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중국의 황제들은 왜 조공에 집착했는가?
게시물ID : history_206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13
조회수 : 1852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5/05/09 00:21:18
글: 정만군(程萬軍)
 
각 왕조의 사서기록을 보면, 중국황제가 가장 득의양양해하고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한 마디는 개략 이렇다: "팔방내공(八方來貢), 만국내조(萬國來朝)", 설사 망국의 군주라 하더라도 이 분야에는 신경을 많이 썼다. 
 
예를 들어 수나라의 망국지군 수양제 양광은 재위때, "조공식 무역"을 요란하게 펼쳤다. 매번 정월이 되면, 항상 도성에 대거 행사를 벌였다. 배도 낙양에서는 백가지 극을 공연하고, 서역상인들을 초대하여 전후로 1달간 지속되었다. 모든 점포는 유장으로 장식하고, 서역의 상인들은 무료로 식사를 대접받고, 무료로 거처를 제공받았다.
 
중세기이후, 비록 중국이 정치문화에서 점점 세계에서의 영향력을 잃어갔지만, '조공'은 오히려 최고조로 발달한다. 주원장이 명왕조를 건립한 초기, 신속히 사신을 주변국에 파견한다. 예를 들어, 조선, 일본, 점성, 안남 등의 국가이다. 명나라가 원나라의 대통을 승계했다고 밝히고, 대명의 국위를 선양한다. 조선, 일본등은 속속 사신을 보내어 축하하고 신복하겠다고 한다. 일시에 "대명이 만방을 통일하고, 천자는 문무성신이다. 인의에악으로 억조창생을 가르치니, 무릇 화하와 만황에 존중하지 않는 자가 없고, 하늘과 땅이 모두 납공을 했다. 백성이 태어난 이래 오늘날처럼 흥성한 때가 없었다"는 국면이 형성된다.
 
명성조 주체(영락제) 때, 정화하서양으로 방문한 국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모든 나라에까지 미친다. 중국과 외국의 교류가 최전성기에 이른다. 대명국의 위세는 사해에 떨쳤다. <명사>의 기록에 따르면, 명나라때 조공을 바친 국가는 150여개에 달하였다. 중국식 "종주국 - 부용국"의 체계는 지리범위가 최대로 확대되었다.
 
다만, 누군가 수양제의 '조공무역'의 본질을 파헤친 것과 마찬가지로, 대명의 소위 '만국내조'는 모두 중국황제의 '본전을 까먹으면서 먹고 마시는" 체면공정이다. 그 실질은 "거짓조공, 실제손실"이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수양제는 무상으로 '만국의 빈객'을 접대한다. 이들 비용은 일단 황실에서 결제해주지 않으면, 점포에서 부담할 수밖에 없다. 이는 황제가 점포를 끌어들여서 '손해보고 먹고 마신' 것이다. 그는 죽어라 체면을 고집했지만 백성들은 그 고통을 모두 받아야 했다. 그저 '명목상의 존중'을 얻어내기 위하여 아무런 실질적인 이익도 없는 일을 한 것이다. 이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았다.
 
명나라의 조공본질에 대하여 당시 이탈리아의 중국통인 마테오 리치는 정곡을 찌른 말을 한다. 세계가 중국에 조공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세계에 조공하는 것이라고.
 
마테오 리치는 선교사이다. 중국에서 28년간이나 머물렀다. 중국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았다고 할 수 있다.
 
