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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로스 (1)
게시물ID : readers_205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나휘
추천 : 3
조회수 : 14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7/02 21:4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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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이카로스
하늘을 날다
 
 
0
 
  그렇잖아도 제 글은 어렵습니다. 난해하기만 하다는 욕도 많이 먹고요. 그렇기에 독자도 별로 없고, 또 있던 독자도 곧잘 질려버립니다. 저와 함께 문학을 공부하는 동료들과 제 글에 대하여 이야기하다보면 저도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요즘에 와서는 소신을 조금 굽혀 같은 말도 보다 쉬운 표현으로 고쳐 써야한다는 걸 느낍니다.
   허나 느낌은 그저 감상에 불과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의 실천 여부에 나의 느낌은 어디까지나 조언과 같은 부수적인 요소일 뿐으로,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아직까지 글의 문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은 절실하지 않고, 그렇기에 이 글은 기존의 성격대로 써볼 것입니다. 제멋대로 만들어진 문장이라고 하여 곱씹을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대신 구조적으로나마 이해하기 쉽게 해보려 합니다. 이 글은 1에서 시작하여 7에서 끝납니다. 그 숫자는 각각 하루를 상징합니다. 1의 오늘은 목요일이고, 2는 금요일, 3은 토요일, 뭐 이러한 방식으로 하여 7은 그 다음 주의 수요일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비단 독자의 편의성을 위한 장치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오늘은 1의 목요일이니까요. 7까지, 그러니까 다음 주 수요일까지 제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저로서는 예상하기 어렵고, 소설다운 사건들이 꾸준히 발생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제 입장에서 글을 쓰기 쉽기야 하겠지요. 글쎄요. 이 글이 과연 재미있는 결말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요.
   허나 이 글은 어디까지나 수필이 아닌 소설입니다. 저는 한 명의 작가로서 이 뒤로 쓰일 일련의 사건들을 주관적으로 판단한 중요성이나 저의 관심도에 따라 편집할 수 있는 감독이며, 당신들과 이 글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어떻게 진행할지 결정할 수 있는 사회자입니다. 고로 사실만을 쓰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평범한 일상을 7일간 나열한 글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시작해보겠습니다.
 
 
1
 
   오늘은 목요일입니다.
   새벽. 조용한 밤이었는데요. 당최 잠이 오지 않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장기투숙을 하고 있는 여관방을 나와서 마땅한 목적지도 없이 길을 걸었습니다. 호텔을 짓는 높은 크레인도 지나서, 또 하품을 하고 있는 점원이 있는 편의점도 지나서, 나는 바다에 도착했습니다.
   바다 말예요. 슬리퍼를 질질 끌고서 백사장을 터벅터벅 걸었습니다. 달도 없고, 주변에 빛이 많아 별도 딱히 없고 해서 볼 것이 없었습니다. 바다, 하면 낭만이 가득한 곳, 바람이 가득한 곳이어야 할 터인데 말이죠. 로맨스에 빠진 연인도 없고 바람 한 점 없었습니다.
   볼 것이 없다는 말이 몇몇 독자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바다니까요. 그저 따분한 일상에도 틈틈이 눈에 띄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요. 제가 주변을 꼼꼼하게 돌아보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주의깊게 관찰해도 볼 만한 것이 없더라, 이 말입니다. 나는 한동안 서있으면서도 볼 것이 없어 다시 여관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저는 지루함보다는 권태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일지도 모릅니다. 제 눈에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은 이유는 나의 눈이, 동공이든 홍채든 각막이든 망막이든 하는 그 안구라는 게으른 두 양서류 동물이 권태로워서일지도 모릅니다. 매사가 따분하고 나른하기 때문에 나는 일상을 노출시간을 길게 늘인 카메라처럼 살고 있습니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만 보고 삽니다. 지나치는 사건들 혹은 사람들은 인식조차 못하고 지나쳐버립니다.
    
   그나마 나의 기억에 남는 것은 거북이였을까요.
    
