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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세종11년, 일본에 다녀온 통신사의 보고.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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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킬라칸
추천 : 2
조회수 : 1463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5/05/25 02:05:59
통신사 박서생(朴瑞生)이 시행할 만한 일들을 갖추어 아뢰기를,
“1. 신이 일본에 이르러 대마도(對馬島)로부터 병고(兵庫)에 이르기까지 적들의 수효와 왕래하는 길을 살펴보오니, 대마도와 일기주(一岐州) 사이의 내외의 큰 섬들과 지하(志賀)·평호(平戶) 등의 섬들은 적간관(赤間關) 이서(以西)의 적들이요, 사주(四州) 이북 조호(竈戶)·사도(社島) 등지는 적간관 이동(以東)의 적이온데, 그 군사가 거의 수만에 이르고, 그 선척의 수효도 1천 척을 넘어서, 만약 동서의 적이 서로 호응하여 일시에 군사를 일으킨다면 방어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들의 서쪽으로 향해 오는 길로는 대마도가 여러 적들의 총 집합장으로 되고, 적간관은 사주(四州)에 있는 여러 적들의 출입하는 문(門)이오니, 만일 서쪽으로 향하는 적이 있을 때에, 종정성(宗貞盛)이 그 백성들에게 영을 내려 급수(汲水)하지 못하도록 하고, 대내전(大內殿)은 적간관에 영을 내려 서쪽으로 나가는 것을 금지한다면 해적들은 왕래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지하·조호·사도 등지의 적은 대내전이 이를 주관하고, 내외(內外)의 큰 섬은 종상전(宗像殿)이 이를 관장(管掌)하고, 풍후주(豊後州) 해변의 모든 적은 대우전(大友殿)이 이를 다스리고, 일기·평호 등의 섬은 지좌(志佐)·좌지(佐志)·전평(田平)·호자(呼子) 등의 각전(各殿)에서 나누어 맡고 있으니, 저 모든 섬의 도주(島主)로 하여금 엄중한 금방(禁防)을 세우게 한다면 도적질할 마음이 생길 수 없을 것입니다. 대저 그 풍속이 예의(禮義)를 알지 못하여 조금만 뜻에 맞지 않아도 그 몸을 돌아보지 않고, 비록 어소(御所)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항거하고 좇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보건대, 어소와 수호(修好)하는 것이 비록 교린(交隣)하는 도리는 되오나, 해적을 금방하는 계책에 있어서는 오히려 미흡합니다. 또 일본은 구하는 바가 있으면 사절을 보내서 이를 청하고, 만약 구하는 바가 없으면 비록 신주(新主)를 하례하고, 구왕(舊王)을 조상하는 큰 예절이라 할지라도 예를 닦지 않습니다. 이제 신 등이 명을 받들고 갔는데도 접대하는 것이 또한 예대로 하지 않으니, 이는 아마도 그 나라 옛 역사에 쓴 바로 인하여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원컨대, 이제부터 국가의 부득이한 일과 보빙(報聘)하는 이외에는 사신을 보내는 것을 허락하지 마시고, 윗항의 여러 섬들의 도주(島主)에게는 보내는 것은 후하게 하고, 받는 것은 박하게 하여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고, 간간이 사신을 보내어 지극한 뜻을 돈독히 효유(曉諭)하여 해적의 금지책으로 삼도록 하소서.
1. 일본이 불교를 숭상하고 있으므로 교호(交好)하는 데 있어 증여할 물건은 불경(佛經)보다 나은 것이 없사오니, 각처에 있는 불경을 고찰 열람하고 그 성질(成秩) 여부를 살펴서 옛 것을 보충하여 성질이 되도록 하고, 이를 저장 비축(備蓄)하여 뒷날 통호(通好)의 자료로써 대비하소서.
1. 일본 농민에게 수차(水車)를 설비하여 물을 퍼 돌려 전답에 대는 자가 있기에, 학생(學生) 김신(金愼)으로 하여금 그 수차를 만든 법을 살펴보게 하였더니, 그 수차가 물을 타고 저절로 회전하면서 물을 퍼 올려 대고 있어, 우리 나라에서 전년에 만들었던 수차인 인력(人力)으로 물을 대는 것과는 다른데, 다만 물살이 센 곳에는 설치할 만하오나, 물살이 느린 곳에는 설치할 수가 없습니다. 수침(水砧)1431) 도 또한 그러하였으니, 신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비록 물살이 느리더라도 사람이 발로 밟아서 물을 올린다면 또한 물을 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 간략하게 그 모형을 만들어 바치오니, 청컨대 각 고을에 설치할 만한 곳에 이 모형에 따라 제작하여 관개(灌漑)의 편리에 돕도록 하소서.
