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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이야기-1. 지그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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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카요찡
추천 : 0
조회수 : 25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8/03 08:08:58
지그문트는 배아송의 아들로 오랜 시간 나에게 공부를 배운 학생이었다. 그의 성품은 유하며 화를 내는 법이 없이 항상 웃는 얼굴로 모든 이를 대했다. 그런 연유로 지그문트의 인생은 순풍을 탄 배처럼 큰 무리 없이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생업이라고 한다면 배아송이 하는 농부일을 잇는 것도 중요하지만 천부적으로 가진 그 호기심이라는 재능 때문에 나는 무리하게 학자의 길을 권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그문트 힘쓰는 일보다는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하고 설득을 하는 일에 더 익숙했었다. 

 지그문트가 12세가 되던 해에 나는 그를 내가 초청 받은 왕실 연회에 함께 데려 갔다. 당시 귀족들 사이에서는 어쭙잖은 수학 올림피아드를 여는 찰나 였기 때문에 나는 거기에 지그문트를 참가시킬 작정이었다. 그러나 예상 대로 많은 귀족들은 지그문트가 평민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참가를 거부하고 나섰다. 물론 이런 상황도 어렴풋이 짐작은 했기 때문에 지그문트의 귀에 들리지 않게 처리를 했고 처음부터 맛있는 것을 먹여 주겠노라고 한 차 였기 때문에 나는 조용히 물러섰다. 하지만 이런 내 모습에 왕은 못내 미안한 눈치였다. 

 그리하여 이듬해에는 나의 입양아라 하며 지그문트는 명실공히 귀족이기에 그 같잖은 올림피아드에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간단한 이차방정식에도 머리를 싸매던 인간들은 자신보다 적게는 10살에서 많게는 20살이나 어린 13세의 어린 소년이 올림피아드 문제를 누구보다 빠르게 척척 풀어내는 것을 보고 화가 났으리라. 심지어 작년에 평민이었던 녀석이 이제는 귀족으로 나타나 화려한 대뷰를 하는 것이 아주 못마땅했으리라. 

 예상대로 지그문트는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나는 지그문트의 안위를 걱정하여 일부러 지그문트가 많이 실수했던 제곱근을 내버렸다. 물론 상대편으로 나온 리온가의 남작에게도 상당한 난이도의 문제였겠지만 올림피아드의 특성상 지그문트가 먼저 오답을 말해버리면 리온남작이 승리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안일함이었다. 지그문트는 불행하게도 그 문제를 너무도 쉽게 풀었고 그대로 우승을 해버렸다. 차라리 나는 작년에 이 아이를 소개하지 말았어야 했다. 

 평민출신에게 졌다는 것은 귀족이라는 허울만 좋은 껍데기들에겐 낯뜨거운 상황이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불안한 그림자들을 느끼고 황급히 지그문트의 손을 잡고 왕실을 나섰다. 빠르게 성을 나서며 당분간은 나 역시 조심해야함을 느꼈다. 

 어차피 연구 목적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발길 닿기 어려운 숲속에 살았기 때문에 이곳까지 수고하며 찾아올 녀석들이 아니라 생각했고 한동안 나 또한 조용히 지내면 잊혀질 것이라고 믿었다. 내 예상은 반은 맞았다. 

 지그문트에게 학자의 길을 권하고 가업을 뺏은터라 선택의 여지 없이 그를 왕실 아카데미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19세라는 많지 않은 나이로-이미 15세에 아카데미에서는 비교할 상대를 못 찾을 수준이었으나 그에게 칼이 겨누어질까 두려워 일부러 시기를 늦추었다.-아카데미에 입성한 그는 나의 당부로 한동안은 특출난 모습 없이 조용히 녹아들었다.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귀족이라는 것들은 가진 특권에 비해 배포가 한없이 작다 못해 없는 족속들이었다. 리온남작의 자식은 자신의 아버지가 겪은 치욕을 잊지 않았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리온가는 원래부터 무신의 가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백작의 하위에서 평민들의 세를 빼앗는 양아치 족속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최근에 들어서야 연줄을 이용해 아카데미에 머리를 들이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천운이 따랐는지 현 리온남작은 나름 머리가 좋은 편이라 두각을 나타내긴 했지만 그 뒷사정이 내 귀를 거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애초에 아카데미라는 것은 소위 등용문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실상은 더러운 매관매직의 온상인 것이다. 물론 그 때문에 고문이라는 자리를 내치고 내가 산에 틀어박혔지만 어쩌면 내가 처음부터 이 아카데미라는 더러운 거지소굴을 해체하고 물러났어야 맞았을지도 모른다. 

