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선 남대문시장으로 가서 가장 좋은 사시미칼을 샀다. 물론 박제용 칼이 많이 있긴하지만 등껍질을 지나 척추를 피해 비스듬하게 심장을 찌르기 위해서는 뾰족하면서 두꺼운 사시미 칼이 가장 적격이라는 생각에서다 흉터가 많은 가죽으로는 아름다운 박제를 만들수가 없다. 반항할 틈도 없이 한번에 생명을 빼앗아야 온전한 가죽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공동묘지나 병원에 가서 시체를 훔쳐오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런 시체들은 이미 피부조직이 괴사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박제를 만들어도 신통찮은 작품이 나올게 뻔하다
두번째로 중요한 일은 신선한 재료를 물색하는 것이었다. 손쉽게 사냥할 수 있고 흉터가 없어 아름다운 박제를 만들수 있는 재료… 그것은 뭐니 뭐니해도 어린아이가 제격이었다. 나는 어두운 밤이면 사시미칼을 품에 안고 놀이터를 돌아다니며 아직 집에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이 있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달을 보내고 두달이 다 채워질 무렵.. 드디어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간이라 인적이 없는 놀이터에 한 아이가 앉아 모래를 파고있다. 조그마한 등이 너무나 귀여워 보인다. 이렇게나 귀여운 존재가 나의 손으로 다시 창조될 수 있을거란 생각에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흥분이 된다.
사박 사박…… 나는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모래를 밟아갔다. 아이가 뒤돌아 보는 순간 나의 완벽한 가죽은 물거품이 된다. 아무런 반항도 없이 최대한 정교하게 등과 심장을 관통해야 하는 것이다.
사박 사박… 바로 3미터앞에 모래를 파느라 귀엽게 움직이는 아이의 등이 보인다. 마치 나의 발자국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는 듯하다. 나는 점점 더 천천히 그리고 더욱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 간다. 이제 바로 코앞이다. 아이의 등에 새겨진 하나의 점을 빠르게 관통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손을 높이 든다.
'야이 씹새끼야!!''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이 굳어버렸다. 눈에 벌겋게 핏발이 선 중년 남자가 아이스크림이 든 봉지를 내팽겨치며 짐승처럼 달려왔다.
젠장… 신선한 재료를 두고 너무 흥분한 탓이었다. 나처럼 냉정한 녀석이 주위도 제대로 살피지 못하다니.. 나는 무작정 달리고 달려 어두운 골목길 속으로 사라졌다.
# 어느샌가 풀벌레 소리가 귓가를 가득 매운다. 현재의 나는 깊은 땅속에 온몸이 묶인채로 묻혀있다.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갑자기 끓어오르는 복수심에 화가난다. 그 복수심은 나를 묻은것보다는 나의 즐거움을 빼앗은 데서 기인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녀석만 아니었다면 좀더 완벽한 생명을 창조할 수 있었는데. 내가 여기서 살아만 나간다면 그놈을 반드시 나의 재료로 삼아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