 친숙한 색깔의 우비를 집었다가, 무언가 식상함을 느낀 듯 서로 색깔을 바꿔 입어 본다.

 “호무라, 거기 약간 구겨졌어. 가만있어 봐… 됐다!”
 “응, 고마워. 마도카.”
 “마미! 머리카락 좀 잡아 주세요. 자꾸 걸려요.”
 “자, 됐니?”
 “이것도 나름 괜찮네.”
 “다 됐으면 들어가자고!”

  ……

 한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이런저런 놀이기구에 탑승해 보고, 적당한 실내를 찾아 도시락을 먹고 나니, 빗방울이 물웅덩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조금 더 있자니, 서서히 날이 개기 시작한다. 비 때문에 운영을 중단했던 몇몇 격렬한 놀이기구가 운행을 재개하기 시작한다.

 선호도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른바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지 못하는 마법소녀는 없기에 (안경을 쓰는 호무라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아마 그렇더라도 다른 마법소녀의 손에 이끌려 반 강제로 탑승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적당히 소화가 된 다음 그런 놀이기구를 찾아 줄을 서 본다.
 
 “어쩌지… 나기사는 아직 키가 안 돼서 못 타는데?”

 줄을 선 지 얼마 안 되어, 마미가 곤란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기사만을 빼 놓고 타기도 내키지 않고, 누구 한 명이 나기사와 같이 탑승을 포기하는 것도 영 아쉽다. 한참을 고민하던 중, 마미가 말을 꺼낸다.

 “안되겠구나. 일단, 나기사랑 화장실 좀 다녀올게.”

 어찌 보면 뜬금없는 발언이지만, 마법소녀들은 전부 저 속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야카가 마미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어차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니 이 정도는 융통성을 발휘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듯, 곧 표정을 풀고 다른 마법소녀들과 같이 다녀오시라고 인사하며 웃어 준다.

 얼마 뒤, 여섯, 아니, 다섯 명의 마법소녀와 ‘베베’가 놀이기구에 탑승한다.

 “자, 안전장치가 확실히 잠겼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기, 노란 머리 여학생 고객님! 그 인형 가지고 타실건가요? ……인형을 놓치시면 꺼내드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만, 괜찮으신가요?”

 마미는 괜찮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내심 불안한 듯 조심스럽게 리본 마법으로 베베 모습의 나기사를 단단히 고정시킨다.

 “……그러시면 꼭 붙잡고 타 주십쇼. 마지막 점검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출발합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

 어느새 새학년,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마미는 다행히 가고 싶었던 고등학교에 합격, 이사를 할 필요는 없는 모양이다. 마법소녀 넷은 극단적인 확률을 뚫고 3학년에도 모두 같은 반이 되는 기적을 이루었다. 사야카는 끙끙대며 계산을 해 본 끝에 그럴 확률이 0.1%도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다른 녀석들이 뭔가 조작을 하지 않았을까 의심을 해 보기도 했지만, 굳이 추궁을 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야카는 두 번째 알람을 듣고 일어난다. 괜히 쿄코를 건드려 보고 씻으러 가려는데, 익숙하지만 그다지 반갑지는 않은 목소리가 들린다.

 “미키 사야카! 잘 잤어?”
 “뭐야, 오랜만이네 큐베. 웬일로 왔어?”

 큐베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아주 중요한 논점이었다. 복잡한 과정은 상상에 맡기고 결론만 말하자면, 마법소녀들은 여기에도 인큐베이터의 전략, 요컨대 ‘관심 밖에 있으면 간섭도 받지 않는다’를 사용하기로 했다. 큐베가 지구를 그저 ‘가만히 놔두면 본전은 뽑지만, 발전가능성은 없는 사업장’ 정도로 생각하게 만들어서, 인큐베이터들이 지구에 관하여 ‘현상유지’ 외의 관심을 가질 경제적 유인을 삭제해 버리는 것이다.

 “그냥, 정기순찰이지. 마침 너희 집이 경로 옆에 있는 김에 들러 봤어. 알려줄 정보가 있기도 하고.”
 “휴, 또 누가 말썽인가 보구나.”
 “그런 셈이지. 근처에 마녀가 몇 명 나타난 것 같으니, 정보에 귀를 기울이도록 해.”
 “그럴게. 알려줘서 고마워.”

