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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백일장]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
게시물ID : readers_211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안녕또봐
추천 : 5
조회수 : 17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8/10 21:3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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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해!
늘 새로워
오유 책게가 최고야!
 
 
 
 
08:19 AM.
그는 TV를 켰다. 그리고 그것의 앞에 앉았다. 이것은 그의 하루일과의 전부이다.
그녀는 그런 그를 애써 외면한다. 그러나 커다란 그와 그것의 웃음소리가 곧 그녀의 귀 속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그녀는 가스레인지를 켠다. 오늘은 웬일인지 주방이 좁다며 투덜대는 일이 없다.
좁은 거실은 어느새 후덥지근한 열기와 된장찌개 냄새로 잠식되었다. 현은 그의 눈치를 보며 에어컨 전원을 켰다.
그는 여전히 화면에 몰두한 얼굴이다.
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현은 거칠게 TV맡의 과자 봉지를 집어 들어 제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커다랗게 닫히는 문소리를 내는 것도 역시 빠뜨리지 않는다.
남겨진 그와 그녀는 말이 없다. 돌아봐야 보이는 것은 서로의 등뿐이다.
그녀는 가스레인지에 올린 찌개의 불을 끄며 방 안의 현을 부른다. 현은 대답이 없다. 그녀가 다시 현을 부른다. 이번엔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다. 현은 그제야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그가 TV앞에서 엉덩이를 떼고 두 걸음 옮겨 식탁 앞에 앉았다. 시선은 여전히 TV에 고정한 채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밥 먹어.>
그녀는 버릇처럼 침묵이 흐른 뒤에야 말을 잇는다. 언제나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살피기 바쁘기 때문이다.
  <내 밥은 내가 알아서 먹어. 신경 꺼.>
그의 눈은 끝까지 TV만을 향했다.
현은 창가에 앉아있었다.
  <비야, 그치지 마.>
현은 과자 조각을 씹으며 중얼거렸다. 현은 비를 좀 더 가까이하기 위해 방충망을 걷어냈다. 점점 그쳐가는 빗방울이 현의 눈앞에서 떨어진다. 시선을 멀리해 하늘을 빽빽이 채운 회색깔 구름을 멍하니 바라보다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다.
  <구름들이 단체로 오른쪽으로 움직이네.>
순간, 거실에서 들려오는 그의 커다란 목소리에 현은 두 손바닥으로 귀를 틀어막는다.
그는 모두가 알다시피 TV를 관람하고 있던 차였다. 그녀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그는 얼굴에 잔뜩 패인 미간을 띄고 그녀를 향해 명령하듯 소리쳤다.
  <문 잠그지 마!>
그녀는 역시 대답하지 않는다.
그녀의 미간에도 주름이 잡히다가 이내 금방 펴졌다. 그녀는 이불 위로 던지듯 몸을 뉘였다. 그녀의 손엔 그녀의 동반자’, 휴대전화가 들려 있던 차였다. 이잉-. 그녀의 휴대전화에 누군가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것을 확인한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차오른다.
그는 밥알을 씹으며 TV를 본다.
시간이 지나며 비는 점차 그치고 방안엔 어느새 햇빛이 차오른다. 현은 창문을 닫고 블라인드를 쳤다. 햇빛은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
그녀는 창밖의 새소리를 들으며 여전히 그녀의 동반자를 연신 탐하고 있다.
다섯 평 남짓한 거실엔 빛 하나 들어오지 않아 어둠이 가득하다. 이것은 밤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럼에도 그는 유일하게 눈부신 빛을 내는 TV에다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그는 식탁에서 내려와 다시 두 걸음 떼어 TV앞에 앉았다. 그는 그의 두 팔로 다리를 감싸 안았다. 굽은 등 위로 등뼈가 도드라져 보인다.
 

08:48 AM.
현은 시계를 한번 확인하더니 타자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노트북을 탁 소리 나게 닫았다. 잠시 드러났던 화면은 글자로 가득했다. 현은 가방을 챙겨들어 곧바로 방을 나와 신발장으로 향했다. 현은 한숨을 쉬며 제 신발을 발로 툭 찼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처음으로 시선을 TV에서 떼어내어 현관문으로 옮긴다.
  <독서실 가니?>
  <.>
  <잘 다녀와.>
그는 문이 닫히기까지 현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으나 현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그는 다시 TV와 마주했다. 어느새 굳어진 얼굴은 활짝 펴진 상태다.
현은 익숙한 골목길을 걸었다. 비를 머금은 세상의 말소리가 현의 귓가에 맴돈다. 그러나 현은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현은 비를 머금은 세상의 말동무가 되어주지 못한다.
현은 익숙한 골목을 지나 익숙한 길에 들어섰다. 멀리 희뿌연 시야 속에 길바닥에 홀로 앉아있는 새가 현의 시야에 들어온다.
그녀는 단잠에 빠져 버렸다. 그녀의 흰 피부는 그녀의 손에 들린 빨간 물건과 대조되는 듯 어울린다.
현은 조심스레 새 앞을 지나갔다. 그러다 걸음을 멈추고 새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현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현은 걸음을 옮겨 횡단보도 앞에 섰다. 돌아본 길에는 새가 여전히 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은 눈짓으로 작별인사를 하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TV앞에 앉은 그의 눈은 점차 감기고 얼굴에 졸음이 그득하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TV를 향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다 그는 끝내 잠과의 싸움에 져버렸다. 그의 등은 더욱 구부러졌고, 그의 고개는 철저히 바닥을 향해 있다.
현은 마침내 어딘가에 도착했다. 계단을 오르는 현의 걸음이 가볍지 않다. 익숙하게 일련의 숫자를 단말기에 입력하고 복도를 지나 어느 방으로 들어간다. 공간은 마치 인간 맞춤 닭장과 같았다. 현은 자신의 닭장으로 들어가 커튼을 쳤다. 가방을 내려놓고 서랍을 열자 각기 다른 크기와 제목의 책들이 잔뜩 엉긴 채로 현을 맞는다. 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것들을 눈으로 훑을 뿐이다.
그녀가 잠에서 깼는지 손에 들렸던 휴대전화를 쓰다듬는다. 그녀의 일과이자 습관이다. 이유는 그녀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새 TV앞에 대자로 누워있었다. 그의 목 뒤에는 베개 대신 아무렇게나 개켜진 몇 장의 수건이 있다. 그것을 베개로 바꾸어 줄 사람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은 노트를 펼쳤다. 그것은 닭장에 들어 온지 며칠이 되었는지 확인하는 일지일 뿐이었다. 현은 그것 사이에서 현의 어린 시절 사진으로 시선을 옮겼다. 사진 속의 현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현 밖에 없다.
 

