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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백일장] 사람이란...
게시물ID : readers_211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hinejade
추천 : 0
조회수 : 30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8/10 11: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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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란? 소설 이전에 개인이란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

그러므로 책 속에 인간이 들어 있지 않다면 무슨 소용인가.

인간이 넘쳐 흐르는 또다른 책, 책게시판.








사람이란

 

 

사람이란이라고 슬쩍 입에 담아본다사람이란입 안에 넣어 봐도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불량식품처럼, '사람이란.'이라는 단어는 내 입 안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거릴 뿐이다사람이란언제부턴가 내 입속에서 버릇처럼 내오던 말이다언제부턴가언제부턴가언제부터였지나에게 있어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존재 일지생각해 보기도 했다무언가 이 버릇이 나에게 있어 하나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하지만 사람은 사람일뿐 그 무엇도 될 수가 없다는 것일까나에게 있어 결국 사람이란.’이라는 말은 아무 맛도 나지 않는 핑크빛 사탕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관계에 대해서 무척이나 많은 생각을 한다심지어 당신이 나를 보았을 때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하지만 나에겐 그것이 일상이었고일상이기에 나에게 더 이상 특별하지도 않게 되었다그래서 나는 무심코그것을 무시해버렸다그 무시는 결국 나에게 하나의 말버릇을 남겨 주었다핑크빛이 감도는아무 맛도 나지 않는 사탕사람이란뭘까?

 

사람이란과도기적 존재라고도 하고사람이란죽음의 과정을 밟는 이라고도 한다하지만 이런 거창한 말들보다도 나에게 있어서 사람이란그저,그저단순한 사람이란.’ 이다.

샤워기를 튼다온수도 냉수도 아닌 미지근한 물이 뿜어져 나온다난 일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완전 더운데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H라고 새겨져 있는 수도꼭지를 비튼다크게 한 번 비틀고너무 뜨거워지면 다시 조이고너무 많이 조였다싶으면 다시 비튼다그리고 물에 젖은 머리를 쓸어 올린다그리고 중얼거린다사람이란.

나에게 있어서 사람이란과도기적 존재 따위와 죽음에 이르는 과정치고는 그저그저저속한 감이 있었다난 철학을 배우고 싶어했지만 철학에서 수학이 파생되었다는 말에 조용히 철학과 조교실문을 닫았고수술용 메스를 집기에는 고등학교 역사 선생의 지루한 설명에 잠을 택한 나의 선택을 저주해야만 했다그런 나에게 있어서 사람이란.’이라는 중얼거림은 좀 더 저속하고 좀 더 뭐랄까내려 봐야 했다그런 거였다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그래서 난 이 중얼거림을 때때로 핑크빛 사탕을 빨던 것처럼 입에서 오물거렸다그저불량식품처럼.

한 여자가 있었다여러 남자를 거느리고 있는 여자였다여러 남자들은 그녀를 좋아했다여자는 그들을 단지 여러 남자로 보았기 때문에 그들 중 누구누구보다는 여러 남자라고 불렀다. ‘여러 남자들은 각각 다른 여자들의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똑같은 골빈 생각을 하나 품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좋아해.’ 라는 생각이었다그녀가 술 취한 채 사실좋아하질않아.’라고 여러 남자중 하나인 나에게 말했을 때나는 왜인지 오늘따라 더 비릿하게 느껴진 걸 참고 입에 털어 넣은 소주 속에 사람이란이라는 단어가 맴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이 정도로누군가에게 있어 삶의 모든 부분을 소비해야 했던 물음은나에게 있어선 너무나도천박한 물음이었다애초에 물음이었나싶었다.

