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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freeboard_5458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5uin★
추천 : 6
조회수 : 42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10/21 05:04:09
초등학교때
난 꽤나 활발하고 준수한 외모에
모든 친구들과 친했었다.
85년생 속된말로 그때 당시 생긴 일진이란것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남을 일방적으로 때리거나 괴롭히거나 무언가를 뺏은적은 단 한번도없고
반에 공부 잘하는친구, 운동 좋아하는친구, 노는 친구, 조용한 친구, 게임 좋아하는친구
모두와 잘 어울려 놀았으며, 초등학교 중학교때 공부는 못했지만
모든 교우와 친하고 인기도 많아 전교회장도 하게 되었다.
집도 넉넉하니 잘 살았으며, 운동도 잘하고 여자친구들이나 선후배사이에서도 인기도 많았다.
어렸을적 축구선수가 꿈이였고 현역 국가대표와도 같이 운동을 할뻔 했지만
전학을 가야하고 집에서는 전교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니 반대가 심했다.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부모님이 반대를 하셔도 꼭 하겠다고 했을것 같으나,
그 당시엔 낙천적이고 멍청해서 그랬는지 알겠습니다. 라고 해버리고 말았다.
IMF가 터지고나서 집안사정이 기울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땐 집이 힘들었어도 부모님이 용돈을 주시고 흥청망청 쓰진 않았으나,
그래도 적당히 잘쓰며 친구들에게 적당히 잘쏘고 지내왔었다.
고2때
운동을 포기한것을 가장 후회하던때..
넓은 운동장에 공하나에 집중되어 기뻐서 환호성을 지르고 안타까워서 비명을 지르고
골을 넣었을때 그 순간의 환희와 오르가즘..
너무 매력적인 축구가 그리울때..
친구들과 당구장 노래방을 전전하며 살던 내가 노래방에서 문득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부르는 순간 웃기지만 골을 넣은 기분이 유지된다는걸 느껴버렸다.
노래가 좋아졌다. 학원도 다녔다. 아카데미의 개념이였지만
그때의 나는 학원을 다니면 가수를 시켜줄것만 같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고3때
남들 한창 공부할시기..대학교를 가야하지만 우리때 수능 400점 만점에
200점을 간당간당하던 내게는 도대체 어디를 가야할지 알수가 없었다.
운동을 좋아하던 친구가 문득 어떤 형과 농구시합을 제안했다.
이겼다. 이기니 그형이 하는 말이 운동신경이 좋다면서 체대를 권유했었었다.
알고보니 입시체육학원 강사였다.
나 역시 체육과를 다니고 있어서 절대 무시하는 발언은 아니지만
그 당시 대학교에 대해 갈팡질팡하던 나는 부모님의 무언의 압박속에
체육과를 선택하고 말았다.
대학교1때
너무 즐거웠다. 학교생활이 체육쪽이라 많이 힘들긴 했지만
지금 그 1년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즐거운 대학생활이였다.
대학교2때
집안이 심하게 기울기 시작하는걸 느꼈다.
직접 발로 뛰는 운동선수가 꿈이였고, 이제는 가수가 꿈인 나는 체육과 쪽을 졸업해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직업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심하게 몸속부터 이건 아니다..라고 느끼고 있었다.
집안사정도 좋지 않았고, 가수란 직업(아이돌이아닌..)에 너무나 매력을 느껴버린 나는
휴학을 하고 오디션을 보고 작은 기획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공연도 많이 했고 팬까페도 생겼으며 선물도 주는 팬도 처음으로 생기게 되었다.
군대..
4인조로 활동했었으나, 군대란 문제에 크게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속해 있던 그룹은 지금 데뷔했지만..크게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망했다.
결과론이지만..지금 생각하면 이기적이게도 그때 그룹을 나오고 군대를 가길 잘한것 같다.
