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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hil_20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120124
추천 : 2
조회수 : 475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2/01/24 19:23:43
확실성은 종국에 감각의 인지를 통해서만 달성된다. 눈에 보이거나 귀로 들리거나 손에 만져지거나 말이다. 믿음은 확실성을 그 대상으로 한다. 가능성을 그 대상으로 하는것은 믿음이 아니라 투자다.
그러나, 현실에 만연한 것은 확실성 아닌, 가능성이다. 현실에 직면하는 최선의 자세는 믿음이 아니라 투자인 것이다. '날 믿어라' 가 아니라 '날 믿어봐라' 이다. '널 믿어' 가 아니라 '널 믿어볼게' 이다.
'널 못 믿겠어' 라면 네 믿음 한트럭이라도 필요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날 믿어줘' 라며 상대의 믿음을 구걸한다면 아주 잘어울리는 바퀴벌레 한쌍인 것이다.
현실에서 믿음을 구하는 자체가 틀려먹은 것이다. 상대에게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믿음을 빌려오는 것이다. 나의 믿음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믿음을 빌려주는 것이다.
가능성을 못마땅해하며 확실성 만을 구한다면 골방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된다. 아무것도 하지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음이 완벽하게 확실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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