 큐베가 사라진 이후, 사야카는 깊은 한숨을 쉬고 일단 등교 준비를 시작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큐베가 말한 ‘정보’를 얻는 것은 아침식사 시간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젯밤 10시경, 미타키하라 시 외곽의 한 편의점이 강도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20대 남성과, 물건을 사기 위해 들렀던 것으로 추측되는 여고생이 날카로운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되었으며, 대부분의 물품이 도난당해 큰 재산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하였으나, 범행수법이 매우 치밀하여 용의자 검거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범인은 운반용 차량을 동반한 4~5인이고, 범인이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높은 품질의 단검을 사용한 것, 그리고 흉기의 사용에 아주 능숙했던 것으로 보아 전문 범죄조직이 개입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사건에……”
 “끔찍하기도 하지…….”

 사야카의 어머니가 아침 뉴스를 보면서 말한다. 사야카의 아버지도 가볍게 한숨을 쉰다. 반면, 사야카와 쿄코는 심정에 큰 변화가 없는 눈치다. 사야카는 큐베에게 얻은 정보 덕에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는 걸 예감하고 있었고, 쿄코는 이런 사건에 충격을 받을 성격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마법소녀 짓이네.’
 
 사야카가 조용히 텔레파시로 쿄코에게 말한다.

 ‘단검을 쓰는 마법소녀라고? 이 근처에 몇 명 없잖아. 거기다, 처리가 영 서투른 걸 보니 금방 찾겠네. 어설프게 편의점이나 털다가 알바랑 손님한테 걸리고는 당황해서 찔러버렸겠지.’
 ‘그래, 그래. 전문가께서 잘 아시겠지.’

 쿄코가 아는 척을 하자, 사야카가 곧바로 비꼬는 말투로 말한다.

 ‘비꼬지 마! 난 범죄 전문가가 아니라, 그냥 쟤들 심리를 읽고 있을 뿐이라고. 물건 훔친 가게 다 찾아가서 사과하고 변상까지 했잖아. (뭐, 웃어 넘겨준 곳이 더 많긴 했지만) 반성도 철저히 하고 있어!’
 ‘하하, 알아. 알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 쿄코. 어쨌든, 학교 일찍 끝나는 날이라서 다행이네. 빨리 밥 먹고 나갈 준비나 하자고.’

 ……

 새로 탄생한 이 우주에 마녀가 있다.

 이 세계의 마녀들은 멀쩡한 소울 젬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욕심에 빠지거나 순간적인 충동에 휩싸인 나머지, 힘을 남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준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 보면 모두에게 이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는데도, 두어 걸음만 돌아가면 아무도 해치지 않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을 막을 수 있는 건, 결국 같은 마법소녀들 뿐이다. 마법소녀들은 자연스럽게, ‘마녀’들을 찾아 마력을 봉인하고, 충분한 증거와 함께 관할 사법기관에 넘겨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정당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새로운 세계에서, 우리는 마수와 마녀 둘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다. 다른 종족이 만들어낸 마녀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마녀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다른 우주에서 누군가가 말했던 것처럼, 인간 세계의 저주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세계의 뒤틀림은 그 형태만이 바뀐 채로, 여전히 밑바닥에서부터 사람들을 노리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보다 불행을 자주 느끼고, 기쁨보다 슬픔에 익숙하다. 몇 번이 뒤바뀐 다음에도, 이곳은 여전히 슬픔과 증오만이 반복되는, 구원의 여지가 없는 세계이다.

 다만 여기서 한 명이라도 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세계, 모두에게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라도 더 열려 있는 세계를 추구할 뿐이다. 언젠가는 우리들의 가치가 실현가능성 없는 유치하고 허황된 이야기라는 비난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믿자. 우리 마법소녀는 꿈과 희망을, 그리고 사랑과 정의를 이루어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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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I. 머리말

 갑작스런 창작욕 폭발로 쓰기 시작했던 팬픽이 어느새 완결을 보게 됐네요. 참 오랜만에 한 가지 취미활동에 몰두해본 것 같습니다. 이른바 ‘흑역사’의 후보를 하나 더 만들어내게 된 기념, 그리고 대충 구색을 맞추는 취지에서, 후기를 첨부하게 되었습니다. 


