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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백일장]어느 휴일
게시물ID : readers_211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공대생입니다
추천 : 3
조회수 : 230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08/10 22: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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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게 많이 많이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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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귓가를 간질이는 참새들의 지저귐에 달콤한 잠에서 어렴풋이 깨었다. 묘하게 나를 흥분시키는, 아름다운 노랫가락을 더 듣고 싶었지만, 지금이 아침이란걸 깨달음과 동시에, 이런 꼰대가 어딨을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깐깐한 성격을 가진 교감에게 또 한소리 들을까봐, 꿈자리를 벗어났다.
  시계를 보니 이미 12시였지만, 간밤에 무슨일이라도 생겼으면 큰일이기 때문에 아침순찰을 위해 얼른 수위복을 입고 상평통보가 줄줄이 엮인 엽전 꾸러미같이 동그란 쇠에 주렁주렁 매달린 열쇠 꾸러미를 만족스러운 느낌으로 집어들면서, 수위실을 나섰다. 밖으로 한걸음 옮기자마자 광복절 아침날엔 조금은 부담스러운 강렬한 햇살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왠지모를 따스함과 휴일 아침 고요한 교정의 분위기덕에 학교건물로 향하는 시멘트바닥을 계속 밟아 나갈 수 있었다.
  학교건물에 도착해 열쇠로 문을 열자 쿰쿰한 먼지냄새가 느껴졌다. 평소 같았으면 먼지냄새의 색다른 맛을 음미하면서 계단을 올랐겠지만, 상기되어있을 교감의 얼굴을 생각하면 그럴수가 없었기에, 한달음에 교무실로 뛰쳐갔다. 교무실에 다다르자, 여인의 손을 처음 잡을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려 진정시키고자 했으나, 심장박동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섬뜩한 느낌이 들어 얼른 교무실 문을 열었다. 교무실로 들어서자 다행히 착 가라앉은 공기가 나를 반겨주었다. 교무실에 아무도 없다는걸 확인한 후, 안도감을 느끼며 근무일지를 적고 교실 순찰을 위해 교무실 문을 나섰다.
복도 불을 켜며 1학년 1반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조금 멀리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 노숙잔가
 
  지난번에도 정신나간 노숙자가 교실에 누워 중얼거리고 있었던 적이 있기에, 약간은 짜증나는 기분으로 소리의 정체를 밝히러 나아갔다. 터덕터덕 걸어가니 점점 더 소리가 선명해지며, 음절 하나하나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봉산탈춤, 골계미... 봉산탈춤, 골계미...’
 
  무슨 소리인지 명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곳에서 교실을 슬며시 들여다보니, 약간은 심각한 표정을 한 채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 보였다. 휴일에는 교실출입을 금하기 때문에 학생이 들어올 수 없지만 공부하는 모습이 대견하여 부드러운 표정으로 가만히 지켜보았다.
  문득 바람불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후덥지근한 바람이었지만 송골송골 맺혀있는 땀방울들을 훔쳐가기엔 충분했다. 산들산들한 바람을 쐬면서 한여름을 정취를 즐기며 학생을 보고있다가, 나머지 교실순찰을 돌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바지춤을 추스르고 걸음을 옮기려고 하고있었다.
 
  ‘
 
  교실에서 창문닫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바람 때문에 책장이 제멋대로 넘어가 짜증이 났나 보다. 한여름에 창문을 닫고있으면 더위에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교무실로 내려가 에어콘을 틀어주고 업무를 마무리한채 수위실로 돌아갔다.
 
 
 
  오후4.
 
  자연바람과 선풍기바람을 동시에 느끼는, 나름대로의 사치를 부리며 수위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러다 문득 느껴지는 약간의 불쾌함에, 이를 해소하고자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이내 그것이 갈증인걸 깨달아 바로옆에 있던 물을 들이켰다.
 