 어쩃든 그런 식으로 아카데미에서 나름 입지를 다진 리온가인지라 리온가의 자식인 발라스가 지그문트를 인지하자 마자 사태가 벌어져 버렸다. 지그문트가 또래보다 신장이 작은편은 아니지만 기사가문 출신인 발라스에 비해선 압도적으로 근력이 부족했다. 발라스는 지그문트가 평민출신임을 알리며 괴롭히기 시작했고 그 괴롭힘을 통해서 오히려 인기를 얻고 무리를 만들어버렸다. 발라스의 인생에서 지그문트는 그야말로 주신 라할의 인도였을 것이다. 

 지그문트는 지나치게 배려심이 깊었다. 그 수렁에서 나에게 편지 한 통만 보냈다면 모든 일이 해결될 수 있었고 총명한 그가 이 사실을 몰랐을 확률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알고 있었다. 지나치게 총명했기에 내 귀에 이 사태가 들어가게 되면 발라스는 물론이고 리온가가 아카데미에서 어떤 취급을 당할지 뻔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인간에게까지 배려를 하는 소름돋을 만큼의 선함이 그에게는 있었다. 

 분명 근력자체는 밀렸겠으나 워낙 유전적 골격이 튼튼한 아이인 지라 그 모든 괴롭힘을 견디며 악한 마음따위 없이 묵묵히 아카데미에서의 4년을 버텨냈다. 그리고 나에게 돌아왔을 때는 봄 치고는 너무도 후덥한 날씨임에도 졸업가운을 벗지 않았다. 어리석은 나는 그를 그렇게 다시 성으로 보내버렸다. 

 처음 지그문트는 아카데미에서의 평범한 성적 덕분에 루엔자작의 성으로 가서 재산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루엔자작은 개국공신인 루엔 투크만의 자손으로 원래는 후작가였으나 영토 대부분을 다른 귀족에게 넘겨주며 자작이라는 계급으로 조용히 지내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청렴하기 그지 없으며 그 긍지가 높아 평판이 아주 좋았기 때문에 나는 비록 자작가였지만 아주 기분 좋은 축하를 해주며 지그문트를 보냈다. 

 대대로 이어져오는 성품이 있는지라 루엔자작은 지그문트의 출신에 얽매이지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에게 학자로서의 대우를 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그문트의 총명함을 알게되고 경영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루엔자작은 전에 없던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청렴이라는 가문의 이념을 잊지 않고 그 재산을 배풀었다. 그러자 타 영지의 사람들이 하나 둘 여유가 되는 대로 이주를 하기 시작했다. 루엔가가 자작이 된 후에 다시 없을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욕심 많은 돼지들은 그것을 시기했다. 당연한 이치였다. 그렇다. 인생이라는 놈은 너무도 잔악무도한 놈이기 때문에 인간이 방심하는 그 행복의 순간에 교묘하게 비집고 들어올 날카로운 비수를 숨기고 있다. 그리고 내가 안심하고 지그문트가 안심한 그 찰나에 그 비수를 웃으며 꽂는다. 

 상황은 급변했다. 반역을 준비한다는 루머까지 도는 팔라파노공작이 루엔자작에게서 지그문트를 빼앗아버렸다. 명백히 뺏겼다. 팔라파노를 알고 있던 나는 그 소식에 황급히 지그문트를 만났지만 나로서도 어찌해줄 것이 없었다. 그저 조심하라는 말 밖에 하지 못했다. 그런 나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그는 환하게 웃으며 '반드시 그 곳을 행복한 땅으로 만들겠습니다.'라며 호언장담을 했다. 안심하라는 듯 내 손을 꼭 붙잡았다. 그리고 지그문트는 그곳에서 분명히 고심했을 것이다. 수 많은 평민들이 가축취급을 당하는 것을 보고 선한 그의 마음에 처음으로 불꽃이 피었으리라. 그러나 그는 안일했다. 상황이 변하면 공작도 변하리라 믿었던 것이다. 

 지그문트는 작농법부터 바꾸었다. 모종을 연구하고 수확체계자체를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물론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처음엔 지출을 줄이는 곳에서 시작해 5년이라는 세월을 바쳐 드디어 청사진을 실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성공했다.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확량과 풍작으로 공작의 영토는 환희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 한희는 잠시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사라지는 별동별처럼 찰나의 시간만에 사라져 버렸다. 

 풍작을 했음에도 평민들의 손에는 남는 것이 없었다. 끔찍한 시간이었다. 결국 평민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물론 계획적이지는 않았다. 충동적이었으며 그 만큼 중구난방이었다.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공작은 그런 평민들을 모조리 잡아서 일벌백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민들을 벌한 다음 지그문트를 타겟으로 잡았다. 

-니가 농민들 배를 부르게 해서 난폭해진 것 아니냐! 
-먹을게 넘쳐 힘이 남으니까 이런 작당을 하는 것이 아니냐! 