바닷가에 들어가보니 바닷물은 빠져나가고 시커먼 뻘밖에 남아 있질 않았다술기운에 서로들 히히덕거리며 서라 잡아봐라 하고 있는데순간한 녀석이 우뚝 하고 멈춰 섰다그러더니 미친놈처럼 마구 발을 굴러댔다술만 퍼 마시면 옆 사람 손을 잡고 뛰어 오르는 여자애랑, ‘저 하늘의 달을 향해 솟아올라 보자꾸나.’라면서 뛰던 나는이놈이 술만 퍼먹더니 드디어 미쳐버렸구나 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녀석의 발에서 빛이 튀는 걸 보고 내가 미친 거였구나 라고 안심했다빛은 시커먼 뻘밭에서 물방울처럼 튀어 올라 연두 빛으로 반짝거렸다빗방울이 아닌 빛방울이었다오징어라던지 뭐시기던지 물고기한테서 나온 형광물질 때문이라고두어 달 뒤에 미친 듯이 같이 뛰었던 여자애가 설명했다.

우리는 그때 섬으로 대학교 MT를 갔었는데사발식을 강요하는 선배들을 피해 뻘밭으로 도망쳐 나왔고그 빛방울을 발견했다밟으면 밟을수록 빛방울은 밝게 빛났다발가락이 빛났다그 빛나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우리는 다시 부어라 마셔라 하는 선배들에게로 갔다미친 듯이 밟아대느랴 모두들 목이 타올라 사발이든 오발이든 마실 기세였다왁자지껄한 소란과 함께 문이 열렸다모두들 술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에 관심을 가질 때 내 눈에 들어 온 한 녀석이 있었다한잔만 더 마시면 요단강을 건널 기세였다난 근처에 있는 물병을 집어든 채 그 녀석을 이끌고 바닷가를 걸었다.

흔히언제나틀림없이필연적으로뻔하게그렇듯이 술 취한 대학생 새내기를 도와준답시고 부축해서 걷기시작하면 그 끝은 고민상담코스로 이어진다그리고 그 고민상담코스를 네 번이나 돈 그 날은나에게 있어서 사람이란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만들었다그저그 순간만은어쩌면깊게 고민했을 수도.

요단강을 건널 녀석을 눕히니한 여자애가 업혀왔고업혀서 울음을 터트린 걸 달래니후배 녀석이 손을 잡아끌고후배 녀석에게 군대는 그리 무서운 게 아니라는 걸 각인 시켜주고 술자리로 들여보내니생전 처음 보는 여자애가 와서 아는 척하며 바닷가 걸으실래요?’ 라고 말하며 밖으로 먼저 나갈 때나는 깊게 고민했을 수도있었을 터였다마치 그들의 고민 하나하나가 나에게 얼룩같이 묻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난 사람이란.’이라는 물음에 대답까지는 못하더라도 조심스럽게 한마디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어쩌면아니그럴 수도 있을지도모르겠지만정말 사람이란이런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단지화려한 색으로 빛나 지나가는 코흘리개의 눈을 홀려버린 핑크빛 사탕처럼사람이란천박한 것이 아닐까아니천박하다는 표현보다는내려 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인간관계에서 지쳐 이곳저곳에서 쪼그리고 앉아 한숨 쉬고 싶을 때가 있다저어기이 귀퉁이에서 담배 연기를 내쉬며 세상 모든 것이 될 대로 되라 라는 표정을 지닌 채 멍하게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내가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라는 생각이 든다단지이게 뭐하는 짓인지 라고 하는 건오십 줄 들어선 가장이 갓 사십 줄 들어선 낙하산 상사한테 욕 처먹어가며 허리를 굽힐 때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을 생각하며 하는 말인데 말이다그러면서 쪼그리고 앉은 등 뒤에서 술집 문이 열리며 친구가 말한다. ‘술김에 말실수 한 것 가지고 그러냐네가 기분 풀어라.’

처음에는 인간이란.’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기도 했다라고 해도 인간이랑 사람이랑 무슨 차인데라는 물음에 결국 인간관계 때문에 생긴 말버릇 아니야라고 구시렁거린다하는 모습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과연 나는 인간을 사랑했을까?

인간을 사랑한다무슨 대단한 사상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는데내가 묻는다빛방울을 밟아대는 내가 중얼거린다그녀를 좋아했잖아술집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내가 투덜거린다이 소설을 단지 삼류 연애소설로 끝내고 싶진 않아비릿한 소주를 간신히 삼키는 내가 비꼰다그럼 아예 써놓질 말던가글을 쓰는 나로 다시 돌아온다인간을 사랑한 것과 인간관계와 핑크빛 사탕은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무슨 일이든 연관이 있기 때문에 내 머릿속에서 나온 거겠지세상은 모두 이어져 있다인연설에서 나온 말이다아니 연기설인가.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을 믿질 못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핑크빛 사탕.

