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 지하철 7호선 한 아가씨가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난 보던 신문을 살며시 접고 관람 모드로 돌입한다. 가끔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아가씨인데 탈때는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이지만 이내 변신을 하는 모습을 몇번 봤던터라 친숙한 얼굴이다. 아가씨는 앉자 마자 익숙한 손놀림으로 기초 화장부터 하기 시작한다. 10여분간에 걸치 기초 화장을 끝내고 색조화장에 들어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마치 예전에 가끔 TV를 돌리다 보면 EBS 였나 하여간 브로콜리 머리를 하고 계속 무언가를 설명하며 하얀 캔버스 안에 정말 신기할 정도로 그림을 완성해 가는 화가 아저씨가 생각난다. 그 아가씨는 자신의 얼굴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완성해 나간다. 나와 같은 역에 내릴 때면 정말로 딴 사람이 된다. 총총히 걸어가는 아가씨의 뒷태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머금는다. 지하철에 그 아가씨를 볼때면 난 10여년전 지금의 아내가 생각난다. 아내와 난 같은 직장에 근무했다. 6개월 동안은 서로의 존재감을 모르고 생활 했었다. 나에게 비친 아내의 모습은 화려한 화장에 사시사철 짧은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2% 부족한 쌕시한 여자 정도로 생각 됐다. 나와는 조금은 먼 나라 여자로 여겨 졌던 아내가 내 맘에 들어온 계기가 있었다. 1박2일로 월악산으로 회사 야유회를 가게 되었다. 술과 노래에 취한 하루 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 공동 세면장에서 멍하니 양치질을 하고 있는데 세면장 안으로 머리는 산발을 하고 새카만 피부에 자그마한 꼬마 여자 아이가 들어왔다. 그리고 나를 보며 짧은 눈 인사를 하더니 대뜸 치약을 달라는 거다 난 이 여자아이가 누군가 했지만 그냥 이 민박집 딸내미 정도로 생각했다. "빨리 일어 나셨네요?" 갑작스런 꼬마 여자 아이의 질문.. '얼레 얘가 누군데 날 아는척이지...' 하는 생각에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애가 나가고 세수를 하며 정신이 조금 들었을때 난 그 애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맞다, 지금의 아내 생전 첨으로 화장기 없는 얼굴에 항상 신고 다니는 통굽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은 아내의 모습을 처음 봤으니 못 알아본 나의 잘못 보다는 아내의 변신술이 너무했다 싶다. 그 이후로 난 아내와 마주 치면 항상 웃음이 나왔다. 화려한 화장 뒤에 숨겨진 까무잡잡한 피부, 높은 통굽에 숨겨진 스머프 반바지...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다고 항상 아내와 마주치면 실실 쪼개는 내 모습에 아내도 점점 다가 오게 되었다. 가끔 출근길에 마주치면 뽀얀 분칠을 한 아내의 얼굴 밑으로 까만 목살이 보일때가 있었다. 급했는지 목에까진 분칠을 못한듯한 모습에 난 "아침부터 달 떴네요" 하며 농을 걸었다. 아내는 알아 들었는지 못 알아 들었는지 갸우뚱한 표정을 보이곤 했다. 그리고 좀 친해진 다음엔 아내에게 물었다. "원래 피부가 까매요?" 아내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고향이 바닷가라서 얼굴만 타서 까매요" 하지만 속살 까지 까맣다는걸 알기 까진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ㅎㅎ 요즘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와 아내가 둘이서 마주 앉아 흑설탕 마사지를 해주고 있다. 그러면서 드라마속에 중년 여자 텔랜트들의 피부를 안주삼아 넋두리를 하고 있다. 색조 화장품이야 이젠 물건너 갔다 하더라도 기능성 화장품에 탐을 내 보지만 빠듯한 살림살이에 선듯 손이 가지 못하는 영락 없는 아줌마가 돼 있다. 가끔 화장실에 있는 딸아이를 보면 10여년 전 월악산 민박집 세면장에서 마주친 그 까무잡잡하고 스머프반바지 만한 못난이가 생각난다. "송이야 넌 엄마 한테 화장 기술 배워라 너희 엄마 화장 아니 분장 아니 변장 너무 잘한다, 그리고 아빠 같이 화장기 없는 창백한 얼굴에 뻑가는 어리버리도 있다는거 잊지말고 ㅎㅎ" -출처: 다음 아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