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에 도착하자 수많은 구더기들이 나를 반기는듯 온몸을 비틀어대고 있었다 "그래 이 착한 것들...." 나는 그중 가장 토실토실하게 살찐애를 하나 잡아서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만지면 만질수록 구더기는 온몸으로 비폭력 무저항을 실천하며 나의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자기 오늘 싸웠던 친구 얼굴이 생각났다 정말 화나는 녀석이었다 자기 자리에 우유좀 쏟았다고 갑자기 쌍욕을 하면서 주먹을 날리다니.. 난데없이 공격당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녀석이었는데.. 갑자기 억울한 마음이 들며 손에 힘이 들어가버렸다
"찌익!!!!!!!!!!!!" 주위가 너무 적막해서일까? 마치 비명이라도 지르는듯 예상외로 큰소리를 내며 구더기는 사방으로 온몸의 체액을 뿜어내었고 분노로 이를 갈고 있던 나의 입속으로도 체액의 일부가 튀어버렸다.
"윽!! 카악!! 퉷퉷!!!!" 무의식적으로 침을 뱉어내며 내몸은 최선을 대해 이물질에 대한 방어기재를 작동했지만 입안에 남아있는 찝질한 잔맛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약간 비릿하면서도 음 뭐랄까..지린내처럼 찝질하기도 하고..장미향 비슷한냄새가...' 나는 본능적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구더기 체액의 시식에 대한 느낌을 정리하고 있었다. 희안하게도 진짜로 꽃냄새 비슷한 것이 났다. 나는 이상하게도 갑자기 아늑하면서도 우울한 기분이 들어 폐가를 뛰쳐나왔고 한동안 그 근처로 가지 않게 되어버렸던것 같다.
나의 어머니는 7살때 집을 나가셨다.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탓도 있었겠지만 아버지의 기괴한 이중인격이 그 원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침이면 너무나도 자상한 미소로 어머니와 나를 대하다가도 저녁만되면 전혀다른 사람이 되어 폭력을 휘두르곤 했던 것이다. 마치 흔한 공포영화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머리속에 두개의 인격이 공존하는 듯 했다. 밤이 되어 미친듯이 날뛰는 아버지를 피해 쌀쌀한 날씨에도 이웃집 외양간 옆에 있는 곡물창고에 숨어서 어머니와 밤을 지샜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떠나는날 가마솥에 감자를 가득 해놓고 가셨는데 태어나서 그렇게 배불리 먹었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마솥을 열어보곤 너무나 기쁜마음에 허겁지겁 감자를 입안으로 집어넣었는데 어린마음에도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왠지모를 설움이 북받쳐서 눈물이 났다. 감자와 콧물과 눈물이 뒤섞여 무슨맛인지도 모를 음식을 한없이 입으로 꾸역꾸역 가져가던 그모습이 십수년이 지난 아직도 뇌리에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내가 다시 그 폐가를 찾게 된것은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즈음 이었다. 한동안 괜찮다 싶던 아버지의 발광을 피해 허겁지겁 도망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도 모르게 폐가로 가는 오솔길을 밟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구더기를 만지고 있으면 마음이 좀 나아질지도 몰라..' 땅거미가 엄습하고 있는 여름하늘 아래로 덩그러니 버려져있는 작은 시골집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푸근한 공기가 새어나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