뭐야라고 소주가 말한다너 술 취했어?

술 취한건 너야라고 바닷가가 꼬집는다.

지랄한다다들이야기나 다시 시작해라고 글을 쓰는 나로 돌아간다.

 

인생사 뭐 그렇게 대단한 게 많겠냐마는세상은 정말 넓었다내가 느끼기엔 정말넓었다비행기타고 하루 꼬박 걸려 밴쿠버에 도착했다그곳 사람들은 태평양을 보며 살고 있었다그저 버스를 타고 지나가도 태평양이 보이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산책만 해도 태평양이 보였다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꾸깃꾸깃한 가이드북을 손에 쥐고 배낭을 추스르며 그 태평양을 바라 봤을 때나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한 말이 생각났다부산에 살던 친구가 있어상경 한지 꽤 됐는데 항상 전화 할 때마다 하는 소리가 있어아직도 마음속에서 바다소리가 들린다고그럼 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항상 생각해.그럼 부산에 사는 사람들 마음속에선 얼마나 멋진 소리가 들릴까참 낭만적이지 않니나는 크게속으로 대답했다아무렴요개뿔이.

태평양을 맨날 바라보는 밴쿠버 사람들 마음속에는 어떤 소리가 날까그 사람들은 나처럼 사람이란.’이라는 말버릇 보다 태평양이라고 하려나아니 외국인이니까 퇠푱양이라고 하겠지라고 소설에 써보면 재미있겠다그치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들은 그들 나름의 말버릇이 있겠고 그들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겠고 어쩌면누구처럼 더 단순하게아니 더 저속하게 바라봐야만 한다고 생각하겠지그래도 밴쿠버 사람에게 부러운 점이 하나 있다면 말이야매일 저물고 있는 태평양의 노을 본다는 건 정말.

바라보는 게 틀리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건가라고 테모자레가 말한다신을 믿는 자가 악마를 보는 관점과 신을 믿지 않는 자가 악마를 보는 관점이 다른 것 같이그렇다면 그대는 무엇을 바라보고 싶은 건가라고 돈키호테가 묻는다나는.

밴쿠버 사람들은 매일 태평양을 바라보고 산다그리고 나는 항상 사람들을 보고 산다그래서 사람이란.’이라는 말을 중얼거린다때때로 대학교MT때서나 볼 수 있는 마(M)시고 토(T)하는 수준 낮은 자리에서때때로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고등학교 선생을 욕하지만밴쿠버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고귀한 자리에서나는 중얼거린다그리고 고민한다왜 저들은 나를 싫어하지?

나는 왕따를 겪어본 적이 있다그것도 심하게어쩌면 학창시절 전부를 통틀어서 왕따를 당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그러면서 항상 내 마음속 한 구석에 깊이 스며든 생각이 있다왜 나를 싫어하지저팔계가 묻는다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라고 내가 구시렁댄다그는 바주카포를 닦으며 혼잣말을 해댄다미스타손은 이 지랄그러면 사오정은 저 지랄삼장법사는 불경만 외워대니슈퍼보드 완결편은 본거셩나는 혼잣말에 대답하기 싫었다그래서 학창시절에 내가 왜 왕따를 당했는지 생각해 봤다일단쓰잘데기 없는 말이 많으셩저팔계가 킁킁대며 웃어댄다저 돼지새끼 내 마음도 읽을 수 있는 거야뭔 인칭시점이 이래라고 글을 쓰는 나에게 소리쳤다글 쓰는 내가 말했다.

아니 그것보다도 사람이란.’이라는 말로 돌아가라구.

?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말이야.

.

사람이란.’이라고 중얼거리는 건 꽤 복잡한 것 같아.

