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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게시물ID : cook_2120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요오리사
추천 : 14
조회수 : 848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7/10/02 01:3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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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만들어 본 투움바 파스타.

아웃백의 맛은 완전히 담아내지 못했지만 나름대로는 만족스러운 퀄리티였다.




지금은 서울에 거주 중이지만

과거에는 강원도 춘천에 살았었다.

지금도 종종 들르는 춘천은 더 이상 시골이 아닌 번화된 도시이지만

내가 머물던 옛날 춘천은 강원도 시골다운 정겨운 모습을 띄고 있었다.

그런 춘천에 어울리지 않게 멋진 레스토랑이 하나 있었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 라는 이름의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사실 워낙 오래 전이기 때문에 그 곳이 프렌치 레스토랑인지도 명확하진 않다.

지금 생각해보면 러시아 지명을 사용한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이라니

굉장히 이상하지만

당시의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았던 어린 나는 그런 의구심 따위는 품지 않았다.

Escargot-Mushrooms-1.jpg

[출처: http://www.frenchrevolutionfood.com/2015/11/mushrooms-a-lescargot-or-the-secret-to-a-french-thanksgiving/]

 


이유는 간단했다. 


그 곳의 음식이 너무나도 맛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에스카르고는 일품이었다.


에스카르고는 지금의 내가 그 곳이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이었을거라 추측하게 하는 단서이기도 하다.


솔직히 그 곳의 스테이크, 샐러드, 파스타는 기억도 나질 않는다.


하지만 잘 구워낸 바게트와 함께 나오던 농후한 풍미의 갈색 소스를 뿌려낸 에스카르고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추억의 보정 탓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도 그 곳의 에스카르고보다 훌륭한 퀄리티를 내는 레스토랑, 호텔은 가보지 못했다.


당시의 어린 나는 그 레스토랑을 가는 것이 인생의 낙이었다.


그 레스토랑에 갈 때즈음이면 부모님도 정장을 입고


나도 연주회 때나 입던 정장과 나비 넥타이를 매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멋드러진 흰색 대리석 건물에 커다란 대문을 열면 포마드 머리를 한 중후한 할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반겼다.


자세히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내부는 원목으로 이루어진 클래식한 인테리어였다.


입구 왼쪽에는 앵무새를 기르고 있는 새장과 3~4마리의 거북이가 살고 있는 수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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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과 참나물, 솔잎 그리고 시소채를 이용한 요리]



20년 가까이 지난 옛날 이야기지만 이렇듯 기억이 생생한 탓일까.


나도 모르게 어떤 요리를 만들 때면 


그 곳의 요리처럼 맛있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곳의 요리가 내 요리 인생의 시발점이라고 단정지을 순 없겠지만 


보다 더 마음을 잡을 수 있게 해준 하나의 지표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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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바질페스토 파스타]



하지만 요리를 제대로 배워 볼 기회도, 경험도 없었던 나로서는 

제대로 된 요리들을 만들어내기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흔히들 말하는 야매

좋게 순화하자면 나만의 스타일로 요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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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등심과 유채꽃 그리고 된장을 이용한 스테이크]




완성도가 썩 좋지 못한 요리도 많았지만


내 예상대로 혹은 예상보다 좋은 평가를 받는 요리들도 점차 생기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스카르고처럼


기억에 남는 요리를 만들고 싶어졌다.



멘보샤.jpg

[멘보샤]



좋은 가수는 명곡으로서

누군가의 겨울로 남고 봄으로 남고

누군가의 10대에 살고 20대에 산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러고 싶다.

좋은 요리사로서 요리를 통해

누군가의 10대 기억 속에 살고 싶고

누군가의 20대 기억 속에 살고 싶고

누군가의 겨울로 남고 싶으며

누군가의 봄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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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다 치즈&당근 퓨레 그리고 와인소스를 곁들인 부채살 스테이크]





무언가를 함에 있어서 원동력이란 정말이지 중요하다.


나에겐 그 곳의 에스카르고가 원동력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좋은 요리를 해내는 요리사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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