II.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

 반역의 이야기를 보고 나서, 일단은 학점사수를 위해 기말에 몰두했습니다. (멘탈케어를 위해 미리 스포일러를 찾아본 건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안 그랬으면 후유증 때문에 공부도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정작 기말기간에도 꽤 가지고 놀았다는 건 함정…….

 방학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작품을 이리저리 해석해 보고, 캐릭터들의 행동을 설명해 보고, 후속작에서 떡밥으로 사용될 만한 부분을 찾아 봤습니다. 본편의 내용도 몇 번 곱씹어 보았고요. 그때그때 메모해 정리해 둔 것들 중 이번 팬픽과 관련이 있는 걸 모아 보면 이렇습니다.

1. ‘마수가 멸망한 후에’ 세상을 멸망시키겠다는 말의 뜻
 - 왜 물어보지도 않은 조건을 붙였는가? 
 - (가설 1) 자기가 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걸 그냥 돌려 표현한 것일 뿐이다.
 - (가설 2) 마법소녀가 존재하는 한, 마수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마수가 없어지고 나서 너희와 적이 되겠다는 소리는 결국 ‘불가능한 조건이 성취되면 너희와 적이 되겠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이 말은 호무라에게 ‘세계를 멸망시킬 생각은 없다’는 걸 말해준다. 마도카가 행복하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소리. 그렇다면 호무라는 왜 사야카를 불필요하게 자극했을까?
 - (가설 2-1) 호무라가 ‘자기를 위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마도카가 알게 되면, 마도카는 불행해진다. 따라서 호무라는 일부러 악마인 척을 해서 마도카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
 - (가설 3) 마도카의 성격과 인과상, 새로운 세계에서도 마법소녀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마도카는 마법소녀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마수가 없어지면 마도카는 마법소녀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그때는 내가 마수를 대신하여 마도카의 행복을 지키겠다.

2. 반역 이후 호무라의 본심?
 - (가설 1) 호무라가 진심을 내보이는 존재는 오로지 마도카뿐이었다. (너그럽게 봐준다고 해도 쿄코나 큐베(...) 정도가 간신히 포함될 수 있다.) 이는 반역 이후에도 똑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역 이후 호무라의 대사는 대체로 왜곡된 본심이고, 오로지 마도카 앞에서 한 말만이 진심이라 볼 수 있다. 마도카에게 리본을 돌려줄 때 유일하게 반역 전의 표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따라서, 호무라의 확실한 진심이라 단정할 수 있는 건 ‘마도카 네가 행복하기만 하면 돼’ 뿐이다.
 - (가설 2) 악마화 이후의 호무라 대사는 모두 진심이다. 다만, 상황이 변함에 따라서 그 진심이 바뀌었을 뿐이다. [이 가설에 대한 자세한 적용은 팬픽 10장의 회상부분과 같습니다]

3. 원환의 섭리는 생각보다 무서운 것이다.
 - 팬픽 3장에서까지 설명한 것과 동일합니다.

4. 마도카와 호무라의 인과에 개입한 사야카
 - 팬픽 12장에서 설명한 것과 동일합니다.

5. 호무라의 세계는 정말로 ‘틀린’ 것인가?
 - 팬픽 10장에서 (하필이면) 큐베의 입을 빌어 설명되었습니다. 큐베의 설명 중, ‘최초의 세계’를 옹호하는 부분만 12장에서 제시한 사야카의 논리를 통해 날려버리면 됩니다. 

6. ‘네가 악마라는 것만은 잊지 않아’
 - (가설 1) 사야카가 호무라가 악마라는 것을 아는 상태로 후속작이 진행된다.
 - (가설 2) 사야카가 ‘악마가 있다’는 것만 아는 상태로 후속작이 진행된다.
 - (가설 3) 사야카가 ‘호무라에게 뭔가 있다’는 것만 아는 상태로 후속작이 진행된다.
 - (가설 4) 사야카는 정말 바보이므로 다 잊어버린 상태로 후속작이 진행된다.