공작의 비난은 원색적이며 아무런 논거도 없었으며 사악한 억지로 가득했다. 형식적 재판을 연 후에 그는 지그문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안타깝게도 공작의 영토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나는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나를 은인으로 여기던 배아트릭이 아니었다면 재판소식조차 듣지 못했으리라. 어찌되었든 나는 재판 소식을 듣자마자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내가 살던 곳은 후미진 곳이다. 배아트릭의 전신이 닿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이미 모든 일이 끝났으리라. 심지어 내가 그곳에 도달하는 시간까지 생각한다면 암담할 뿐이다. 주검이라도 챙겨야 하는 마음으로 길을 떠나며 배아송에게 깊은 사죄를 해야만 했다. 배아송은 분노했지만 먼저 서둘러 떠나달라고 했다. 그리고 반드시 돌아와 달라고 했다. 살아있는 아들의 손을 잡고. 

 불행이라는 것은 절묘한 놈이다. 수 많은 파편들을 삶의 곳곳에 뿌린 후 그것들을 하나하나 기가막히게 모아서 작품을 보여준다. 내가 이렇게 먼 곳에 산 것 부터, 그를 학자로 키운 것, 왕성으로 데려간 것, 올림피아드에 나가게 한 것, 아카데미로 보낸 것, 루엔자작을 만난 것.....그 어떤 것에서도 그 불행이라는 놈이 뿌린 조각들이 존재하는 듯 했다. 나는 침울했다. 

 지그문트는 내가 처음으로 애정을 가진 제자였다. 배아송이 그의 육체적 아비라면 나는 지그문트의 정신의 아비다. 여정을 하는 동안 내 속은 억장이 무너졌다. 마치 당장이라도 눈 앞에 그의 주검이 있는 것 처럼, 혹시라도 그 주검이 훼손되기라도 한다면.....나는 침울함을 떨칠 길이 없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혜의 스승으로 칭송하는 이 나조차도 사랑하는 제자의 죽음 앞에선 한 없이 나약하고 무능한 노인에 불과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내가 학자가 아니었다면. 그 마을에 머물지 않았더라면.....아카데미의 문을 닫았더라면......수 많은 과거의 그림자들을 짓밟고 또 욕을해도 슬픔은 달래지지 않았다. 

 그렇게 보름이라는 시간을 거쳐 간신히 공작의 영토에 도착했을 때 신비로운 고요함이 나를 맞이했다. 성벽에 나부껴야할 깃발들이 없었다. 나는 알 수없는 기대를 안고 고삐를 움켜쥐며 성안으로 바쁘게 말을 몰았다.

 지그문트는 사형이 선고된 즉시 준비했던 탈출로로 급하게 탈출했다고 한다. 그는 이미 평민들이 붕기를 일으킨 시점부터 탈출루트를 계획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몇 남지 않은 결사대들과 접선한 다음 치밀하게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이미 농법개선을 위해 영토내 모든 지형지물을 조사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변수도 허용하지 않았다. 
 
 지그문트는 그들에게 이렇게 전했다고 한다. 

-살기위해 싸울 자신이 없다면 살리기 위해 싸워라. 

 수뇌부를 잃고 전의를 상실했던 평민들은 그 말에 마음이 움직였을 것이다. 평생을 짓밟히며 살아온 그들의 눈에는 짓밟히며 살아갈 자신들의 자식들이 보였으리라.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한 지그문트의 전략은 역시 성공적이었다. 오합지졸이었던 그들에게 전의를 불어넣고 전략을 주었다. 그가 지시한 모든 게릴라전은 그가 예상한 만큼의 피해만 정확하게 입었으며 그가 예상한 만큼의 피해를 정확하게 주었다. 

 공작의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패전에 패전을 연속하자 이탈자들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공작은 협상테이블을 마련해 지그문트를 불렀다. 물론 함정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지그문트는 이것 마저 알고있었다. 그리고 그는 평민들의 수장인 화넬에게 협상이 이루어질 건물을 불태우라고 지시했다. 그들은 모든 무기를 녹여 퇴로를 차단할 방벽을 만들었다. 3일에 걸친 준비가 끝나고 대망의 날이 왔다. 

-지그문트님,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심이 어떠합니까?
-화넬, 내가 처음 여러분들과 만나 한 이야기를 기억합니까?
-네......
-여러분들은 그 말을 듣고 싸웠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싸웠습니까? 
-.......

나에게 무릎꿇고 울먹이던 화넬은 그날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해주었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길바닥에 주저앉은 체 그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제 눈에도 보입니다. 이 땅에 아이들이 고통받는 모습이. 