10:34 AM.
그는 익숙지 않게 밝아진 거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잠에서 깼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방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굳게 닫혔던 방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햇빛은 그 방 창문을 통해 거실까지 드리우고 있었다. 그러나 밝은 방안에서 그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조수석에 앉아 웃으며 누군가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녀는 오늘 처음으로 즐거워 보인다.
현은 여전히 닭장 안이다. 처음과 다른 것이라고는 현의 귀에 이어폰이 꽂혀있다는 점이다. 현이 이제야 펜을 들었다. 몇 장 남지 않은 노트에 느릿하게 무언가를 적어가고 있다.
그가 모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까맣고 가는 다리가 몇 번 휘적거려지자 주방에 다다랐다. 그는 그릇에 밥과 국을 함께 옮겨 담고는 다시 TV앞에 앉았다. 시선을 TV로 고정한 채 숟가락을 옮겨 입으로 가져갔다.
현은 펜을 움직여 연신 사각대었다. 그때 현의 닭장 옆의 닭장에 불이 밝혀졌다. 잠시의 시간이 흐르자 현의 닭장 옆의 옆의 앞의 닭장에 불이 켜졌다. 현이 펜을 놓을 때 즈음 현의 닭장 옆의 옆의 옆의 옆 닭장에 불이 밝혀졌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빈 그릇을 주방으로 옮겨놓았다. 그리곤 냉장고에 있던 하드 아이스크림을 여러 개 꺼내 들고 TV앞으로 걸어가 바닥에 털썩 앉았다. 그는 아이스크림의 껍질을 거칠게 벗겨내고 아이스크림 3개를 우악스럽게 입안으로 집어넣는다.
이 시각, 오늘도 그녀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11:13 AM.
현은 끼적이던 노트를 손에 쥐고 닭장을 나섰다. 복도를 걸어 나가던 중, 현은 뒤돌아 닭장을 잠시 바라보았다. 현은 걸음을 빨리했다. 비에 젖은 골목은 점점 햇빛에 말라가고 있었다. 현은 걷는 와중에 무언가를 입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현이 걷고 있는 길은 아까 새와 마주쳤던 그 길이었다. 그렇지만 현은 여전히 중얼거리기 바쁘다. 그 때 길 고양이 한 마리가 현의 시선을 빼앗는다. 고양이가 현을 발견하고는 부리나케 도망친다. 현은 그런 고양이를 가만히 눈으로 좇을 뿐이었다.
거실에 들어서는 현을 본 그가 졸린 눈을 하고 현에게 말을 걸었다.
  <왔어?>
현은 그를 마주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들어섰다. 현이 손에 들린 노트를 책상 위로 던지듯 내려놓았다. 창 밖에는 다시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현이 노트북을 켰다. 그녀가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마사지 예약요,>
그녀의 목소리에 흥겨움이 묻었다. 휴대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그녀가 예쁘게 웃으며 대답했다.
  <늦게까지 기다릴 수 있어요.>
 

01:01 PM.
그가 TV채널을 바꾸던 중 벽시계를 바라본다. 그가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서툰 손동작으로 누군가에게 보낼 메시지를 작성한다.
  [이쁜 우리 여보~ 내가 너무 사랑해보고싶어~ 너무 늦지 않게 들어와~!] 전송 버튼을 누르며 그가 다시 시계를 바라본다. 분침이 몇 칸 움직였다. 그때, 그의 휴대전화가 오랜만에 발랄한 소리를 내며 짧은 몸부림을 친다. 그는 모처럼 미간 핀 얼굴을 하고 두꺼운 손가락으로 휴대전화의 잠금장치를 풀어냈다.
  [피로회북 T까페 김대표입니다 러시a언니 힐링태국언니 굿초e스 문의시주소발송 -1004]
 
현은 빠른 타자로 글씨를 작성하고 있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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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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