 이렇게 이리저리 혼자 놀기를 하다 보니, 이것들이 덩어리를 만들기 시작하더랍니다. 일단 3번과 6번의 가설 2를 결합시킨 다음 약간 양념을 치면, 팬픽 4장까지의 줄거리가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기말기간, 멘탈이 흔들흔들할 때 틈틈이 망상을 해 놓았었죠)  1번과 2번을 합치면 호무라의 행동, 팬픽 5장, 7~9장의 줄거리가 나오죠. 이 둘을 이은 다음, 5번을 (절망적으로) 활용하면 10장과 11장의 줄거리가 나옵니다.

 그러면 이대로 이야기를 끝내 완벽한 배드엔딩을 만드느냐, 4번을 첨가하여 해피엔딩으로 전환시키느냐는 선택이 남았지요. 개인적으로 배드엔딩 자체를 싫어하진 않습니다만, 제가 배드엔딩을 만드는 주체가 되는 건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라 (예컨대, 분기 없이 배드엔딩으로 직행하는 RPG게임은 괜찮아 하지만, 수많은 분기가 있는 경우에 배드엔딩은 웬만해선 피합니다. 여러 번 반복 플레이하는 경우에도 배드엔딩을 찾아서 보는 경우는 드물어요.) 빠르게 후자를 채택. 현재 줄거리의 뼈대가 완성되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완성된 줄거리가 마마마 본편과 반역 안에서 끌어낼 수 있는 주제의식들과 공존할 수 있는지 검토해 봤습니다. 우로부치의 인터뷰, 국내외 다양한 리뷰, 저와 제 친구들의 해석을 모두 종합해서 찾은 마마마의 주제의식은 ‘소통’, ‘절충’, ‘성장’, ‘역설’ 네 가지가 대표적이었습니다. (물론 ‘희망/절망’이라던가 ‘사랑’같이 작품 내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된 부분은 당연히 포함.) 이 중 ‘역설’은 4장까지의 줄거리만으로도 충분히 잡아낼 수 있을 것이고, 이후로도 계속 반영할 수 있겠다고 보았으며, ‘소통’과 ‘절충’ 역시 스토리 곳곳에 스며내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제는 ‘성장’이었습니다. 이야기 구상이 어려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야카를 중심인물로 해서, 사야카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성장의 모습을 녹여내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으니까요. 걱정이 됐던 부분은, 반역의 이야기 이후 인터뷰에서 우로부치가 지적했던 것처럼, ‘성장’이 ‘캐릭터의 파괴’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또한, 성장 자체에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성장하는 과정 내지는 성장하고 난 모습이 독자의 기대와 다르면 또 비난을 받기도 하고요. 원작자도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인데, 하물며 일개 팬픽이 그런 비판에서 자유롭기는 더더욱 어렵겠죠. 하지만, 저는 줄거리 구상을 통해 그저 자기만족을 얻을 뿐인데, 그런 요소들까지 일일이 고려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성장’이라는 주제도 붙잡고 가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는 그냥 줄거리만 하드 깊숙한 곳에 글로 정리해 놓고, 혼자서의 망상으로 끝낼 작정이었으나, 생각이 모두 정리되자 ‘어? 괜찮겠네? 써볼까?’싶더랍니다. 그렇게 된 김에 하루 날을 잡아서 1장부터 12장까지의 초안을 완성해 봤습니다. (이 과정에서 계산실수로 처음 구상보다 분량이 짧아져 버렸지요) 얼개를 완성하고 나니, 살을 어떻게 붙여야겠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에필로그를 뺀) 마지막을 루미너스 장면으로 하는 것, 주요장면에 원작과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는 배경묘사를 넣는 것 등은 이때 들어간 요소들이었지요.

 여기까지 작업이 진행되자, 아예 샤프트/이누카레식 연출을 넣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작품 곳곳에 필요 이상으로 자세한 배경묘사/상징/비유를 넣어 봤지요. 원작의 연출과 마찬가지로, 무시해도 줄거리 이해엔 전혀 지장이 없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복선이 되기도 하고, 주제의식이 되기도 하게 말이죠.