  미지근하다
 
  목구멍을 자극하는 시원한 물맛을 기대했지만, 텁텁한 염소맛만이 느껴져 불쾌함이 가중되었다. 오후의 노곤한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아, 시원한 물을 뜨러 정수기가 있는 학교건물로 향했다.
  정수기가 있는 2층 복도에 도착하자, 플라스틱 빈 콜라병에 물을 담아 시원한 물이 입, 목구멍 그리고 뱃속에 도착하는 것을 느끼며 갈증을 풀었다. 나를 방해하는 불쾌함이 사라지자 수위실로 돌아가 다시금 낮잠에 빠져들까 생각했지만, 정오에 보았던 학생이 아직 있을가 궁금하여 교실을 향해 걸어갔다.
 
  ‘엠 플러스 엔 분의 에이엠 플러스 비엔...’
 
  교실을 보니 학생은 이상한 주문을 외며 샤프를 손에 쥐고 무언가 열심히 끄적여댔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이상한 주문과 무언가를 끄적여대는 폼을 보았을 때 아마 수학공부를 하고 있을거라 추리하면서 내가 수학하난 잘했지 라는 추억에 빠져 현재와 과거 두 공간을 넘나들며 색다른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
 
  흑연을 종이위에 그어대는 소리가 들리지않고, 기분나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와 교실을 들여다보니 학생이 커튼을 치고있었다. 학생이 무슨공부를 하고있을까에 대한 추리를 재밌게 한터라, 커튼을 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전날 읽었던 뱀파이어 소설이 떠올라, 혹시 학생이 뱀파이어가 아닐까라는 황당한 유추를 하기도 했지만, 책에서 반사되는 햇빛이 눈부셔 커튼을 친것이라는 가장 근사한 가설로 마무리 짓고, 오후의 향락을 마저 즐기기 위해 수위실로 돌아갔다.
     
 
 
 오후9
 
 저녁에 먹은 메추리알과 장조림의 달짝지근함을 머릿속에서 되새김하며 요리프로를 보고있었다. 나름 유명하다고 하는 셰프가 허세낀 몸동작으로 소금을 뿌려대는 모습을 보며 웃고있었는데, 평소 순찰시간과 겹쳐 잘 보지 못하는 드라마가 10시에 한다는 문구가 티비아래 조그맣게 나오길래, 교감도 없겠다, 1시간빨리 순찰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흔들면 딸깍딸각 밧데리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커다란 랜턴을 하나들고 학교건물로 향했다.
  ‘소쩍소쩍소쩍...’
 
  어디선가 들려오는 접동새 우는소리에 박자를 타며 일정한 발걸음으로 학교내부 순찰을 하고 있었다. 휴일이라 하루동안 학교에 온 사람이 없기에 창문이 열려있는지만 확인하며 편안히 돌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학생이 아직도 공부하고있나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대단하다고 생각됨과 동시에 지금까지 공부를 해야되는 학생이 불쌍해져,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려 학생이 있던 교실을 정리하러 갔다.
 
  ‘...스...온...치...
 
  교실에 다가가자 코쟁이들의 말이 들려왔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영어에 호기심을 느껴, 저게 무슨말일까 하며 집중해서 들어보았다.
 
  ‘스...스...온더비치...
 
  완벽하진 않지만 대충 무슨말인지는 알아들어, 뿌듯함이 들었다. 내친김에 다음문제도 들어볼까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소쩍소쩍소쩍...소쩍소쩍소쩍...’
 
  접동새 울음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크게우는 접동새 울음소리 때문에 슬픈 감상에 잠시 젖었지만, 바로 들려오는 코쟁이들의 말에, 슬픈 감상은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한참을 듣고 있고 있었는데, 듣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학생은 휴대폰을 끄고 화가났는지 씩씩거리며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영문을 모를 일이었지만 코쟁이들의 말이 사라지자 들려오는 접동새의 울음소리에, 학생이 화가난 이유를 금세 알 수 있었다. 학생에게 교실을 빨리 나가라고 하면 기분이 상할거라 생각해서 짐을 정리하고있는 학생보고
 
  학생, 정리 부탁해
 
  라고 말을 한 후 수위실로 돌아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봤다.
 
  다음 날, 통제실이 교무실에 있어 학생이 끄고가지 못한 에어콘이 밤새 틀어져 교감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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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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