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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월, '혁명동지회' 단체 사람들이 이승만 찾아가 면담한 내용
게시물ID : history_211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esert_Fox
추천 : 6
조회수 : 62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6/03 12:35:54
이승만 방문기.jpg
이승만 방문기2.jpg
이승만 방문기3.jpg



http://www.nl.go.kr/nl/search/bookdetail/online.jsp?contents_id=CNTS-00069203832



잡지 '혁명'. 1946년 1월호 (창간호)에서 '혁명동지회'라는 단체 사람들이 이승만과 면담한 내용입니다.


'혁명동지회'는 해방 당시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가 석방된 정치범 출신(독립운동가)들이 결성한 단체입니다. 이 잡지에 나온 인터뷰 내용에서는 이승만에 대한 존경과 기대감으로 가득찬 면담자들이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이 이승만의 판단을 그르치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더군요. '안전한 미국'에서 30여년이나 살아온 이승만은 도대체 누가 친일반역자이고 누가 애국자인지 조차 구별하지 못한다고 이 잡지내용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 이승만은 귀국하자마자 미군정으로부터 '3가지 권한'을 얻어냈었죠.(첫번재는 자신이 머물 집인 돈암장 받은것.-'야사'에 따르면 미군정 존 하지 중장이 처음에 이승만에게 덕수궁 석조전에 머물 수 있도록 했는데, 이승만 자신이 거절했다고 하더군요.- 2번째는 자신의 자가용격인 캐딜락 차량 얻은것. 세번째는 라디오방송국에서 매일 1시간씩 자기가 진행하는 방송 프로그램 연설권한 얻어낸것.. ) 귀국 직후~1945년 12월까지만해도 이승만은 국내에서 좌,우 성향을 떠나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상당했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잡지 내용에 있는 '혁명동지회' 단체 회원들이 순박한 마음을 가졌다고 느끼더군요. 그래서 한번 이 내용 번역해 전문 옮겨 정리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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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박사 방문기


맑고 개인 날이었다. 이른 봄날과 같이 따스한 엷은 햇빛이 등에 숨어든다. 깨끗이 청소된 돈암장 요소요소에는 무장한 광복군의 젊은 용사들이 경계하고 있다.

산을 등지고 자연과의 조화에 가진 각도로서 머리를 쓰고 세밀한 주의 아래 세워진 서양식 건물들은 묵묵히 세기적 혁명사의 엄연한 전당이 되려 했었다.

보드랍게 젖은 산길을 걸어 오르면 맞은편의 연못과 바위 사이에 아직도 생생히 클로바와 난초들이 위대한 우리 민족의 불굴한 의지와 굳세인 투쟁적 승리를 축하하는 듯하다.


12월 7일 오전 10시 '8.15 출옥혁명동지회'를 대표한 우리 일행 네 명은 그동안의 침묵을 깨뜨리고 여기 이승만 박사를 찾았다.


매일 수십 명의 방문객이 있다 하며 이날도 벌써 20명에 가까운 경향 인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약 30분 후 우리는 럽은 조선식 방에서 하이얀 백발에 가벼운 회색두루마기에 흰 버선을 신으신 박사를 모시고 앉았다.


"오랜세월 해외에서 많은 고초를 겪으시며 우리 민족과 조국해방을 위해서 싸워주신 데 진심으로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찾아와 뵙고 싶었습니다만 선생님께서 몹시 바쁘신 듯해서"


"바쁘실 텐데 여러분이 이와 같이 찾아와주니 매우 고맙소. 그런데 여러분들은 무슨일을 하고 있소?"


"저희는 8월 15일의 해방에 감옥에서 나온 출옥 동지들끼리 뭉쳐서 8.15출옥혁명동지회라는 모임을 통하여 미력이나마 건국에 초석이 되었으면 하고 힘쓰고 있습니다. 회원은 1399명입니다."


"나 그 회원에 하나 넣어주오. 나도 7년동안 감옥에서 고생해봤소. 그러나 당신들은 19년, 15년 또는 6,7년씩이나 고생하였다니."