복잡했다단지핑크빛 사탕으로 치부하기에는 이미 먼 길을 돌아 왔나 싶었다술에 취해 말을 더듬거리는 그녀가 말할 때조차난 중얼거렸다그래서 사람이란.’이라는 말은 단지 핑크빛 사탕인줄 알았다그런데 욕하고 있었지만 태평양의 노을에 말문이 막혔을 때나는 또다시 중얼거렸다. ‘사람이란.’ 이라고그러면 도대체 난 지금 이 자리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바닷가에서 글을 쓰는 있는 나는 핸드폰을 열었다시간은 오후 열한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결국 그녀는 오지 않았다왜 오지 않았을까난 분명 저기달이나 보러 가실래요?’ 라고 분명 말했을 터인데파도소리가 나를 잡아먹을 듯이 커진다그래서 나는 계속 키보드를 두들겼다그녀 따위는 나에게 상관없다는 듯이 보이게.

하지만 바닷가에는 아무도 없다삐뚜름하게 떠 있는 달만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사람이란난 사실 이 말이 굉장히 즐겁지는 않더라도 그런대로 유쾌한 결말을 가지고 올 것이라 생각했다아무런 맛이 나지 않는 핑크빛 사탕이라도그런대로 인공적인 과일 향은 나기 때문에그런대로 맴돌기만 하는 내 입에서 과일 향 정도는 날 것이라 생각했다하지만 이미 소설은 중반을 넘어 결말을 보여줘야 할 부분으로 치닫고 있지만서도 아직 텐션은 저 지하 깊숙한 구렁텅이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래.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어차피 그녀는 오지 않으니.

그래.

사람이란뭘까사실 우리 모두 이 물음에 대해서 답을 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서그저소주 한 잔을 털어 넣으면서 잊으려 하지 않았을까싶지만서도 그것이그저가장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사람이란답을 내리기엔 애매하고 모호하며 그녀가 이미 바닷가에 오지 않았으니 이 소설을 될대로 되버려라 라고 쓰고 싶지만핑크빛 사탕의 과일 향은 인공적인 그 특유의 진하고 텁텁한 느낌으로 내 입속에서 맴돌고 있다.

잊고 싶었을 수도 있다이 소설을 쓰는 내내 항상 내 입속에서 맴돌던 사람이란.’이라는 물음에 대해 잊고 싶었을 수도 있다그래서 소주 냄새 풍기는 싸구려 연애감정들과 궁상맞은 모습만을 보여주는 소심한 인간관계로써 그 물음을 깔아뭉갰을 수도 있다그래서 검은 때가 나오도록 지우개로 빡빡 문질러대고문질러대는 내 모습에서나는 또다시 사람이란.’ 이라는 물음을 발견하고.

왜 갑자기 진지해지고 그러셩라고 저팔계가 묻자 그의 입안에 바주카포를 쑤셔 넣고 손잡이를 움켜쥔다그리고 단숨에 말했다.

예전에날싫어하는사람들이소주한잔을입에털어넣고말했었지.넌너무말이많아서재수가없다고.그러면서뭐라고말했는지알아?어차피모두가잊을거왜그렇게목숨을걸면서하냐고묻더라.나는어이가없어서당황하는목소리로대답했지.그게당연한거아니냐고.너희같이살면좋냐고.사람이라는게뭔지아냐고.사람이란말이야.나같은놈을사람이라고부르는거야이개새끼들아.

그리고 단숨에 발사!

결국 끝에 끝은 분노로 마무리 지어지는 듯 했고이제 슬슬 12시가 다되어가기도 했고어느새 발가락은 바닷바람에 차갑게 굳어버리기도 했고졸리기도 했다.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바다를 바라보았다칠흑 같은 밤바다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식상했고 그저 아무것도 없는 어둠속에서 하얀 거품들이 파도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달까그런 느낌이었다어떤 여자애가 말했었지밤바다를 보면 너무 무섭지 않아요아니난 멋있어끝이 없잖아끝이 없는 게 왜 멋있어요몰라그냥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한 말이야파도가 잠시 잠잠해지는 순간모든 세상이 깜짝 놀랄 만큼 고요했다.

