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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국사교과서? 이게 진짜 유머지 글과 댓글 보고 올립니다
게시물ID : sisa_1209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새벽날개
추천 : 0
조회수 : 29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10/16 18:58:36

현역 고3입니다
수능 공부하러 가라, 이런 말씀은 안 하셔도 됩니다
저는 현재 문과 고3학생이며, 수능 사탐 선택과목에서 근현대사와 국사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밥먹고 소화나 시키려고 오유 하곤 하는데
근현대사 지식 만땅인 시기이기도 하고, 제가 지금 교육을 받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제가 아는 선에서, 그리고 배운 대로 부족하나마 써보겠습니다.
읽기 시작하셨다면 꼭!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먼저 국사랑 근현대사는 다른 교과서로 구성되어 있고요,
국사는 국민공통필수교육과정으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교과서를 발행하며 국정교과서입니다. 즉 1권이라는 이야기이고, 이 글 제목에는 국사교과서라고 되어있는데 근현대사 교과서라고 제목을 고쳐야할 것 같습니다. 이름이 '국사'이니 만큼 구석기 시대부터 조선, 그리고 근현대사 일부까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반면 근현대사는 7차 교육과정에 접어들면서 국사에서 분리해서 사회탐구 심화선택과목으로 새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고요(틀렸다면 정정 부탁드립니다) 심화선택과목이기 때문에 국정교과서가 아니라 다양한 출판사들의 교과서가 있습니다. 어떤 출판사든 교과서를 발행하고 싶으면 정당한 절차에 따라 교과부로부터 인정을 받고 출판하면 되는 구조이고요, 학교 선생님들께서 근현대사 교과서를 선택하시는거죠.
게시글 파일에 있는 현행 교과서(금성출판사)라고 되어 있는 것도 그 많은 교과서 종류 중 한 권입니다. 이 교과서는 현재 교재의 우수성을 많은 역사 교사들로부터 인정받아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채택하고 있다고 학교 선생님께 들었습니다. (제가 이걸로 수업하는데 실제로 교재가 좋습니다) 그리고 이 교과서가 바로 소위 '보수'세력으로부터 근거 없는 내용이 많은 것으로 질타를 받고 이슈가 되었던 바로 그 금성출판사 교과서입니다.

문제되는 책 2권을 지금부터 금성 교과서, 기파랑교과서로 부르겠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기파랑교과서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제가 배운대로 제 의견을 개진하겠습니다. 김옥균은 근대화를 추구한 급진개화파의 주요 인물이지만 선각자라는 말에는 많은 함의가 있는 것 같아서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명성황후의 본래 호칭은 민비이며, 1897년 대한제국 선포 이후, 즉 사망 이후(을미사변 1896년) 고종이 황제가 되면서 내려진 호칭이기 때문에 명성황후의 호칭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성황후는 각종 드라마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감정적이랄까, 그런 대상으로 인식된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의 각종 혼란 상황에서 외세를 끌어들인 부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께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 체제를 확립했다는 것은,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사유재산제도를 확립하고 시장 자율화를 추구하셨다는 것인지.. 하지만 반공 체제를 강화해 반대파 도전 등의 위기를 벗어났다는 것은 맞습니다. 김구 선생은 해방 전후 가장 보수적인 인물 중 한 명 이었지만 1차미소공동위원회 해체 이후 이승만 대통령께서 남한에서라도 단독 선거를 하자는 정읍 발언을 할 시점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조국 통일을 위해 노력하셨던 분이며, 남북 협상이 일례입니다. 김구 선생 및 그 지지자들은 남한의 단독 선거에 반대하여 제헌 국회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며, 대한민국의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말만 덩그러니 놓여 있으면 오해의 소지가 있겠죠? 이후 김구 선생님 극보수 안두희에 의해 암살되고, 이승만 대통령의 실정으로 기존 김구 지지세력등이 2대 총선에 대거 참여합니다. 권위주의 통치는 독재의 순화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은 정부 주도의 경제 성장으로 오히려 자유 경제 체제에는 정면으로 반하는 정책을 추진했던 시기입니다. 정부 주도, 수출 의존적 성장이었기 때문에 기업은 자생 능력을 가지지 못했고 박정희 정부는 외환위기 때에도(박정희 정부 때에도 외환위기가 있었습니다) 공적 자금을 투입해 기업들을 유지하고자 했지 소위 자유 시장 경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강한 기업'을 키우지는 못하였습니다. 솔직히 배워보면 이 때 우리나라 경제 문제의 원인들이 여기서 다 시작됩니다 ;; 
아 정말 쓰고싶은 말이 많은데 공부하러 가야되서 ㅋㅋ 
윤치호는 을사조약 전후하여 친일으로 전향한 인물입니다. 물론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되어있죠.^^ 윤치호 일기는 말 그대로 그 분 개인의 '일기'이므로 사건 서술의 내용이 교과서에도 언급되곤 합니다만 그 일기에서 그 개인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판단을 교과서에 올린다는 것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댓글 들 중에서 백범일지에 테러 운동이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는 분위기의 댓글이 있는데요 맞습니다 제가 백범일지도 읽었고요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대회도 나갔습니다 -____-) 금성교과서에도 테러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기파랑교과서에는 한인애국단을 통해 김구 선생이 임정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그것을 통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냈는지에 대해서는 안 적혀있는 것 같네요. 그리고 그 한인애국단 활동의 항일 전쟁사에서의 의의도 언급이 물론 없는 것 같고요. 그냥 제가 읽기에는 김구선생은 테러리스트였다, 이렇게 밖에 보이지 않는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글에서 보이는 대로는 말이죠) 테러라는 단어는 저는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어떤 맥락이었는지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나온 건지가 나와 있어야죠. 친Book좌파 님의 댓글에 스캔된 교과서도 금성교과서인거 같네요.
아.. 자습할시간이 다가오는데 하나만 더 말씀드리자면 
1910년대에 시행된 일본의 토지조사사업은 신고주의, 증거주의 등으로 자영농의 몰락을 가져왔고-많은 자영농들이 자신들의 토지임을 입증하지 못해 동양척식주식회사에게 토지를 빼앗겼죠. 국 공유지나 문중의 토지가 주인이 없다는 이유로 역시 동척에게 빼앗겼습니다. 근대적 토지소유권의 확립은 동척과 총독부의 명목일 뿐이고요 이미 광무개혁 (1899년시작)시기부터 고종 황제께서 양지아문을 통해 지계를 발급하는 등 근대적 토지소유권을 발급하려고 하였지만 러일전쟁-1904-로인해 중단되고 1910년에 국권이 피탈되면서 하지 못한것입니다.

아 정말 쓰고싶은 말이 더 많은데 자습하러 가야겠네요
국사근사 만점받아오겠습니다~ 안녕히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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