1. 일본은 그 국도(國都)로부터 연해(沿海)에 이르기까지 돈[錢]을 포백이나 미곡보다도 훨씬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여행하는 사람들이 비록 천리를 가더라도 돈꿰미[錢緡]만 차고 식량을 휴대하지 않으며, 길가에 사는 사람들이 행려자(行旅者)들이 기숙할 처소를 설치해 놓고, 만약 손님이 올 것 같으면 서로 앞을 다투어 청하여 영접하고, 손님이 주는 돈에 따라 인마(人馬)의 숙식을 제공하며, 관량(關梁)에 있어서는 큰 강(江)에는 주교(舟橋)를 설치하고, 조그마한 냇물에는 누교(樓橋)를 설치해 놓고는 그 곁에 사는 자가 다리 세(稅)를 관장하고 있는데, 그 다리를 지나가는 손님에게 돈 10문(文)이나 5문을 징수하되, 다리의 대소를 참작하여 세를 징수하여 뒷날의 보수(補修) 자금으로 삼고 있사오며, 토전(土田)이나 주거(舟車)의 세까지도 돈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에, 돈을 사용하는 법이 광범위하여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노고가 없습니다.
1. 일본에서는 대나무로 큰 밧줄을 만들어 양쪽 언덕에 매어 놓고, 통나무를 깎아서 배를 만들어 대나무 밧줄에 등자[鐙]을 달아 배 위로 내려뜨리고는, 기둥을 세우고 들보를 가설하고, 널빤지[板子]를 죽 깔아 다리를 만들어 놓고는, 진리(津吏)로 하여금 건너는 세를 가볍게 징수하게 하여 후일에 교량이 낡아 허물어졌을 때의 보수 자금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한강과 임진강은 남북을 통하는 큰 관진(關津)입니다. 비옵건대, 이 예에 따라 다리를 가설하고 다릿세를 거두어서 무너지는 대로 즉시 보수하게 한다면, 다만 돈을 사용하는 법이 광범위해질 뿐만이 아니라 남북의 인마(人馬)가 험로(險路)를 걸어서 피곤해 쓰러지는 폐단도 또한 없어질 것입니다.
1. 원우(院宇)의 시설은 행려자(行旅者)들을 기숙하게 하기 위하여 된 것인데, 지은 이는 이미 죽고 그의 수즙(修葺)을 이어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햇수가 오래 되고 퇴락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애석함을 금치 못하게 하는 사평(沙平)·판교(板橋) 같은 원우가 많습니다. 근래 각 관사(官司) 및 교량을 영선(營繕)한 중들에게는 모두 관직을 제수하고 절을 주기 때문에 중들이 모두 이를 즐겨하고 있사오니, 원컨대 이제부터 각처의 길을 긴완(緊緩)으로 구분하여 사원(寺院)의 다소(多少)를 정하고, 중으로서 능히 보수하거나 창건할 수 있는 자를 택하여 주지(住持)로 삼아 원우를 나누어 관리하도록 하고, 수령으로 하여금 그 영건(營建)과 공판(供辦)의 능부(能否)를 고찰하여 감사에게 보고하게 하고, 감사는 다시 그 사실 여부를 답험하여 출척(黜陟)의 증빙으로 삼도록 하되, 만약 그 공로가 탁월하게 뛰어난 자가 있으면 이를 큰 사원(寺院)으로 올려 주어 뒷사람들을 권장하도록 하소서.
1. 이미 주지(住持)를 임명하였으면 묵은 미두(米豆)를 지급하여 행려자들을 공궤(供饋)하게 하되, 손님이 이르면, 그 손님이 들여놓는 돈의 다소에 따라 공궤하게 하고, 매 월말마다 그 돈을 관(官)에 수납(輸納)하게 하고 다시 미두를 받아 가서 공궤하도록 하며, 행려자들로서 쌀을 휴대하고 밥을 지어 먹는 자를 금하기를 계속하여 돈을 사용하는 법을 넓히소서.
1. 각처의 어량세(魚梁稅)는 사옹원(司饔院)과 사재감(司宰監)에 공상(供上)하는 것 이외에는 모두 돈으로 바치게 하고, 각도 염장(鹽場)의 소금 값과 각처의 선세(船稅)·그리고 외방(外方) 각 관사의 노비(奴婢)의 공물(貢物)까지도 면포(綿布)를 제외하고는 모두 돈으로 바치게 하여 그 용도를 크게 일으키도록 하소서.
1. 일본인의 풍속이 노소없이 목욕하고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큰 집에는 각기 욕실(浴室)을 설치하고, 여염(閭閻)마다 또한 여러 군데 욕탕을 설치하고 있는데, 그 욕실의 제도가 매우 잘 되어 있어 편리합니다. 탕(湯)을 끓이는 자가 각(角)을 불면, 이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다투어 돈을 내고 목욕을 합니다. 비옵건대, 제생원(濟生院)·혜민국(惠民局)·왜관 한증(倭館汗蒸)·광통교(廣通橋) 등지와 외방의 의원(醫院) 등, 사람들이 많은 곳에 모두 욕실을 설치하여 돈을 사용하는 법을 돕도록 하소서.
