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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 03. Reboot
게시물ID : mabinogi_205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필하모니
추천 : 0
조회수 : 28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5/19 20:00:28

 

 

 

"허어, 눈 떳나."

 

 

 눈을 떠보니 이국적이게 생긴 남자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내려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보기드문 짧은 숏커트의 흑발을 한 남성이였다. 턱에 드문드문 난 턱수염은 약간 지저분하게 보였지만 군데군데 옷이나 소매같은경우에는 깔끔히 정돈되고 잘 다려져 있었다. 그는 오른쪽 눈에 도수가 높아보이는 모노클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싸구려 같은 노란색이 햇빛에 반사되어 내 눈에 예기치 못한 자극이 일었다. 덕분에 몸을 벌떡 일으켜 그 남자를 깜짝 놀래키고 말았다.

 

 

"아이쿠 깜짝이야. 힘이 남아도나? 다행이야. 안 그러면 버리고 갈려고 했네."

 

 

 자칫하면 실례가 될 법한 말을 미소지으며 툭하고 가볍게 내뱉는 남자. 난 서둘러 주위를 돌아보았다. 내 옆엔 자그마한 모닥불이 지펴져 있었고 모닥불 근처엔 코끼리 세마리가 잠에 취해 있었으며 옆에는 코끼리 한 마리마다 한 명씩 옆에 누워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작은 규모의 상단으로 보였다. 무엇을 파는지는 비단에 잘 포장되어 보이지 않았다.

 

 

"……!"

 

 

 돌연 허리에 밀려오는 통증에 쓰러지기전의 과거를 떠올려봤다. 생각나지 않았다. 그 전의 과거도, 내가 누군지, 어째서 이 통증이 내 허리를 맴도는지,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점철되어 굳어진 듯 했다. 그럼에도 생각나는 것은 단 하나의 목소리.

 

 

"넌 그 속에서 갇혀. 그리고 그 속에서 평생 못 빠져나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익숙한 감정이 들었지만 그 뿐이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에 돌연 오른쪽 손목엔 소름이 돋았다. 절제된 분노가 엿보이는 여성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내 머리를 맴돌았다. 멍한 표정을 한 나를 재밌다는 얼굴로 쳐다보며 남자가 한마디를 하기 전까지.

 

 

"뭐야, 몸만 아픈 줄 알았더니 머리까지 어떻게 되었나? 표정이 왜 그런가?"

 

"아…"

 

"…뭐야, 농담조로 던진 말인데. 사실인가?"

 

 

 나의 멍한 반응에 남자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저에대해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만…. 혹시 절 아십니까?"

 

"뭐? 이런…. 안타깝게도 난 너에대해 전혀 몰라. 나머지 친구들도 마찬가지고, 그저 수이트강에 흽쓸리고 있던 걸 저기 저 분홍머리 꼬마 애가 마법으로 구해줬을 뿐이야."

 

 

 그렇게 말하곤 그 남자는 손가락으로 짐을 가득 실은 코끼리 옆에 숙면을 취하고 있는 어린 소녀를 가르켰다. 꼬마는 세상 모르게 잠에 취해있었다. 열 살쯤 되어보이는 어린 소녀였다. 허리춤에 걸쳐진 단검에 햇빛을 가리기엔 딱 좋게 챙 넓은 갈색 모자가 눈에 띄는 소녀였다. 마법사라긴 보단 제대로 장비를 갖춘 꼬마 탐험가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꼬마의 잠자리 근처엔 굵직한 나무로 만들어진 지팡이가 보였다. 아마 꼬마의 것일거라고 생각했다.

 

 

"저렇게 어린 꼬마가…?"

 

"하하, 자네도 놀라는군. 정체를 알 수 없는 꼬마야, 페라미라는 이름 말고는 자신에 대해 물어봐도 말해줄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아. 뭐, 변방 귀족의 철 없이 가출한 딸 같은 거일지도 모르지. 외로 이것저것 아는게 많아서 종종 내 상단이 도움을 받을때가 많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지. 이젠 한 식구야."

