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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말기 연(淵)씨 가문에 대하여 (1)
게시물ID : history_20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ish
추천 : 10
조회수 : 1606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1/07/14 19:30:42
근래 역게에 분쟁글보다는 생산적인 게시물들이 많이 올라와서
(동피님의 캡쳐자료, 리볼버오셀롯님의 무기자료, 악진 이유없음 스페로스페라님의
학술 텍스트 등)
즐겁게 보고있습니다. 저도 한때 책추천자료로 적지않은 관심을 받았었는데,
올라오는 글들을 보니 대체로 유럽 중국 아메리카사 쪽의 자료가 많아서
한국사쪽의 보잘것 없는글을 하나 투척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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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은 모두 말기로 접어들면서 왕권이 약화되고 귀족들의 권력이 강화되는 형태의
정치구조를 띄게 됩니다. 각 귀족들의 세력을 제어할 강력한 왕권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귀족들은 최고위직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게됩니다. 이런 정쟁이 계속되는 상황이라면 외적의 침입 등
국가 존망의 위기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를 할수 없겠죠. 예를 들면 고구려가 551년에 한강유역을 
상실하는 원인은 신라의 비약적인 성장도 있지만 안장왕 피살(531), 안원왕 말(544? 545?) 추군과 세군의 
권력쟁탈전 등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국력이 쇠약해져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원인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파이를 가지고 싸우던 귀족들도 깨닫게 되겠죠. 계속 내부에서 파이 싸움을 하다가는
파이가 진흙탕으로 떨어져 아무도 먹지 못하게 될것이라는 사실을요. 나라가 망한 후에 권력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래서 귀족들은 서로 결속 하여 국정을 이끄는 새로운 체제를 탄생시킵니다.
그것이 바로 "귀족연립체제"입니다. 백제의 대성8족(8대성=사씨(沙氏)․연씨(燕氏)․협씨(劦氏)․해씨(解氏)․
정씨(貞氏)․국씨(國氏)․목씨(木氏)․백씨(苩氏))에 의한 국정운영이나 신라의 선덕여왕, 진덕여왕
(이상 성골왕실), 김춘추(중앙 진골), 김유신(가야계 진골)의 정권장악, 그리고 고구려의 
대대로 3년임기제(각 가문, 각 세력별로 골고루 한번씩 수상직에 취임하도록 해서 분란을 없애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 취임하고자 하는 인물에 대해 타세력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서로 
사병을 동원하여 싸우는데, 이때 왕은 궁궐 문을 잠그고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는 
삼국 말(6~7세기)의 귀족연립체제를 잘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이야기하고자 하는 고구려 연(淵)씨 가문은 귀족연립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고구려 말기의
상황속에서 무려 4대에 걸처 5명의 대대로(大對盧, 수상)을 배출한 뛰어난 가문입니다. 
이것이 인품, 학식, 군공 등 개인적인 힘에 의거한 것이었든, 가문의 힘이 너무나 막강하여 
타 가문과의 군사력 동원에서 항상 승리한 것이었든지 간에 수많은 대귀족들이 할거했을 그 시대상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것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한국 고대사의 모든 나라들이 그렇듯 고구려 역시 문헌자료가 너무나도 부족하여, 연씨가문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정확히 언제부터 귀족들 사이에서 대두되었는지는 알수가 없습니다. 다만 연씨가문의 시조가
샘[泉, 淵]으로부터 나왔다고 하는 설화로 미루어 볼아 고구려 중기 이후(고구려 초기~중기까지는
귀족들이 자신들의 시조가 주몽과 함께 부여에서 나와서 함께 고구려를 건국했다는 시조 설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에 중앙 정계로 진출했거나, 동부여 금와왕 또한 곤연(鯤淵)이라는 연못과 관련있는
탄생설화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때 광개토대왕~장수왕 시기 동부여가 고구려에 복속된 이후 고구려
중앙 정계로 진출한 동부여 계통의 가문으로 연씨 가문을 파악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아도 고구려 중기 이후 중앙정계에 뚜렷한 모습을 드러낸 연씨가문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있는
연개소문의 조부 연자유(淵子遊)부터 최고직인 대대로(고구려의 제1 관등으로, 여러 논란이 있지만 
막리지莫離支와 같다고 보는 견해가 다수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를 역임하기 시작합니다. 
중국에서 발견된 연개소문의 장남 연남생의 묘지(墓誌)에 연씨의 가계를 연자유부터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연자유 시대부터 연씨가문이 강력한 중앙귀족 가문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연자유의 아들 연태조(淵太祚) 역시 대대로를 역임하며 국정을 장악했습니다. <삼국사기> 연개소문 열전을
보면 연자유가 중앙관료의 수장인 대대로인 동시에 동부(東部, 혹은 서부라고 함)대인(大人)으로 
고구려의 5부 중 한개 부를 장악한 지방세력가(내지는 수도 평양의 행정구역 5부 중 한개 구역을 
장악하고 있는 중앙 대귀족)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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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내용이 너무 길어졌네요 ㅠㅠ
연태조의 아들인 연개소문(淵蓋蘇文)
연개소문의 아들들인 연남생(淵男生), 연남건(淵男建), 연남산(淵男産) 3형제
연개소문의 동생인 연정토(淵淨土)
연정토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는) 안승(安勝)에 대해서는 다음에 2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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