1. 일본 상가(商街)의 제도는 시장 상인들이 각기 처마 아래에다 널빤지로 층루(層樓)를 만들고 물건들을 그 위에 두니, 다만 먼지가 묻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쉽게 이를 보고 살 수 있었으며, 시중(市中)의 음식물들을 귀천(貴賤)의 구별 없이 모두 사 먹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시장은 건습(乾濕)할 것 없이 모든 어육(魚肉) 등의 식물들을 모두 진토(塵土) 위에 두고는 혹은 그 위에 앉기도 하고 밟기도 하오니, 비옵건대 운종가(雲從街) 좌우의 행랑(行廊)에서부터 동쪽 누문(樓門)에 이르기까지, 종루(鍾樓) 남쪽에서부터 광통교(廣通橋)에 이르기까지 모두 보첨(補簷)을 달아내고, 그 아래에 물건들을 진열해 놓을 층루를 만들어, 어느 간(間)은 무슨 물건을 둔 곳이라고 죽 편액(扁額)을 달아서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하소서.
1. 일본에 갔다 오려면 풍랑과 해적(海賊)을 만날까 두려워 낮에는 망(望)보고, 밤에는 경계하면서 마음을 잠시라고 해이하게 가질 수 없어, 반인(伴人)으로부터 격군(格軍)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도 노역(勞役)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이 없이 항상 스스로 삿대를 잡고 노를 저으면서 1주년이나 혹은 2주년 만에 돌아오니, 그 신고(辛苦)와 피로가 육로로 가는 것보다 배나 더하온데, 배 위에서 능히 인솔을 잘한다 하여 재차 혹은 삼차에 이르기까지 왕복한 자가 있어도, 혹 성상의 은례를 아직 입지 못한 자가 있으니 실로 민망한 일입니다. 원컨대 이제부터 사명을 받들고 갔다 온 자는 그 공으로의 차례대로 재품(才品)을 나누어서 천거하게 하고, 반인 이하까지도 모두 직(職)으로써 상(賞)을 주소서.
1. 신 등이 일본 박대(博大)에 도착하매, 왜인 망고라(望古羅)가 유구국(琉球國)에서 와서 말하기를, ‘피로(被虜)된 귀국 사람들이 근래 기근으로 말미암아 고향 생각을 더욱 간절히 하고 있는데, 유구국의 왕이 귀국에 미곡을 구걸하려고 정미년 6월에 50여 명을 찾아서 배에 실었다가, 역풍(逆風)으로 인하여 출발하지 못하고 마침 국란(國亂)이 있어 실행하지 못했다.’ 하옵기에, 신이 사정(司正) 등차랑(藤次郞)에게 말하기를, ‘네가 가서 데리고 오는 것이 어떠냐.’ 하니, 대답하기를, ‘만약 상명(上命)을 받는다면 내가 반드시 가겠다.’ 하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사람을 보내어 이들을 찾아오게 하여 다년간 고향을 그리던 쓰라린 정을 풀도록 하소서.
1. 사역원(司譯院) 생도(生徒) 이생(李生)이 말하기를, ‘감자(甘蔗)1432) 는 맛이 달고 좋아서 생으로 먹어도 사람의 기갈(飢渴)을 해소하게 되고, 또 삶으면 사탕(沙糖)이 되는데, 유구국(琉球國)에서는 강남(江南)에서 얻어다가 많이 이를 심고 있으며, 또 서여(薯藇)1433) 라는 것이 있어, 큰 것은 기둥만 하고 작은 것은 서까래만 한데, 역시 남만(南蠻)에서 얻어다가 이를 재배한다.’ 하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모두 채취해 오게 하여 그 재배를 널리 보급하도록 하소서.
1. 일본에서는 모든 금(金)·은(銀)·동(銅)·철(鐵) 등 진귀한 물품이 생산되는 곳에 방금(防禁)을 세우지 아니하고 그 지방에 사는 자로 하여금 대대로 채취하여 이익을 보게 하고, 나라에 바치는 세공(歲貢)은 일정한 수량뿐이고 다른 부역이 없기 때문에, 이를 주관하는 자가 태만하지 아니하여 보물의 생산이 무궁하여, 공사(公私)간에 모두 이익이 된다고 합니다. 원컨대, 이제부터 일본의 예에 의하여 모든 진귀한 물품이 생산되는 곳에는 금법(禁法)을 세우지 말고 평민들에게 그 이익의 독점을 허용하여, 세공(歲貢)을 제정하고 부역을 면제해 주어 길이 세업(世業)을 삼도록 하소서.
