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62년]망향의 恨 달래며 북녘서 스러져가는 '500여 국군포로들' 【서울=뉴시스】안호균 기자 = 5년전 탈북한 한진숙씨는 북한을 떠나오기 전까지 함북 무산군에 살던 국군포로 윤모 할아버지와 이웃으로 가깝게 지냈다. 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때 국군으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돼 아내와 두 아들을 고향에 남겨둔 채 북한에서 60년 넘게 살아왔다. 북한에서의 삶은 고달팠다. 국군포로라는 이유로 철저한 감시를 당했고 주변 사람들은 물론 북한의 가족들도 그를 외면했다. 윤 할아버지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허름한 반토굴집에서 해진 담요 한 장을 깔고 생활했다. 어머니가 남한 출신인 한씨는 자주 윤 할아버지를 찾아가 서로 마음을 의지하며 지냈다. 윤 할아버지에게 평생의 소원은 고향으로 돌아가 눈을 감는 것이었다. 그는 수차례 고향의 가족들과 연락을 취하기 위해 시도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한씨는 북한을 떠나오기 전날 윤 할아버지를 찾아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윤 할아버지는 한씨에게 고향 얘기를 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고향에 가기 전에는 죽을 수도 없다고 했다. 한씨는 윤 할아버지의 사연을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인추협)의 국군포로 생활 수기 공모전에 제출했다.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국군포로들의 참담한 생활상이 참가자들의 수기를 통해 생생하게 전해졌다. 윤 할아버지처럼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는 500여명으로 추정된다.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2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국군포로들은 여든살을 훌쩍 넘긴 고령자다. 인추협은 지난해 6월부터 민간 차원의 국군포로 생환 촉구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가족과 재회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국군포로 문제가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60여명의 생존 국군포로가 비공식적 경로를 통해 탈북에 성공했고 지금도 상당수가 고향땅을 밟기 위해 탈북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일부 국군포로는 탈북 도중 공안 당국에 붙잡혀 수용시설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브로커들의 돈벌이 대상으로 전락해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최근 한국전쟁 당시 미 7사단에서 근무하던 이갑수, 김용수 일병의 유해가 봉환돼 국립현충원에 안장됐지만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던 생존 국군포로 A씨의 생환은 실패했다. 국군포로의 유해가 북에서 남으로 봉환되는 첫사례가 나오자 이제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생존 국군포로들의 송환 작업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고진광 인추협 대표는 "브로커를 통해 들어오는 경우 실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금전적인 부분이 안맞아 브로커가 다시 북한으로 데리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죽은 사람은 돌아오는데 산 사람은 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냐"며 "제대로 된 국가라면 국가의 명령을 받고 전쟁에 참여했던 국군포로들의 생환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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