 그렇게 거의 처음으로 창작욕에 불타올라 주말을 모두 투자한 끝에 팬픽이 거의 완성됐습니다. 이렇게 된 거 몇 군데 올려보자는 생각이 들어, 펑크 내는 일이 없도록 일정을 넓게 잡고, 퇴고를 두어 번 거친 그 주 금요일정도부터 연재를 시작했지요. 예비분량을 많이 쌓아둔 상태에서 시작한 연재라, 연재기간 중 여러 일이 있긴 했지만, 다행히 시간에 쫓기지는 않았네요. 다만 다른 부분에 비해 조금 곤란한 부분은 몇 군데 있었습니다.

 일단, 1~7장을 쓰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분량이 계획보다 자꾸만 많아져서 걱정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떡밥들 사이에 모순이 생기거나, 떡밥을 과다하게 투하한 나머지 스토리 예측이 너무 쉽게 되지 않도록 하는 데 치중할 수 있었습니다.

 창작이 조금 힘들어진 것은 전투장면이 주가 되는 8~9장부터였습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마마마를 빼면, 관심 있게 본 애니메이션을 찾으려면 드래곤볼(시간끌기의 진수 그 드래곤볼 애니 맞습니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아는 애니메이션이야 많지만, 그중 99%는 모 위키에서 글로 배운 거라서요.), 판타지 소설도 해리포터를 빼면 읽은 게 없어서 전투장면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2개의 장이 통째로 전투의 연속이니, 다른 장에 드문드문 있었던 장면에서 그랬던 것처럼 임기응변으로 넘어가기도 곤란했지요. 뭐, 결국에 어떻게든 완성하긴 했습니다만…….

 10장의 경우는, 초안의 구성이 너무 뒤죽박죽이라 정리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예컨대, 초안은 큐베가 먼저 세계를 완전히 되돌리겠다고 선언하고, 여기에 사야카가 실컷 폭력적인 반응을 보인 다음, 난데없이 논리 싸움으로 진입하다가, 호무라의 본심을 알려주고, ‘다크 오브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마도카를 절망시켜 버리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지요. 완전한 의식의 흐름 기법이었습니다. 잘라내고 붙여넣고 연결시키는 작업을 대여섯 번 이상 한 것 같네요.

 11장을 완성할 때는 10화와 어떤 점에서 차이를 보이게 할까 고민을 좀 했었습니다. 큐베의 시점에서 서술을 할지, 아니면 사야카의 시점에서 서술을 할지부터가 결정하기 애매했지요. 몇 번을 고쳐 쓰고 나서야, 서술은 3인칭으로 하되, 중간 중간 “큐베의 생각이라 착각하기 쉬운 사야카의 생각”을 넣는다는 결론에 도착했지요. 여기에 더해서, 본편에 없었던 장면을 몇 군데 넣기도 했고요.

 12장을 쓰는 작업은 대체로 수월했으나, 연재 하루 전 심야에 있었던 막바지 오탈자 수정 중에 설정구멍이 몇 군데 눈에 들어와 급한 수정을 거쳤습니다. 수정 전에는 사야카가 마녀의 그리프 시드를 얻는 과정이 없었고, ‘인과와 기억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데 사야카가 왜 기억을 가지고 있나?’에 관한 설명이 빠져 있었습니다. 이 부분을 보충하고, 그에 따라 추가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한 다음, ‘사야카가 성장한 모습을 더 강조해야겠다’는 생각에 또 대사를 몇 줄 늘린 덕에, 마지막 장에 와서 분량의 균형이 무너져 버렸지만, 그냥 쿨하게 무시해 버렸습니다.

 한편, 에필로그랑 후기는 의식의 흐름에 맡겨 쓰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완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팬픽이 다소 허무하게(?) 완결되었네요.


III. 작품에 넣지 못한 것들

 구상 단계에서 검토는 해 봤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작품에 들어가지 못한 스토리/설정들을 소개해 보면 이렇습니다.

1. 다크 오브도 오염될 수 있을까?
 - 즉, ‘악마’도 타락할 수가 있다.
 - ‘악마’가 타락하면, 원환의 섭리에 의해 구제받을 수 있는가?
 - 소울 젬의 ‘희망’은 ‘절망’으로 오염된다. 그럼, 다크 오브의 ‘사랑’은 무엇으로 오염되는가? 증오? 무관심?

