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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장편,브금](호러 판타지)럭키 나이트 3
게시물ID : panic_207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3
조회수 : 132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10/26 22:20:50
* A LUCKY NIGHT (운수 좋은 밤) * 억세게 운수 좋은 날 밤...... 아내가 실성을 하고, 아이는 사라지고, 사람들이 죽어가고, 나는 알 수 없는 곳까지 와 버리고...... 그 날 밤은 정말 내 생애 최고로 운 수 좋 은 밤! 가방은 예전에 누나의 집에서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었던 검은 색의 여행용 트렁크였다. 그리고 그것은 불길하다고 느꼈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듯, 입구가 굳게 잠겨져 있었다. 비밀번호 입력식 트렁크인지라 안을 확인하고 싶어도 확인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누나는 어쩌자고 저녁 늦게 날 찾아와서는 답답하고, 짜증나는 얘기들만을 늘어놓다가 급기야는 내용물을 확인조차 할 수 없는 이런 불길한 느낌의 가방을 남겨두고 가 버린 것인가. "당신 언제부터 주식 했어?" 그러나 주영은 가방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눈치였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가방을 내려놓으며 슬그머니 작업실로 향했다. "어...... 그냥 잠깐...... 나 일 많이 밀렸거든...... 먼저 자." "돈 많이 잃었어요?" 주영은 돈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나 못지 않게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아냐...... 잃기는...... 친구 놈이 돈까지 대 주면서 재미 삼아 해 봐라고 해서 잠깐 하다가 말았어."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무언가를 더 많이 물어 올 것만 같은 아내의 커다란 눈동자가 너무 부담스러워 더는 마주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어색하게 일그러진 미소를 지어 보이며 슬금슬금 방문을 닫았다.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에 비쳐진 아내의 하얀 얼굴은 자못 섬뜩하기까지 했다. 등줄기엔 식은땀까지 흐르고 있었다. 분명 내가 잘못한 것이었다. 주식을 한 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 사실을 아내에게 숨겼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적어도 아내는 내게 이런 식으로 뭔가를 숨기며 혼자서 꾸민 적은 없을 것이었다. 다시 만화 원고로 눈길을 돌렸으나, 일은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매형의 일도 무시하면 그만인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골칫거리였다. 도와주기도 싫고, 도와줄 능력도 안되었지만, 그렇다고 안 도와 주자니 누나의 처지가 너무 안됐고...... 쉽사리 답이 나올 수 없는 문제였다. 게다가 그 검은 트렁크는 도대체 왜 여기다가 두고 갔는가? 또 내게서 적지 안은 실망감, 또는 배신감을 느낀 듯한 아내의 얼굴...... 이런 것들을 생각할수록 머리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이성은 마비되어만 갔다. - 3 - 다음 날 아침부터 주영의 얼굴엔 확실한 변화가 있었다. 우선 나를 보고 웃어주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웃음이 많은 여자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찬바람이 불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을 이처럼 지속적으로 연출할 줄 아는 여자는 더더욱 아니었었기에 가슴이 좀 저려왔다. 단단히 골이 난 듯, 무표정한 얼굴로 나에게 시선조차 제대로 맞추지 않는 아내를 뒤로하고 출근을 하려니 발걸음이 무거웠다. 어제 밤 더 많은 얘기를 나누어서라도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었어야만 했다. 사무실은 여전히 원고 마감 임박으로 바빴다. 그러나 나는 P씨 만화 단골 주인공의 얼굴을 아까부터 이상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이상하게 그리고 싶어서 그렇게 그리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내 딴에는 온몸이 뻑적지근해질 만큼 진땀나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잘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다 그려진 만화 속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뭔가가 이상했다. 