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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광주사태
게시물ID : sisa_210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잘봐라
추천 : 7/20
조회수 : 357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06/03/30 22:42:08
지금에 와서 거듭 생각해봐도 광주 사태는 순수한 민주항쟁이 아니였다, 자유투사이며 민주투사라는 말은 중간에 덧 쒸워진 좌익들의 음모로 보며 북한 김일성과 남한 김대중간의 입김에 의해 져질러진 폭거로써 봐야 한다. 5.18 광주사태의 원인은 김일성 주체사상에 맹종하던 조선, 전남 대학생들과 종교인, 일부 좌익노선상에 놓여진 부류로 부터 김대중 구명운동과 관련되어 일어나다가 점차적으로 전국 프락치들의 사주에 의해 계엄령을 풀고 권력선상에 오르지 말았어야 할 전두환 보안 사령관과 12,12.사태를 주도한 신군부세력 퇴진 운동으로 비화 되었다. 이때까지는 그런대로 좌익계열들이 전두환의 권력침탈행위에 반하는 운동으로 볼수 있었겠지만 이는 북한 김일성이가 생각한 그대로의 활동을 광주학생과 시민들이 동조 하므로써 사태는 확산되었고 당시 계엄령하에 있었던 상황에서 경찰력의 폭거저지를 막지 못하자 계엄군을 동원 함으로써 시위대가 예비군 무기고를 탈취 하고 군장비를 만드는 아시아 공장까지 탈취한뒤 명실공히 무장세력으로써 걷 잡을수 없는 사태까지 치달았다. 이를 막기 위한 경찰력은 중과부적이였고 이를 대신해 진압군인 특전사를 투입하게 되었다.
특전사를 투입하자 마자 좌익들의 마타도어는 극을 이루고 이를 듣는 일반 시민들에게 봉기하도록 선동 선전 함으로써 불난집에 구경꾼 모여들듯 인의장막속에 무장세력들이 끼어들어 그 피해는 속출 하게 된것이다.
피해자중 이들에게 거창한 민주화 열사 칭호를 받을만한 일도 하지 않은 단순 구경꾼에 불과한 남녀노소 할것없이 청소년이나 아이들도 있었고 주거부정에 무직자도 있었다.
후에 이러한 피해를 가져오게한 자들은 거의 다 살아서 김대중 정부 앞잡이 역활을 했고 노무현 정치 세력화 되었다. 

차후 5.18 광주사태를 재 조명해서 어떤 세력들이 민주화 운동으로 만들었느냐에 따라 반전 될수 있는 사건이다. 
구경만 하다 희생을 당한 사람들한테는 죽어서 민주화 열사 칭호 받아 뭐하나.
이러한 희생자를 업고 현 좌익 정부를 세운 김대중,노무현 정권 어부지리 정권탈취를 전두환과는 달리 민간봉기해서 자신의 야망을 성취했다.
이런 반역자 들을 국민적 심판의 차원에서 5.18이 민주화 투쟁이 아니라 김대중 사주에 의한 국가변란 사태임을 꼭 밝혀야 한다. 

그들이 얘기하는 민주화 투쟁은 북한간의 일종의 담합행위에 있어서 합법적으로
정권을 세우려 했을뿐만 아니라 북한을 동조하는 차원을 떠나 그들에게 자금을
퍼 줌으로 해서 그 돈으로 무엇을 했는가하는 중요한 문제에 와 있는 것이다.

비록 동포로써의 동정이 아니라 김정일 체제를 굳건히 해 주는 결과를 낳았고
그런 체제로 인한 북한 동포들에게는 보다 혹독한 댓가를 맛보게 해줬다는 얘기다. 이렇게 만든 장본인들이 어찌 민주화의 기수가 될수 있으며 그들이 출세의 길을 열어준 광주사태가 어찌 민주화 운동이라고 확언 하는가.

지금도 국가 보안법에 감옥을 들락거린 자들이 정부 요직은 물론 다양한 부처에
서 활동 하는것을 보았을때 이들이 국가전복세력이 아니고 누가 반역의 무리라 할수 있는가. 39살에 3급 공무원을 하지 않나 그런 자가 살인을 하지 않나 

이래 놓고도 민주화로 치장하고 속내는 북한 김정일의 똘마니 행세하는데도
광주사태가 민주화 일환이라고 했던가?
3공때 좌익질한자들 처벌했다해서 그 인간들이 정권 실세로 떠오르자 이러한 폭거를 민주화운동이라고 조작한 실체를 분명 밝히고 반드시 이들을 처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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