2. 반역을 하지 않았을 경우 쿄코와 마미의 운명
 - 호무라가 반역을 하지 않았다면, 큐베는 계속 실험을 진행했을 것이다.
 - 큐베가 처음에 호무라를 실험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는, ‘원환의 이치’에 대해 남들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도카를 알고 있음)
 - 그런데, 반역의 훼이크 결말부분에서 쿄코와 마미도 마도카에 대한 기억을 일부나마 얻게 된다.
 - 그렇다면, 쿄코와 마미가 큐베의 손에 희생될 가능성이 높다.

 1번은 팬픽의 전체적인 스토리 구조상 사용할 필요가 없었기에 넣지 않았습니다. 10장에서 호무라의 본심 부분에 간접적으로 언급된 걸 빼면 말이죠. 2번의 경우, 이것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는 호무라 세계 안에서 마법소녀들이 분열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 팬픽에서는 ‘호무라의 본심’과 ‘마법소녀들의 분열’이 공존할 수 없기에 기각되었습니다.

 마법소녀들의 분열이 있으려면, 호무라가 좀 더 맛이 간(?) 상태라고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자기 세계가 유지될 수 있으면 (그래서 마도카가 장기적으로 행복할 수 있으면) 단기적으로 마도카가 얼마나 불행하더라도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겠지요. 이런 해석을 바탕으로 생각해 본 분열 양상은 이렇습니다.

a. 사야카
 
 사야카는 악마가 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다면, 악마에 대항할 확률이 높지요. 하지만 악마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면, (팬픽 4장처럼) 악마에 직간접적으로 동조할 수도 있겠습니다. 호무라가 마도카의 운명과 큐베의 위험성을 근거로 설득했을 때 넘어올 가능성도 0은 아니겠죠.

 보다 복잡한 전개로는, 호무라가 사야카에게, 쿄코의 악행(살인방조 등)과 그 피해자들의 슬픔을 보여 주는 걸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예컨대, “사야카 너는 내가 한 일이 정말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잘 생각해 봐. 나는 아무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았고, 아무도 절망시키지 않았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면 그럴 생각도 없어. 왜냐면… 그 아이가 싫어하니까. 그런데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사쿠라 쿄코를 볼까? 수많은 우주에서, 사쿠라 쿄코의 단순한 욕심 때문에 죽고, 다치고, 절망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봤어? 너는 그런 사람을 용서했을 뿐 아니라, 가장 친한 친구로 받아들이고 있어. 그런 네가, 날 비난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렇게 되면 사야카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b. 쿄코
 
 사야카가 하자는 대로 하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반대로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면 사야카가 없어질 것을 안 다음부터는 적극적으로 악마에 동조할 가능성도 없진 않을 겁니다. 만약 사야카가 딜레마에 빠지는 전개라면, 본편에서처럼 사야카를 위해 희생하는 전개도 나올 수 있겠지요.

c. 마미

 나기사가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호무라에게 동조하는 경우도 있겠고, 반대로 호무라가 마미의 약점을 이용, 나기사의 ‘정체’를 알려줘 정신적 충격을 주는 전개도 생각해 봤습니다. 마도카 항에서 후술할 것처럼, 오히려 ‘정의’를 추구한 나머지 호무라에게 동조하는 것도 있겠고, 무난하게 호무라에 반기를 드는 전개도 있겠죠.

 d. 나기사

 예전의 기억을 회복해서 호무라에 대항하는 전개, 예전의 기억을 회복했음에도 마미와 헤어지기 싫어 호무라에 동조하는 전개, 마미 항에서와 같이 호무라가 마미를 괴롭힐(?) 경우에, 단순히 마미를 위해 호무라에 대항하는 전개를 생각해 봤습니다.

 e. 마도카

 마도카는 욕망보다 질서가 우선이라고 했지만, 사실 ‘질서’가 무엇인지는 아주 상대적이죠. 호무라의 세계에서 마도카가 가장 먼저 관측 가능한 ‘질서’는 호무라의 세계 그 자체이므로, 마도카가 오히려 호무라의 세계 유지에 동조할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이것들을 이리저리 섞으면, 이야기 전개를 엄청난 혼란에 빠뜨릴 수 있겠지요. 예컨대, 사야카는 쿄코 때문에 딜레마에 빠지고, 쿄코는 그것도 모르고 악마를 빨리 없애자고 하고, 마미는 나기사의 정체를 알고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나기사는 ‘마미를 괴롭히는’ 호무라에게 대항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마도카는 오히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호무라의 편을 들고……. 생각해보니 나름 쓰는 맛이 있겠네요. 나중에 시간나면 한번(?)