"황송합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날마다 여러분들과 만나는데 좋은 안이 있으면 일러주오"


"선생님께서 우리를 지시해주십시오. 우리는 과거에도 선생님을 우리 조선의 지도자로 믿어왔고 장래에도 또한 지도자로 추대하려고 합니다. 선생님! 오늘날 가장 급하고 필요한 것은 민족적 통일전선 결성입니다. 우리 인민이 원하고 바라는게 무언인가를 참작하셔서 이 산란한 민심과 정국을 수습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떠시오? 여러분의 생각으로는 통일이 될 것 같소?"


"반드시 되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또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과거의 전통으로 보더라도 해외와 국내의 혁명적 투사들이 굳은 결속이 되면 꼭 되리라고 믿습니다. 사리사욕을 버리고 초당파적 양심적 우국지사들일 것 같으면 통일되지 않을 리 없다고 믿습니다."


"내가 속한 당이 우리 조선보다 더 크오?"


박사께서는 두 손과 상체를 말씀하실 때마다 움직이시면서 가끔 왼쪽눈이 경련으로 감겨지고 입술도 떨리곤 하신다. 그러나 아직도 그 두텁고 억센 손과 웃으실때마다 이가 하나도 빠지지 않게 건강하심을 볼때 스스로 머리가 수그러짐을 느꼈다.


이박사가 말했다.


"내가 이미 환국할 때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조직해서 하루바삐 우리 3000만이 한 덩어리로 뭉쳐서 하루라도 속히 우리의 강토를 찾아보자고 지금까지 주장해왔소. 그러나 조금도 진전이 없고 정체되는 원인을 아시오?"


"말씀하십시오"


"이때까지 통일이 안되는 것은 모두들 내 당에 하나라도 더 집어넣어서 내 당의 주의주장을 관철시키자는 데 있습니다."


"선생님! 그 통일되지 않은 최대의 원인은 우리 독립의 가장 큰 장애물인 친일파와 민죽반역자의 악질의 책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친일파 및 민족반역자의 숙청이 없고는 절대로 통일전선의 결성이란 어려울 줄로 믿습니다. 제국주의! 일찍이 인류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지 못한 강도인 왜적에서 해방되어 건국이란 이 성스런 일에 그들을 참여시키고 심지어는 갖은 책술로서 민족통일전선을 결렬시키려는 놈들을 그대로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8월 15일! 해방되기 전까지는 갖은 아첨과 사기로서 우리의 선량한 인민을 황민화시키기에 전력을 다하고 자기 개인의 영다로가 지위보존에만 애쓰던 그놈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타도 미영(美英)을 부르짖던 그놈들이 8월 15일부터 돌변하여 가장 애국자요 가장 친미파인척 과거의 제 죄상을 은폐하려고 각 정당 단체에 출몰하며 우리의 거룩한 건국의 성스런 업무를 더럽히며 민족분열을 꾀하여, 될 수 있으면 현재의 군정이 오래 계속됨으로써 그들 생명을 유지하며 일본제국주의 시대의 매국노적 지위 권세를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국제신탁으로 해서 나라와 민족은 어떻게 되든 제1당 일신의 영달만 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독립촉성중앙협의회가 지지하게 진전되지 않는 원인이 선생님께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다만 선생님을 싸고도는 모 정당과 그들 불순한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그릇된 진언과 악질한 책술에 있다고 믿습니다"


"나는 조선의 실정을 잘 모르니 여러분들이 공정한 민중의 여론을 나에게 가르쳐주오"


"조선에는 더구나 이 서울 시내에만 해도 여러 단체에서 그러한 조사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과거에도 우리나라와 민족을 사랑했고 또 싸우고 고생한 분들이니 역시 앞으로도 또한 힘써줄 것으로 믿소. 어디 여러분들의 동지회에서 엄정히 세밀한 조사를 해서 서면으로 보고 좀 해 줄수 없겠어요?"


"고맙습니다. 힘껏 해보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를 제외한 혁명투사 각 정당, 문화, 전농, 전평, 부녀단체 기타 각종 각계를 망라한 인민을 토대로 한 인민의 정권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숙청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지만 대체 어떠한 방법으로 숙청하겠소?"


"그들을 감옥에 가두어 놓고 우리의 이 성스러운 건국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며 모든 언론기관을 동원시켜서 사회적 매장도 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건국 후 인민재판에서 처단해야 할 것입니다."


