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발해와 말갈과 관련하여
게시물ID : history_209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려
추천 : 2
조회수 : 1676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05/23 22:37:40
발해=현대중국, 발해=현대한국, 발해=만주족
한,중,러,일 4국 각각의 주장들입니다.
이건 다 잘못된 등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발해 자체를 봅시다.
발해는 고구려인들과 말갈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말갈인들이 많다고 해서, 그리고 건국자가 속말말갈이라는 기록만으로
발해를 만주족만의 역사로 볼 수 있을까요??
 
말갈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숙신-읍루-물길-말갈-여진-만주로 이어진다는 계통 상식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의견들이 요즘이 대체로 많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숙신은 하상주,춘추전국시대에는 요서,산동지방으로 비정됩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그렇게 나옴)
그러나 위-진-남조-수-당시대의 숙신은 목단강 동쪽의 동만주와 연해주에 비정됩니다.
요서,요동,청천강이서지역으로 (전국-진-한나라 때 전란을 피한) 중국유민들이 들어오면서
이동했거나 소집단들이 퍼져있던 범위가 좁아들었거나 한가지겠죠.
 
읍루는 대체로 한나라때부터 등장하여 북옥저 북쪽 연해주 동해안 및 연길일대에 비정됩니다.
이들은 한동안은 부여(송화강,눈강유역)의 속국이었다가 자립했습니다.
 
물길은 갑자기 수당시대에 등장하는데
총 7부가 있습니다.
 
첫째, 속말부는 송화강 속말수 유역에 있었는데,
3~4세기 선비족에 짓밟힌 후 고구려 영향 아래에서 나라 유지하던 부여가
6세기에 물길에 쫓겨서 고구려에 귀부하거나 눈강을 건너에 세운 부여계승국 두막루를 세웁니다.
이때 부여지역으로 진출한 물길이 바로 속말부로 보이고,
속말부가 잔존한 부여인들과 활동영역이 겹치므로 섞이는 부분도 있었을 겁니다.
 
둘째, 백산부는 백두산 및 연길 일대로 읍루 및 옥저의 영역과 겹칩니다.
실제로 기원전 3~1세기 경 읍루계열의 유적들이 연해주 북쪽에서 북옥저의 연해주지역으로 확산되고
북옥저의 고고학적 문화권의 북계는 연해주지역에서 두만강 유역으로 점점 내려옵니다.
광개토대왕비의 동부여 인근 매구루압로, 숙사사압로 등의 기록은
압로=읍루로 볼 경우 북옥저읍루, 숙신읍루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상 속말부와 백산부는 인접한 예맥계인 부여,옥저,고구려와 매우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하여 속말부와 백산부는 고구려의 별종이라는 표현도 보입니다.

속말부와 백산부는 고구려를 배반하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고구려의 용병 역할 및 고구려를 통한 선진문화 접선을 하였습니다.
 
옛 부여땅에 들어와 함께 살면서 고구려 소속감을 가졌던 속말말갈인이 세운 발해의
발해왕이 스스로를 고려왕이라고 하고
부여의 습속을 계승했다고 하는 것이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고구려 부흥운동 당시에도 말갈인들이 적극 협조하였는데
이는 고구려 멸망 전까지 고구려의 질서 아래에서 고구려라는 소속감을 가졌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발해는 우리나라와 상당한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에 귀부한 발해인들이 굉장히 많으며
이중에는 여러 말갈 부족들도 있습니다.
 
발해인들은 멸망 후 거란 요나라, 여진 금나라 등지에서 
벼슬하고 활동하며 살기도 하였으나
 
고려에도 많이 귀부하였으며, 특히, 발해 스스로 고구려 계승국을 자처하였고,
고구려 부흥운동 및 고구려인들이 많았으므로
 
굳이 현대 국가들에서 본다면 한국과 밀접하다고 생각합니다.
따, 발해=현대한국이 아니라 한국이 중국보다는 더 발해와 밀접하다는 것이죠.
 
발해는 한국사의 범주 안에 있는 것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물길말갈 7부 중
불열말갈 동쪽은 옛 숙신이라는 기록이 별도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
불열말갈,호실말갈은 숙신의 무리로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흑수부의 경우는 제일 북쪽 흑룡강(아무르강) 지역인데
이들은 굉장히 자립적이며 당과 손잡고 고구려,발해를 견제하였습니다.
발해 전성기에 발해 영향 하로 들어가기도 했으나
발해 쇠퇴기 및 발해 멸망후 거란족에 정복된 숙여진과 달리
생여진으로서 생여진 수십여부들이 금나라,원나라,명나라를 거치면서
아무르강 유역에서 송화강유역으로 계속 이동합니다.

여진은 영어로는 주르쳰입니다.
[J]가 "반모음 이" 또는 "자음 지읒" 음가를 가졌는데,
숙신,직신,주신,주리진,조선과 주르첸,여진을 완전히 동일하다는 아니고
서로 가까운 관계에 있다고도 볼 수 있겠죠.
 
고려시대 동북쪽 동해안 갈라전지역(함경도일대)의 여진인들은
고려의 주현제 안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귀부하기도 하였는데 고려 조선 교체기에
조선 건국왕실이 동북면을 바탕으로 하였으며,
한민족 왕조에 우호적이었던 함경도,연변지역 여진족들과 긴밀했다는 점도 있습니다.
 
명나라 말기, 남하했던 생여진의 여러 부들 중에서
건주여진의 한 부가 스스로 여진은 우리의 근원과 다르므로,
여진족 명칭을 쓰지 말도록 하고
우리는 만주족이다라고 한 것이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입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