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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백일장] 깊숙한 방, 그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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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피아졸라
추천 : 5
조회수 : 24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8/11 03: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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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부터 그 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번도 없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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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부터 나는 약간의 조울증 증세가 있었다. 몹시 작은 일에도 몸을 떨며 반응하며, 조금이라도 세상이 내게 비정한 태도를 내보이면 그 날은 온통 세상이 파랗고 멀겋게 형태를 띠는 것 같았다.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그때의 나는 그런 내 태도를 청소년기의 물 흐르듯이 지나가 버리는 시기라 치부하고 나를 외면했었던 것 같다.

그게 어떤 일을 초래할지도 모른 채 말이다.

성인이 된 나는 이렇다 할 변명도 하지 못한 채로 내 본질을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그냥 이런 인간이구나. 고쳐 쓰기엔 너무 낡은 구두굽 같은, 이미 손써버릴 틈도 없이 망가진 시계같은, 그런 잡동사니들 말이다. 망가진 시계는 버려지기 십상이고 한번 버려진 건 손길이 닿지 않는 이상 아무도 쓰려고 하지 않는 법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나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는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작고 음습한 방에 나를 혼자 버렸다. 그리곤 도망쳤다. 나의 존재를 철저히 부정했다. 그리고선 참을 수 없이 흰 어둠이 나를 파고드는 날에는 문을 부술듯이 열고 들어가 내 자신을 학대하곤 했었다.

세상 모두에 의해 자신의 분신에게까지 학대를 받았던 나는 곧줄 가끔 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통해 차가운 햇빛을 즐겼고, 조금의 양분을 통해 겨우 살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아무에게도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죽어가는 나의 깊은 방에는 지저분한 이끼가 끼고 곰팡이가 껴 한계에 다다르기 직전이였다. 곧 죽을지경에 처해 새파란 얼굴을 한 나의 분신을 외면했다.

방을 마지막으로 나간 순간 마주치는 눈빛이 소름끼쳤다. 적빛의 소름끼치는 네모난 눈동자. 그게 나라는 사실을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먼저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 며칠이 지나갔다. 내 방은 여전히 못생기고 음습한 냄새를 풍기는 상태였다. 먹다 남은 썩은 생선의 냄새같기도 했다. 별 거 아니겠지. 설마 죽었겠어? 내가 양분도 주고 작은 창도 내줬는데.

그 후 일주일이 지났다. 냄새는 차차 잦아들었고 방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끔 바람이 불어와 문을 슬쩍 흔들고 지나가는 것 밖에는 일이 없었다.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겠지. 여태껏 내가 일년동안 가지 않아도 그 애 혼자서도 버틴 적이 있었으니까!

그 후 한달이 지났다. 요즘은 늘 이상하게도 좋은 일 밖에 없었다. 엄마가 가끔 찾아와 집을 정리해놓고 가고, 집에는 항상 환한 불이 켜져 있었다. 늘 어둡고 캄캄하던 집안에 누군가 나를 위해 신경 써준다는 건 정말 싫지만 행복한 일이다. 근데 왜 내게 신경 쓰는거지?

그 후 반년이 지났다. 맘속 깊숙한 곳에 있던 방으로 가는 길을 잊어버렸다. 오랫동안 가지 않아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차라리 눈 앞에 보이지 않으니 편안하구나. 이대로 눈 앞에 영원히 나타나지 말으렴. 나는 네가 없는 게 좋아. 눈을 감고 침대에 허리를 꼭 붙였다. 새로 바뀐 잠옷의 모양이 마음에 쏙 들었다. 이상한 줄무늬 같기도 했다.

그 후 일년이 지났다. 집에 사람이 늘었다. 그들은 나와 같은 잠옷을 입고 같은 방에서 밤에 잠을 자며 낮이 되면 혼자 놀이를 즐겼다. 나는 우리 집에 사람을 들인 적이 없는데, 엄마가 그랬나보다.

불현듯 내 친구 하나가 생각났다. 지금은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눈을 마주쳐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금은 연락이 안된다. 어디 혼자 햇빛을 쬐고 있나보다. 그 친구는 그게 취미였다.

그 후 ... ... 가 지났다. 밤에 갑자기 두통이 아려와 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바닥에 발을 붙이기가 어렵다. 머리가 빙빙 돈다. 서재로 가서 진통제를 먹어야 살 것 같았다. 이제는 나 혼자 방을 쓴다. 전에 계시던 가정부 아줌마만 남았다. 가정부 아줌마는 내 보모도 아닌데 흰 옷을 입고 매일 아침 기분이 어떠냐 꼬치꼬치 캐묻곤 했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무척 오랜만에 먼 길을 가는 것만 같았다. 이 길이 아닌가? 나는 무척 급했으므로 방문이 어떻게 생긴건지도 모른 채 금속의 촉감을 느낄 틈도 없이 방문을 열었다.

방 문을 열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곳에는 살가죽이 늘러붙고 온 몸에 구더기로 가득찬 다른 내가 누워있었다. 마주친 눈동자는 소름끼치는 적빛이였다. 이상한 기시감이 나를 관통했다. 방 안에서는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고 햇빛은 창문이 먼지에 가려져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얼은듯이 꼼짝 그자리에 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긴 어디지? 난 이런 집 안에서 산 적 없어. 발아, 여기가 내가 원하는 길이 맞니?

다리가 조금씩 부르르 떨려오기 시작했다. 세상이 온통 푸르고 먹빛으로 보인다. 흐물흐물한 형태가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알 수 없는 굴곡의 상태로 뻗어나가는 듯 했다. 안돼. 이럴 수는 없어. 난 그러지 않았어. 내가 안그랬어.

방문을 급히 닫고 나는 그 끔찍한 곳에서 탈출을 시도했다. 방 밖을 벗어나 녹아내리는 길을 미친듯이 절규하며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온 몸이 타들어갈듯 뜨겁다. 

점점 발에 불이 나는 것 같았다.
 
더이상 몸에 힘을 겨누기 어렵다.

그 붉은 눈동자와 눈을 마주쳤던 순간부터 뇌가 부서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꿈에서 깨어나 정신을 잃고 보니 침대였다. 배가 아리는 느낌이 들었다. 맥박이 불규칙하고 눈을 뜰 수 없었다. 손이 따가웠다. 지나칠 정도로 환한 방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갑자기 나는 악몽속에서 보았던 구더기덩어리 사체가 떠올랐다. 그 본체가 내게로 달려오는 것만 같았다. 꿈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구나. 일어나고 싶었는데 일어날 수가 없었다. 무언가 강제로 나를 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배 쪽이 점점 더 아리기 시작해 나는 마침내 거울을 끌어당겨 내 배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그 속에는 사체가 있었다.

구더기로 가득차 온 몸에 악취를 풍기던 사체가 웃으며 유리조각을 들고 있었다.

햇빛을 좋아하던 붉은 눈동자를 지닌 나의 친구가 자신의 배를 흉측하게 찔러 살갗이 다 헐은, 온몸이 피로 물들여진 모습이였다.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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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 세월호를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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