 

"상단…? 당신은 상단의 단장입니까?"

 

 

 나의 물음에 그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띄었다. 어딘가 꾸민 듯한 표정이였지만 신기하게도 나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런 이런, 소개가 늦었군. 듀렌 상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듀렌 올라드라고 하네. 주로 파는 상품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지만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진귀한 물건들을 여러개 팔고 있지. 희귀한 마법스크롤이라던가, 듣기만 해도 힘이 솟아나는 노래가 적혀있는 마법의 악보, 마시기만 해도 황홀경에 빠지게 되는 포션들이… 즐비 할 예정이라네. 크흠,"

 

 

 듣기만해도 사기꾼의 냄새가 짙은 언행이였다. 그의 화려한 언변은 쉼없이 이어졌지만 딱히 귀에 들어오진 않았다.

 

 

"이런, 당신 몸에 깊게 박힌 상처의 쓰라림이 매우 짙은가 보군. 이렇게 내가 내민 손을 부끄럽게 만든 걸 보니 말이야. "

 

"아…."

 

 

 그제서야 그가 악수를 청하고 있었음을 눈치 챘다. 황망히 그의 악수를 받았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손이군. 냉혈증인가? 뭐, 상관없네. 우리 상단엔 냉혈증에 잘 듣는 약을 취급하지 않지만 따듯하고 훈훈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는 강점이 있지. 어떤가? 우리 상단에 힘이 되어주질 않겠는가?"

 

 

 듀렌은 자신의 직업에 알맞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였다. 강압적이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묘한 분위기에 흽쓸려 동조되어가는 것만 같다. 물 흐르듯 부드러운 언변에 숨어져 있는 강한 자력(磁力)은 쉽게 벗어날 수 없는 듯 하였다.

 

 

"도움을 주신건 감사합니다만, 제가 이 상단에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겠군요. 전 셈이 강한 편도 아니며 수완이 좋은 편도 아닙니다."

 

"상단에 필요한게 꼭 계산하는 머리와 자금을 끌어모으는 수완만이 필요한게 아니라네 친구, 그 자본을 지킬 수 있는 강력한 힘 또한 상단에게 가장 필요한 필수조건이지. 우리 상단의 규모는 아주 작지만 앞에 말했듯이 꽤 진귀한 아이템들을 많이 취급하고 있지. 교역 멤버가 저 꼬마 마법사와 맹한 연금술사, 그리고 목소리를 잃은 음유시인 뿐이야. 재산을 지키기 커녕 자기 몸 간수하기도 힘든 멤버지."

 

 

 어느새 난 듀렌에게 친구라 불리고 있었다. 제멋대로였지만 신사적인 분위기덕분이였을까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제가 그런 힘이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만."

 

"어허, 이 친구야. 내가 이 일을 오래한 건 아니지만 사람 보는 눈은 확실하지. 확실하게 다부진 몸에 그렇게 다친 상처는 범인(凡人)이 겪기 힘든 것이지. 기억이 없다해도 당신은 분명히 거물이야. 저기 저 약간 눈 뜬거 같이 자는 흰색머리 남자가 보이나?"

 

 

 듀렌은 이번엔 다른 사람을 손가락을 가르켰다. 자고 있는데도 오른팔에 장착되어 있는 실린더는 그가 듀렌이 앞에서 말한「맹한 연금술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허리춤에는 연금술에 필요한 각양각색의 벨트들이 있었다. 아마 결정을 담기위해 만들어진 전용 허리띠 같은 것이 분명했다. 면밀히 살펴보니 그가 입고 있는 옷의 끝자락들이 군데군데 엉망으로 헤져 있었다. 아마 연금술사라면 흔한 일일 것이였다.

 

 

"라즈쉬라고 하지. 예전엔 꽤나 잘 나가는 연금술사였어. 음음, 그래. 왕궁에서 직접 일한 적이 있는 프로였지. 무슨 이유였는지 파문당한 상태이지만… 어이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 일에 대해 라즈쉬에게 직접 묻진 말게. 답을 듣지도 못하고 대화가 끊길테니 말이야. 여튼 당신을 치료한 자가 바로 라즈쉬야. 맹한 눈과는 다르게 약초와 포션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거든, 그의 작품은 꽤나 비싼가격에 팔려. 그의 목에 걸려진 현상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말이야."