"8월 15일 이후의 건국 즉 우리나라의 독립을 방해하는 자도 알려주오. 그러나 어디까지나 공정한 여론에 입각한 비난이라야 되고 조사라야하오. 공산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소?"


"글쎄올시다. 저희들 보기에는 조선과 조선 민족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며 조선의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데에는 조금도 다른주의자들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운형 씨와 박헌영 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오?"


"잔악무도한 일본제국주의 밑에서 갖은 악형과 압박을 받으면서도 진실로 우리 민족과 같이 국내에서 민족해방을 위해 싸워주신 선배요,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신민주주의인지 진보적 민주주의인지를 다수가 찬성하고 있소?"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좌익 계통의 당과 우익 계통의 당이 합동될 것 같소?"


"합동될 것입니다. 다만 기술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중에서 공산극좌분자는 어떻게하나?"


"극좌분자 역시 그도 조선사람입니다. 조선이 완전한 자주독립한다는 데는 조금도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조선도 찾기 전에 아니 조선이 38도를 중심으로 남한과 북한으로 이분되어 있는 이때 시국을 수습해서 통일을 하느냐? 민족을 공산화 시키느냐 정말 개탄할 일이오."


"선생님, 금번 대전은 민주주의의 연합국의 승리로써 세계약소민족이 해방된 것입니다. 특히 우리 조선은 해외와 국내의 여러 선배와 선생님의 노력으로 조선이 해방된 것입니다. 조선의 8할을 넘는 노동대중의 해방이 없이는, 즉 그들의 이익 없이는 조선의 완전통일은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 그들의 이익을 대표하며 그들을 옹호하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의 사명이고 바라는 바라고 보고 있습니다."


"나 역시 다 같이 우리 조선 사람들끼리 행복스럽게 사는 것을 바라며 좋아하오"


여기서 박사께서는 청년보다도 더 쾌활히 웃으신다. 일생을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노력하신 위대한 박사의 아직도 건강하고 쾌활한 웃음을 보았다. 그리고 끊임없이 박사께서 우리의 진실한 정세와 여론을 파악하사 하루바삐 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시길 빌었다.


"그런데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정당을 인정치 않고 개인으로서 집결시켜서 중앙협의회를 대표적 기관으로 통일운동을 하려고 전형위원 일곱 명을 뽑아서 제1차 회의를 하려고 했소그려. 그래서 일곱 의원을 불렀더니 여운형씨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다섯 사람이나 한국민주당에서 나왔다고 돌아가기에 비로소 물어보니 송진우씨가 네 사람이 민주당에서 나왔다고 합디다. 나는 정당의 대표자보다도 개인으로서 모여서 통일해보자고 했는데 결국에 가서는 자기 당이 많이 참가하느냐 적게 참가하느냐 하는 셈이 되고 말았단 말이야."


"선생님, 그것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당의 대표적 의사를 갖고 대표자격으로 투쟁하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찾겠다는데도 당이 있을까?"


"정치가 정당을 떠나서는 일할 수 없지 않을까요? 선생님 자신이 정당에 적을 두고 있다고 하시면서."


"내가 어느 당에 적을 두었소?"


"독립당의 당원의 한 사람이라고 요전 방송에 말씀하셨습니다."


이박사께서는 바른손을 세트 위에 놓으시며 명량히 웃으신다.


"옳아. 그렇지. 나도 독립당의 한사람이지. 그런데 사람이라는 것보다 조선을 독립한다는데 당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습지 않소? 그래서 이번에는 제2차로 전형위원을 공산당이나 민주당.... 여기서 문젯거리가 인원배치인데 반수 반수로 정해야 될지 어떻소? 반소 반수면 될 것 같소?"


"글쎄올시다. 저희들 생각 같으면 해외, 국내의 참다운 혁명투사와 각 정당의 혁명투사 그리고 각계각층의 문화단체, 부녀단체에서 진실로 양심적이요 애국적인 투사만을 뽑아 결속시킨다면 통일은 문제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이박사께서는 면회객이 많이 기다리니까 하면서 일어나셨다.

우리 일행은 박사께 인사를 올리고 산길을 걸어 내려오며 묵묵히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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