IV. 아쉬운 점/잡다한 일화

 - 앞서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기획 단계에서 분량계산에 착오가 있어 의도보다 전체 분량이 20~30%정도 줄어들었습니다.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지만, 원래 의도대로 분량을 설정했다면, 다른 해야 할 일들에 치여 원활하게 연재할 수 없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아마 8~9장에서 큰 곤란을 겪었을 것 같네요. 그렇게 됐다면 아마 개강이 겹쳐, 완결까지 아주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전반적인 서술방식과 관련해서, 1인칭-3인칭/관찰자-전지적 시점이 혼용되는 것이나, 인물의 생각에 작은따옴표를 생략하고 서술한 것은 대부분 의도한 것입니다. 문장이 딱딱한 것, 간혹 논문체가 연상되는 것, 구어체 표현에서도 문어체의 성격이 나타나는 것은 대부분 의도치 않은 것이거나, 고치고 싶었지만 고치지 못한 것들입니다.

 - 나기사가 팬픽에서도 비중이 공기인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나기사 대사를 쓸 때마다 제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이유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하는 걸 견디기에는 제 ‘항마력’이 충분치 않네요. (그 덕에 자연스럽게 마미의 비중도 급감) ‘내성이 좀 강했다면, 머리를 짜내 비중을 더 높여볼 여지가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사야카랑 쿄코의 장난을 상상할 때, 여학생을 기준으로 잡을까, 남학생을 기준으로 잡고 약간 손을 볼까 고민했는데, 막상 그 시절을 회상해 보니 ‘친한 친구간의 장난’에 관한 한 둘 사이에 심각한 차이가 없었다는 함정이 있더군요. ……아니면 제 여자사람친구들이 하나같이 남성적이었을 가능성도 있겠죠.

 - 초안에서 호무라의 악독한 대사와 행동묘사(이른바 ‘얀데레 포스’)는 더욱 광적이었습니다. 하지만 8~9화에 호무라의 본심에 관한 복선을 다수 삽입하면서 완화되었죠.

 - 10장에서 큐베의 대사를 쓰는 게 제일 쉬웠습니다. 단어 선택의 폭이 가장 넓었을 뿐 아니라, 저에게 익숙한 문체로 쓴 다음 어미만 바꿔주면 됐으니까요. 다른 캐릭터의 경우, 아무래도 중학생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단어로 한정지어야 하다 보니 수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지요.

 - 세세한 설정을 모두 알고 계시는 분이라면 눈치 채셨겠지만, 제가 마법소녀들의 집 위치(마도카 게임 기준으로)를 착각한 부분이 몇 군데 있습니다. 그 여파로, ‘미타키하라 뒷산’의 위치가 특정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죠. 지적해 주시는 분이 없기에 그냥 모른 척 넘어갔습니다.

 - 간혹 반역의 이야기 비판론으로 제시되는, 마느님의 능력과 관련된 설정오류(모든 우주를 볼 수 있다고 했음에도 호무라에게 반역당한(?) 것)는, 일부러 팬픽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도카의 소원이 가지는 내재적 한계 때문에 ‘대항할 능력도, 피할 가능성도 없었다’는 해석, 또는 영문 위키에 소개되어 있고 몇몇 웹코믹에서 사용되기도 한 ‘호무라의 반역은 관측 불가능했다(큐베의 차단 및 그 후유증 때문)’는 해석을 선호합니다.


V. 맺음말

 손 가는 대로 쓴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중간에 여러 이유로 하차하신 분들께도, (전달은 되지 않겠지만) 한 줄이라도 읽어주신 데 대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시간 대비 열정이 또다시 기준선을 넘어선다면, 그때는 아주 조금은 발전된 글로 찾아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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