1. 왜적들이 일찍이 우리 나라를 침략하여 우리 인민을 붙잡아다가 노비(奴婢)로 삼고는, 혹 먼 나라에 전매(轉賣)하기도 하여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니, 그 부형과 자제들이 원통하여 이를 갈면서도 복수하지 못하는 자가 몇이겠습니까. 신 등의 사행(使行) 길에 정박하는 곳마다 잡혀 간 사람들이 다투어 도망해 오려고 해도, 그 주인이 가쇄(枷鎖)를 하고 굳게 가두어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진실로 민망한 일입니다. 일본에는 사람은 많고 먹을 것이 적어서, 흔히 노비를 팔아 먹고 있어 혹 남의 자제들을 훔쳐다 팔기도 하는데, 이는 허다하게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일기도(一岐島)는 지금 병란으로 인하여 양곡이 다하여 먹을 것이 떨어졌사온데, 내년 봄에 더욱 기아가 심하게 되면, 만약 도둑질을 하지 않을 것 같으면 사람을 팔아서 생활을 영위하는 자가 더욱 많을 것입니다. 근래 우리 나라의 금지로 인하여 연변(沿邊)에 와서 파는 자가 없어졌습니다. 그윽이 생각하건대, 값에 따라 원수를 갚는 것은 고금의 공통된 사의(事誼)인 것입니다. 저자들이 이미 잡아다가 부렸으니, 우리는 마땅히 저들을 사다가 천역(賤役)을 시켜야 할 것입니다. 원컨대, 이제부터 남자 10세, 여자 20세 이하는 모두 와서 팔도록 허용하고, 또 일본에 가는 자로 하여금 모두 사다가 영구히 노비로 삼아서, 백성을 위하여 원수를 갚는 의리를 보이도록 하고, 만약 ‘연변에 모여 살면 후환(後患)이 될 염려가 있다. ’고 말한다면, 깊고 먼 곳으로 전매(轉賣)하도록 허용하여 해변에 살지 말도록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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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수차 사용법이 우리나라에는 없어서 데리고 간 김신에게 그 원리를 알아보게 했는데, 일본 수차는 물이 떨어지는 힘을 이용해 수차가 저절로 돌아가면서 물을 퍼올려 논밭에 물을 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내나 강은 물살이 약하기는 하지만, 일본 것과 같은 수차를 만들어 발로 밟아 물을 퍼 올리면 두레박을 사용하는 것보다 힘이 크게 절감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수차의 모형을 그려 보내니, 그 모형을 본따 수차를 만들어 사용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면포나 미곡으로 물물교환을 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동전을 사용하기 때문에 먼 길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도 식량을 갖고 다니지 않고 동전만 허리에 차고 길을 떠난다. 또, 길가에는 여행자를 위해 잠자고 먹을 수 있는 집을 설치해놓고 여행자를 손님으로 맞고 있다. 여관 주인은 받는 동전의 가치에 따라 사람과 말에 편의를 제공한다. 강과 내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강과 내에 배를 잇대어 다리를 만들어놓고 건너다니는 사람에게 돈을 받아 생활하고 다리를 보수하는 비용으로 용한다. 일본은 토지세부터 다리 통행세에 이르기까지 모두 동전을 사용하는데 익숙해 무거운 짐을 지고 먼길을 가는 노고를 할 필요가 없다.



집집마다 욕실이 있고 마을마다 목욕탕이 있어 주민들이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다. 물 끓이는 사람이 호각을 불면 사람들이 동전을 내고 목욕을 한다. 우리도 제생원, 혜민국 등과 같이 의료기관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광통교와 지방의 의원 등에 욕실을 설치하여 몸을 깨끗하게 하고 또 돈을 사용하는 방법도 터득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일본의 상가는 상인들이 각기 자기 상가 처마 아래로 널빤지로 진열대를 만들어놓고 그 위에 물건을 진열해놓아서 먼지가 묻지 않고 손님이 물건을 보고 쉽게 고를 수 있다. 진열된 물건은 신분의 귀천 없이 누구나 살 수 있다. 조선의 시장은 마른 물건이나 젖은 물건을 구별해 진열하지 않고, 생선이나 육류 또는 채소를 모두 흙바닥 위에 두고 팔고 있어, 행인들이 물건 위에 앉기도 하고 물건을 밟기도 한다. 이제부터 종로에서부터 광통교까찌 상점 처마에 보첩을 달고 보첩에 단을 만들어 어느 칸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표시를 해 손님이 쉽게 물건을 보고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출처 :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2&mbsIdx=2504659&cpage=1&mbsW=&select=&opt=&keyword=


이거 역덕후들 사이에 꽤 유명한 떡밥이던데.....혹시 여기에 대해 잘 아시는 분 계신가요??
출처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2&mbsIdx=2504659&cpage=1&mbsW=&select=&opt=&key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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