지그문트의 말에 아무도 대꾸할 수 없었다고 한다. 화넬은 오열했다. 나는 허탈함에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 지그문트는 이 땅에 남은 이들에게 죄책감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 죄책감으로 자신의 희생이 만든 이 평화와 자유를 지켜나가길 바랬을 것이다. 나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를 존경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괴팍한 인생 속에서도, 고통받던 시절 속에서도 인간의 본성이 착할 것이라는 믿음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죄책감이 이 평화를 지켜줄 것이라는 그 다운 동화같은 생각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지그문트는 모두를 조용히 둘러볼 뿐 단 한마디 말도 없이 그 곳을 벗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약속의 그날 스스로 그 곳에 걸어 들어갔다. 병사를 데려오지 말라는 요청을 하면서 입구쪽엔 경비를 배치하지 못하도록 했다. 애초에 매복을 생각했던 공작은 혼쾌히 승락하여 악어의 입을 벌려 지그문트를 맞이했다. 지그문트가 건물에 들어간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약속했던 핸드벨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그리고 거사는 속행되었다. 

 불길이 멎은 후에 불에 탄 시신 속에 어떤 것으로 보이는 목이 잘린 시신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 지그문트는 그것까지 예상 했으리라. 불에 타 죽는 것보다 목이 베이는 것을 택했을 것이다. 그가 그런 선택을 했을 수 많은 이유들이 떠오르자 나는 또 다시 울컥했다. 화넬은 결국 잘린 목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매복병사의 수에 놀랐다고 한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모든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다시 조용히 말에 올라타는 것을 본 화넬은 크게 외쳤다. 

-이 곳에 지그문트님의 동상을 세울것입니다!

 암, 그래야지. 그렇게라도 해야지.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지그문트의 동상이 아닌 불타는 건물의 상과 비석을 만들라 했다. 그리고 이듬해에 반드시 확인하러 오겠노라 했다. 속으로 쓴 눈물을 삼켰다. 그들의 죄책감을 덜어주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지그문타가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배려심이 많은 그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날밤을 보낸 것은 그들을 배려하는 일보다 이 평화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그문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난다. 나는 지금도 지그문트의 이름을 생각하면 심장에서 쓴 눈물이 나와 온 몸의 동맥을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 그 땅은 루엔자작이 백작이 되어 다스리고 있다. 원래의 영토는 그의 아들이 물려받았으며 국왕은 지그문트가 공작을 시해한 것을 왕족살해가 아닌 반역을 처단한 공으로 평가하며 그의 위령비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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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그문트는 닫히는 문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방 안에는 무장을 하지 않은 시종 둘과 공작이 있었다. 공작의 맞은편에 앉으며 지그문트는 말했다.

-이 붕기는 공작님께서 조금만 아량을 베푸시면 사그라 들 것입니다. 
-여전히 건방진 놈이구나. 

공작은 지그문트가 앉고 모든 창문에 빗장이 확실하게 잠긴것을 확인하며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내 너에게 베풀 아량이 하나 있다. 

공작은 신이나서 낄낄거리며 손짓을 했다. 그러자 방안 여기저기에서 숨어있던 기사들이 나오고 무장을 하지 않은 것 처럼 보였던 시종 둘이 지그문트를 빠르게 포박했다. 

-역시, 당신에게 마지막 기회따윈 필요 없었군. 

지그문트는 포박하려는 시종들에게서 몸을 틀어 벗어나 품속에서 핸드벨을 꺼내 빠르게 흔들었다. 

-네 놈! 뭐하는 짓이냐?!

이상함을 느낀 공작이 오치자 지그문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네놈에게 베푸는 마지막 아량이다. 

화넬은 건물안에서 들려오는 핸드벨 소리에 바쁘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시민들이 튀어나와 건물 주변에 숨겨놓았던 잘 마른 짚들을 가져와 건물 옆에 놓았다. 그리고 곧 수 많은 화병과 횃불이 짚더미를 향해 날아왔다. 

불은 예상보다 빠르게 퍼졌고 화창한 날이 이어졌던 며칠에 목조건물은 기름에 담금질 한 듯 활활 타올랐다.
 
 밀어닥치는 열기에 건물 안 사람들이 당황했으며 몇몇은 창문을 열고 탈출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급한 그들의 손은 쉽게 빗장을 벗길 수 없었으며 가까스로 그들이 빗장을 열었을 때는 오히려 그 창문을 통해 폭발하듯 불길이 들어와 버렸다. 공작은 당황하며 분에 못이겨 무장한 병사의 칼을 빼았아 들었다. 그리고 지그문트는 무엇이 신나는지 그 광경을 미소지으며 바라보았다. 공작은 안광이라도 나올 듯한 눈길로 지그문트를 쏘아보며 그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렸다. 지그문트의 안배는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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