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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剝製)3
게시물ID : panic_208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풀뜯는사자
추천 : 14
조회수 : 368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1/10/27 21:49:35
클로로포름…

이렇게 안전한 살인도구를 두고 나는 무슨 멍청한짓을 했단 말인가?

가끔씩 박제를 해달라고 살아있는 동물을 데리고 오는 손님이 있었다.
그것은 주로 곰처럼 큰 동물이었는데 먹이값을 감당하지 못해 박제로 만들어 팔아버릴 요량으로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럴때면 클로로포름을 사용하곤 하였다.
약간의 과용으로도 웬만한 동물은 아무런 저항없이 편하게 죽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영화에서 나오는 손수건 마취는 바로 이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것이리라…

아무튼 나는 집에 앉아서 편하게 신선한 재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집에 초인종을 울려대는 기독교인이나 외판원들은 모두 나의 훌륭한 먹잇감이 되었다.
잠깐 들어온 틈을 타서 클로로포름에 푹담근 솜뭉치로 입을 막고 1~2분만 기다리면 
잘차려진 밥상처럼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없는 훌륭한 재료가 내눈앞에 놓이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편안한 사냥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클로로포름이 에테르보다 훨씬 강한 마취제이긴 하지만 코에 살짝 댄다고 해서 영화처럼 순식간에 정신을
잃지는 않는다.
그럴때면 여지없이 재료들과의 몸싸움이 벌어졌는데 박제란 직업으로 단련된 나의 손아귀를 벗어나
도망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
우리는 고아원에 버려졌었다.
어머니는 곧 데리러 오겠다는 말한마디를 유언으로 남기고 다음날 한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경찰을 통해 그 소식을 전해들은 나와 내동생은 현실성 없는 현실에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에 형제는 평생 흘릴 눈물을 모두 쏟아 버릴기세로 몇시간을 울어 대었다.
참다못한 고아원 원장이 몽둥이를 들고 나타나기 전까지..

고아원은 항상 음식이 부족하였고 폭력은 풍족하였다.
우리는 먼저 들어온 녀석들의 텃세와 원장의 학대를 고스란히 받아내어야만 했다.
하지만 냉정하고 강한 성격을 타고난 나는 지옥같은 고아원생활에 그럭저럭 잘 적응해 나갔다.
문제는 동생이 나와 다르다는 데 있었다.
영양실조와 스트레스로 해골처럼 변해가는 동생을 보다 못한 나는 결국 동생을 데리고 그곳을 탈출해야만 했다.

우리가 처음 자리를 자리를 잡은 곳은 어느 외딴 다리밑의 움막이었다.
어떤 노숙자가 버리고 간 곳인지는 몰라도 우리형제가 지내기엔 이보다 훌륭한 곳이 없었다.
쓰레기통을 뒤져 가져온 빵쪼가리와 생선대가리는 우리의 만찬이었다.
폭력이 없는 자유가 존재하는 이곳에서의 생활은 너무나도 행복하였다.

하지만 불행은 핫도그 하나에서 시작되었다.
움막에 누워 내가 가져오는 음식만을 기다리는 동생에게 단 한번만이라도 제대로된 음식을 먹여주고픈 욕심이 그렇게 큰 죄악이었을까
훔친 핫도그 세개를 움켜쥐고 도망가던 나는 발빠른 주인에게 잡혀 경찰서로 끌려갔다.
경찰은 나의 비명과도 같은 호소를 무시한채 유치장에 3일을 가뒀다.
아마도 도둑거지소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라 여겨서 였을 것이다.

나는 유치장에서 풀려나자마자 고삐풀린 짐승처럼 동생을 부르짖으며 달렸다.
'분명히 쓰레기통을 뒤져서 음식을 찾아 먹었을 거야…'
'아무리 약해빠졌어도 근처 쓰레기통을 뒤질 힘은 있었겠지..'
나는 끊임없이 자신을 위로하며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움막에 도착한 내가 발견한건 내 동생이 아니엇다.
어미의 먹이를 기다리다 굶어죽은 아기새처럼…
잔뜩 웅크린채로 혀를 빼물고 죽어있는 동생의 껍데기.
동생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신의 피조물에 대한 파괴욕구는 아마 그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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