   해수욕장에 거북 하나가 떠밀려왔습니다. 어제, 수요일의 한낮에 있었던 일입니다. 햇빛을 향해 배를 내민 그것은 한참 전에 죽은 시체였습니다. 눈알은 잔물고기들이 파먹어서 형체도 없었고, 사기그릇같은 등딱지를 감싼 너덜너덜한 몸통만 덩그러니 물 밖으로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송장의 악취에 그나마 몇 없는 관광객들은 소스라치게 놀랐고, 또 기겁했습니다. 한 젊은 여자는 속이 매스껍고 거북한지 구토를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거북 하나를 두고 호들갑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직전까지 자신들이 바닷물을 마시며 물장구치고 놀았다는 것에 역겨워했습니다. 건장한 수상구조요원 둘이 거북을 끌어냈습니다. 모인 인파는 흩어졌고, 사람들은 거북을 잊었습니다.
   저는 문득 죽은 거북이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습니다. 본디 죽을 때가 다가온 거북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서, 블루홀이나 해구와 같은 심해의 저변에 마치 코끼리들처럼 저들끼리의 무덤을 만든다고 하던데요. 저 거북은 다시 바다로 헤엄쳐가지는 못할 터였습니다. 그러면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요. 저는 죽은 거북의 목적지에 대하여 잠시 생각에 빠졌습니다. 땅에 묻습니까? 그러면 어디에 묻는 거죠? 삽으로 흙이나 모래를 파서 아무데나 묻는다 해도 본디 바다의 동물인 거북의 입장에서는 서러운 죽음일 텐데, 그런 보잘 것 없는 장례라도 누가 자처할지 의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우선 거북은 백사장에서는 떠는 것일까요. 버려질까요. 그러면 어디로? 어디에?
   나는 수상구조요원의 뒤를 멀찍이에서 따르며 생각했습니다. 한 가지의 의문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다른 의문만 덕지덕지 붙어대니 지금까지 든 의문들을 정리하는 것조차도 버거웠습니다.
   묵직하고 큰 거북의 시체였습니다. 나에게 거북의 관상을 보는 재주는 없을뿐더러, 안면이 물에 풀린 비누처럼 녹아 반쯤 사라진 거북이었기에 더욱 당혹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대충 거북을 보며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마 저 거북은 노사했을 것이다, 따위 말입니다. 거북은 나이를 먹을수록 몸집이 커지는 파충류라는 것을 감안할 때, 장정 둘이 네 손으로 들어야 하는 거북이라면 나보다 세 배는 거뜬히 오래 살았을 것이라는 짐작을 바탕으로 하여 느껴낸 것입니다. 덩치가 정말 컸으니까요.
   그렇기에 담배꽁초처럼 길바닥에 휙 버리고 모른척하지는 못할 터였습니다. 수상구조원도 거북의 처분에 대하여 잘 판단이 서지 않았는지, 그들의 초소로 거북을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나의 염탐이 끝났습니다. 어쩌면 오십 리터 쓰레기봉투에 가득 들어찬 다음 다가오는 화요일이면 쓰레기와 함께 수거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니 슬퍼졌습니다.
   저는 생전의 할아버지는 뵌 적도 없습니다만, 그 상상을 하다 보니 할아버지의 시체를 봉투에 넣어서 먹다 남은 음식물과 같은 취급을 하다가 소각을 한다는 이미지가 머리에 들어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거북의 악취를 생각하면서, 저 작은 초소에 거북이 오래 들어있다면 곤란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한 번이나마 죽은 모습을 본 거북은 내게 본 적 없는 할아버지 정도의 거리로 다가왔습니다. 단순히 나이 때문이었을까요. 제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지금은 몇 살이셨을까요.
   아무런 논리적인 과정 없이, 그 다음 제가 취한 행동은 국밥을 먹으러 그 자리를 뜨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면 보기 힘든 동물인 거북의, 그것도 시체가 어떻게 장례되는가를 알게 되었을 것이고, 그것으로 나의 권태가 다소 해소될 수 있었겠습니다만, 저는 그 자리를 꼭 죄를 지은 범인처럼 빠르게 벗어났습니다. 어제 먹은 국밥에서는 시체 냄새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평소에 저는 많은 생각을 하고 살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생각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편입니다. 제 천성이 그렇습니다. 세 명의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생각을 하고 사십니까?
    
   라는 의미의 질문을 그 대상에 맞게 적당히 표현을 고쳐서 질문했습니다. 그들은 그렇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다만 잡념이 조금 많은 편이라고도 답했습니다. 한 명은 관심 있는 것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문적인 부분까지 파고드는 것은 아니고 흥미 위주로 찾아간다, 라는 교과서적인 답변을 덧붙였고, 한 명은 사고(思考)라고 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주변의 다양한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사람은 잡념이 잡념이지 뭐, 하며 그 사람이 하는 잡념을 나에게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그렇구나, 하며 생각한 것이 어제의 밤입니다. 바깥에 나와 산보하고 있는 지금은 열두시가 지났으니 오늘이고요.
   저는 생각을 피합니다.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말입니다. 예컨대 국밥에서 시체 냄새가 나지 않는 이유는 방부처리와 후추, 아니면 냉동기술 따위에 의해 그런 것이다, 하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런 것을 하지 않습니다. 남들 앞에 나서서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고요, 그저 떠오르는 대로 닥치는 대로 잊어버리고 피합니다. 머리를 때려서라도 나는 그런 무의미하고 조악한 것들이 나의 머리를 채우고 있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런 생각이 많아지면 사람은 나태해지니까요. 꼭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 사람은 근면해야 하고, 그러려면 상념을 없애야 합니다. 나태는 죄악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권태를 추구합니다. 숭배하듯, 마치 덕목처럼 따르는 것입니다. 생각을 하지 말자, 그래야 나는 근면해진다, 하고 사는 것이 제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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