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추모 촛불행진에 다녀와서 내가 결심한 것
게시물ID : sewol_209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지개같은나
추천 : 20
조회수 : 1278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4/04/28 01:47:02
오늘 세월호 침묵 행진을 다녀와서 내가 결심한 것.



세월호 사건으로 온 국민이 비탄에 빠져있는 이 때, 
나의 주요 화두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였다. 

과거에도 비슷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민영화 등의 이슈로  촛불집회가 일어나고 대자보가 붙었을 때에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언제나 고민했다. 
'내가 가진 능력을 어떻게든 활용하여 돕고싶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든 기여하고 싶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가진 능력이 없었다. 
그저 오유에서 시사게 글을 읽고 
하나하나 알아가고, 분노하고,  몇 번의 집회 참여와, 학교 내에 대자보 아닌 중자보를 소심하게 붙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잘할 수 있는게 없는데.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조리있게 사실을 전달할 수 있지도 못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처럼 세태를 그림으로 표현하지도 못했다. 
네티즌 수사대님들 처럼 자료를 취합하고  분석할 능력도 없었다. 
정보력이 뛰어나지도 못해 정확한 정보를 나르지도 못했다. 
뭔가 기여를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하질 못했다. 
어느 괜찮은 아이디어에 '동참합니다' 라고 답글을 다는 것 뿐. 

세월호 참사 이전부터 이 문제는 나를 괴롭혔다.

집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오늘 촛불행진을 다녀왔다.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시민들의 발언과 영상들을 보았다. 
영상을 보니 또 눈물이 흘렀다. 
그 와중에도 나는 '내가 어떻게 기여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내가 이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되는 일일까? 
이렇게 한다고 달라지는게 있을까?'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나는 '더 가치있는 일' 을 찾아보려고 했다. 

동시에 합리화도 했다. 
'가만히 집에 앉아있는 것보다는 나을거야. 
길 가는 시민들에게 촛불을 든 사람이 한명 더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걸거야' 라고 말이다.

비가 왔다.
나는 우산을 쓰고 있었다.
비에 젖지 않으려고 우산을 잘 쓰고 있었다.
길을 가다가 혹여나 바닥에 고인 물이 다리에 튀지 않을까, 
물 웅덩이를 요리조리 피해다녔다.
초를 들고 다녔다.
초가 짧아지고 촛농이 손으로 떨어졌다.
나는 손에 떨어진 촛농을 떼어내며 손을 데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우습기도 했다.
세월호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차디 찬 물에 벌벌 떨고 있을텐데.
그들을 위한 행진에 참석해서 '아이들을 살려내라' 라고 말하는 나는. 
비 한방울 맞지 않으려고 우산을 한 손에서 놓지 않으니 말이다.


'나는 왜 여기에 와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실종자들을 기다리는 마음을 표현하려고.
그리고 이런 사태까지 오게 한 미흡한 대처에 비판의 목소리를 들려주려고.

그리고 내 안에는 이런 마음이 있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내 가족, 내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이 당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이유는 그게 가장 컸던거다.
'나와 내 가족의 안위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분노한다'
'이런 꾸진(?) 국가에서 나와 내 가족은 행복하게 살 수 없다. 내 가족의 안전한 삶을 위해서 지금 나는 나와있다.'

세월호 사건, 민영화, 국정원 대선 개입. 등의 이슈들에 내가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느낀 것은
 '이런 세상에서 나와 내 가족을 살게 하고 싶지 않다' 라는 마음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결국은 개인주의의 발로였다.

정의로운 사회. 선이 악을 이기는 사회.
이런 거창한 말들도 결국은 
내 가족이 사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독립투사들이 나라를 위해 희생했던 것처럼 숭고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되질 못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노란 리본을 프로필 사진에 달고 있으면서,
나는 지하철에서 내가 무거운 몸으로 서서 가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온갖 미움을 퍼부웠다.
오늘 촛불행진을 가는 길에도 
나를 붙잡으려는 '도를 아십니까' 사람들에게 경멸의 마음을 품었다.
버스에서 앞문으로 내리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버스기사 아저씨가 앞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증오심을 기사아저씨에게 발산했다.

당장 내 앞의 이웃들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미워하고, 경멸하고, 증오했다.

그러면서 나는 촛불을 들고, '박근혜는 사퇴하라'를 
내 가족과 우리의 이웃, 우리나라 국민들을 위해
외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 가족을 위해서.. 내 이웃을 위해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정말 가족을 위한 것이 맞나?

'오늘은 주말이니 엄마랑 같이 집안일 좀 하자'고 엄마가 말하셨다. 
나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누워있다가, 
나중에 한다고 말하면서 다시 누웠다. 
엄마가  '대상포진에 관한 프로그램이 나오니 봐라, 내가 아파봐서 안다. 봐서 예방을 잘 해라' 라고 말씀하시며 나를 깨웠다. 
나는 정말 일어나기 싫었다. 
(나는 안봐도 되는데, 인터넷으로 나중에 보면 되는데, 나는 건강한데 ) 
투덜거리며 티비 앞으로 가서 엄마랑 같이 티비를 시청했다. 
엄마가 사우나를 가자고 하셨다. 
나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귀찮았다. 

엄마가 밥을 차려주신다고 뭐 좀 먹으라고 했다. 
나는 밥을 먹는 것조차 귀찮아서 나중에 먹을거라고 말했다.

이게 집회를 나오기 전 내 모습이었다.

촛불을 들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가식처럼 느껴졌다.
가까이 있는 엄마한테도 잘 하지 못하면서,
가족을 위해 거리로 나온거라고 합리화하다니.
우스웠다.
엄마한테 너무나 미안해졌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안전한 나라를 위해..
거창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기전에
먼저 내 가족에게라도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가족에게도 잘 못하면서, 어떻게 촛불을 들까.

물론 앞으로도 나는 많지는 않아도 소정의 기부를 할 것이다. 
세월호 게시판을 보면 또 눈물이 나겠지. 
그리고 촛불을 들러 가기도 할거다. 
아는 동생에게 내가 아는 것을 최대한 조리있게 설명하려고 노력 할거다.

이 모든 것이 더욱 진실되기 위해서는, 
내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서는
나는 내 가족에게 잘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백일간, 매일매일 설거지를 할 것이다. 

이게 내가 오늘 촛불행진을 다녀와서 한 결심이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