이를테면 주인공의 입이 너무 튀어나와 보인다거나, 얼굴형태가 예전보다 훨씬 길쭉해 보인다거나, 아니면 양쪽 눈의 크기가 다르게 보인다거나 하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시간도 모자라는 판국에 미칠 노릇이었다.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넘긴 것들은 지우개 질을 하는 과정에서 다시 내게로 넘겨지곤 했다. 아무래도 주식 부도 건에서부터 어제의 일들에 이르기까지 쌓이고 쌓인 불운의 기운들이 내 속에서 포화상태가 되어 버려 몸과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듯 했다. 이럴 땐 그저 휴식만이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감히 그런 얘기는 입밖에도 못 낼 상황인지라 더욱 머리가 터질 노릇이었다.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이미 자고 있었다. 시계는 이제 열 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고 텅 빈 주방에는 찬밥 한 그릇이 썰렁하게 식탁 위를 장악하고 있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찬밥 한 그릇 뿐이었다. 그 흔한 김치그릇도 하나 내 놓지 않은 상태였다. 별로 크지 않은 우리 집 식탁이 그렇게 크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내와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몇 번인가 다툰 적은 있었어도 이런 식의 냉기가 우리사이를 가로막았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나의 퇴근시간에 맞추어서 식탁 위에 덩그러니 찬 밥 한 그릇만을 올려놓고, 먼저 자고 있는 아내의 행동은 나에게 대한 처절한 응징임이 분명했다. 도가 지나칠 만큼 처절한 응징! 안방 문을 살며시 열어 보니 모로 누워 있는 아내의 등이 보였다. 어둠 속이지만 제법 똑똑하게 그 윤곽이 드러나는 아내의 등을 잠시 바라보고 있자니 새삼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주식 건에 대해서 숨겼던 게 그렇게 화가 날 일이란 말인가...... 자고 있는 아내에게 나는 복수라도 하겠다는 듯이 가스랜지에 불을 켠 다음 프라이팬 위에다가 찬밥과 마가린을 넣고 들들 볶기 시작했다. 마가린이 가열되면서 금방 지글거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주방을 벗어나 온 집안을 울려댔고, 나는 그 소리에 흥이라도 난 듯, 냉장고를 뒤져 양파와 당근들을 죄다 끄집어 낸 다음 뚱땅거리며 썰기 시작했다. 이어서 또 다른 가스랜지에도 불이 켜지며 쏴아, 경쾌하게 쏟아지는 물을 가득 받아낸 냄비가 그 위에 올려졌다. 잠시 후, 부스럭거리며 봉지를 뜯고 나온 라면이 그 냄비 속으로 들어가게 되자, 주방은 마가린 볶는 냄새에 이어서 라면냄새까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아무리 안방에서 자고 있는 사람이라도 청각과 후각 중 적어도 하나는 좀 짜증스러울 게 분명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슬쩍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것은 아내의 도가 지나친 응징에 대한 맞불 작전이었기에 별로 미안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냉장고에 자반 고등어가 없었다는 것을 아내는 다행으로 생각해야만 했었다. 그렇게 요란을 떨며 만든 음식들을 나는 반도 못 먹은 채 모두 쓰레기 통 속으로 처넣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아내의 얼굴은 분명 어제 아침보다 더 굳어 있었다. 이제는 웃음뿐만 아니라, 단 한마디의 말조차도 없었다. 어찌나 싸늘한 표정으로 아침을 차려 주던지 그것들을 먹었다간 배탈이라도 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차려주는 아침을 보란 듯이 손도 안대고 일어섰다. 아내가 말이 없으니 나도 굳이 아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말문을 열긴 싫었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아침을 거르며 현관을 나서려 하자, 아내는 완전히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이 되어 나를 무섭게 응시했다. 하지만 나도 그런 시선을 깨끗이 무시한 채로 등을 돌려 버렸다. 어제 아침때와는 달리 아내의 기분을 풀어 줘야겠다는 미안한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오히려 괘씸하다는 생각만 들뿐이었다. 그러나 역시 발걸음은 무거웠고, 발걸음만큼이나 머리 속도 무거워 일은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제 마감이 이틀 남았기에 모두들 손과 발을 성능 좋은 기계처럼 최고로 빠르게 움직여 대는데, 나의 머릿속은 점점 더 개판이 되어만 갔고, 손과 발도 거기에 맞추어 가고 있었다. "정신 좀 차리세요, 명호씨!