외국인의 눈으로 중국의 증세를 진단하니 왕왕 급소를 찌르게 된다. 마테오 리치는 냉정한 눈으로 관찰했다. 외국조공체제는 순수히 중국중심론의 과대망상이고, 중심을 드러내려는 정치적 형식상 필요때문이다. 그는 발견한다. 명나라에 조공하러 오는 국가중에서, "이 국가에 와서 납공품을 바칠 때, 중국에서 가져가는 돈은 그들이 진공한 것보다 훨씬 많았다. 그래서 중국당국은 납공여부에 대하여 이미 전혀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마테오 리치는 그의 저술에서 이렇게 썼다; "소위 진공은 오히려 유명무실해졌다." "중국인은 기타 여러 나라에서 온 이런 사절들을 접대하다. 예를 들어 교지, 섬라, 유구, 고려 및 일부 달단의 수령, 그들은 국고에 침중한 부담을 지웠다. 중국외교관은 전체 사정이 하나의 사기극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다만 그들은 속는 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는 편이 낫겠다. 그들이 그들 황제를 받드는 방법은 바로 그로 하여금 전세계가 모두 중국에 조공을 바친다고 믿게 하는 것이다. 사실상 이는 중국이 다른 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것이다."
 
마테오 리치는 중국식 조공의 본질을 들춰냈다. 이미 '종주국- 번속국"의 실질적인 의미는 잃었고, 그것은 세계를 영도하는 조직이 아니다. '석양국가' 최대의 체면사업이다.
 
그러나, 중국황제는 '체면을 중시했다' 큰 돈을 들여서라도 외교상의 '체면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그들이 이렇게 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단지 '체면문화'라는 말로 설명이 가능할까?
 
주체와 같은 중국황제는 양광같이 지능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거짓조공'을 좋아했을까? 대외적으로 오히려 돈을 주고 손해보는 일을 했을까? 그는 알고 있었다. 외국이 그에게 무슨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러면서 왜 큰 돈을 외국인에게 기꺼이 건네준 것일까?
 
이를 심리학의 각도에서 분석하자면, 한 사람이 어떤 돈을 쓸 때 가장 가슴이 아프지 않을까? 첫째는 남의 돈을 쓰는 것이고, 둘째는 조상의 돈을 쓰는 것이다(중국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자식이 할아버지 돈을 쓰는 것은 가슴아프지 않다). 이 두 가지 심리를 중국황제는 모두 가지고 있었다.
 
중국은 비록 '가천하(家天下)'이지만, 국민이 황제의 눈에는 절대로 가족구성원이 아니다. 정확한 포지셔닝은 '가축'정도이다. 황제의 눈에, 백성이 황제에게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그들이 황제에게 공물을 바치는 것이다. "취지어민(取之於民)"이 요체이고, "용지어민(用之於民)"은 헛소리이다. "애민여자(愛民如子)"라는 것은 그 의미가 '악어의 눈물'과 비슷하다. 
 
"가천하' 체제하에서, 진정으로 일을 하고, 뜯어다고 계속해서 마르지 않고 나오는 납공자는 가축가노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군주이 먹이사슬에서 바닥을 이룬다. 외국은 대부분 먹이사슬에서 상층의 야수이다. 중국군주가 명실상부한 조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적'의 각도에서 생각해보자. '가짜조공'도 이해가 된다. 이 일관되게 '성덕억무(尙德抑武), 불치이적
(不治夷狄), 타국내정불간섭"을 실행한 대국은 한번도 진정으로 우리를 정복한 적이 없고, 단지 명의상의 종주국이다. 우리는 왜 황공해하면서 진정한 납공을 바쳐야 하는가? 그들에게 허영을 주고, 우리는 실제적인 경제적 이익을 얻으면, 너도 원하고 나도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둘은 마음이 일치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돈을 쓰면서 자신의 친구를 사귄다. 이런 심리상태로 중국역대황제는 '가짜조공"을 줄곧 즐겨온 것이다. 뺨을 때려 붓게 해서 살찐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볼을 맞아 붓는 것은 '가축'이고, '영광'은 자신의 얼굴로 돌아온다.....
출처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4dwc&articleno=16154791&maxNo=16154796&minNo=16154787&maxDt=20131125191816&minDt=20131124002858&maxListNo=16154806&minListNo=16154797&maxListDt=20131129120440&minListDt=20131125212320¤tPage=62&beforePage=61&categoryId=#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