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울 고시생들 많이 살고있는 곳에 거주중인 29세 남성입니다.. 처음에는 공부하러 와서 고시원 살다가.. 너무 좁고 외로워서.. 차라리 몇만원 보태서 월세를 살자 마음먹었던게 이제는 주민이 됐다고나 할까요? 사정이 생겨서 지금은 꿈을접고 돈을벌고 있습니다만.. 아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혼자 살다보니 늘어가는건 외로움과 살림실력 밖에 없었습니다. 밤거리의 연인들을 질투반 부러움반으로 흘겨보고 "나도 예전엔 이쁜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하고 옛 그녀들을 떠올리곤 했죠.. 그런날은 집에와서 국산12년산 양주 한잔 언더락에 반쯤담아 얼음 4개 넣고 휙휙 돌려 홀짝홀짝 마시며 담배 한개피 태우는것으로 자기위안을 하고.. 추억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외로움에도 익숙해질 무렵..그녀를 만나게 되었는데요! 사실 만난건 아니네요.. 인연이 시작됐다고 표현해야하나..
대형마트 아시죠? 살림을 하는 저로서는 매주 1회..나름 규칙적인 인간이라 매주 토요일 오후 5시에 쇼핑(이라고하기엔 조금 거창하지만)을 하러 방문하였습니다. 때는 10월 1일 토요일이었습니다. 3일이 개천절이어서 황금연휴라고 사람들 여행도 많이가고그랬었죠. 저는 3일연휴를 집에서 혼자 뒹굴 생각에 그날 장을 좀 많이 봤습니다. 생수부터 시작해서 맥주,고기,과일..등등 장을 다 보고 집에 오는길.. 저의 장바구니로는 모자라서 비닐봉투까지 양손에 들고 오는데 손가락 둘째마디와 전완근이 고생좀 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집에와서 대충 자리에 맞게 상품들 배치를 해주고.. 가득찬 냉장고를 보니 제 마음도 든든하더군요 맥주와 프000 양파맛 (외국감자스낵) 을 꺼내들고 티비앞으로 가서 앉았습니다. 머그컵을 들어 맥주한모금 꿀꺽 들이키고 프000 뚜껑을 열었는데.. 아니 이게 무슨일? 혹시 이런경험들 있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은색? 흰색? 으로된 속뚜껑이 열려있는겁니다! 그리고는 차마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가 없었죠 내용물 반이 없는겁니다..아뿔싸 태어나서 처음겪는 일이었기에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마음을 진정하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럴경우에는 어떻게 해야하지?" 마트에 가져가서 따진다? 하지만 그건 마치.. 과자 반쯤 먹고 나서 새제품 교환이나 환불 받으려는찌질한 양아치로 보일것 같았습니다. 남자로 태어나서 과자들고 대형마트 가기도 그렇고.. 그냥 먹자니 찝찝하기도 하고..버리자니 돈아깝고.. 결국 저는 얼굴 팔리지않는 전화를 택하기로 하고 영수증에 써있는 마트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녀 "" , 나 @ )
"홈000 ~ 이미소(가명) 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네.. 그녀와의 첫 만남.. 아니 첫 통화였습니다.
@ 저..아까 거기서 감자스낵 샀는데 내용물 반이 없네요 어떻게 하죠? 말하면서도 엄청 쪽팔렸습니다. -_-
"네~ 고객님 많이 속상하셨겠어요~ 구입하신 매장이 영등포점 맞으십니까?
@ 영등포점으로 전화했는데요?
"아~ 저희는 영등포점이 아니고 홈000 콜센터입니다~ 자세한 확인을 위해 영수증 조회를 해드릴텐데요~ 영수증 상단에 보시면 넘버.. 블라블라~"
@ 저기..죄송한데 좀 복잡하네요 구매확인까지 하나요? 영수증도 버렸고.. 현금계산했는데요..
"아~ 그러시면 혹시 패밀리카드..적립.."
@ 전 적립도 안하는데요?
