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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시대의 상언과 격쟁 ('역사저널 그날'을 본 후)
게시물ID : history_208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별가스폰지밥
추천 : 10
조회수 : 1930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05/20 00:24:52
*주의 :
1.전문가가 아니어서 직접 실록을 보고 작성한 글이 아니고 방송을 토대로 작성했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어서 지적과 수정이 필요 할 수 있어요 ^.^
2.조선시대 상언과 격쟁이라는 민원 접수방식을 악용하는 단점도 있었고, 그 단점을 보완하는 기록도 있는대 잘 몰라서 이 글에는 추가하지 못했어요.
 
 
-상언(上言)                       : 조선 시대, 청원을  위해 왕에게 올리는 문서
-격쟁(칠 격擊, 쇳소리 쟁錚) : 왕 행차 시 징, 꽹과리 등을 쳐서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공식적으로 허용된 민원제도
 
 정조는 왕릉을 참배하는 능행을 다녀오면서 그 동안에 상언(동행하는 관리가 문서로 접수)과 격쟁(동행하는 관리가 문서로 작성)을 접수하고
궁으로 돌아와 왕이 곧바로 민원을 해결하는 형식이었고, 처리가 3일 만에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왕 행차 그림이 나오는대요, 그림에 많은 사람들이
행차 주변에 가까이 모여든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정조실록, 정조16년 "...구경 나온 백성들이 산과 들을 가득 매웠다. 상이 백성의 고통에 대해 두루 물었다."
 
 백성들과의 거리가 매우 가까운 상황 때문에 포도대장이 경호의 어려움을 들어 백성들의 접근 금지를 건의 했더니
-정조실록, 정조5년 "무릇 팔방(八方)의 백성은 나의 적자(赤字)인데..." 나의 갓난아기와 같아서 보살펴야 한다며 막지를 않았대요.
 
 대신들 또한 말리기를
대신 : "소민이 상언을 하는 것은 매우 외람되고 난잡한 행동입니다. 상언과 격쟁을 받지 마소서"
정조 : "듣거라 저 말할 곳 없는 자들이 억울함을 가슴에 품고 달려와 하소연하기를 어린 자식이 부모에게 하소연하듯 하니
          그렇게 만든 자가 잘못이지 저들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라고 하셨대요.
 
 왕조시대라는 신분제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왕이었던 정조는 계속해서 부정부패로 고통받는 백성을 위하는 정책, 곧 나라를 위하는 정책을 펼치고 진심으로 애민하는 모습을 보여줌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런대 현제 사회는, 민주주의라는  정말 좋은 이념이 존재하는 우리 사회는 왜 왕권 사회보다도 못한 소통의 모습이 곳곳에 만연한 것일까 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졌어요.
 아니면 돈과 권력이 계속해서 계급을 만들어온 현실을 제가 부정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정조 시대의 이러한 긍정적인 모습을 현대 시대에 사는 우리들도 같이 공유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KBS 역사저널 그날 2015년 5월 17일 방송
*개인적인 몇 마디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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