23살때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여자를 너무 잘몰랐고 약속도 많이 어겼으며, 많이 아프게 한 나는
그 친구와 싸움끝에 헤어지게 되었다. 당시에는 그렇게 크게 슬프지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가 정말 착하고 개념있는 친구였는데..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또 다른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2년정도 만났었는데, 실수를 반복하기 싫어서
정말 잘해주었다. 항상 일이 끝나면 매일 데릴러가고 저녁도 항상 같이 먹고
친구들과 같이 당구장이나 어느 곳에 있을때 아는 여자동생들이 온다고 하면,
여자친구에게 다른 여자와 같이 있는것 자체가 너무 미안해서 집으로 간다고
친구들에게 말을 하면 처음엔 미친놈이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이해하는 정도의 수준까지 가게 되었다.
헤어졌다.
2년즈음 만나니, 그 친구가 전 남자와 바람을 폈다. 배신감이 너무 컸다. 충격이 너무 심했다.
잘못했다고 울며불며 매달렸지만 정말 매정하게도 한번에 거절했다.
패닉상태였다. 다신 여자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26살때
너무 힘들었던 나는 마음속에서부터 그 아픔을 계속 느끼기 싫어서 다른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너무 급하게 빠지게 되었다. 외국에 이민자였던 친구 였는데,
한국에서 사귀고 만난지 2주후에 외국에 간다고 하여 눈이 돌아 무작정 쫓아갔다.
미친짓이였다. 하지만 진심으로 좋아했고, 그 친구 부모님밑에서 일을 하기로 했으며,
한국에서 노래도 잘되지않고 직업도 없던 나는 현실도피성으로 그 친구를 따라갔다.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행복했다. 그렇게 1년쯤 같이 살다 한국에 둘이 같이 나오게 되었다.
27살때
태어나 처음으로 동거란 것을 해보았다. 혼전동거는 정말 반대하던 나였는데..
사소한것(세탁,밥,청소) 때문에 싸워도 보고 저녁에 떡볶이나 여자친구가 해준 밥을
먹으면서 티비도 보고, 슬리퍼 신고 동네 영화관도 가고 노래방도 가고 PC방도 가고 여행도 가고..
우린 항상 함께 붙어있었고 나는 정말 그 친구를 사랑했고 너무너무 행복했다.
부모님끼리 만나본적은 없지만 우리둘다 서로의 부모님과 식사(처음으로 여자친구를 소개..)
도 해보고 결혼이라는 걸 전혀 의심하지 않던 행복한 사이였다.
그 친구가 집안일을 도와주러 2달 전에 외국에 다시 들어갔다. 3개월후 다시 나오기로 약속을 하고..
공항에서 터져나오는 눈물을 정말 애써 참고(내가 울면 같이 울게될까봐..) 한번 안아주고
잘 다녀오라는 인사와 함께 웃으며 보내주었다.
하루하루 그리운걸 나름 잘 참으며 견디고 있는 일주일째,
그 친구가 남자가 생긴것을 알아버렸다.
이전에 사귀었던 친구에게 정말 잘해주다가 바람을 펴서 충격이 너무 컸지만..
이번에 사귀는 그 친구는 다르겠지..하고 믿고 사랑하고 있었는데......
2년을 함께 살며 자고 먹고 하던 결혼까지 생각하던 여자친구가 떨어진지
일주일째에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것을 알았을때,
TV나 드라마에서 이성문제로인해 죽는 것을 바보처럼 여기던 내가
그 심정을 200%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이 너무 힘들거나 충격이 크면 눈물이 나오지 않고 멍하게 된다는걸 느꼈다..
헤어진지 2달이 조금 안된 지금..가슴이 너무 아프다......
여자를 다시는 만나기 싫다. 너무너무 무섭다..정이란거
노래도 싫다. 27살의 나이에 모든 오디션공지를 보아도 아이돌모집밖에 없는
대한민국 현실이 정말 너무너무나 싫다.
정말 잘해주면 안되는걸까..? 연애는 계산을 하면서 밀고 당기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걸까..
정말 너무나 사랑해서 모든걸 다 쏟고 주고 해도 2명과 4년동안 만났을때
항상 바람을 피우고 배신을 당해버리니..머리속이 너무 멍하다..
고등학교때 베오베게시물만 보며 눈팅하고 항상 즐겁게 보던 오유에 몇년만에 와서
이렇게 1,2시간동안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지금 무얼 바라고 쓰는걸까..위로를 원하는건 아닌데..
죽고싶진 않지만 정말 살고싶지가 않다..
반말 죄송합니다.
멍청한글 죄송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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