갑자기 정적이 흘렀습니다.. 머랄까 대본대로 흘러가던 연극에서 받아칠수없는 애드립을 쳤다고나 할까요.. 제 입장에서는 머가 이렇게 복잡한가 싶었지만 그녀도 시스템상 어쩔수 없는 부분이었던것 같아서 이해는 했습니다..매장직원도아니고 콜센터 직원이었으니.. 정적이 끝난후
"아.. 그러시면 제가 영등포점 고객서비스센터 번호를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고객님~"
@ 네.. 속으로 아..또 전화해서 창피하게 말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친구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뚜뚜~ 뚜뚜~ 대기통화 울리는소리에 괜히 마음은 급해지고..
@ 문자로 보내주세요~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친구와 신나게 통화를 마친후 전화기를 보니 문자메시지 한개가 와있었는데
= 콜센터 이미소 입니다 고객서비스센터 번호는 000-0000 입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 라고 와있더군요
물론 업무상으로 보낸것이지만 낮선여자에게서 받은 문자메시지는 저의 엔돌핀을 샘솟게 했습니다. 답장하고 싶은 욕구가 저도 모르게 피어올랐지요..이미 저에게서 감자스낵은 떠나고 없었습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즐거운 주말되세요^^ 즐거운 주말되세요^^ 즐거운 주말되세요^^ ..
제 손가락은 저도 모르게 핸드폰 스크린위에서 춤을 추고.. 감사합니다~ 수고많으세요 ~ 이름이 이쁘세요~ 목소리가 이쁘시네요~ 미소님도 즐거운 주말되세요~등등 머리속에서는 나의 운명을 정해줄 많은 문장선수들이 누가 출전할지 고민하며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 이거다!
- 좀 당황했었는데 미소님 친절하게 응대해주셔서 기분이 좋아졌네요^^ 일하느라 힘드시죠? - 라고 쓰고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 내가 뭐하는짓인가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지만 이미 날아간 문자일뿐이지요 질러버리고 난 후에 그 두근거림이란.. ㅎㅎ 사실 답장을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괜히 아무도 없는데 쿨한척티비를 열심히 보았죠 그녀의 반응따위는 안중에 없다는듯이.. 하지만 답장이 왔습니다!
= 다행이시네요 제 걱정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들어도참아야죠^^* =
답장을 받고나서 또다시 엔돌핀이 솟구치기 시작하고.. 그녀와 문자를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그녀 -나 )
- 하핫~ 스낵은 그냥 먹으려구요 사실 바꾸러가기도 귀찮네요 -
= 저도 그거 좋아하는데~ 저는 오리지날을 좋아해요 ㅎㅎ =
이정도 문자를 주고받았을때 이미 고객과 직원사이의 벽은 넘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괜시레 웃음이 나왔습니다.
- 앗 그러세요? 오리지널이 진리이긴하죠 ㅋ 근데 혹시 나이대가 어떻게 되세요? 20대초반일듯? - (예의상멘트)
= 네..20대초반이에요 ㅋ 고객님은요? =
- 고객님이라고 하시니까 갑자기 급어색하네요 -_- 29입니당 -
= 네네~ 고객님 곧 서른이시네요~ 초면에 오빠라고 할순없잖아요 ㅋㅋ =
- 헐.. 아직 20대임 ㅜㅜ 혹시 사는곳은 어디신지.. 민망민망 @.@ -
= 고객님~ 지금 콜센터 직원에게 작업거시는 중이십니까?^^ =
저쪽에서 먼저 작업거는거냐고 물어봤기에 당당하게 나갈 상황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 네~ 작업거는겁니다 제 감자스낵 물어내세요~!! -
= ㅋㅋ 당황스럽네요~ 전 신길동에 살구요 25살 이에요 =
- 머임? 25살이 20대 초반임? 나 완전 낚였음 -_-; -
= ㅋㅋ 낚이신거 인정하시고 오빠 하실래요? 그냥 고객님으로 남으실래요? =
- 오빠는 쿨한남자임 25가 20대 후반은 아니잖슴! -
= 감사감사^^ 감자스낵 물어내면 영화 보여주실래요? =
이미 게임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작업의 성공여부는 이미 온데간데 없고 그녀의 얼굴이 궁금할 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