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실장이 버럭 소리를 질러 댈 때야 비로소 나는 나의 원고를 제대로 살펴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두 페이지가 넘게 내가 그리고 있었던 것은 P씨의 주인공이 밥을 볶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죄송합니다. 요며칠 몸이 좀 안 좋다보니...... 정신이 오락가락 하네요." "뭐요?" 씨도 안 먹히는 변명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실장은 한심스럽다는 듯이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 식으로 이틀이 더 지나갔다. 그러니까 내 생애 최악의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던 그 기막힌 날의 저녁이 온 것이었다. 누나에게서는 그 날 이후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무슨 일인지 전화조차도 받질 않았다. 현관에서 거실로 자리를 옮긴 채 여전히 불길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그 검은 색 트렁크의 행방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나는 누나의 집으로 여러 차례 전화를 했었지만 전화는 통화중이던가 아니면 아예 받지를 않고 있었다. 도대체 누나는 뭘 한다고 전화도 받지 않는지, 매형은 어찌되었는지 하는 것은 사실 그렇게 궁금하지도 않았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내가 신경 쓰이는 것은 그 내용물을 알 수 없는 가방이었다. 어쩌면 그 가방이 주영이와 나의 사이에 벽을 쌓게 만든 장본인 것만 같아 그것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치밀었다. 아내와 나는 여전히 냉전 중이었다. 아침을 고스란히 마다하고 집을 나섰던 그 날 이 후, 아내는 내게 더 이상 밥을 차려 주지 않았었다. 그에 대해서 나도 뭐라고 일부러 대꾸를 하지 않았다. 아내가 내게 시큰둥해 하는 만큼 나도 아내에게 시큰둥한 척을 한 것이었다. 우리는 마치 누구 자존심이 더 샌가 하는 경기라도 하는 듯, 냉담하고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드디어 문제의 '그 날' 과 조우하게 된 것이었다. 그 날은 마침내 원고 마감이 끝난 날이었다. 나는 그 동안 수없이 많은 이상한 만화들을 그려내기도 했었지만 어쨌든 무사히 마감시간을 맞추는데 분명 최고의 공을 세운 건 사실이었다. 실장도 그 날만큼은 호탕한 웃음까지 지어 보이며 내게 수고했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으니. 저녁 여섯 시 무렵부터 시작된 사무실 회식은 아홉 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물론 피곤하기 그지없었던 나는 중도에서 몇 번이고 빠지고 싶었지만 사무실 식구들의 손길을 쉽게 뿌리칠 순 없었다. 오랜만에 적당한 취기에 사로잡힌 채,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가는데 문득 한줄기 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순간 아내 생각이 났다. 그 바람결에 나의 정신이 올바르게 돌아 온 것인가! 아내와 타인처럼 지내왔던 지난 며칠간이 갑자기 너무나 후회스럽고, 안타까웠다. 도대체 내가 어쩌자고 아내에게 그렇게 못나게 굴었던가...... 그 동안 심신이 너무 지치고 피로해서 정말 정신이 약간 미쳐 있었던 것인가...... 아내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느닷없이 가슴속을 휘젓기 시작하자 너무나 아내가 보고 싶어 졌다. 자존심 경기 따윈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아니 그런 경기 따위에선 내가 아내에게 백 번을 져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나의 생각이 급변하자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이제 원고 마감도 끝났고, 한 동안은 여유가 있을 것이다. 매일 일찍 퇴근해서 아내의 일을 도우며, 주말엔 아내와 여행이라도 가서 그 동안 못한 대화라도 실컷 나눈다면, 형편없이 실추되었던 나의 이미지도 어느 정도는 회복될 수 있을 듯 싶었다. 그렇게 하자...... 나는 뛸 듯이 가벼운 걸음을 내딛으며 머리 속으론 이미 어디로 여행갈 것인지를 즐겁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즐거운 고민은 집 현관문이 보이자 단번에 사라져 버렸다. 나는 멀리서 현관문을 보는 순간, 뭔가 만만찮은 사건이 터졌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즐거운 고민이 졸지에 끔찍한 고민으로 바뀌려는 순간이었다. 출처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폭풍이야기 님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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