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뿌리가 검게 난 머리를 염색하고 싶었기 때문에 2시 30분에 알람을 맞춰놨고 기계는 기계답게 정확히 그 시간에 맞춰 찌릉거리며 울었다. 알람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아챘지만 '큰언니'라고 뜬 귀찮기만 한 활자가 머릿속을 휘젓고 손가락은 화면으로 움직일 생각일랑 없는 듯 눈 언저리에 끈질기게 머물렀다. '여보세요' '일어나 할머니 돌아가셨어'
나의 아비의 어미가 죽었다.
나는 2시간 30분에 걸친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이 순간 귀찮아졌다. 가방에 쑤셔넣는 옷이 서로 잘 어울리느 옷인지 생각하고, 새 신발을 발에 꿰어넣으며 나는 다시 한 번 상기했다. 나의 아비의 어미가 죽었다. 그래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상의와 하의가 매치가 잘 되는지, 이 신발을 누군가에게 자랑할 수 있을지 따위를 생각하는 나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상복은 거추장스러웠고 내 노란머리에 대한 조문객과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의 관심도 싫었다. 쪽잠을 자야하는 것도 싫었고 인사를 받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누구누구 딸이냐며 물어대는 얼굴도 모르겠는 어른들의 소리침도 귀찮았다. 나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구석에서 포커를 치고 시끄럽게 술을 마시며 떠드는 어른들이 보기싫었다. 조금만 돌아봤으면 그 모습이나 내 모습이나 다를바 없었음에도 나는 모든 것이 짜증스러웠다.
'형님, 나 우리 어머니 한번 만져봐도 되겄소'
상주인 나의 아버지는 염을 하는 할머니의 머리를 곧게 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나는 생각했다. 죽었다. 죽은 사람을 산 사람이 씻기고 있다. 그리고 그 머리맡에 나의 아버지가 울고있다. 나는 그때서야 슬퍼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음을 고지받고 옷과 신발을 챙겨넣으며 장례식장에서 깔끔하게 샤워까지 했던 나는 그때서야 하염없이 슬퍼졌다.
염이 끝나고 수의를 입는 할머니를 우리는 말없이 지켜봤다. 아무런 말도 생각나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은 그랬다. 입관실 밖으로 큰언니의 울음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얕은 신음과 흐느낌이, 할머니는 듣지 못할 그 소리가 나는 또 너무 슬펐다.
작은 아버지는 수의를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 근처에 가지도 못한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아빠에게 다가가 '형님, 나 우리 어머니 한번 만져봐도 되겄소' 하고 물었다. 아빠는 '됐다. 됐어' 라고 말했고 작은 아버지는 다시 주저 앉았다.
너무 더웠다. 나는 우울했고 더웠다. 상복을 벗어던지고 싶었다. 마치 입을 일 없는 것처럼, 이 옷이랑은 거리가 멀어지고 싶었다. 너무 더웠다. 나는 너무 더웠다.
'증조할머니네 증조할머니다 엄마'
날씨가 좋다. 흙먼지 입에 곱게 물고 나는 바람에 실린 상복 저고리를 내려다봤다. 할머니 위에 옆에 밑에 흙이 단단하게 채워진다. 이제 단단하게 마음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는 할머니를 볼 수 없다.
큰언니의 아들, 그러니까 내 조카는 4살 흙장난을 하다가 문득 영정사진을 보곤 외친다. '증조할머니네 증조할머니다 엄마'
삼킬 수 있을 만큼 삼켜도 새어나온다. 끝이라는 건 그런거였다.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거였다. 새 신발이 장지하는 곳의 고운 흙으로 뒤덮혔다.
'할머니 내 딸이 결혼하는 것까지 보고 가' '근데 나 독신주의자인거 알지?'
할머니는 크게 웃으며 그래야겠다. 그래야겠다. 우리 손녀딸 딸년 결혼하는 것까지 보고가야지 그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