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사고를 치고 다니던 그도 어느새 상병을 달게 되었다. 풀린 군번이었기에 상병을 단지 얼마 안되서 고참들보다
후임들이 많은 그였지만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남은 고참들에겐 아직도 욕을 먹기가 일쑤였고 자신과 몇달 차이
안나는 후임들은 은근히 그를 무시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만만한게 일이등병 이었고 일이등병들을 괴롭히는게
그의 유일한 취미생활 이었다. 그나마도 다른고참이 보면 너나 잘하라며 타박했기에 고참들 없을때 몰라몰래 일이등병을
모아놓고 갈구곤 했다. 당시 일병 중 제일 선임이었던 나와는 마주치는 일이 많았고 그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잦았다.
연대전술을 앞둔 어느날이었다. 당시 우리가 가장 중점적으로 연습했던게 철조망 치는 연습이었는데 하필이면 난 재수없게도
그와 한조가 되고 말았다. 셋이서 한조가 되어 둘은 항타기를 치고 한명은 바닥에 u자못을 박았는데 내 임무는 u자못을 박는
일이었고 그와 다른고참이 항타기를 치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이 또한 제대로 될 리가 없엇다. 두사람 호흡이 잘 맞으면야
수월하게 끝날 일이지만 호흡이 안맞으면 힘은 힘대로 들고 제대로 박히지가 않았다. 당연이 호흡이 맞을리 없었고 자기가
박자 못 맞추는건 생각도 안하고 같이 항타기를 치는 후임을 갈구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그 고참이 그에게 대들기 시작했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그가 내린 결론은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었다. 뒤로 돌아 내무실쪽으로 향하던 그 고참의 옷에
철조망이 걸렷다. 철조망 끝은 갈고리 모양으로 생겨서 옷이나 장갑이 걸리면 흔들어서 빼지 않는이상은 잘 빠지지 않았다.
그의 전투복과 k2 멜빵끈에 철조망이 걸렸고 다른곳을 보고 있던 그는 후임이 자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대로 물러서기엔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지 그는 저음의 목소리로 '놔라' 라고 말했다. 다른 고참과 나는 저건 또 뭔 지랄인가
싶어 아무말 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차마 돌아보지 못하고 몇번을 노라고 얘기하던 그는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는지
"놔라고 뒤진die쉐키야!" 라고 외치며 거칠게 몸을 앞으로 내밀었고 철조망에 걸려있던 멜빵끈 탓에 말려 올라간 k2손잡이에
목젖을 가격당하고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셀프 레리어트를 날린 그는 그대로 철조망 위로 넘어졌고 온몸 구석구석에
철조망이 걸린채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한참동안을 퍼덕거려야 했다. 겨우 그를 끌어냈을땐 이미 그는 검수지옥을 지나 온
듯한 몰골이 되고 말았다.
그 일 이후로 후임들조차도 그를 투명인간 취급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히스테리가 시작됐다. 걸핏하면 일이등병들을
고참들 몰래 보일러 실로 모아다 갈구기 시작했다. 이미 보일러실은 그에게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그 광경을
고참이 목격했고 결국 소대원들 전부를 모아놓고 앞으로 그에게 고참취급 해주다 자기한테 걸리면 그사람도 가만 안두겠다는
엄포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나 역시 그에게 쌓인 앙금이 많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가 안쓰러워 보였다. 엄석대 같은 녀석..
그렇게 힘든 군생활을 보내던 그도 어느덧 전역을 앞둔 병장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가는 길까지 순탄치 않앗다.
제대를 얼마 앞두고 근무를 나갔다 복귀하는 차 안이었다. 그날도 끝자리에 앉아 그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근무지에서
뭘했는지 정신 못차리고 잠을 자고 있었고 부대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비포장 도로길을 달리다 차가 덜컹거렸고
그 순간 그의 고개는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그대로 총구에 박치기를 하고 말았다. 오센치만 옆으로 비켜갔어도 그는 한쪽 눈을
새 시대에 선사할 뻔했다. 그의 이마엔 동그랗게 총구모양으로 멍이 들었고 그 멍은 제대하는 날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우리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제대한 후 나는 왓치맨이란 영화를 보았고 그 영화에 나오는 닥터 맨하탄이란
캐릭터를 보다가 문득 그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