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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등록, 긴글주의]너무 답답합니다....(제발 읽어봐주세요)
게시물ID : gomin_2190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촌형
추천 : 0
조회수 : 42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1/10/12 18:07:13
최근 회사에서 강의 하나를 듣게 되었습니다. 강의의 내용은 ‘노력한 만큼의 성공한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강의를 듣고 집으로 돌아간 뒤, 제 시각에 잠을 청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맥주 한 캔을 사서 돌아온 후에나 취기에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유는 제가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어떤 자세와 어떤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서문이 길어질 수 있으나 저의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님께서는 제가 어린 시절부터 지병이 있으셔서 함께 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일을 하시느라 지방에 계신 이모님 댁에 계셨습니다. 그래서 외할머니와 함께 학창시절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어느 날 이었습니다. 저희 반 교실 뒤 게시판에는 저의 이름이 붙게 되었고, 그내용은 ‘급식비를 내지 못한 학생들은 식사를 하지 말아라.’ 라는 내용의 공지였습니다. 하지만 4만2천6백원을 할머니께 달라는 말을 하지 못해 도둑질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학교 컴퓨터에 있는 램을 빼서 인터넷으로 팔아보았습니다. 개당 6만원, 3개를 훔친 저는 3달치 급식비에 대한 걱정이 없었음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이는 계속되었습니다. 자전거를 훔쳐서 팔아 본적도 있고, 서점에서 참고서를 훔쳐서 팔아 본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만나게 된 여자친구의 착실함 때문에 절대 이런 짓을 하면 안되겠다라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주상복합상가의 일층 사무실청소였습니다. 등교하기 전 청소를 하고 한달에 9만원 정도의 돈을 받게 되었고, 비단 몸은 피곤하지만 첫 월급을 받았을 때의 성취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또한 공부를 잘 했던 당시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 중학교 1학년 수학책부터 사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밥을 먹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몰입했던 2년. 수도권에 있는 모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학교였을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너무도 값진 결실이었습니다. 

부모님과도 함께 살게 되었지만 아버님은 병마를 거스르지 못하셨습니다. 반복되는 암 치료에 얻게 된 여러 합병증은 여전히 아버님을 괴롭히고 있고, 경제력 또한 받침이 되지 못하여 쉽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 터라서 장학금까지는 엄두를 낼 수는 없었고, 군대에 있는 2년을 제외한 나머지에는 계속해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이공계로 입학한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떠났던 무전여행의 재미에 푹 빠져서 관광관련과를 복수전공 하며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리하여 대학원 진학의 꿈을 꾸게 되었으나, 앞으로 다가올 현실이 두렵고 깜깜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크지않은 회사의 직원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아직 1학기가 남아있지만 학교에는 취업계를 내고 수업을 대체하여 이곳에 나와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대출은 없다를 부르짖었던 저였지만 2학기 만큼의 대출금을 갚기 위해 직장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대기업의 인턴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하였지만 저에겐 성적과 학벌이라는 너무나 큰 장벽이 가로막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지금 이 선택이 옳은 것일까에 대한 고민에 속도 많이 상합니다. 외동이며, 부모님께서는 저보다 더 힘들 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세상 누구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쉬이 꺼내며 상담을 받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친구들 또한 유복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라서 여전히 속내를 털어 놓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친구들과 가끔 모여 맥주 한잔을 하게 되는 경우에도 없다는 것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돈을 내는 것에 대해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리가 있은 후에는 일이주일 정도는 대학 강의실에서 강의가 끝난 후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혼자 몰래 먹어야만 했던 제 모습이 비참하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살아보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지금도 그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회사에 들어와서 느낀 것은 주변에선 가끔은 핀잔을 주기도 하고 제가 쓰는 제안이나 의견들은 묵살되거나 버려지기 마련이었습니다. 회사 일이 끝난 후 여기저기 제안서를 들고 다니면서 직접 영업을 해보기도하고(원래는 교육에 대한 커리큘럼을 작성하는 것이 저의 주 업무입니다,)기존 교육의 강화를 연구해 보기 위해 피교육생들을 직접 찾아가 분석을 해서 피드백 자료를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더 넓은 시장성을 찾기 위해 타겟의 연령층을 낮추는 방안을 모색해보려 일주일동안 도서관에서 관련 논문을 찾아 분석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왜 그렇게까지 해서 쓸데없는 일을 만드느냐’는 반응과,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괜한 짓 하지 말라.’는 차가운 시선들 뿐 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처음 제가 가지고 있던 열정들은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고 점점 지쳐가는 듯한 생각이 듭니다.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그런 생각을 하는거냐.' 라는 질문은 저 스스로에게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조직문화 자체가 이렇게 형성되어 있으며, 저와 같은 생각을 했던 1, 2년차들이 하나둘 나가는 모습을 보니 저도 저이들과 같은 행보를 걷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 요즈음 입니다.

입사 전 친구들과 잠시 모여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너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연봉 2000을 준대. 그런데 그냥 잘 모르긴 하지만 뽑혀서 3500을 준대. 어디에서 일하고 싶냐?'

이 질문을 들었을 때, 저만 유일하게 전자를 선택을 하였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기 때문에 교수님의 소개를 받았던 여타기업들을 제치고 이곳으로 온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점점 후자를 선택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두렵습니다. 
항상 열심히 하면 인정받고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란 저의 생각은 현실에선 통하지 않았습니다. 청소를 하고 받았던 첫 월급의 쾌감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인턴기간동안 받고 있는 110만원의 월급은 그저 110만원 어치의 일만 해야 할 것 같은 강요의 숫자로만 보이고 있습니다. 그 이상을 해도 손해가 될 것 같은....

'제가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인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들이 다른 선택보다 더 나은 길인가.' 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감히 이런글을 올려봅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것이 직접 느껴지는 요즈음 입니다.
따뜻한 코트를 입으셔야 하는 날이 오게 되면, 따뜻한 차 한잔 하시면서 여러분의 즐거웠던 지난 시간들을 함께 음미하시는 시간을 가져 보시는 건 어떨까요?

시간이 지나 그 어떤 날, 오늘이 즐거운 날 중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0대의 산을 넘어서면서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신분들이 저뿐만은 아닐 듯 싶습니다.

후배님들의 의견.
동년배 분들의 의견.
선배님들의 의견을 두루 들어보고 싶습니다.

용기내어 글을 써 봅니다.

긴 글을 끝까지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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