 

초등학교 일학년 때 내 성적은 항상 어중간 했다일학년 때 무슨 성적이 있었어요라고 한다면장난해라고 반문하고 싶다받아쓰기내 받아쓰기는 항상 칠십 점을 넘지 못했다동그라미 일곱 개와 작대기 세 개를 바라보고 나면 항상 저 작대기는 왜 세 개만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그 작대기들을 바라보는 어머니 역시 어중간한 표정으로 날 바라봐야만 했다칠십 점은 혼내기는 안타까웠고 칭찬하기는 아까운 점수였으니까.

뭐 받아쓰기 이야기가 나온 이유는 사람이라는 단어를 받아쓰기 했을 때가 생각나서였다믿거나 말거나인데 나는 사람을 으로 받아 적었다분명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더 이상 진화하지 못한 것이 분명한담임선생님의 구강구조를 염두에 두고서라도 그렇게 적기는 힘들다라고 어머니께서 회초리를 드시며 말하셨다그래도 그렇게 들렸는데 나보고 어쩌라고그때 난생처음 육십 점을 맞았었지.

아무튼 이렇게 따지고 보면 나에게 있어 사람이란.’은 삶이란.’으로도 생각할 수 있겠지억지 같아 보인다.

그러니까. ‘사람이란.’ 나에게 있어 이것저것을 말하고 싶게 만들어주는 버릇이었다. ‘사람이란.’은 어느 말꼬리로도 이어졌으며 사람이란.’은 그 존재 자체로도 우주적인 함축성을 띄고 있다결국 나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했을지도나의 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을지도모른다.

밤바다가 무섭다는 그 아이는 얼굴도 이쁘장했고 마음씨도 이쁘장했고 그녀만의 철학도 이쁘장했다하지만 도톰하고 달콤할 듯이 보이는 그 입술만큼은 이쁘장하지 못했다그 입술에시커멓게 때 묻고 녹슨 톱니라도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지하는 말마다 모든 이들의 귀를 후벼 할퀴는 말만 내뱉었다나는 그녀가 모든 것이 이쁘장한데다가 마음씨까지 이쁘장하니 그 말들을 알아서 필터링 후 해석했다그러나 뇌가 입 주변에 붙어 있는 사람들은 차마 필터링하기도 전에 뇌가 생각해낸 말들을 입으로 전달했고 곧 그녀에게 비난의 말들을 토해냈다.

난 그 모습을 보고 또다시 생각했다뭐라고 했을까그렇다. ‘사람이란.’이겠지난 지금 나에게 묻고 싶다넌 지금 뭘 말하고 싶은 거야?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

너와 내 마음 속엔사실 지금 사람이란.’이라는 말 따위는 안중에도 없거든.

무슨 말이야?

그거 알아?

?

너 지금 굉장히 가식적이야.

조엘은 클레멘타인을 잊지 않기 위해 꿈속을 뛰어다니면서 울부짖다가 결국 잊어버리고 말았지클레멘타인은 충동적인 여자이므로 단순히 그 당시의 감정만으로 조엘을 삭제시켰겠지만조엘은 소심하고 차분하기 때문에 그 결단을 이해할 수가 없었지하지만 조엘 마저도 클레멘타인을 잊기 위해 감정을 삭제시켰지만그 삭제시키는 과정 중 깨닫고 말았어절대로 클레멘타인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을. 난 아직도 기억해영화 속 조엘의 그 한마디를.

나는 처음 보는 여자에게 반해버리는 걸까?’

그러고 보니 기억났다.

나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지처음보자마자 반해버린.

열두 시도 훌쩍열두 시 반도 훌쩍 넘어가버렸다이제 자야할 시간이다하지만 난 자고 싶지 않았다할 말이야 쌓이고 쌓였으니까.

 

시드니의 하버브리지를 걸어보기로 마음먹었을 때나는 왜 내가 이 쌩고생을 해야 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나는 방금 전까지 일을 하다 왔을 뿐이었고이제 슬슬 해가 지려고 하던 참이었으며내 입술은 피곤에 쩔어서 부어오르다 못해 부르트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난 가려했다. L90번 버스를 잡아타며 꾸벅꾸벅 졸면서 옆 백인 아가씨 어깨를 툭 치기도 하면서난 가려했다왜 그렇게 가려했을까.