 

"현상범 말입니까? 저 자가?"

 

"그래, 왕정 연금술사에서 파문당한 직후 라즈쉬의 목에 막대한 현상금이 걸렸어."

 

"허나 이 곳에 있다는 것은… 상단의 단장이라면 돈을 꽤나 밝힐 줄 알았는데… 의외로군요."

 

"아니, 자네 말이 백번 더 옳아. 난 그를 이용하고 있지. 아무래도 저 양반의 현상금도 탐이 나지만 라즈쉬의 포션 지식은 앞에 말했듯이 엄청난 도움이 된다고, 모두가 썩은 물인지만 아는 액체가 사실 진귀한 포션이기도 하거든."

 

 

 어떻게 대화가 이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다보니 듀렌은 상단의 멤버들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었다. 아직 상단에 들어가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저기 구석에 다소곳이 앉아 자고 있는 우유빛 피부의 갈색 파마머리 처녀가 보이는가? 저 아낙의 이름은 미리내라고 하지. 헤르바 밀림 깊은 곳에서 마주쳤는데 어찌하다보니 우리 상단에 들어왔다네. 참고로 미리내는 말을 못해. 성대가 죽었지. 허나 글을 쓸줄 알아서 의사소통엔 별로 애로사항은 없어. 게다가 미리내는 하프를 다루는 솜씨가 아주 예술이야. 타고났다고 해야하나? 자잘하게 사람들의 이목이 필요할 땐 그녀의 하프소리가 제격이지. 듣다보면 나도 정신을 놓으면서 미리내의 손만 멍하니 볼 때가 있더라니깐 하하핫!!"

 

 

 누구에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악기연주의 기술이 극에 달하면 마법스크롤과도 흡사한 힘을 가지게 된다고 했었다. 허나 이걸 누구에게 들었더라. 기억이 나질 않았다.

 

 

 "마지막으로 나, 다시 한번 소개하지. 듀렌 상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듀렌 올라드이지. 상단의 단장이라고 돈만 밝히는 수전노라고 생각하지 말아주게. 이래봬도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진정 사나이중의 사나이지!"

 

 

 그는 유창하게 자신의 소개를 끝마쳤다. 이내 소매를 펄럭이며 나에게 손을 펼쳐 예를 보이고는

 

 

"자, 이제 우리 상단의 수호자. 차가운 손을 가진 냉혈한의 전사여,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지않겠는가?"

 

 

 어딘가 너무나도 거창하게 느껴지는 접두사들이 거슬렸지만 난 천천히 입을 떼며 몇개 남지 않은 기억들의 조각을 짜 맞춰 소리내었다.

 

 

"온타나, 온타나라고 합니다."

 

"오, 이럴 수가. 이렇게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다니, 내가 오늘 아주 운이 좋군. 마치 자네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는 기분이야. 기분이 매우 좋구나! 페라미! 라제쉬! 미리내! 모두 일어나라! 오늘은 술잔을 들어야겠어!"

 

 

 듀렌의 외침에 모두가 주섬주섬 눈을 떴다. 약간은 짜증나보이는 여자아이의 목소리와 주섬주섬 코끼리에서 뭔가를 꺼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오옷?! 오빠야가 일어났네. 역시 라제쉬 특제 포션! 짱짱맨!"

 

"하하, 없는 재료를 긁어모아 만든 포션이였는데 잘 들어서 다행입니다."

 

"……."

 

 

 어느새 라제쉬는 왼손엔 큼지막한 고깃덩어리와 오른손에는 커다란 술잔을 들고왔다. 미리내는 옆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고 있었는데. 술잔이였다. 술잔은 세 개였다. 페라미를 제외한 모두의 술잔임이 틀림이 없었다.

 

 

"미리내! 왜 내 잔은 준비하지 않는거야! 완전 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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