하버브리지는 오페라하우스 바로 옆에 있는 대교였다솔직히 부산에서 이년동안 군복무를 한 나에게 하버브리지는 광안대교만큼 위협적이지는 못했다하지만 왠지 걷고 싶었고 무언가 고민하고 싶었다그리고 내 눈을 찌르던 석양이 결국 져버린 뒤에야하버브리지를 두 바퀴째 돌고 나서야나는 문득생각이 들었다나는 지금 고민이 없다결국고민이 없는 게 고민이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사람이란.’

라고 할 줄 알았지사실 나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고민이 없다는 것은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뜻인데왜 굳이 이 좋은 상황 그 한 가운데에서 고민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나는 지금 시커먼 밤바다를 보고 있다끝이든 뭐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곳을 보고 있자면 한없이 막막해진다답답해지고 결국 화가 난다마치 내 인생 같다고민이 끝도 없이 이어지면서 막막한그런 곳그런데 고민이 없다면 분명 이 밤바다는 저 끝이 보일 것이고끝이 보인다는 것은유한하다는 것그래서 저 밤바다 끝의 붉은 달조차도삐뚜름하게 떠있는 이유가 그 끝을 보여주기 싫어서가 아닐까싶다.

내 삶은 유한한가아니면 무한한가결국 사람인 나는.

 

오던 길과 다르게 다른 편으로 하버브리지를 건너기 시작하는데 한 경비원이 나를 멈춰 세웠다이쪽 길은 자전거 도로라고 했다나는 뒤돌아서서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이미 해는 저물었고 온갖 화려한 불빛들이 시드니 시티전역에 휘몰아쳤다다시 왔던 길인데도 새로워보였다새로웠고마냥 좋았다.

 

달이 동쪽에서 뜬다는 것을 알았을 때나는 심한 이질감을 느꼈다해는 동쪽에서 뜨고 달은 서쪽에서 뜨는 거 아니었어옆에 있던 친구가 말했다미친놈.

예전에 내가 봤던 애니메이션에 이런 장면이 있었다해가 노을을 비치며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그 속에서 몸을 식히고 달이 되어 등장하는그런 장면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뭐라고? ‘사람이란.’이라고?

아니.

그럼?

그래서그녀가 오질 않았구나.

미친놈.

달은 동쪽에서 뜬다만약 달이 서쪽에서 뜬다면 지고 있는 해와 충돌하겠지그럼 지구는 멸망하게 되는 건가미친놈이라고 누군가 말하고 싶어 하겠지.

찌그러진 달이끝이 없을 것만 같던 밤바다 위에 삐뚜름하게 떴다나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그 달을 바라보았다달빛이 파도에 흔들리며 밤바다에 길을 냈다그 길은 매우 위태로워보였고 까딱하면 사라질 것만 같았다나는 바닷가로 걸어갔다.

밤의 파도소리는 멈출 때마다 무섭도록 고요한 정적을 만들어냈고 나는 그 정적이 만들어질 때마다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내가 슬리퍼를 벗고 밤바다의 잔물결에 힐끗힐끗 비치는 달빛을 살짝 밟았을 때나는 차가움 보다는 따뜻함을 느꼈다그 온기는 내 언 발가락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고 나는 위태로운 그 달빛의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수평선까지 이어진 달빛다리는 파도가 올 때마다 간간이 끊어졌고 나는 다시 달빛이 비쳐지길 기다려야만 했다나는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하지만 저 끝을 향해 가고 싶었다저기에는 무언가라도 있겠지최소한 자전거 전용도로라고 막아서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모든 것이 즐거웠다차가울 줄 알았던 달빛은 따뜻했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아무리 걸어도 끝이 나오지 않았고 아무리 뛰어도 끝이 나오지 않았다사흘 밤낮을 걸어도 그 끝에 다다르지 못했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한걸음 디디며 생각했다.  












우리는 영원히 세월호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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